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했다. 십 수 년 기자생활을 했는데, 아직도 끝까지 읽을 수 없는 기사가 있고 들을 수 없는 보도가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지난 세월 이 기막히고 참담한 세상에서 어지간한 악마들의 향연은 다 목도(目睹)하고 단련된 줄 알았다. 분명 인간임을 스스로 포기한 살육과 패륜, 광기의 쇠꼬챙이에 수도 없이 찔려봤건만, 7살 원영이가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원영이는 그래도 마지막에는 엄마 품에 안겼다. 하얀 재가루가 돼 떨어지는 엄마의 눈물을 마셨을 것이다. 차디찬 욕실감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따뜻함이었을 것이다. 한겨울 락스의 독기와 찬물의 한기가 굶주릴 대로 굶주린 원영이의 가녀린 육신을 칼날처럼 파고들었을 때,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했을 생모의 따뜻함이었을 것이다. 엄마... 엄마... 얼마나 많이 불렀을까. 그 연약한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원영이의 친부와 계모는 아직도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처음부터 숨 쉬는 것조차 믿어서는 안 되는 희대의 악마들이었다. 오직 처벌만을 피할 생각으로 온갖 생거짓말만 늘어놓더니 여전히 살인죄만은 면하고 싶어 여기저기 살피고 구걸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디 이들 뿐이겠는가. 모진 학대 뒤 오직 살고 싶어 만신창이 몸으로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했던 인천 맨발 소녀의 아버지와 동거녀, 겨우 7살 아이를 2시간 넘게 폭행해 숨지게 하고 시신까지 훼손한 부천의 부모, 중학생 딸을 한 번에 70대씩 때려 사망케 한 후 11개월 간 미라상태로 만든 40대 목사와 계모까지, 이 악마들을 반드시 극형으로 다스려야한다는 목소리가 전국을 요동치게 하고 있다.

주변 어른들의 호들갑은 볼썽사납다. 정부 부처와 관련 기관, 경찰, 학교, 언론 등 우리 모두가 그저 고통스럽게 죽어간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인인 줄은 모르고 이제야 대책 마련한답시고 연일 부산스럽다. 한 아이는 한 마을이 키운다는 옛말이 새삼 절절하게 다가온다. 사실 학대 받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법제도를 손본 게 겨우 지난해 7월이다. 그러나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아동학대특례법은 시행됐지만 인프라 자체가 열악하고 강제조치 절차가 까다로워 아동학대를 막기엔 여전히 역부족인 현실이다.

전국의 아동학대사례는 연간 만 건을 훌쩍 넘고 있고, 가해자의 대부분이 부모이다.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암수범죄(暗數犯罪)이다. 드러나지 않는 범죄로 분류된다. 나이 어린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길 꺼린다. 알려졌을 경우 자신이 입게 될 또 다른 피해가 두렵기 때문이다. 또 피붙이들의 일이라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를테면, 그렇게 때리고 못살게 굴었는데도 우리 엄마, 우리 아빠 혼내지 말라면서 오히려 구해준 경찰을 타박하고 학대 부모를 따라 얼른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대통령이 제대로 나서줬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각종 성(性)범죄와 학교폭력, 군대폭력 모두 전 국민을 공분에 빠뜨릴 만큼 한 때는 정말 심각했고 야단스러웠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우리의 기억에서만 멀어져가고 있다. 이러다 누구 하나 또 비참하게 사망하거나 입에 담을 수 없는 사례가 나오면 또 반짝 관심을 보이려나. 이제 겨우 그 서막을 드러내고 있는 아동학대가 이런 전처를 밟지 않을까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쳐진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언급하고 질책하고 책상을 세 번만 쳐도 공무원들은 말을 들을 것이다. 하루 종일 대통령 입만 바라보고 있는 장관, 그 장관 비위만 맞추면 되는 부처 공무원들 아닌가.

모든 것을 대통령 탓으로 돌리고 책임지게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대통령이 아니면 제대로 해결할 사람도 없는 듯하다. 정치가 실종된 지 오래라 눈만 뜨면 자기 밥그릇 싸움으로 비린내만 풍기는 여의도에 물어볼 수도 없는 것이고, 자기들 치장하고 보호하기에만 급급한 재벌들에게 뭐 돈으로 어떻게 해보자고 호소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아직도 사리분별이 잘 안돼서인지 딴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빨리 일자리 못 만들고 법안 몇 개 국회통과 좀 안 되면 어떤가. 당장 나아질 경제도 아니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우리 아이들이 자기 부모들 손에 맞아 죽어가는 판국에 그런 것들이 그렇게 중요한가. 혹여 대통령이 자식을 키워본 적이 없어 이 엄청난 슬픔과 위중함을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너무 불경(不敬)한 것인가. [사회부장] [2016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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