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일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그 마음으로 시작
-약 2달의 교육과정...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노력
-공영장례 빈소...장례 업체마다 차이 느껴
-앞으로도 책 하나, 커피 한잔 들고 공영장례 빈소 찾을 것
-공영장례 조문도 봉사 점수로 인정해 줬으면...
-1인 가구 늘어나면서 공영장례 이제 남의 일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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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연 : 김미경 씨(부산 반빈곤센터 공영장례 조문단 양성과장 수료생)
● 진 행 : 박찬민 BBS 기자

 

부산 반빈곤센터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공영 장례를 중심으로 사람이 태어나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 이 부분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보자라는 그런 취지로 매주 목요일 함께 방송을 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공영장례 조문단 양성 과정을 마친 교육생 분과 함께 교육 과정 이야기 등에 대해서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전화 연결하겠습니다. 김미경 씨 나와 계시죠? 안녕하십니까?(안녕하세요. 김미경입니다)

 

부산 반빈곤센터 공영장례 조문단 양성 과정, 시작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김미경) 저는 공영 장례에 대해서 전혀 몰랐었거든요.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고 이렇게 활동가 과정도 있다고 그래서 궁금해서 한번 들어보게 됐습니다.

 

우연한 과정은 어떻게 되신 거예요? 매체를 확인하신 거예요? 아니면 주변에서 말씀을 하신 걸 듣고...

(김미경) 주변에서...

 

주변에서 말씀을 하셔도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가 쉽지는 않은데...참여를 하시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냥 호기심이었습니까?

(김미경) 처음에는 호기심이었고 또 그런 말이 있잖아요. 우리가 기쁜 일은 나누면 2배가 되고 슬픈 일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그런 말이 있잖아요. 평소에 좋은 일은 제가 못 가더라도 그 사람의 안 좋은 일은 될 수 있으면 같이 한번 가보려고 노력을 했었거든요. 그런 것도 좀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그런 인생 철학을 가지고 계신 김미경 씨인데...그런 마음 때문에 이렇게 교육과정을 참여했고 일단은 수료를 하셨어요. 그러면 교육과정은 어떻게 구성됐는지 짧게 소개를 좀 해주시죠.

(김미경) 저희가 4월 25일부터 6월 13일까지 교육을 했고요. 격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부산역의 유라시아 플랫폼이라는 곳에서 한 20명 정도가 교육을 받았거든요.

첫 번째 시간에는 이제 교육생들끼리 처음 만나니까 마음 열기 시간 같은 그런 시간이 있었고요. 자기소개하는 시간이었죠.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공영 장례가 무엇이고 애도할 권리, 애도받을 권리에 대해서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5월 9일 두 번째 시간에는 구역별로 4개 팀을 담당구를 확정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체크리스트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시고, 우리가 체크해야 될 체크리스트에 대해서 공유를 해주셨고 공영 장례 제도의 경과와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 강의를 해 주셨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조문단증도 받았었고 모니터링 체크리스트도 받았고 텔레그램 방이 있더라고요. 거기에 초대도 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중간 과제로 활동가 수업을 하려면 중간에 1회 이상 실습 개별 모니터링이 있어야 됐었거든요. 직장을 다니니까 시간이 좀 안 맞았는데...5월 15일 날 새벽 6시에 부고가 뜬 게 있었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5시 반에 출발을 해가지고 참여를 한 번 했었거든요.

그리고 이제 두 번 더 남았는데...5월 23일 세 번째 시간에는 이제 공익 변호사님이 나오셔서 민법상 효력 있는 유언, 나의 유언장 쓰기 시간을 가졌고요. 그 다음에 공영 장례 이렇게 한번 해볼까요? 그런 식으로 아이디어를 내가지고 그런 시간도 있었거든요.

그리고 6월 13일 마지막 시간에는 서울에서 사단법인 나눔과 나눔 박진옥 상임 이사님이 내려오셔가지고 강의를 해주셨는데...‘내 뜻대로 장례’ 그 다음에 ‘장사법’ 개정에 관한 특강 그걸 좀 해 주셨어요. 그리고 이제 수료식이 있었습니다.

 

2주마다 진행을 했고...짧다면 짧은 한 두어 달 정도 되는 시간인데...굉장히 알차게 따뜻하게 활동을 하신 것 같아요. 교육 과정도 그렇고?

(김미경) 지금 강사님들도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고 하셨고 저희 교육생들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들었던 것 같습니다.

 

교육과정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습니까? 어떻습니까?

(김미경) 저는 공영 장례에 연고자가 그렇게 범위가 좁은지 몰랐어요. 기혼 여성이 조카랑 같이 사는데 그 조카가 그 연고자가 되지 못한다는 그런 사례를 접하고 부모나 형제자매가 모두 사망하면은 연고자가 못 된다는 건 어찌 보면 남이라는 거잖아요. 그런 사례들을 몇 가지를 접하니까 좀 충격이었거든요. 그 부분도 그랬었고...

그 다음에 서울에서 내려오셨던 박진옥 이사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자기가 당신이 쪽방촌을 갔는데 그 분 집에 벽지에 본인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대요. 그걸 보고서 좀 느끼는 게 좀 많았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어찌 보면 그분이 지금 당시는 혼자였지만 누군가 나의 마무리를 함께 해줄 거라는 그런 믿음 같은 그런 게 좀 느껴져서 그게 좀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단순히 조문단에 참여할 분을 이렇게 교육을 시키는 거 이상으로 교육생 한 명, 한 명한테 굉장히 심적으로도 여러 가지 상황을 돌아보게 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이었던 것 같네요. 말씀 들어보니까...공영 장례의 조문 현장은 어땠습니까? 좀 지역별로도 차이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 느끼시기에 어땠나요?

