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6월 27~29일 부산서 공연
마당극 50주년 기념...원효선사 주제 마당극 선보여
채희완 연출가 "원효 '무애가무행' 복원 노력...거지떼들 막춤이었을 것"

BBS불교방송 시사 프로그램 '박준상의 시그니처타임'

진행 : 박준상 사회문화부 기자 
출연 : 채희완 연출가(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명예교수)
방송 : 6/8(토) 저녁 6시 20분(BBS 라디오)

박준상(이하 박) : 안녕하십니까? 박준상의 시그니처 타임 지금 출발합니다. 많은 분들이 신라시대 고승 원요대사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일체 유심조 또 일심 사상으로 유명한 한국불교계의 대표적 선사인데요. 원효대사의 삶과 가르침을 재조명한 마당극 공연이 곧 개막합니다. '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의 연출가인 채희완 부산대학교 명예교수님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저희 시청자분들께 인사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채희완(이하 채) : 평안하시온지요? 대학 때 우연히, 지금으로 보면 필연적으로 탈춤을 접하고 그 인연으로 해서 60여 년을 반 이상 탈춤과 살아왔다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채희완입니다.

박 : 필연적인 탈춤과의 만남이라는 대목이 정말 궁금한데요. 잠시 뒤 한 번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을 일컫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어요. 1970년대 대학가 문화운동 1세대, 또 탈춤과 마당극의 대부, 마당발 뭐 이런 다양한 별명들이 있는데 어떤 별명이 제일 마음에 드세요?

채 : 지금은 뭐 대학에서 탈춤 운동을 처음 시작했다라는 점에서 대학 탈춤의 뭐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요. 그것도 반 이상은 사실이니까. 그런 얘기도 저는 자긍심으로 갖고 있습니다.

박 : 선생님께서는 원효선사를 주제로 마당극을 연출하셨죠?

채 : 네. 지금 마당극. 이름하여 '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 제목이 그렇습니다.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부산에 있는 극단 자갈치와 함께, 신명천지 소극장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 : 본격적으로 원효선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나눠볼 텐데요. 어떻게 원효를 처음 접하게 되셨나요?

채 : 제가 이 탈춤을 몸으로 익히면서 여러 문화를 보게 됐는데 그중에 그 양재현 중앙대 교수가 쓴 '무애가무 소고'라는 글을 보게 됐습니다. 그 무애가무를 원효스님이 하셨다는 거예요. 아 그래서 어떤 춤이길래 원효 스님이? 그야말로 가장 창조적인 사상가 이고 높으신 스님인데, 어떻게 무애가무라고 하는 춤을 거리에 그 바닥에서 추었다는 것인가... 그게 너무나 놀라웠어요. 거기에 원효스님의 무엇이 그 춤에 담겨져 있게 됐는지, 그리고 그 춤을 스님이 왜 추셨는지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하고 그것이 또 탈춤과 연관될 수 있는 게 그 문헌에 보면 거리에 광대가 추는 바가지 세개를 들고 추는 춤을 보고 흉내를 냈어요. 일체유심조에 해당되는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어디에나 걸림이 없는 사람은 한 길로 삶과 죽음에서 벗어났도다. 이런 화엄경에 나오는 문구를 가사로 집어 넣어서 돌아다녔다는 거예요. 그런 기록이 있고 또 논문에는 그게 궁중에서도 춰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거지떼들이, 광대들이 췄다가 궁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니. 그것도 참으로 의아한 바가 있어서 원효 스님이 어떻게 사셨는지 그걸 좀 알아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박 : 원효 스님께서 거지들, 광대들의 춤을 보고 그 춤을 저잣거리에서 추면서 민중 속으로도 번졌군요. 지금 흔히 하는 댄스 릴레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런 것처럼 민중에 유행을 한 거군요.

채 :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민중불교 전파 차원에서도 그 춤을 추신 게 아닌가 싶기도 해서.

