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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불교방송 시사 프로그램 '박준상의 시그니처타임'

진행 : 전경윤 기획보도대응팀장
출연 : 김영준 나철칠기 명장 
방송 : 6/29(토), 6/30(일) 저녁 6시 20분(BBS 라디오)

나전칠기는 한국의 전통 자개 공예라고 부릅니다. 조개와 전복, 소라 등의 껍질을 그릇이나 가구의 표면에 다양한 문양으로 붙여서 장식하는 공예 기술이죠.우리 전통 공예 기술인데요. 예전에는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죠.나이 칠기 오늘은 나전칠기의 명장 명인으로 꼽히는 분을 초대했습니다.세계적인 작가입니다. 김영준 작가님 오늘 모셨습니다.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전경윤] 상당히 건강해 보이시는군요. 별로 이렇게 고민도 없으시고 스트레스 안 받으시죠?

[김영준] 요즘 고민 많이 내려놨죠 욕심도 내려놓고 그렇죠

[전경윤]알겠습니다. 이 나전칠기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됐어요.됐고 지난 봄에 우리 작가님이 전시회 하신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 CNN에서 그레이트 빅스토리라는 방송을 하는데 제가 유튜브를 봤거든요.거기 나오셨어요? 소개를 이렇게 하던데 영어로 소개했습니다만 어떻게 해서 그 방송에 나가게 됐습니까?

[김영준] 뭐 저도 몰랐는데 연락이 왔어요. CNN에서 한 한 달 전에 촬영을 했거든요.그래서 CNN에 나오고 전 세계로 그레이트 빅스터리라고 나와서 한 3~4일 됐어요.지금 나온 지가 나온 지가 그런데 한 3만 명 봤더라고요.전 세계 많이 본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또 많이 또 연락이 오더라고요.그걸 보고 네 보고 있어

[전경윤] 혹시 과거에 좀 관계가 안 좋았던 분이랑 연락

[김영준]그런 분들은 아니고 하여튼 뭐 대단하다고 그러면서 연락이 많이 와요.그렇군 저도 영광이죠. 그렇죠

[전경윤] CNN이 이렇게 내보낼 정도면 상당히 지금 인정한다는 얘기죠.이렇게 뭔가 이슈가 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저희 집에도 많이 있었어요.서랍장이 그러니까 꽃나무나 새가 새겨져 있는 서랍장 또 학과 소나무로 멋을 낸 화장대 전복 껍질로 두른 옷상자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시골집 안방 저희 할머니 집에도 있었고 이 천연 재료가 만드는 아름다운 빛깔은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 얘기하는데요.제가 너무 길게 설명했습니다마는 나전칠기만의 매력이 있습니까?

[김영준] 예 자개는 이제 우리나라가 이제 고육으로 옷칠하고 자개를 같이 했거든요.그래가지고 옛날에 그 할머니들이 자기 장에 있으면 부잣집이에요.그게 다 읽지는 않거든요. 부잣집들의 혼수 1위가 낮은 책이 장롱인데 그게 이제 할머니가 있었으면 우리 앵커님도 부잣집 할머니인데 그런데 요즘 시대가 흐르면서 이제 버려지니까 우리 전통이잖아요.우리 한국만이 할 수 있는 건데 안타깝죠.

근데 저는 그 나전에 제일 그래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자기의 빛이다. 그러니까 인공으로는 물감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데, 그 자기의 빛이 각도에 따라서 사람을 아주 평안하게도 만들고 또 기쁘게 또 슬프게도 만들어서 저는 자기 이 빛이 가장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연 재료 바다에서 나오는 천연 재료죠.그거 조개 껍데기를 벗겨서 그게 이제 자개가 되거든요. 벗기면 조개를 벗기면 자개가 되니까 개가 되는 그 자개 빛이 사람이 다르듯이 다 달라요.다 달라요. 그러니까 그게 아주 절묘한 거예요. 조개마다도 다릅니다.다 다르죠. 그래서 그 빚을 있는 걸 어디에 어느 작품에 쓰느냐 그게 이제 작가로서 고민해야 될...

