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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전경윤 BBS 선임기자 
출연 : 백창호 한국전통등연구원장 
방송 : 2024년 3월 24일(일요일) 저녁 6시 20분(BBS 라디오)

 

전경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경윤입니다. 3월 24일 일요일 뉴스와 사람들입니다. 이제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나들이 가시는 분들 많으실 텐데 집 나오면 고생이라고들 하죠. 차라리 집에서 편히 쉬면서 책을 읽거나 동네 산책을 하면서 휴일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전통 등 제작과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분을 초대했습니다.

전경윤 : 오늘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빛나는 연등회와 각 지역의 축제에서 만날 수 있는 전통 등을 복원하고, 현대적으로 보존 계승해 온 주역 한 분을 만나보겠습니다. 한국전통등연구원 원장이신 백창호 원장님이십니다.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백창호 : 네 반갑습니다. 백창호입니다.

전경윤 : 저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뵙는 건 처음인데요.

백창호 : 예 감사합니다.

전경윤 : 이게 한국전통등연구원이 전통등 연구회로 시작을 해서 21세기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한지 전통등 제작의 대표 주자로 성장했는데 한국전통등연구원 어떤 곳인지 간단하게 먼저 소개해 주십시오.

백창호 : 저희 연구원은 1996년 겨울에 지금의 연등회죠. 그 당시 행사기획단과 함께 전통등 복원 사업을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고요. 그러면서 10년 후인 2006년도에 전통등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칭을 해가지고 좀 더 조직적인 문제라든지 또 이후 발전을 위해서 다양한 활동들을 위해서 지금까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 노력하고 계시군요. 96년에 처음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이름을 중간에 바꿨다는 말씀이군요.

백창호 : 한국전통등연구원으로 바꾼 것은 이제 조직적 강화와 또 문화 콘텐츠의 조금 다양성을 위해서 이름을 바꿨습니다.

전경윤 : 그러니까 이제 우리 전통등 문화가 잊혀져 가기 때문에 그것을 좀 복원하고 우리 오늘날에 맞게 재창조한다 이렇게 제가 알고 있는데 연등회를 할 때가 가장 바쁠 때입니까?

백창호 : 아무래도 뭐 봄, 가을이 제일 바쁜데요. 우선은 봄에는 부처님오신날이 있는 날이 가장 큰 행사고 꽃 축제라든지 다양한 지역 축제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또 여름에는 또 여름에 또 행사가 있고 저 이제 저희 다양하게 행사를 많이 지금 진행하고 있어요.

전경윤 : 그러니까 우리가 연등회만 있는 게 아니에요. 

백창호 : 그렇죠. 사실은 이제 연등회만 해가지고는 이제 그 행사만 가지고는 사실 저희 식구들이 생활하기가 쉽지가 않죠. 

전경윤 : 그리고 제가 이제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주요 사업이 전통등 연구 사업 그다음에 창작 사업, 보급 교육사업 이런 것도 있는데 크게 그렇게 돼 있는 거 맞습니까?

백창호 : 예 그렇죠. 기본적으로 전통등을 복원하고 계승하는 사업이 기본이고요. 이것을 또 현대 콘텐츠에 맞게끔 새롭게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할 것이고 또 이것을 또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또 각자 다양한 등을 만들 수 있게끔 하는 사업들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 만들 수 있게끔 한다는 얘기는 뭐 강습회를 한다든지 무슨 교육을 하고 강의를 하고 이런 게 있다는 말씀이군요.

백창호 : 그렇죠. 뭐 지역에서 요청한다든지 단체에서 요청을 하면 직접 출장을 해서 강습도 하고요. 또 자체적으로 강습도 진행을 했습니다.