박 : 선생님이랑 비슷한 역할을 하셨군요.

채 : 너무나 아주 감격스러운 대목이었습니다.

박 : 저도 말씀을 듣는데 감동이 느껴집니다. 꽉 막혀 있는 민중들의 심리 속에 스님이 직접 나서서 저잣거리에 거지들이 추는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웃기도 하고 또 마음에서 심적인 변화도 생기면서 지근거리에서 부처님을 느낀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요. 정말 이 춤이 어떤 춤인지 정말 궁금하긴 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27일부터 29일 신명천지소극장에서 이 마당극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거기 나오죠?

채 : 원효스님이 추셨다라는 것을 추적해서 복원하거나 되살려내는 그런 것은 아직까지 알지 못하지만, 거기에 가까이 가려고 하는 그 노력의 모습은 얼핏 보실 수는 있을 겁니다. 저희가 거기까지는 다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 : 사실 신라시대의 춤을 복원한다는 거는 현대에서는 자료가 일단 거의 전무하지 않을까 저는 그런 생각도 드는데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현대로 넘어와서 교수님께서 이제 90년대 굉장히 유명한 불교계에서는 유명한 사건입니다. 경주 분황사를 배경으로 원효대사 이야기를 최초로 연출을 그때 하셨던 거죠.

채 : 1996년 5월 16일과 17일 경주 분황사, 그리고 분황사 앞에 있는 황룡사지 또, 경주역 등등 경주 전역에 걸쳐 이틀간 원효 문예 대제전이라는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 분황사 주지이셨던 종수 스님의 요즘 말로 기획 마인드라고 하나요? 그걸 통해서 원효학 연구소 설립을 하시면서 학술 행사와 봉찬의식도 벌이면서 음식도 대접 해드릴 뿐만 아니라 같이 춤과 노래 마당도 하고.

박 : 다양한 종합 축전을 한 거네요.

채 : 그 중에 하나로 마당극인 '신새벽 술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 이렇게 제목을 달아서 마당극도 공연을 했습니다. 원효 스님을 오늘날 바라보는 문예 활동가들이 작품을 새롭게 짜서 할 수 있는 총체 연행물로서의 한 판 페스티벌 같은 그런 양태로 대제전을 벌였는데요. 그 대제전의 부제랄까요? 실제 내용상 주제는 '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였습니다. 제목을 좀 조심스럽게 그러나 좀 과감하게 제의를 했는데 종수스님께서 받아들이고 또 그걸 이제 성타 스님이나 또 그 위에 불교에 계시는 큰 스님도 받아주셨어요. 그때 스님들 속마음은 어떠셨는지 몰라도 '이런 제목을 붙일 수 있겠는가'하셨겠죠 근데 그걸 이제 받아들여주셨어요. 그것을 전 정말 고맙게 생각을 하고 바로 그것이 원효스님이 하고자 했던 무애가무행의 첫 걸음이 아니겠는가 싶었습니다.

박 : '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 사실 이런 경험을 해보신 분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술을 토하고 이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론가 갔던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저를 비롯해서. 이것이 원효 선사의 마당극 제목으로 사용된다. 이건 굉장히 파격적일 수가 있고...

채 : 하나씩 따지면 이해가 됩니다. 그 신새벽은 그 '원효'라고 당신 스스로가 지으신 이름인데 자기의 이름으로 그게 이제 새벽이라는 뜻이죠. '으뜸 새벽', 우리 말로 얘기하면 이제 신세벽이라고 칭해도 좋겠구나.

