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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전경윤 BBS 선임기자 
출연 : 김용덕 한양대 한국언어문학과 명예교수
방송 : 2024년 2월 11일(일요일) 저녁 6시 20분(BBS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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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전경윤입니다. 연등회와 수륙재, 생전예수재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 무형유산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교 무형유산들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한국 불교의 위상을 높일 수 있고 우리 전통문화의 전승에도 큰 도움이 될 텐데요. 오늘은 불교 무형문화유산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고 지금까지 많은 공을 세우신 분을 만나보겠습니다.

전경윤 : 네. 오늘은 우리나라 최초로 민속학 사전을 만드신 민속학계의 원로 그리고 불교 무형문화재 연구의 대가 김용덕 한양대 명예교수를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그동안 불교 민속과 관련된 논문이나 저서를 다수 발표하셨죠. 그리고 불교계를 대표하는 전통문화 연등회와 수륙재의 무형문화재 지정을 이끈 분이십니다. 교수님하고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김용덕 : 안녕하십니까.

전경윤 : 교수님이 한양대에서 교수를 하셨는데 강단을 떠난 지가 10년이 넘으셨죠? 이제.

김용덕 : 그렇게 됐습니다. 

전경윤 : 요즘은 그럼 어떻게 활동하고 계십니까? 명예 교수신데.

김용덕 : 얼마 전에 제가 남해안 108 성지순례기를 펴냈습니다. 그 이후에 어떻게 이 성지 순례길을 활성화할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우선 행정기관의 협조도 필요하고 또 특히 우리 성지순례를 불교의 포교 방편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습니다.전경윤 : 중요한 또 지금 과제, 계획을 갖고 계시네요. 그런데 교수님 제가 뭐 저도 여기 출신입니다만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출신이신데 고전문학 전공이잖아요. 

김용덕 : 예 그렇습니다. 

전경윤 : 그런데 불교 민속문화, 불교 무형문화재 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신 특별히 그런 계기가 있었습니까?

김용덕 : 예. 그거 뭐 계기라고까지 지금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불교와 민속이 어쩌면 저한테는 태생적으로 인연이 닿아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주 저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민속 현상을 보고 자랐고 그래서 낯설지 않고 또 민속을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불교 민속을 접하게 되고 또 불교 민속의 비중이 아주 크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불교 민속 연구를 하다 보면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불교와 민속을 동시에 알아야 해서 불교 공부가 필수적이죠. 그래서 불교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전경윤 : 그리고 고향이 아주 산골이라고 그러셨는데 그러니까 전북 무주. 

김용덕 : 무주구천동입니다.

전경윤 : 이 거기서 태어나신거군요.

김용덕 : 예 그렇습니다. 

전경윤 : 심산유곡에서 태어나셨네요.

김용덕 : 그 저기 토끼하고 발맞추며 산다 옛날에 그랬어요.

전경윤 : 그 정도로. 지금 책 얘기하셨는데 제목이 <남해안 108 성지순례> 그래서 이게 이제 교수님께서 남순동자, 선재동자가 됐다 그게 그런 뜻이죠.

김용덕 : 예 그렇습니다. 제가 ‘선재동자 되어보기’ 그렇게 이제 전제를 하고 책 제목을 어떻게 붙였냐면 ‘남순동자 구법여행 남해안 108 성지순례’ 이렇게 좀 깁니다마는 이렇게 붙였어요. 남순동자가 누구냐고 자꾸 묻더라고요. 그런데 그 화엄경 입법계품에 보면 선재동자가 법, 다시 말해서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 이제 남쪽으로 떠나죠. 그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차례로 만나면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선재동자가 남쪽으로 선지식을 찾아서 떠났으므로 남순동자라고도 부르죠. 그래서 남순동자가 53 선지식을 만나듯이 108개의 사찰을 방문하면서 남순동자가 되어보기로 했습니다.

전경윤 : 그런 또 뜻이 있었군요. 그리고 제가 듣기로는 이 구법여행을 하게 된 계기가 어린 시절에 사실은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에 대한 어떤 발로참회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에 출가를 하려다가 출가하지 못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하신 겁니까?

김용덕 : 어린 시절은 아니고요. 고등학생 때인데.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효봉스님이 입적을 하셨어요. 그런데 신문에 그 칼라사진으로 그 스님한테서 나온 사리, 사리가 이렇게 칼라 사진으로 나왔는데 그것을 보고 큰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 불교가 무엇인가 궁금해서 이제 불교책을 구해서 보게 되었고, 공부를 하다 보니까 불교를 제대로 알려면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집을 떠났습니다.전경윤 : 그러면 가출이죠. 그거는.김용덕 : 출가를 하려고 떠난 거죠. 출가하려고 떠났는데 결국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출로 끝나고 말았어요. 그래서 계속 마음속에는 두고 있었죠. 그래서 이번 순례 여행은 그러니까 고행을 통해서 스님들이 겪는 수행의 끝자락이나마 붙잡고 싶어서 시도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전경윤 : 그리고 그 일본의 헤이안 시대라는 시절이 있었군요. 그 시절의 스님이 홍법대사 쿠카이 스님인데 그 스님의 발자취가 남은 시코쿠 오헨로 순례길.