전경윤 : 그리고 이제 전통등 하면 우리가 많이 다 알죠. 아는데, 이제 제가 한번 찾아봤어요.어떤 정의가 있는지. “우리 민족의 세계관과 종교관이 지배되어 있고 민족의 민간 신앙과 종교가 융합된 전통의 의식 문화다. 또 어둠을 밝히는 도구다. 그리고 한국인의 의식과 정서가 담긴 문화유산이다.” 그렇게 정의를 하는데 원장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백창호 : 지금 다 해주셨는데요. 

전경윤 : 여기 다 들어있죠? 혹시 빠진 게 있나해서.

백창호 : 전통적인 우리 조상들의 세계관, 기술들 그다음에 도구도 이것들이 계속 이어져 오고 지금의 그것이 현대에 와서 또 재창조되어지긴 하지만 또 기본적인 것은 그 역사성과 그런 기법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전경윤 : 그리고 어둠을 밝히는 도구라는 것은 우리 민족의 생활에서도 많이 쓰였다. 그런 얘기인가요? 예전에 저는 등불 기억나요. 우리 시골에서. 

백창호 : 그렇죠 기본적으로 생로병사에서 모든 것들이 등문화와 같이 함께하는 거고요. 또 야간에, 지금이야 이 야간 전기가 있지만 예전에 뭐 남사당패 놀이가 한다, 뭐 제사를 지낸다, 이럴 때 모두 등 문화가 지금의 연등 문화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전경윤 : 그렇죠. 그리고 저는 이제 전통 등에 대한 여러 가지 기록이라든지 과거 문헌이라든지 이런 게 어떻게 남아 있는지 궁금한데 누가 그러던데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이게 이런 기록들이 뭐 잊혀져가고 나면 없어졌다고.

백창호 : 기독들이 없어진 건 아니고요. 신라시대 백고좌대회라든지 뭐 고려시대에 연등회, 팔관회 이런 데도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연등 행사를 했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다만 이제 조선시대에 넘어오면서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서 이 연등 문화가 조금 민속화되어졌던 거죠. 민속화되었던 곳이고 이런 기록들은 이제 경도잡지, 이런 동국세시기와 같은 민속지에, 조선 후기 민속지의 다양하게 행사들이 설명되어져 있고요.

이러한 것들이 이제 일제에 의해서 전통문화가 말살되어지고 억제되어지면서 서서히 쇠퇴하였고 또 근대화라는 미명 하에 전통이 말살되어지고 사장되어지는 그런 과정을 겪게 되는 거죠.

전경윤 : 그런 과정을 겪게 됐군요. 그러면 이제 등을 갖고 하는 무슨 민속 행사나 이런 것들을 못하게 막았다 이런 뜻이네요. 그 당시 일제시대에는 뭐 그럴 수도 있었네요.

백창호 : 막고 또는 축소시키고 또 그러니까 이렇게 홍보를 못하게끔  하고 이런 것들이 많았죠.

전경윤 :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전통등은 이제 90년대까지만 해도 익숙하지 않았다. 우리들에게 그래서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까지 나왔는데 그래서 이제 전통등연구원이 그것을 좀 바꾸겠다고 한 거고 그런데 이제 우리 원장님은 미대를 나오셨어요. 동국대 미대 미술학과를 나오셨는데, 전통 등에 관심을, 뭐 그림을 그리려고 했습니까?왜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백창호 : 사실은 이제 뭐 저희가 이제 뭐 미술을 전공했고 동국대다 보니까 좀 자연스럽게 불교 친화적인 어떤 그런 자리에 좀 사람들과 많이 있었고요. 그러다가 이제 전통등 복원 프로젝트라는 게 있었어요. 왜냐하면 이제 그 당시에 이제 비닐등 주름등 그 일명 외색등이라고 그러거든요. 이런 접이등이라는 게 일본 외색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것을 좀 청산하고 좀 전통문화들을 복원시키자 이런 의미에서 전통등 복원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제 그 소식을 듣고 이제 좀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차에 내가 해봐도 재미있겠다 이런 이제 처음에는 이제 그런 이제 저 개인적인 욕심 이런 걸로 이제 한 시작했고 한 2년 정도 프로젝트 사업이었어요. 