박 : 원효가 으뜸인 새벽이라는

채 : 새벽이라는 뜻이고요. 원래 아이 때 이름이 서당이라는 이름도 있고 또 사부라는 이름도 있는데 사부가 또 그 경상도 말로 새벽, 사부 뭐 그렇게 해서 같은 뜻인가 봐요. 한자로 원효라고 이제 해서, 그 신새벽은 이제 원효스님을 얘기하는 것이고. 그 스님의 일화가 여러 가지 많습니다만, 그중에 잘 알려진 것으로는 34살 때 당나라 유학을 가다가 첩자로 몰려가지고 실패를 하고 10년 후에 다시 도반인 의상 대사와 같이 당나라 유학을 떠났다고 합니다. 높으신 분이 뭘 배우러 당나라까지 갈까 싶었는데 하여튼 굉장히 그 두 차례나 시도를 하고, 그것도 10년을 두고 또 나이 마흔 셋인가 넷 돼가지고 또 떠났으니까요. 단단히 결심을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신 거겠죠. 근데 가다가 당항포 어디에서 아주 날이 저물고 해서 토굴에 하루를 묵게 됐는데 목이 말라서 물을 찾아가지고 어느 바가지에 있는 물을 아주 맛있게 먹고 그리고 이제 아침에 일어났더니 어젯밤에 맛있게 먹었던 것이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 해골이 썩어서 고인 물인 줄 알고 오바이트를 한 거죠. 그 이후 깨닫고 당나라 유학길을 접고 다시 경주로 이제 돌아오셨는데 거기에 이제 오도송 비슷하게 한 얘기가 있죠. 한마디로 하면 어제는 그렇게 달던 물이 오늘 아침에 보니까 해골물로 오바이트를 한 이게 왜 좋았느냐,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린 게 아니냐 그런 것인가 봐요. 일체심이죠. 마음먹기에 달려서 썩은 물이 그야말로 단물이 될 수도 있고 단물이 완전 썩은 물일 수 있는, 그걸로 해서 큰 깨침을 받고 이제 돌아온 일화를 이제...

박 : 신새벽이 원효대사고, 술을 토하다가 해골물을 토하는 것이고, 없는 길을 떠나다가 당나라를 가지 않고 국내로 돌아왔다 이런 함축적인 뜻이 있군요.

채 : 아주 목이 말라서 달디 달게 마신 그 물이 해골물이었던 거죠. 마실 때도 해골물이었을 거 아니에요. 근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해골물이라는 걸 알고 이 몸 반응이 올라온다. 이건 정말 그러니까. 몸으로 체험한 어떤 그런 육체적 반응이 일으켜 준 깨달음이니까요. 문자로 얻은 깨달음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뭐 술 먹고 오바이트하는데 매번 그렇게 했지만 그런 깨달음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역시 다르구나. 그러고서 요석공주와 결혼을 했다던지 일화가 엮어지면서 이를테면 파계 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 결정적인 한 계기가 여기에 있어서요. 저희로서는 원효 스님의 배움의 길에 있었던 한 전환기를 여기서 볼 수 있지 않겠나 해서 이제 제목을 한 번 그 첫걸음을 떠나는 그 것으로 잡아본 거예요.

박 : 스님들도 당시 90년대면 이런 파격적인 제목을 좀 안 좋아하실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다들 받아주시고 이 극이 실제로 무대 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건데요.

채 : 원효스님의 무애가무행에 대해 안 좋게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떨거지의 막춤에 가까운 그것이야말로 부처님의 마음을 얘기하는데 가장 알맞은 것이라고 스님께서 몸으로 느끼신 거겠죠. 이왕이면 나비춤도 있고...

박 : 그렇죠. 고매한 춤들이 있는데...

채 : 근사한 춤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런 춤을 하셨다는 것이 너무나 아주 가슴 떨릴 정도로...

박 : 거침없는 자유인의 삶을 살았던 원효 대사의 그런 면면이 잘 또 보이는 건데요. 교수님. 그럼 이제 원효선사의 이야기, 90년대 최초로 무대에 올리셨던 이 마당극 원효선사의 마당극이 이번에 다시 무대 위에 오르게 되는 겁니까?