[전경윤] 제가 어렸을 때 저는 이제 초등학교 다닐 때가 70년대 80년대 초인데 그때 친구 집에 가보면 나전칠기 된 장식장을 많이 봤어요.잘 사는 집이었네요. 그 집 그렇죠 그 집이 이제 잘 살았고 여자들이 이제 시집 갈 때 갖고 갔어요.혼수로 혼수로 갖고 간 거군요. 이게 자개장을. 근데 요즘에는 자개장을 버린다고 그러던데요.이게 안타깝네요.

[김영준] 특히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잘 버리더라고요.

[전경윤] 시어머니, 친어머니가 아니고

[김영준] 친어머니가 갖고 있던 거는 그래도 딸들이 보존하려고 그래요.저는 그걸 느꼈어요. 저한테 문이 오는데 좀 안타까운 일이 자기 어머니 거는 어떻게든지 보상하려고 그러는데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저보고 자기 작가님 이거 좀 가져가실 수 없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건 어쩔 수 없는 그 거부 관계인가 본데 그래서 지금 뭐 왜냐하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거든요. 까마니까 아파트가 환하잖아요. 하얗고 거기에는 안 어울리죠.

그러니까 이사 간다든가 그러면 많이 버리는데 요즘은 그거 갖고 또 인테리어를 쓴다든가 카페라든가 그리고 젊은 작가들이 문짝을 떼어서 또 그렇게 많이 활용하고 세월에 따라 이렇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근데 나전칠기 찾는 분들이 이제 예전보다 줄었기 때문에 작품 작품을 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저는 다행히 젊은 작가들이 조금 늘고 있다 이런 얘기도 들었습니다만 지금 현재 실태가 어떻습니까?

[김영준] 옛날에 같은 그 공예하는 노인들분이죠.  이제 거의 70대를 다 넘으셔서 그렇다고 해도 인건비가 안 나온다 그래 하루 어디 가면 20만 원을 받는데 10만 원도 안 된다는 거죠. 옷칠하고 작업하고 그다음에 또 수요도 없고 그래서 이제 젊은 사람들이 디자인 공부하신 분들이 자개를 갖고 나은 칠기는 아니죠.나전칠기는 옻칠을 해야 나은 칠기인데 자개하고 오치를 안 하고 자개를 갖고 디자인으로 해서 또 그들만의 이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하시는 분들이 좀 있고 저처럼 이제 전업적으로 작품을 하는 사람은 없죠.없고 별로 없군요. 없고

저는 또 옛날에는 가구 많이 했잖아요.그래서 저는 이제 벽에다 그는 그림으로 그런 걸 이제 많이 하니까 그렇게 하는 작가는 제가 작가로서는 제가 저거고 또 비슷하게 하는 사람들도 더러 젊은 사람 있습니다.

제가 제일 이 길을 먼저 갔죠. 그렇죠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전경윤] 작가님 작품을 보면은 이 불교의 가르침을 좀 담는 것 같아요.그러니까 어떻게 담아냈습니까? 그동안 불교의 가르침을 의도적으로

[김영준] 제가 이 살다 보니까 참 욕심도 많았고 목표도 많았고 뭐 미술관도 세워야 되겠다 뭐 이런 욕심이 많잖아요.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야 되겠다 이런 욕심도 많았는데 어느 순간 이제 제가 몸도 아프고 또 스님들 말씀도 많이 듣고 하다 보니까 다 내려놓았어요.근데 지금도 다 내려놓지 못해 순간순간 또 생기죠.

그럴 때마다 또 반성을 합니다. 그것도 내려놓고 내려놓고 하다 보니까 제가 좋아하는 말이 이제 공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공이라는 말을 많이 깊이 생각하다 보니까 작품도 그쪽에 좀 가깝게 하려고 그러고 또 좀 덕을 쌓아야 또 나중에 또 좋다 그러는 거에서 또 나눔 배려 이런 그런 가르침을 불교의 가르침을 제가 좀 많이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니까 그게 작품에 이제 배어나는 거죠.

[전경윤] 그렇다면 이게 작품이기 때문에 공예 작품이기 때문에 이 불교를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 어떤 기법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그냥 뭐 보면 알 수 있는 건 아닐텐데요.