전경윤 : 아. 조계종과 같이 하는 사업이었다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이제 제가 또 이게 저도 자료 조사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학창 시절에 미술 학도면서도 데모를 많이 했다 이렇게 돼 있어요. 데모를 많이 하고, 또 집안이 어렵다 이게 돼 있는데, 그래서 고생을 많이 했다.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은 본인이 얘기 안 하신 것 같은데 그러면 근데 왜 등불과는 또 어렸을 때 인연이 깊었다면서요? 집에 등불을 켜놓고 사셨다는 뜻인가요?

백창호 : 그런 것은 아니고요. 좀 어릴 때부터 좀 뭐 교회보다는 이제 사찰 같은 데 가서 이 단청이나 이런 것을 보면 상당히 조금 어떤 환희심도 있고 조금 안정적인 어떤 그런 단청에 상당히 조금 매도되기도 했지만 뭐 제일 중요한 건 그거 같아요. 제가 이제 고등학교 입시 끝나고 이제 생활비도 벌려고 이제 막일을 하는데 이제 보통 이제 한 2, 3일 들통이라고 그러죠. 어깨 밀고 다니면서 해봤죠. 아마 한 2~3일 일하고 나면 2~3일 쉬어야 돼요. 아파가지고. 그러다가 이제 옆에 이제 전기 이들 하시는 분들 봤는데, 전기하시는 분들은 비가 와도 이들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또 일이 좀 쉬울 것 같아 체력적으로, 그래서 이제 그냥 막일보다는  조금 편할 것 같아서 시작을 했는데 그래서 상당히 오랫동안 전기 조공일을 했었어요. 군대 제대하고 나서까지 하는데 사실 그러다 보니까 등을 접할 때 전기에 대한 부담감이 좀 덜했던 거죠. 그러니까 어차피 예전에는 초도 썼지만 지금 뭐 하더라도 초는 못 쓰지 않습니까? 또 원하는 것들이 또 연등축제의 대형 장엄물 이런 것들을 하면 거기에 전기 시설이 많이 들어가야 되잖아요. 그런 것들은 저는 거기에 전구를 넣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하나라도 좀 편하게 쉽게 접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전경윤 : 하지만 당시에 이 일을 하신다고 했을 때 제가 볼 때는 전통등이 뭐냐 그걸로 생활이 되겠냐라고 하는 시선이 있었을 것 같고, 그리고 또 우리 원장님이 신용불량자 신세도 지내셨다고.

백창호 : 예. 사실은 전통등 복원할 때 그때가 이제 96년 끝나고 또 2년 동안 해서 2년 후에 이제 봉은사 법왕루에서 전통등 재현전까지 성황리에 끝냈습니다. 그래서 많은 언론이나 문화 예술 그다음에 박물관 같은 데서도 관심을 가지고 그 당시에 전시됐던 작품들을 구매도 하고 그랬던 때가 있었는데 사실 그 행사 이후에 이제 모든 자금, 이제 지원이 끊기는 거죠. 프로젝트 사업이 끝났으니까. 그런데 이제 그때 같이 하던 식구들은 있었고, 우리가 여기서 포기하면 또 이게 없어질 것 같고, 사장 될 것 같고, 누가 좀 더 했으면 좋겠는데 후배들이라도 하든지 해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됐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하자 그러면서 지냈는데 그때가 또 IMF고 뭐 이러면서 또 그러다 보니까 정부 일정한 수입이 없는 입장에서는 많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을 때죠.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 당시 어려웠지 않습니까?

전경윤 : 그래서 초반에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고 알겠습니다. 근데 전통 등을 제작할 때 보면 역사적 보증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이렇게 어떤 입증되는 뭔가가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 과정이 필요하죠. 그런 게?

