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BBS좋은아침광주] 산문집 ‘마지막 스승 법정스님‘ 저자 정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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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 : 산문집 <마지막 스승 법정스님>펴낸 정찬주 작가

■ 진행 : 광주BBS 김종범 방송부장 

■ 방송일 : 2024년 6월 27일 목요일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오늘 줌인터뷰에서는 최근 ‘마지막 스승 법정스님’ 이란 산문집을 펴내신 정찬주 작가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화순 쌍봉사 인근의 이불재(耳佛齋)라는 곳에서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계시는데 이불재를 산방이라고 해야 되나요?어떤 의미가 있는 공간입니까?

<정찬주 작가(이하 정찬주)>

그렇습니다. 계당산 산자락 협곡에 있는 집이니까 산방이라고 해야겠죠. 그런데 제가 소설가이다 보니 작가의 집필실 혹은 독서실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이불재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분들이 더러 있어요. 귀이자 부처불자 집재자이지요. 다시 말하면 물소리 바람소리를 듣고 귀를 씻어서 부처를 이룬다는 그런 뜻으로 지었어요. 그런데 이제 요즘은 그 의미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앵커>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정찬주> 새벽부터 오전까지 글을 쓰고 나서 오후에는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차담을 나누곤 하는데 손님들의 세상 얘기를 들어주는 집이라는 뜻으로 바뀐 듯해요. 그러니까 이제 자연의 무정세법을 듣고 진리를 이루겠다는 소승적 의미에서 관음전 같은 대승적 의미로 진화했다고 할까요? 어쨌든 24년 전에 산방을 지었을 때와 지금은 그 의미가 분명히 좀 바뀐 것 같습니다.


<앵커> 20여 년 전에 도시 생활을 접고 어떻게 보면 귀촌을 하신 건데 이력을 보면 선생님 고향은 보성이신데, 어떻게 화순 근처에 이렇게 터를 잡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정찬주> 제가 태어난 곳은 보성군 복내면 바람재 마을이고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화순군 이양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뒷산 하나만 넘으면 바로 복내면이에요. 그리고 제가 쌍봉사 근처로 터를 잡고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낙향한 이유랄까요? 그것은 쌍봉사와의 인연 때문이죠. 저는 1970년대 초에 동국대 국문과를 입학했었는데 당시에는 대학가의 반독재 데모, 민주화 투쟁 데모가 아주 잦았어요. 때문에 어떤 때는 한 달 정도 장기 휴강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저는 학교 도서관보다는 쌍봉사로 내려와서 소설 습작을 하고 그랬죠. 고요한 산사로 내려와서 젊은 날에 뭐라고 할까 뜨거운 분노를 삭혔다고 할까요? 소설 습작을 하러 내려왔지만 쌍봉사 대웅전 부처님 미소를 보면서 신심이 깊어지고 또 아주 정교한 국보 57호인 쌍봉사 철감선사탑을 보면서 진정한 예술혼이 무엇인가 그런 것을 이제 가늠해 보기도 했었죠.

 

<앵커> 산중 생활이 적막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작품 활동하시는 데는 어떻게 좀 도움이 많이 되시나요?

<정찬주> 그렇죠 아주 적막하죠. 오후 6시 이후가 되면 아주 칠흙같이 캄캄해지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게 좋아요. 손님들이 제게 묻는 질문 중의 하나는 산중에서 외롭지 않느냐 그런 질문을 많이 해요. 그런데 저는 그 산중 생활하는 데 외로움이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롭기 때문에 더 자신의 일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저의 업은 작가이기 때문에 집필이 될 텐데 낙향해서 많은 소설과 산문들을 썼어요. 외로움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가까이 했기 때문에 글 쓰는 양이 배가 되지 않았나 싶고요. 또 사람들이 외롭기 때문에 술 마시고 노래방을 가잖아요. 물론 이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는 약간의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건 이제 창의적인 일이라고 저는 생각지는 않습니다.


<앵커> 이불재에서의 일과를 좀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정찬주> 저는 이제 컨디션이 정상일 때는 새벽 4시에서 4시 반 사이에 일어납니다. 그때 개인적으로는 영감이 솟구칠 때가 많아요. 저의 경험치입니다만 저의 선입견이나 신념이 무장해제된 그런 상태가 새벽 시간이에요. 그때 이제 영감이 이제 이렇게 솟구치는 거죠. 영감은 이제 작가로서 상상력을 펼치게 하는 에너지 같은 것인데 새벽에 글 쓰는 글이 대부분 마음에 들고 조금 창의적이에요. 이런 예도 있습니다. 한 달 동안 고민하던 소설 제목이 새벽에 정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 소설 제목이 바로 소설 무소유인데 법정 스님의 상좌 중에 한 분은 소설 무소유가 너무 진부하다고 저한테 조언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제 영감을 믿고 이제 그렇게 결정을 했는데 그 결과 한 30만 부 정도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죠. 또 성철스님의 산은산 뮬은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철 스님은 원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렇게 말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말씀이 워낙 강렬하고 강렬했기 때문에 그 소설 제목으로는 조금 문제가 있다 싶어서 계속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새벽에 산은 산이요에서 이요를 떼고 물은 물이로다 할 때 이로다를 빼니까 아주 신선해져요. 그리고 또 잘 아시다시피 5.18 광주민중항쟁 소설인 광주아리랑을 제가 발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당시 광주 항쟁 때 시민들이 금남로에서 즐겨 부르던 게 아리랑이었어요. 그런데 광주 아리랑 제목도 굉장히 고민하다가 새벽에 새벽 이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광주 아리랑이 되겠구나 그래서 광주 아리랑에서 제목을 붙였죠. 그리고 이제 새벽부터 오전 12시까지 글을 쓰고 오후에는 이제 손님들과 차담을 나누고 세상 얘기를 듣죠.