(김미경) 제가 지금 교육생이다 보니까 사실 활동을 많이 못 했잖아요. 그래서 잘은 모르겠는데 제가 볼 때는 지역 차이보다는 장례 업체가 어디냐에 따라 가지고 차이점이 있는 것 같아요.

 

장례 업체에 따라서...

(김미경) 불친절한 장례업자가 있는 곳과 친절하게 정말 애도하시는 잘 챙겨주시는 그런 곳이 있는 곳 그런 거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역별 차이는 아니고 단순히 장례 업체들의 진행 상황에 따라서 현장도 좀 달라졌다...이런 말씀이신데...그런 부분들도 이게 공영이라는 단어를 붙였기 때문에 공공기관이나 각 지자체에서 좀 관심 있게 관리를 해야 된다라고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봤을 때?

(김미경) 어찌 보면 그 관리를 해주는 주체 측에서 우리한테 더 힘을 실어줬다라면 이 장례 업체에서 우리를 그렇게 무시하지는 않겠어 그런 느낌을 좀 받았습니다.

 

앞으로 2기, 3기, 4기 계속 조문단 양성 과정을 마치신 분들이 생겨나면 그런 분위기들 사회적 분위기들이 또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보겠습니다.

(김미경) 그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빈소는 많은데 거기에 가줄 조문단은 많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한정된 인원이 여러 군데를 다니려고 하다 보니까 제가 이렇게 볼 때도 너무 짠한 거예요. 너무 고생하시는 게 보이고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공영 장례 조문단 과정을 마친 김미경 씨와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조문 현장도 가셨는데 혹시 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습니까? 가셨을 때

(김미경) 좀 불친절했던 장례식장을 제가 첫 경험을 했거든요. 처음으로 조문난 간 곳이 그런 곳이었어요.

 

첫인상이 정말 안 좋았군요. 그러니까

(김미경) 그래서 저는 그 감정을 못 감추겠더라고요. 그런데 저랑 같이 갔던 두 분은 그런데도 참고서 그분들한테 인사를 하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얘기를 하고 나오시는데...거기서 제가 좀 반성하는 것도 많았고 느끼는 것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그 마음을 좀 추스리면서 그렇게 조문 현장을 다니시는지도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이 딱 왔을 때...

사람들이 불편한 상황은 안 겪으려고 하시잖아요. 근데 이분들은 그런 곳을 찾아다니시고 얼굴 안 찌푸시고 그분들을 어찌 보면 설득을 시켜야 되는 거잖아요. 이런 행동은 좀 달리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다...그런 그런 마음도 있으니까 꼭 참고서 그거를 행동으로 옮기시는 것 같더라고요.

 

또 심지어 이런 공영 장례 조문을 자원봉사로 하시는 거예요. 이분들이 더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지켜보는 우리로서도 그렇고 그래서 공영 장례의 이야기들을 인권의 가치 그리고 사회적 기본권과 연결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앞으로 공연 장례 조문단으로서는 어떻게 좀 활동하실 계획이세요?

(김미경) 저는 사실 그렇게 성격이 활달한 성격은 아니거든요. 그냥 좀 조용한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그냥 제 나름대로 방식으로 그냥 조용히 그곳에 가 있다가 조용히 오는 쪽을 저는 선택을 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책 한 권 들고 커피 두 잔 사서 들고 가서 빈소에 놔두고 저도 한잔 마시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어찌 보면 그것도 용기거든요.

 

그럼요.

(김미경) 그 담력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어찌 보면 반기지 않는 곳에 가서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다 올 수 있다는 게 내공이 쌓여야 하는 데...내공을 키우면서 한번 활동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바람이 있다면 우리가 사실 자원봉사를 하게 되면 그걸 365라든지 그런 봉사 점수를 시간을 인정해 주는 사이트가 있잖아요. 거기에서 이런 것도 자원봉사 시간에 이렇게 할 수 있게 해줘서 누구든지 신청하면 가서 이렇게 조문을 하고 그리고 사실 그런 데 가게 되면 제 자신의 현재 모습을 돌아보게 되잖아요.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내가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을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잖아요.

 

그럼요.

(김미경) 그런 시간을 좀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기회가 좀 마련됐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좀 했어요.

 

제도적으로도 이렇게 제공을 하면 더 참여하시는 분들이 늘어날 수도 있다라는 그런 말씀이신데...

(김미경) 그래야지 우리 목소리가 더 힘을 실을 수 있으니까

 

이 말씀은 저희들이 꼭 한번 반영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을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향후에도 저희가 계속 방송을 해 나갈 예정이라서 나눌 기회가 있을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있는 공영장례 조문단 양성 과정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간단하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미경)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사실 이 공영 장례가 남의 일처럼 지금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게 나, 나의 가족이나 나의 지인이 이 서비스를 받는 대상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보통 장례식장을 가셨으면 이제 공영장례비소가 만약에 있다고 하면 잠깐 이렇게 멈춰서 그곳에 국화꽃 한 송이 놔드리고 그 다음에 영락공원에 혹시나 가시는 분이 있으시면 거기에 공연장례 빈소가 있잖아요. 그럼 한번 이렇게 발걸음 좀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서 정리하고요. 다음번에 또 기회가 있을 때 공영 장례 관련해서 조문단 활동 하시는 거 경험한 내용들을 또 전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부산 반빈곤센터 공영장례 조문단 과정을 마친 김미경 씨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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