백창호 : 그렇죠. 그래서 처음에는 이제 절에 다니면서 노스님들 만나 뵙고, 구두로, 남아 있는 게 없었으니까 석주스님 같은 경우에는 둥근 수박을 이제 자른 모습이다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둥근 수박을 만들어서 잘라서 동그랗게 수박을 만들었는데 별로 안 예쁜 거예요. 이렇게 여러 가지 그래서 처음에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 그래서 이제 와우정사 혜곡 스님도 만나고 그다음에 또 이제 무속 쪽에 남아 있는 등 문화를 보니까 수박등 같은 경우에는 원 6개만 엮으면 수박등이 되는 거죠. 그래서 너무 편하게 그러니까 이것이 그냥 간단한 어떤 작업으로 최대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또 있더라고요. 등이라는 게. 그러면서 이제 하나하나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저기 원형을 찾아가는 그런 작업들이 좀 지난하게 이루어왔다고 보면 됩니다.

전경윤 : 그러니까 지금 듣고 보니까 전통 등을 복원하고 재현하는 과정이 굉장히 험난할 것 같은데요.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이런 생각이 혹시 드시지 않습니까?

백창호 : 그 당시에는 저뿐만 아니라 다 힘들었을 때 아니겠습니까? 등을 만든다고 힘들었던 건 아니고 좀 더 힘들었던 거죠. 왜냐하면 수입이 일정치 않았기 때문에 더 힘든 것이고, 또 계속적으로 재료도 사야 되고, 연구 다니면 어디에 뭐가 있다 하면 그 따라가야 되고, 그러는데 차비도 좀 없고 뭐 그런 게 많았습니다.

거기 지금은 작고 쉬었지만 저기 문화재위원이었던 심우성 선생님이라고 계셨는데 처음에 제가 찾아가서 그 선생님한테 자료가 좀 있었거든요.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는데, 처음에는 왜 이 짓을 왜 하느냐 그냥 빨리 돌아가라, 그러다가 한 두세 번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고 뭐 뭐 뭐 하시면 옆에서 도와드리면서 계속적으로 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그때서야 자료를 하나씩 하나씩 꺼내주시더라고요.

그것도 한꺼번에 안 보내줘요. 한 1년에 하나씩 이렇게 꺼내 보여주실 정도로 이렇게 마음을, 어른들이 마음 열기가 쉽지가 않았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전경윤 : 여러분께서는 지금 한국전통등연구원의 백창호 원장님과 만나고 있는데요. 한국전통등연구원이 경기도 양주에 있죠? 

백창호 : 네 그렇습니다. 

전경윤 : 양주에 있고 2012년에 양주 광정로의 창작센터를 이전했다 이렇게 돼 직원들하고 이제 한길을 걷고 있는데 전통등 제작, 보급. 그동안 코로나19도 있고 해서 좀 어려움이 많지 않았습니까?

백창호 : 많이 어려웠죠. 여기 그래도 이제 저희 직원들 같이 한 명도 이탈자 없이 또 이렇게 직원들과 좀 또 서로 양보해가면서 코로나를 잘 버텼고요. 저희가 뭐, 이제 같이하는 직원들 식구들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친구들은 뭐 진짜 식구라는 이름에 걸맞게끔 어려울 때 이렇게 또 같이 어려움을 같이 또 견디면서 한 벌써 한 십오 년 이상 같이 작업한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그 친구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전경윤 : 거의 뭐 동반자인데 그래도 이제 월급 하여튼 뭐 항상 다달이 이제 그걸 또 줘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상당히 빨리 돌아오죠. 보통 많이 빨리 돌아온다고 하던데.

백창호 : 맞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제 그나마 저희들은 이제 조금 불교 행사뿐만 아니라 지자체 행사도 많이 하고 다양한 이벤트라든지 그런 데서도 많이 좀 이렇게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서 많이 이렇게 하면서 저희 직원들이 1년 내내 일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보통은 아직까지 등 작업하면서 1년 내내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죠.