[김영준] 그래서 기존에는 이제 자개를 이제 잘라서 붙이는 기법으로 했는데 저는 그 하나하나를 제가 조각을 내서 하기 때문에 그 조각 내는 자체가 수행이에요. 제가 그 자체가 자 그래서 전등사에서 한번 한 7~8년 전에 전시를 한번 했거든요. 당시 주지 승석스님이 "작가님은 뭐 따로 수행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라고 

그걸 보고 아시더라고 이게 얼마나 고행의 길을 갔는가 한 5년 정도 했거든요.작품을 그거 하나 만드느냐고 그러니까 그걸 그런데 알아보시더라고 선을... 그래서 인간이 산다는 것이 이제 그렇게 제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부족하지만 알아갑니다.그래서 그 불교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제 작품에 담겨져 있습니다.

[전경윤] 세계적인 나전칠기 작가 김영준 작가님과 얘기하고 있는데요.우리가 명인으로 부릅니다마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있었더라고요.빌게이츠의 게임기 케이스 게임기 케이스를 나전 칠기로 제작을 해서 그 케이스를 만들어서 줬습니까?

[김영준] 그게 이제 어떻게 되냐면 제가 전 증권회사에서 그만두고 한 10여 년간 있는 돈 다 없애서 작업을 하고 국내에 전시하다 보니까 아 여기는 아니다 그래가지고 이제 유럽으로 나갔어요.그래서 영국 프랑스 밀라노 이런 데를 1년에 한 서너 번씩 나갔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도 안 팔고 올 때도 많고 너무너무 힘이 들었는데도 그냥 갔어요.

있는 동안 집 하나씩 팔아가면서 그러고 가고 또 하나도 못 팔 적도 있고 하나 팔아서 차비한 적이 있고 그 어려울 때 마지막 이번에 전시다 그랬을 때 프랑스에서 빌 게이츠가 작품을 샀죠. 어떻게 알고...아는 것도 아니에요. 그게 뭐 누가 인연이 돼서 거의 호텔에서 그 양반이 주무셨어요. 저는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초청해서 전시를 했어요. 그 밑에 호텔에서 했는데 우연히 제작품을 사고 그게 이제 정확히 2007년이에요. 그리고 2008년도에 한국을 빌게츠 방문합니다.그렇죠.

그래서 2007년 12월에 엑스박스가 그 빌게이츠에서 만든 유일한 게임기 게임 하드웨어거든요. 다 소프트웨어만 팔잖아요. 여기다 자기를 붙일 수 있냐고 물어봤더라고 나한테. 그래서 그때 저 삼성전자랑 여러 가지 연구를 해서 자기가 붙이는 기술을 배워서 가능하다. 그러니까 3개만 붙여달라고 그래요. 2개만 붙여줬는데 빌 게이츠가 그걸 그다음 날 보니까 뉴스를 보니까 몰랐는데 우리나라가 그때 이명박 대통령을 주더라고요.그걸 선물로 준 거야. 대통령 방한 기념으로 그러니까 우리가 볼 때는 한국에서 낮은 식을 줘야 되는데 거꾸로 빌게이츠가 나전에 붙여서 주니까 이게 획기적인 이슈가 된 거죠. 그래서 그때 조선일보 KBS 이런 데서 막 저를 취재해 와서...

[전경윤] 그 뒤로 말이죠. 이 세계적인 기업인이었던 스티브 잡스가 만든 휴대전화 케이스에 나전칠기도 붙였는데 이게 CNN 방송에도 나오더라고요. 그때 또 사연이 있었죠. 