채 : 올해가 마당극 운동 5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설정을 하고 올초부터 50여 년간 해왔던 그 작업들의 중요한 성과들을 재현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올해를 기념하는 해로 잡았습니다. 그것의 일환으로 마당극 '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를 합니다. 물론 이 '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가 역대 마당극의 선두에 있는 대표작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은. 그러나 여러 형태의 마당극 또는 마당굿이 행해졌는데요. 그중에 이 마당극은 흔히 얘기하는 마당극의 어떤 양식적인 틀하고는, 관중과의 만남의 통로를 조금 달리하고 있습니다. 보통 마당극은 현장적 운동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요. 

박 : 무대가 없이 관객과 측면으로 닿아 있는...

채 : 마주치면서 관중과 함께 그 마당 판을 짜가면서 같이 만들고요. 끝나고 또 한 판 벌리는 그런 현장들의 운동과 집단 신명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그런 양식으로 마당극이 진행돼 왔습니다. 그것이 70년대 80년대 그 이후에 정치 적 또는 사회문화적 맥락과 맞닿아가지고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너무 과도하게 하기도 하고 그렇게 했지만 마당극하면 주로 이제 그렇게들 인상을 가지고 있죠. 그런데 이를테면 발산하는 에너지, 신명의 분출, 눌린 것이 폭발하는... 이것과 동시에 진행됐어야 할 신명의 저축, 내재화가 있는거죠. 근사한 얘기로 하면은 네트워크에 잠재화시키는 어떤 충전의 것도 같이 진행이 했어야 되지 않았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고유한 마당극이랄까 내면적인 마당극이랄까.

박 : 내면으로 충전을 해가는 어떤 장치라는 말씀이시네요.

채 : 그것도 중요하고요. 그와 함께 자칫하면 우리가 속을 다 드러내고 막 이렇게 하다 보니까 텅 비어서 에너지가 고갈될 수도 있다라는 그런 것과 함께 우리의 생각을 조금 더 다지고 돌아보면서 충전도 하고 새롭게 불러일으켜야 될 그런 그 마음의 장전도 필요하지 않는가 싶습니다. 그런 외향적인 것과 동시에 안으로 스며드는 그런 마당판도 해보자라는 의도 속에서 그것을 했던 것인데 그러한 예를 이번에 한번 보여주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박 :요즘에 그 MBTI라고 아세요? MBTI 자기 성격을 분석하는 어떤 툴로 이렇게 요즘 많이들 사용하거든요. 그중에서 이제 제일 중요한 부분이 내향형 인간, 외향형 인간을 구분하는건데요. 그래서 아까 말씀하셨던 어떤 폭발적인 그런 마당극들은 외향형 인간들이라고 할 수 있겠고. 그런데 이 원효선사 이야기는 약간의 내재적인 에너지가 필요한 분들이 보면 좋을 것 같긴 한데요. 요즘엔 마당극도 있지만 영화와 드라마, 특히 스마트폰을 많은 분들이 보면서 현장보다도 유튜브에 나오는 화면을 보고 내가 거기에 대한 감정 표현을 댓글로 하고 이런 문화가 보편화가 되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여전히 마당극이 유효한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게 있겠습니까?