전경윤 : 제가 보니까 지난 초기에 굉장히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는데 2009년에 서울 등축제를 했잖아요. 그게 하나의 분기점입니까? 그때부터 이제 안정을 새로 가기 시작한 겁니까?

백창호 : 안정을 찾았다기보다는 이제 그렇게 서울시의 큰 행사를 진행하면서 조금의 활동 영역이 확대되어졌다 이렇게 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외국과의 교류도 생기고 또 외국의 등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그리고 다양한 어떤 행사들이 조금 축제 이후에 좀 일이 다양해졌다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전경윤 : 전 세계 등이라든지 이런 것도 이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 예전보다는. 그렇군요. 그래서 전통등 제작 기술이 많이 이제 향상됐을 것 같아요. 과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것 같은데 정말 질적으로 발전했습니까?

백창호 : 그렇죠. 지금 옛날 초창기 등을 몇 점 지금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보면 이제 공은 정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투박하면서도 투박한 미 또는 그런 다양한 표현이 되겠죠. 약간 유물을 보는 듯한 그런 것인데 지금의 저희 작업들은 그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한 10여 년 같이 손발을 맞춰온 식구들이 있으니까 아주 이제 섬세하고 퀄리티가 높고 어디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는 그런 작품을 지금 만들고 있습니다.

전경윤 : 무슨 첨단 기법이라든지 무슨 테크닉 이런 게 막 이용되고 이렇습니까?

백창호 : 사실 그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게 100% 수작업입니다. 그 때문에 기계를 쓸 수가 없고요. 그러다 보니까 첨단 기술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전경윤 : 제가 몰라서 물어본 겁니다.

백창호 : 노동 집약 산업이라고.

전경윤 : 사실 뭐 등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요. 있고 각양각색의 등에는 각각의 의미가 있고 또 이렇게 말들 많이 하죠. 우리 백성이나 서민들의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이 등에 이 안에 그렇게 보십니까?

백창호 : 그렇죠. 종교적인 차원에서는 그냥 불을 밝힌다는 의미만 있지만 민속적으로 따지면 그 옛날 조상들의 어떤 기복신앙이 담겨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이제 모양도 다양하게 한 40여 종 이상의 등이 있는 이유도 그 이유입니다. 한 예로 이제 수박 등, 마늘 등, 참외 등 이런 것들은 씨가 많고 넝쿨이 많습니다. 그래서 풍요와 다산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손이 많게 해달라는 의미가 있고요.

그다음에 뭐 거북등, 학등 이건 아시겠죠? 무병장수. 그다음에 뭐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뭐 호랑이등, 사자등 같은 걸로 해서 척사, 액막이 등을 쓸 수가 있고요. 병, 항아리 이런 형태는 평안과 안녕 이런 의미 등, 다양하게 그 등 형태에 따라서 농경사회에서 할 수 있는 기본 의미들을 다 담아내고 있는 것이 지금 전통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경윤 : 저는 연등회에서 많이 본 등은 용등을 많이 이렇게, 길게 이렇게 봤는데. 의미하는 게 있나요. 

백창호 : 용동은 가장 기본적으로 이제 풍요와 풍농, 풍업. 

전경윤 : 다 이 농경사회와 관련돼 있군요.

백창호 : 모기등도 있습니다. 사실은 여기 한자로 보면 이제 그 해충 모기입니다. 그런데 거기 예전에는 이제 모든 전염병이 수인성이었거든요. 모기나 이런 거에 의해서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모기에 대한 어떤 공포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진짜로 이렇게 모기를 쫓아낸다는 의미에서 그 모기도 실제 모기를 만들어서 등을 닫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전경윤 : 아 그래요? 제가 보지 못한 것 같아요. 모기등.

백창호 : 저도 이제 기록에서만 봤습니다. 사실 모기등을 만들기가 조금 그렇죠.