 

<앵커> 작품 이야기 좀 해보겠습니다. 최근에 펴내신 책이 마지막 스승 법정 스님이라는 산문집이죠. 선생님께서는 법정 스님과 깊은 인연을 갖고 계시는데 법정 스님과는 처음 어떻게 인연이 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정찬주> 저는 동국대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교편을 좀 잡았어요. 그러다가 조계종 총무원에서 불교 사상을 발간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교사직을 사직하고 불교사상 창간 멤버로 참여했죠. 그러다가 이제 샘터사로 옮겼죠. 샘터사로 가니까 법정스님께서 샘터 월간지 연재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제 원고 담당자가 되었죠. 그래서 법정 스님을 직장인으로 처음 뵌 것은 34살 때입니다. 송광사 불일암에서 뵙죠. 그리고 스님의 사무직 편집일로 불일암을 다니다가 6년 만에 제가 청을 해서 스님의 제자가 됐죠.



<앵커> 법명이 무염이시잖아요. 이 법명도 법정 스님이 지어주셨다고 제가 알고 있습니다.

<정찬주>6년 만에 스님한테 제가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불일암으로 내려오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때가 제가 40살 되던 해 단오 전날이었습니다. 법정 스님께서 이제 하룻밤 재우더니 단오날에 법명과 개첩을 주시면서 무염이라는 뜻은 저잣거리에서 살 때 물들지 말라라는 뜻으로 본명을 그렇게 지었다고 말씀을 해 주시더라고요.
 

 

<앵커> 책 제목이 마지막 스승 법정 스님인데 이 마지막 스승이라는 의미는 어떤 건가요?

<정찬주> 인생을 살면서 저한테 어떤 영향을 많이 준 분 스승 세 분을 꼽으라면 첫 번째 스승은 이제 제가 사춘기 때 방황을 많이 했거든요. 방황을 멈추게 한 아버지가 첫 번째 스승이고요.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만. 두 번째 스승은 대학시절 고결한 문학 정신을 일깨워 주신 동국대 전 총장 홍기삼 박사님이시고요. 이제 마지막 스승은 불문의 스승이 되신 법정스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앵커>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을 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이 산문집 출간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정찬주> 동기는 아주 단순해요. 요즘 사회는 물론이고 종교계마저도 혼탁해진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의지할 때가 없겠구나. 그래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을 만한 산문집을 내보자는 취지에서 발간했죠. 독자들이 마지막 스승 법정 스님을 읽고 인생 응원가랄까 어떤 희망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이전에도 법정스님과 관련된 책들 많이 펴내셨는데 이번에 펴낸 산문집 어떤 글편들이 담겨 있는지 잠깐만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정찬주> 가장 큰 특징은 법정 스님께서 저에게 보내주신 편지나 붓글씨 등 유묵을 처음으로 공개했어요. 아마도 법정스님의 유묵이 산문집으로 공개되는 것은 아마 제가 처음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그런 붓글씨가 독자들에게 삶의 지침이 되거나 화두가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봅니다.
 


<앵커> 지난 23일 광주 보은사에서 북 콘서트도 여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당시에 북 콘서트에 많은 분들이 오셨다고 들었는데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정찬주>굉장히 성황이었습니다. 몇 분한테 문자를 받았는데 북 콘서트가 끝나고 강연을 듣고 울컥했다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역시 작가와 독자는 공생하는 관계구나 하고 새삼 느꼈고요.
강연이 끝나고 사인회를 가졌는데 점심 공연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도제 스님께서 점심 공양을 함께 하겠다고 옆에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사인회를 중지하고 점심 공양을 하러 들어갔는데 거기까지도 7분이 책을 들고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앵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내실지도 참 궁금한 부분인데 불교 경전을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획 갖고 계시나요?

<정찬주> 저는 소설가의 정년을 80세로 보거든요. 80세가 넘어가도 물론 쓸 수는 있지만 이제 멘탈이 약해져서 밀도 있는 소설은 쓰기 어렵지 않나 그래서 저는 소설가 정년을 제 개인적으로 80세로 보는데 제가 올해 이제 7학년 3반이거든요. 앞으로 몇 권의 소설을 쓸지 참 세월이 무상하다는 걸 절감해요. 그러니 이제는 일반적인 소재의 소설보다는 경전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써서 우리나라 불자분들에게 회향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앵커> 선생님 글을 좋아하는 애독자분들 많이 계실 텐데 끝으로 한 말씀 남겨주시겠습니까?

<정찬주> 과거 신라시대 향가나 고려시대때 는 우리 불교문학이 주류였거든요. 이제 그런데 지금은 불교문학이 서구문학에서 밀려서 변방으로 나가 이렇게 있다는 이런 상태인데 제 소망이 있다면 불교문학이 다시 한국문학의 주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문학의 주류가 되는 일에 징검다리라도 되겠다는 각오로 평생 불교소설을 써왔거든요.그래서 애독자 여러분들도 우리 불교문학을 더욱더 사랑해 주신다면 그날이 우리 불교문학의 주류가 될 날이 더 빨리 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 문학을 더 많이 사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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