[김영준] 빌게이츠가 그걸 이제 주고 나서 이제 몇 개를 더 저한테 주문해서 스피치 협상 하나 준 거에요.  그래서 그걸 보고 스티스잡스가 저한테 그때 아이폰이 처음 출시할 때거든요. 그때 여기다 좀 만들어 달라 그래서 자기는 이걸 팔려고 그러는 게 아니고 그 사람들은 자기 잘 아는 사람들한테 선물로 주려고 그래요 그래서 그때 주문해서 제가 만들어드리는데 나비가 이렇게 딱 꺾였는데 그걸 마음에 들어하더라고 요. 제가 일부러 꺾은 건 아니고 나비가 있었거든요.그런데 너무 커서 좀 꺾었어. 그런데 그걸 마음에 드는 좋아해요.꺾는 걸 좋아해요. 모르더라고요. 인생은

[전경윤] 그럼 그때 세계적으로 더 이렇게 대중들에게 파고들 수 있는 분위기도 약간 있었네요. 그리고 다른 종교 얘기입니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자를 제작했다.이게 무슨 얘기입니까?

[김영준] 그래서 제가 제작을 할 형편은 안 되었는데 제가 이제 화요일 아침 예술학교에 신부님이 교장 선생님이신데 신문을 보고서 제가 어떤 개인적으로 알게 됐어요 .그래서 무료로 제가 가르쳤거든요. 거기서 학생들을 그런데 이분이 교황님이 오신다는 거예요.우리나라 그래서 저는 오시는 것도 몰랐죠. 그 의자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거죠.그래서 저는 그때 그분을 상당히 존중하고 생각도 좋아서 만듭시다.그냥 그 우연히 만드는 거예요. 근데 제 게 다른 사람들 거 잘 만든 분도 많은데 그 심사를 해서 ,옻칠만 한 거예요. 그랬는데 풍성하고 잘 맞다 그래서 진짜 운이 좋게 제게 선정이 됐죠.그래서 tv 뉴스도 나오고 

[전경윤]세계적으로 유명한 분들하고 인연이 많아요. 네 그런데 이제 제가 작가님의 과거를 추적해 보니까 증권회사를 다니셨어요.다니셨고 잘나가는 증권평론가로 방송 공중파 방송 많이 하시고 잘나가던 시절에는 진짜 그래도 나중에는 힘들었다고 하셨지만 잘 나갈 때는 정말 목에 힘도 들어가고 그런 시절이 있었죠.분명히

[김영준] 동서증권 국제그룹의 마지막 공채거든요. 동서증권에서 10년을 근무했는데요. 종합주가주가 120대에서 들어가서 제일 적었는데 그게 이제 천까지 두 번 찍었어요. 10년간 주식이 동서증권 같은 경우는 자본금 200억이 때 들어갔는데 2400억 대가 한 100배 올랐더라고요. 5만 3천원 3500원짜리가 주식 수는 10배 늘었으면서 그래서 상당히 주식 그때 우리나라 최고의 호황기였죠.그 호황기 때 제가 MBC 뉴스데스크에서 한 달에 한 두세 번씩 나가고 또 라디오 출발 라디오 행진 고정 프로그램 3년간 하면서 증권사 동서경제연구소에 근무하면서 거기 나가서 이제 제가 그때 증권회사로서는 최고 인기 좋았었습니다.

[전경윤]외환위기 전에 증권회사를 그만두셨는데 왜 그만두셨는지 그리고 왜 니전칠기를 선택했는지 이게 굉장히 궁금합니다.

[김영준]제가 이제 동서경제연구소 근무할 때 손병두 경제연구소 사장님이 제 연구소장으로 계셨어요.근데 그분이 이제 계셨으면 저도 있었을 텐데 그분이 이런 이유로 전경련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으로 가셨거든요.나중에 전경련 상근 부회장도 하시고 서강대 총장 하시고 호암재단 이사장 하시는 훌륭하신 분인데 여러 가지 많이 하시죠.제가 존경하는 ROTC 선배님이에요. 그래서 그때 엄길청 선배님 저랑 셋이 잘 열심히 했는데 그분이 이제 그만두고 엄길청 씨도 그만두고 선배도 그래서 저도 혼자 여기서 이제 그만두라는 뜻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저도 그때 그만뒀죠.