전경윤 : 그리고 말씀이죠. 연등회가 2012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고 202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됐기 때문에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거예요.

백창호 : 네 그렇습니다. 

전경윤 : 그러면 이제 우리 원장님이 연등회에서 이렇게 전통적인 것을 하고, 세계인들이 막 오고 이런 것을 보면 가슴이 굉장히 뜨거워지고 내가 역할을 했구나 내가 큰 역할을 했구나 이런 또 자부심도 혹시 있으신가요?백창호 : 예 저도 유네스코 등록될 때 제가 직접 시연도 하고 뭐 그렇게 했었으니까요. 상당히 뜻깊은 의미가 있는 거고요. 또 많은 외국인들이나 시민들이 와서 그 등 행렬을 보고 또는 전시도 보면서 뭐 좋아하는 걸 보면 조금 이제 뿌듯한 느낌도 들죠. 

전경윤 : 그게 이제 일하는 보람이죠. 그리고 저는 이제 연등회 때 보면 각 사찰과 단체에서 다 이제 행진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가슴이 뭉클해져요. 왜냐하면 그동안 같이 이제 식구처럼 일을 한 것이 느껴지시고 그래서 원장님도 그런 걸 보시면서 감회가 있으실 것 같은데 기억나는 무슨 에피소드나 무슨 추억 같은 게 있습니까?

백창호 : 글쎄요. 그게 워낙 다양하게 일을 많이 해서 기억이 난다 이런 것보다, 좋은 기억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를 빌려서 그 대신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습니다. 지금 연등회가 한 10년 이상 상당히 좀 이렇게 고착화 박제화되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니까 변화가 좀 없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리고 거기 행여에 나오는 등도 크게 이제 변화가 없고 작년 거 쓴 것을 또 들고 나오는 것을 보면, 그런 의미에서 보면 조금 다양한 변화가 좀 필요한 시점이 되지 않았나 하는 조금 생각을 좀 해보게 되네요.

전경윤 : 그래서 우리가 이제 5월이 되면 세계인들이 와서 이제 연등회를 구경을 하고 이제 세계인들의 축제로서 많이 홍보도 돼 있는데 그럼 앞으로 이 연등회가 어떤 축제의 장으로 펼쳐져야 하고 우리 전통 등을 세계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선보이고 싶다 이런 혹시 구상 같은 게 혹시 있으신가요?

백창호 : 글쎄요. 구체적인 구상보다는 조금 더 행사가 역동적이었으면 좋겠다. 너무나 행렬 위주, 시민들과의 소통이 없는, 그냥 행렬과 관람객, 이렇게 딱 나누어지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아쉽고, 좀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러한 것들, 그다음에 또 상당히 사회는 바뀌는데 축제도 막 보면 요즘은 막 야간에 보면 엄청 화려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연등에는 좀 유네스코라는 거 그걸 덮어 쓰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변화를 좀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조금은.

전경윤 : 그게 어떤 제한이 있는 거 아닐까요? 혹시 유네스코 유산은 뭐 갑자기 큰 변화를 가져오면 안 된다.백창호 : 제가 봤을 때는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뭐 축제가 발전하지 않으면 그건 축제가 아니거든요.

전경윤 : 그러니까 저는 저도 이제 우리가 연등 행렬이 하이라이트잖아요. 이제 그거는 연등 등을 들고 행진하는 거니까 거기서 좀 더 더 발전된 이벤트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 것은 이제 종단하고 또 우리 원장님 여러 전문가들하고 모여서 한번 학자들이나. 