채 : 내면화되는 증명, 그 신명이라는 용어가 신난다 신바람 난다 신바람이 분다 이렇게 바깥으로 돌출되고 있는 것인데. 사실은 그 내재화돼 있는 신명을 쏟아내는 건데요. 그 안에 있는 신명이라는 이름으로, 신바람이라는 이름으로 나오게끔 만들고 있는 속 마음 또 속은 무엇인가. 그 매개체뿐만 아니라 무엇이 있기에, 무엇이 그런 신바람을 내게 하고 있는가,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표현의 매체는 춤기운이나, 뭐 이렇게 되겠지만은 속에 숨어져 있는 신바람을 내게 해주는 동기는 무엇인가. 이것을 내면적인 마당에 찾아보고 또 축적하자라고 하는 것인데요. 20세기와 21세기 들어와서 주요 개념이 생명 또는 평화 라는 개념으로 지금 압축 정리되고 있는 것이거든요.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신바람을 얘기하는가. 또 무엇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살게 하는가. 무엇이 숨을 쉬게 하는가 등에 해당되는 내면적 그 안에 내기라고 할까요? 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면서 생명력 회복, 바로 그것이야말로 지금 자연재해 기후위기 등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패러다임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기도 하고요. 극단화돼 있는 그런 피폐한 정신장애들. 이런 것에 대한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렵게 돼버려 있는 그런 상태들에 대한 우리의 그 정신 세계 이런 것과도 같이 얘기하면서,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세상이 지속 가능한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 마땅히 회복해야 될 원천적인 것들이 필요합니다. 동양식으로 얘기하면 무엇인가에 대한 이제 그 욕구들이 지금 학문으로도 뿐만 아니라 문 그렇게 얘기를 하고 그것은 생태학자 생태운동가뿐만이 아니라 그 철학의 과제에서도 존재론이나 그런 생성론을 훨씬 넘어서 가지고 생명론으로까지 가고 있는 그런 지점에서 불교가 얘기하고 있는 원천적인 마음 바탕, 또 최근에는 우리나라로 보면 동학과 같은 어떤 그런 인내천 사상이라든지 또는 여러 종교나 사상 체계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그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극단화돼 있는 이 정신적 위기 상황을 어떤 식으로 넘겨 갈 수 있겠는가 그것과 연관돼 출발해야 될 것이 필요한데요.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저는 그걸 마당으로 봅니다. 그래서 마당의 의미는 연극하는 사람에게는 단순히 무대와 대척관계에 있는 그런, 일터와 쉼터로써 마당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한 마당처럼 또 이런 국면 라는 그런 처지와 상황의 의미와도 함께 있는 우리 말 마당이 가지고 있는 실체적인 의미와 그 여러가지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 그것을 이제 실현하고자 하는 작은 디딤을 이제 마당으로 보고, 얘기가 조금 더 복잡하게 갈 건 아닙니다마는 삶의 새로운 양식을 양태를 도모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두레라고 합니다. 

박 : 자치적 개념을 뜻하는 거죠?

채 : 생활모임이나 생활공동체, 두레적 의견, 나눔, 두레적 놀기 등등 두레라고 하는 것 마당이라고 하는 것 이런 것이 같이 통하는 것이거든요. 요즘 개념으로 하면 생명의 디딤터, 이렇게 생각을 해서 여러 첨단의 진보적인 그런 관행과 함께 원천적인 그 디딤터로서의 마당의 개념이 연극뿐만이 아니라, 여러 형태에서 좀 되살아나고 재확보되기를 기원하면서 주장을 하는 바이죠. 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거나 수용도가 없어진 것으로 바라보던 시각에서는 좀 벗어나야 되지 않는가. 최소한의 생활 공간에서 여가 활동으로서의 마당 등등. 다 포함해서 삶의 원천적인 그 마음의 터로서의 마당의 의미를 좀 현실화시키는 각종의 예술 표현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첨단 예술의 그런 조례와 함께 같이 가줘야 되지 않겠는가. 뭐 이제 그런 생각으로 합니다.

박 : 제가 느낀 바는 이게 마당이 단순한 연극이나 이런 것들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 회복 활동이라고 저는 또 느껴지네요. 예 알겠습니다.

채 : 물론 이제 마당극을 광장의 극 이렇게도 얘기하고 페스티벌 같으면 전 동네를 온통 놀이판으로 만드는 그런 넓은 마당 포함되는 것이지만, 원래 갖고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고 진행될 수 있는 아주 작은 공간부터 확보해 나가는 게 어떻겠는가 이제 그런 생각으로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장 단적으로 얘기해 줄 수 있는 현실 공간인 마당에서, 거기서 한번 출발해 보자.

박 : 예 알겠습니다. 교수님 오늘 방송 이걸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시그니처 타임 최희방 교수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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