[전경윤]어쨌든 그래서 나전칠기를 선택한 거는 그전부터 관심이 있었다거나 이런 부분이 있었는지 아니면 어떤 우연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김영준] 있었어요. 왜냐하면 중학교 때 선생님이 미대를 가라고 그랬었거든.그런데 그 당시 미대를 가기는 어려웠죠. 미대 시골에서 강원도에서 그런데 어머니가 자기의 장을 갖고 계셨어요.지금도 갖고 계신데 그 자기장을 보면서 그렇게 기뻐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래서 야 이게 그림을 그리려고 했는데 너무 쟁쟁한 사람들이 많고 왜 나전칠기를 선택했냐, 그때 다 버리고 떠날 때야.그래서 제가 항상 생각하는 말 남들이 가는 반대편에 꽃길이 있다.그게 주식 투자 제가 많이 쓰던 말이거든요. 남하고 다르게 해라 다르게 해라 .주식 올랐을 때 막 사지 말고 많이 올랐을 때 팔고 떨어져서 죽으려고 그럴 때 그때 사라. 근데 어려운 거거든요. 그게 쉽지는 않아요.

어렵죠 인간으로는 그래서 나은 씨 갔다 떠나서 또 여기는 그렇게 또 많이 배우는 사람이 미술 이런 거보다는 없으니까 자기들이 떠나니까 이걸 내가 한번 해야 되는데 디자인이 좀 문제다. 디자인을 좀 현대적으로 해야 되겠다. 그래서 제가 이걸 선택하면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독일에 공부하러 갔죠.그 집 하나씩 팔면서 다

그때 다 버리고 나고 장사가 안 되니까 나전칠기 하던 분들이 실직한 상태야. 가구 회사 가고 없어 그러니까 더 이상 안 만들으니까 뭐가 문제냐 하면 디자인이 문제가 아니냐 이거지 그래서 디자인을 바꾸러 제가 그러면 한국이 아니라 외국에서 공부해야 되겠다 해서 미국에 가서 공부한 거죠.

[전경윤] 하루에 20시간씩 작업을 하신다 이런 얘기가 있더라고요.그리고 수많은 실패를 했다. 난 지금도 실패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는데 무슨 뜻인지

[김영준] 제가 이제 작품에 몰입을 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요.우리 약간 무아지경이라고 그럴까 몰입하면 아무 생각 없이 제가 아는 것 같지가 않아요.이게 누가 시켜서 하는 것 같아 신의 경지인지 부처님의 경지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냥 제 몸을 빌려서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저는 들어서 그래서 하다 보니까 옛날에는 20시간까지 했어요.

하다 보면 쉬면 누워 피곤하면 듣고 배고프면 먹고 또 일어나면 하고 그러다 보니까 한 1~2년 하니까 이 몸이 다 망가졌죠.망가져서 이제 죽을까도 생각했는데 또 소개해줘서 다시 또 그래서 옛날보다는 건강했어요.그 자연의 치유 그걸 알고선 건강 관리를 제가 하니까 먼저 그 뚱뚱했던 몸 나빴던 눈 목 아픈 거 이런 게 다 없어져서 지금은 그전보다 상당히 건강해진 편이에요.그렇게 아픈 데는 없어요.

[전경윤] 그런데 우리 김영준 작가님의 나전칠기 작업이 일반적인 작업과 다르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보니까 크게 4가지인데 도안을 하고 자개를 잘라 붙이고 옻칠로 마감을 한다 이렇게 이제 알고 있는데 기존 작업하고 다릅니까?

[김영준]저는 다르죠. 똑같이 한 30개씩 40개씩 잘라서 붙여요.그러니까 똑같은 장롱이 되는 거죠. 도안이 하나 그리면 그런데 저는 그냥 거기다 그림을 그리고 자개를 하나씩 하나씩 박으니까 똑같은 게 없는 거예요.그때는 잘라서 붙인 거고 저는 자르면서 붙여서 조각 내서

그러니까 오래 걸리죠. 그래서 비싸요. 그래서 오래 걸리니까 그거는 한 번에 엑스박스 빌게이츠 같은 거는 한 번에 100개씩 잘라서 붙일 수 있는 거고 제가 지금 하는 작업이 벽에다 거는 그림은 조각 조각을 하나하나 손으로 하는 거죠.그 정성과 저의 그 정신이 몰입돼서 나오는 거죠. 하나씩 시간은 많이...