백창호 : 그래서 참여한 사찰이 다양하게 준비를 해오면 되는 겁니다. 어차피 연등이라는 것은 행렬도 하고 맨 앞에 부처님을 모시고 이운을 하고 그 앞에 번도 있고 장엄물도 있습니다. 그 연등회의 장엄 행렬 뒤에 각 사찰에서 참여하고 다양한 종단에서 참여하는 거기는 각자가 준비하는 거거든요. 그분들이 다양하게 준비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경윤 : 자. 우리가 또 등을 얘기할 때 희망과 설렘이 시작됍니다. 왜냐면 빛이 나기 때문에.또 우리 조상들이 삶의 고단함 속에서 간절한 우리 현실의 소망을 담았다 이렇게도 볼 수 있는데 그러면 등문화의 복원이 이런 우리 정서를 복원하고 또 미의식 우리 전통 미의식을 복원한다 이렇게 말씀하신 걸로 제가 알고 있거든요. 어떤 의미인가요?

백창호 : 그러니깐요. 거기 한국의 전통 등은 이제 일본 등이나 중국과 또 다른 우리 고유의 전통의 어떤 미의식과 또 세계관이 함축되어 있고요. 이것이 이러한 제작 기법들이 지금까지도 넘어 오고, 지금도 지금의 우리 한국 전통등은 또 그렇기 때문에 또 일본이나 중국과는 또 다른 다른 게 형태로 유지되어져 오고, 뭐 어떤 미감도 또 딱 다르죠.

전경윤 : 완전히 다릅니까? 같은 아시아권이면 좀 유사점도 있겠죠.

백창호 : 유사점은 있죠. 있는데. 기본적인 이제 뼈대를 만들어서 천이나 한지도 붙이고 수에 달고 장식을 하는 것은 똑같은데, 이것을 장식하는 것들이 또 또 다르다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경윤 : 그리고 이제 사실은 등을 보면서 우리가 배우는 게 뭐냐 하면 자신을 태워서 주변을 밝힌다 이런 또 정신이 있거든요. 그러면 우리 원장님도 이 등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뭘 좀 깨닫거나 내가 이게 어떤 심신의 어떤 정화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겠다 이런 뭐 그런 게 있지 않을까요?

백창호 : 글쎄요. 등의 문화가 이제 소지 문화인데요. 행사가 끝나면 불에 태우죠. 불에 태워서 이것을 소원이 하늘까지 닿게끔 하는 문화가 또 소지 문화고 그런 또 그거는 또 민속에서의 문화일 거고요. 불교에서는 이제 자등명 법등명이라는 부처님 말씀이 있듯이 그 연등을 밝히는 것은 무명을 깨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하고 귀의한다는 그런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그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전경윤 : 상당히 이건 좀 깊이 있는 학술적인 얘기였습니다. 근데 이제 불교 문화의 상징이라고 우리가 할 수 있는데요. 전통 등의 제작과 보급을 맡아 하시면서 때로는 좀 이렇게 어떤 현실에 대해서 실망을 느꼈다 이런 말씀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 적이 좀 있었습니까?

백창호 : 글쎄요. 현실에 실망 어떤 불교 내에서 이런 이야기인가요?전경윤 : 그런 뜻보다는 이제 어떤 우리가 전통적인 제작과 보급을 하는 여건이 내가 생각했던 거와는 좀 다르거나, 아니면 이렇게 좀 제한이 되거나 막히는 부분이 있거나 했을 때는 좀 실망스럽구나, 이게 좀 바뀔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거나. 

백창호 : 지금 전반적으로 이 사회가 좀 전통문화에 대해서는 약간 지원이나 이런 것들이 조금 아쉬운 게 현실입니다. 특히나 요즘 더 그런 부분들이 많고요. 그러다 보니까 좀 많은 사람들이 등에 관심을 가지더라도, 잠시 가지고 잠시 딱 보고 좋아서 그때 관심 가지다가, 현실을 보면 다 도망가는 그런 것들이 많죠. 그러다 보니까 좀 이런 이제 젊은 사람들이 등에 관심을 가지고 또 해야 또 더 발전되어지는 어떤 등 문화가 있을 것인데 뭐 그런 부분들이 이제 제일 아쉽다고 봅니다.

