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물갈이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지난주 한 불자 정치인의 퇴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주시갑 선거구에서 내리 4선을 한 더불어민주당의 강창일 의원입니다. 탄탄한 지역 기반에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흠이 없었고 게다가 한일의원연맹 우리측 회장을 맡아 대일 외교의 한 축을 담당해 온 터라 의아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강 의원은 '정치개혁의 불쏘시개'가 되겠다며 불출마의 변을 내세웠습니다. 지난 20대 국회를 돌아보면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낀다며 국민에게 탄핵을 받아야 할 국회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성 정치인들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을 대신한 비판이었습니다. 실제로 강 의원은 창피함을 느낀다며 평소에 의원 뱃지를 안달고 다녔습니다. 강 의원은 "소신있고 무탈하게 지내온 중진 의원이 이런 결정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며 동료 의원들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만 강 의원의 불출마는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불교계로서도 엄청난 손실로 여겨집니다. 강 의원은 국회 불자의원 모임인 정각회를 재건시킨 장본인이자 정각회장을 두 차례나 역임할 정도로 대표적인 여권내 불교통으로 꼽힙니다. 국회 포교활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적극적이었습니다. 국회내 법당인 정각선원을 확장시켰고 부처님오신날 국회 앞마당에 봉축탑을 세울 수 있게끔 총대를 메고 앞장섰습니다. 입법활동에서 불교계 목소리를 대변한 점은 두 말할 나위없습니다.
무엇보다 대외활동에서 자신이 불자임을 떳떳하게 밝히고 다닌 점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강 의원은 과거 불교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표가 안된다는 이유로 불자임을 안밝히는 정치인이 한심스럽다"며 한탄했습니다. 필자는 모 불자 국회의원의 경우 자신의 종교가 불교라는 걸 기사에 다루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도 있어 강 의원의 분노에 공감한 적도 있습니다.
그의 빈자리를 앞으로 누가 메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강 의원이 불교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주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9대가 공덕을 쌓아야 큰 스님이 될 수 있다는데 우리 집안은 9대가 덕을 못쌓은 것 같다"라고요. 늘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었습니다. 강 의원은 학창시절에 출가하려다 뜻을 못 이룬 뒤 서울대 불교학생회 활동으로 미완의 꿈을 달랬습니다. 탄허스님의 유발상좌 역할도 했고 법정 스님과도 교류를 가졌습니다.
우리 사회는 원로 중시 풍토가 비교적 강했는데 어쩌다 정치판에서는 원로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물갈이' '판갈이' 얘기가 나오는 지 안타깝습니다. 본분을 망각하고 사리사욕만 채우는 정치인이 많아지다보니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강 의원 같은 분이 희생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른 게 어이없습니다.
다만 강 의원이 정계은퇴를 선언하지 않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불교계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 여깁니다. 앞으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정치무대에 등장할 지 기대되기도 합니다. 정치개혁이란 거대한 불길을 지피겠다는 강 의원의 염원이 실현되기를 응원합니다. 덧붙이자면 인적쇄신이 정계 뿐만 아니라 불자 정치인에서도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