[전경윤]그러면 작품 하나를 만드는데 몇 개월 이상 걸리나요?

[김영준] 보통 한 6개월에서 최고 많이 한 항아리는 한 5년 걸렸어요.5년이나 그거 하면서  전등사에서 전시한 것으로 제가 몸이 아주 아팠죠.

[전경윤] 제가 연구를 많이 해왔습니다. 우리 작가께서는 빛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고 계시고 그리고 20~30년 된 자연산 전복이나 소라 등만 쓴다 맞습니까?

[김영준] 예 그래서 손님들이 오시면 작가님 자기 핏이 다른 거 보는 거하고 다르다.시중에서 핏이 다르다. 그래서 왜 그렇게 쓰게 됐냐면 제가 한 20여 년 전에 그걸 하면서 아 이게 자개가 없어질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점점점점 가공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더라고요 , 자연산 전복 이걸 갖고 있는 데서 버리지 못하고 이분들이 제가 이제 제일 잘 나가는 줄 알고 갖고 왔어.그래서 한분 걸 내가 사주니까 얘기해가지고 한국에 있는 오래된 자연산 전복 그거는 제가 다 샀죠. 그때 그래서 그거를 제가 죽을 때까지 이거 쓰겠다 해서 지금은 그걸 돈 주고 살래도 살 수가 없는 거예요.없는 거예요. 지금은 다 양식하니까 그러니까 한 40~50년 된 자연산 전복에서 나온 그 빛 좋은 거를 저는 쓰고 있죠.

[전경윤] 작가님은 이제 인간보다 자연을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바다와 산 숲과 나무를 굉장히 좋아하신다고요? 자연에서 무슨 영감을 얻습니까?

[김영준] 네 저는 삶 자체가 저도 자연이라고 보고요. 자연 속의 일부분 아닙니까?인간도 그러니까 자연을 보면서 제일 편안해져요.물소리 새소리 바닷소리 또 나비가 날아가는 걸 한참 보고 또 사진도 찍고 또 하늘 밤에 하늘도 보고 별도 보고 자연이 재생의 일부고요.또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또 이렇게 깊이 있는 내공 있는 분들이 있어요.

[전경윤] 제가 들어보니까 작가님이 욕심이 참 욕심이 많다기보다는 늘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하고 또 제자도 많이 키우고 싶어하실 것 같아요.내 뒤를 좀 따르는 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늘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김영준] 세상이 지금 계속 변하잖아요. 우리가 핸드폰 없을 때 핸드폰 생겼다가 지금 아이폰이 또 세상이 바뀌었잖아요.그럼 요즘은 대학 갈 필요도 저는 없다고 생각해 유튜브가 다 있어 제가 볼 때는 그런 지금 세상이 변하는데 우리 미술도 저 나은 시기도 이제 천년 이어온 걸 제가 한 바퀴 딱 새로운 시도를 했단 말이죠.그런데 제가 이대에서 한 대학원에서 제자들을 한 7년간 가르쳤어요.그런데 그중에서 똑똑한 애들이 많아 진짜 머리가 좋은데 이거 할 여건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 이제 큰 작품을 좀 팔면은 이 제자들 있잖아요.좀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시는 분들 제자를 가리켜서 그들로 하여금 저보다 더 폭넓게 다양하게 세계적인 작가를 키우는 것이 개인적인 소망이고요.저로는 또 새로운 걸 또 저는 계속 할 겁니다. 왜냐하면 기법이라든가 디자인이라든가 계속 한 번 한 것 같고 또 보여주면 식상하니까 또 새로운 작업을 항상 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생각하고 있죠.

[전경윤]제자들 가운데 이렇게 소질 있는 분들이 있는데 여건이 안 된다 이건 무슨 뜻인가요?

[김영준] 이 나전칠기 배우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재료비 하고 또 전시하고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제가 좀 그리고 누가 요즘에 이런 걸 하려고 그래요 안 하려고 그래요.잘 그래서 제가 돈을 주면서 가르치려고 그래요. 제가 지금 돈이 없으니까 좀 작품이 좀 팔리면 재단을 만들어서 후학들을 좀 어렵지만 나도 좋아하는 후학들을 제가 좀 그런 봉사를 제가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이 제 1번입니다. 그다음에 제 작품을 또 더 새롭게 또 하는 것이고.