전경윤 : 그리고 이제 한국 불교에 대한 이미지라든지 어떤 위상 이런 것도 상당히 영향을 받을 거예요. 불교계 내부에서 우리가 좀 긍정적이지 못한 부정적인 어떤 사건이라든지 그런 일들이 발생하면 영향을 받죠?

백창호 : 그거야 그건 어쩔 수 없죠. 그런데 또 더 잘 하시는 스님들이 또 계시니까 또 그래서 또 그런 것들도 감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경윤 : 그리고 저 우리 원장님께서 테마파크식으로 마을을 조성하고 싶다 하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걸 뭐 준비하고 있습니까?

백창호 : 준비를 조금씩은 하는데 저 혼자 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산청에도 좀 조금 땅도 좀 사고 뭐 그런 경우는 있는데 아직까지 너무 부족하죠.

전경윤 : 이게 무슨 등 테마파크 이런 겁니까?

백창호 : 그러니까 이제 등 마을이죠. 그러니까 뭐냐 하면 작가들이 같이 살면서 테마파크처럼 만들어가는 어떤 그런 것도 저는 꿈꾸고 있거든요. 그래서 등 작업하는 사람들이 노후에도 같이 작업도 하고 또 젊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또 누가 또 놀러 온 사람들한테 나이 먹고도 뭐 안내하고 좀 이렇게 설명하는 것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그렇기 때문에 또 젊은 사람들은 열심히 또 작업을 하고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고 이런 것들을 마을 전체가 또 하나의 마을로서 문화로서 만들어 나가는 그러한 등 작가와 등 문화가 같이 있는.

전경윤: 그리고 거기에 이제 많은 시민들이 와서 같이. 

백창호 : 그렇죠. 그래서 지역의 어떤 지자체와 함께 요즘 또 좀 마을 자체가 지방에 가면 마을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곳을 함께 잘 조인하면 또 성과가 충분히 현실성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경윤 : 예 알겠습니다. 지역에 따라서 이 특징이 또 있는 거죠. 전통등도 그런 얘기는 나중에 또 기회되면 하고요. 올해도 연등회가 5월에 열립니다. 올해 연등회에 특별히 신경 쓰거나 준비하고 있는 게 있습니까?

백창호 : 저희들이 매년 하다 보니까 어쩔 때는 이제 뭐 특별한 뭔가 없으면 그냥 늘 하는 것처럼 이렇게 지나가기도 합니다. 전국에 부산이나 서울 대구 광주에 연등 축제 지원도 하고 그다음에 봉축탑도 많이 전국에 많이 세워야 되고 이제 그런 것들이 매년 반복되어지는 사업이 돼버렸죠. 이제는.

전경윤 : 알겠습니다. 자. 이제 시간이 거의 다 돼 가는데요. 그러면 이제 앞으로 계획이라든지 목표라든지 이게 있을 거 아닙니까? 말씀해 주시죠.

백창호 : 우선은 뭐 거창한 계획보다는 초심을 다시 살리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처음에 하고자 했던 그런 마음을 이제 좀 나이가 들면 다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초심을 다시 세우는 게 더 중요할 것 같고. 특히 최근에는 과학기술이나 AI 기술들이 많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잘못하다가는 등 문화가 사장될 수도 있겠구나. 이런 게 아예 야간 문화가 아예 바뀔 수도 있겠구나 이런 걱정도 되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맞게끔 우리가 전통등이든 불교 문화든, 불교 문화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 발전에 같이 동참해서 같이 이끌어 나가고 함께 갈 수 있는 그런 노력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경윤 :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전통등연구원장 백창호 원장님과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오늘 대단히 고맙습니다.

백창호 : 예 감사합니다. 

전경윤 : 네 백창호 한국전통등연구원장과 만나봤는데요. 우리의 전통과 민속문화를 지키고 잘 보존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장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뉴스와 사람들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전경윤이었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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