[전경윤] 우리가 이 대학이나 학교에 이런 과정이 좀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것인지요 ?

[김영준]그런데 뭐 이게 요즘 흐름이요 전통 공예 어제도 제가 강원도의 공예품 출품 전시를 갔다 왔거든요.그 심사를 그런데 공예인들 얘기 들어보니까 공해를 아주 공해로 생각하나 봐요 돈을 지원을 안 해준대 그리고 또 잘 팔리지도 않고 또 현대에도 안 맞고 참 문제예요. 그래서 이게 그래서 저는 문제인데 여러 분야에 다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 전통 공예는 유지시켜야 되겠다 그런 것이 생각이고 후학들로 하여금 저보다 더 훌륭한 제자를 가리켜서 또 그들이 더 큰 세상으로 빛을 내주길 바라는 거죠.

[전경윤] 그런데 우리 작가님께서 나전칠기의 빛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그리고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이런 말씀하셨는데 나전칠기 작품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김영준] 저희 집에 이제 외국에서도 이제 저희 양평 김영준 나전칠기 미술관에 많은 사람들이 와요.전 세계에서 오는데 와서 이제 다 보는 사람들이 이런 자기는 처음 봤잖아요.그림도 없고 외국에서도 또 한국에서도 그래서 이걸 보면서 너무너무 자기는 오늘 행복했다.너무너무 꼭 다시 한 번 오겠다. 그리고 사람들이 와서 그걸 보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또 미술 치료사도 와서 야 이거 어떻게 해가지고 좀 명상 센터를 만들어서 그걸 하면서 하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제가 들으니까 저도 아 이게 제가 이렇게 만들었지만 남에게 보는 관객들에게 복을 주고 행복을 주고 치유가 되니까 저 너무 행복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쪽으로 많이 생각하고 빛이 빛과 어둠이잖아요.그럼 빛이 더 좋은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빛을 보면서 빛나는 사람이 되라 또 남에게 비추는 사람이 되라 이렇게 많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지금 양평의 미술관이 있나요 ?

[김영준] 양평 용천리에 김영준 나전 미술관이 있어서 운영하시는 거예요.그냥 예약만 해야 들어옵니다.

[전경윤]그냥 가면 안 됩니까?

[김영준] 그냥 하면 제가 작업하니까 안 열어줍니다. 미리 사전에.. 김영진 나전 미술관 치고 예약을 하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이 예약해서 내려온다 그러면 이제 그때 비워둬서 관장님이 문 열어주고 합니다.저는 작업하니까

[전경윤] 지금 쭉 얘기 들어보니까 앞으로 어떤 목표가 있으실 것 같아요.그러니까 그거는 세계화 대중화 후진 양성 이런 것들인가요?

[김영준] 그런 게 큰 분야고요. 저도 이제 조그만 공간을 만들어서 어떤 사람이 명상을 할 수 있고 거기 와서 행복하고 자기 인생을 좀 더 되돌아볼 수 있는 어떤 공간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 작은 공간이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거기서 명상도 하고 그것을 보면서 또 좋은 말씀도 좀 들려주면서 좀 인간을 치유한다고 그럴까 그런 거는 개인적으로 하고요. 그다음에 뭐 제자들은 가르쳐서 세계적으로 하는 건 뭐 기본적인 거고 개인적으로는 그런 작은 공간을 만들어서 한 사람이라도 저에게 저 때문에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행복한 시간을 가져서 인류를 아름답게, 서로를 좀 덕을 주면서 부처님 말씀이죠. 그게 다 제 말씀은 아니고

[전경윤] 지금 이 서구사회에서 불교 열풍이 불고 있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고 현대인들이 워낙 이제 정신적으로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하니까 불교의 어떤 가르침 또 명상 네 지금 조계종은 선명상 이렇게 지금 보급을 하고 있는데 그런 것들이 좀 많이 파고들 수 있다고 보세요.?

[김영준] 예 지금 제 주위에도 명상센터 이런 하시는 분들이 좀 있고요.저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있잖아요. 그때 낮에는 교회 다니고 저녁에는 명상센터 와서 불교 가르친 반상을 저는 많이 봤어요.미국에서 미국 사람들 미국 사람들이 그래서 그때부터 거기는 삼십 년 전부터 이걸 했어요.미국 사람들은 선진국이니까 정신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래서 엠에스라든가 뭐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이런 데는 맞아 명상센터가 있어요.

그래가지고 인간이 정신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거부터 가르쳐요.걔네들은 그러니까 우리하고는 수준이 다르죠. 근데 이제 우리나라도 그쪽으로 지금 많이 배운 사람들이 있고 데려온 사람들이 있어서 인간이 AI 시대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제일 중요하잖아요.그렇죠 그 마음은 명상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좀 내려놓고 남을 위해서 봉사하면서 그래서 기쁨을 느끼는 거 그렇죠 그거가 이제 핵심이죠.그게

[전경윤] 나전칠기 명인 김영준 작가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요.저는 이게 또 궁금합니다. 지금 예전보다는 이제 관심이 줄었다고 하지만 전통 공예나 이런 작품에 대해서 젊은 세대들이 이런 쪽에 뭔가 호기심을 갖고 관심을 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앞으로 그런 비전이 있다라고 보십니까?

[김영준] 네 저도 이제 나전칠기를 기존의 거를 좀 뭔가 바꿔야 되겠다고 시도했잖아요.그런데 지금 젊은이도 외국에서 디자인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든가 또 엊그제 오치라는 친구를 봤는데 또 새롭게 시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분명히 있고 제가 만약에 도움이 된다면 그들한테 조언도 해주고 그럴 보이지 않는 곳에 또 자기 오칠을 묵묵히 자기의 방식으로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분명히 있어서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뭐 없어지지 않고 또 새로운 쪽으로 시대에 맞게 발전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항상 말씀드리는 게 우리나라의 전통 전통대로 지켜 나가야 하는 거예요.전통 지켜 나가고 또 전통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길도 나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두 가지를 저는 두 가지 얻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두 가지 다 필요하다는 거거든요.그런데 전통 지키는 분들이 이제 인간문화재니 뭐 이런 분들이 다 나이가 많으시니까 그렇죠 그 밑에서 그런 게 제일 안타깝고요.그런 게 안타깝고 어떻게든지 좀 전통을 지켜줘서 했으면 좋겠는데 저의 힘으로는 안 되고 저는 그래서 후자를 택한 건데 전통에서 시대에 맞게 가는 거고 그 요즘 애들은 전통 하는 것보다는 시대에 맞게 자기 방법으로 하려고 한단 말이죠.그런데 이 전통을 지켜주는 문제가 제일 지금 또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에서 뭐 하면 저도 좀 어디 어느 절에이라든가 해서 좀 사람들 가리키고 그러면 제가 전통 현대를 다 가리킬 수가 있는데 그래가지고 어떤 저도 마지막에 이제 봉사하고 그들과 같이 작업하고 그런 것도 저는 지금 갑자기 생각한 거예요.갑자기 생각 어떤 공간이 많으니까...

[전경윤] 혹시 작가님 하반기에는 전시회라든지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 거죠?

[김영준] 예 있죠 7월 8월 또 전시 있고요. 9월 10월 있고 11월 전시 있고 계속 어떻게 올해는 하여튼 전시를 많이 합니다.옛날에는 1년에 네다섯 번 전성기 때 했는데 올해가 그것보다 더 뛰어넘고 

오늘 시그니처 타임 박준상 기자가 출장을 간 단계로 제가 진행을 했는데요.오늘은 나전칠기의 명장 김영준 작가님과 얘기를 나눠봤습니다.오늘 사실은 인생에 대한 여러 조언을 오히려 니전칠기보다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작가님 오늘 대단히 고맙습니다.

[김영준] 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경윤] 지금까지 시그니처 타임 진행의 전경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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