김용덕 : 오헨로 순례길이 있습니다. 

전경윤 : 그것이 좀 많이 참고가 됐어요?

김용덕 :제가 한 10여 년 전에 오헨로 순례길을 이제 걸었습니다.이게 1200년 된 길인데 그 길을 걸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하고 또 성지순례도 많이 갑니다. 그래서 뭐 산티아고라든가 이스라엘 같은 데 많이 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 순례를 하면서 정작 우리나라에는 순례길이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성지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쉽게 생각을 해서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경윤 : 그런데 이 <남해안 108 성지순례 책>이 1, 2권으로 돼 있잖아요. 제가 보니까 직접 이제 겪었던 도로 사정이라든지 어떤 지리적인 상황, 환경 또 숙식에 대한 이야기 이런 것들도 담았는데, 그런 것들은 이제 읽는 분들에게 여기를 가게 되면 이것을 반드시 참고해라 그런 취지로 이제 설명을 하신 거죠. 그 책은.

김용덕 : 처음에 이제 순례길을 이 지도를 보고 표시를 해서 이제 걸어가는데 하다 보니까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그래서 누구나 여기 처음 시도를 할 텐데 처음 가더라도 나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절을 찾아가는 도로 사정이라든가 또 절과 절 사이의 거리라든가 또 숙박시설 같은 것을 꼼꼼하게 표시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전경윤 : 그런데 우리 교수님께서 이 사찰을 찾아가는데 교통편이라든지 이런 것이 상당히 좀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도 처음에 그랬잖아요. 지자체라든지 행정기관을 통해서 이런 것에 대한 협의를 하고 싶다. 그러면 순례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시급하게 이런 부분은 빨리 좀 고쳐져야 된다. 이런 부분이 있단 말씀이죠.

김용덕 : 그렇죠. 지금 제일 어려운 문제가 숙소 문제예요. 이 절에서 저 절로 가는데 대개 하루에 이제 걷는 거리가 20km 전후라고 보면 절에 도달하면 대개 밤이 되거든요. 밤이 되면 거기서 이제 숙박을 해야 되는데 숙박할 데가 없어요. 산 중 절이니까 그러면 중간에라도 숙소가 있으면 되는데, 농촌 마을이라서 숙소도 없어요. 그런 경우에 어렵기 때문에, 다행히 이제 마을에 가면 마을회관이 있거든요. 그래서 마을회관을 좀 이게 숙박만 할 수 있게 빌려준다거나 또 절에 갔으니까 절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도록 하면 숙소 문제가 해결되죠.

그래서 이제 행정기관에 이제 시군을 찾아가서 그 마을회관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하고, 우리 종단에서는 템플스테이를 순례기간에 한해서 좀 잠만 재워주는 것이라도 하면 숙박 문제가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생각에서 지금 구상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 구상을 하고 있군요. 그리고 이 책을 보면 이 가수 나훈아 씨라든지 진성의 노래를 빗대서 사찰을 소개하는 그런 부분이 있던데.

김용덕 : 예 있습니다.

전경윤 : 하나의 기교군요. 기교. 글쓰는 기교.

김용덕 : 그게 저기 이 책이 이제 사찰 순례길이다 보니까 이제 사찰의 창건 설화나 역사 또 전각, 불상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이제 중심이 되다 보니까 너무 교과서같이 딱딱하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이제 그래서 불교 교리나 신앙에 대해서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대중가요를 이제 끌어다 쓰게 됐는데 진성의 ‘보릿고개’라는 노래가 있어요. 저는 보릿고개를 이제 직접 겪었기 때문에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보릿고개가 뭔지 몰라요. 말은 들었지. 그래서 보릿고개 시절에 그 이야기를 좀 했고, 또 나훈아라고 하는 가수의 ‘공’이라는 노래를 들어보니까 그 노래 속에 불교의 삼법인 사상이 들어있더라고요. 그래서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공. 이  사상을 쉬운 노랫말로 표현하고 있어서 넣어봤습니다.

그 나훈아의 ‘공이’라는 노래 끝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는데 “살다 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이게 일체개공이거든요. 꼭 금강경을 읽지 않더라도 이 노래 가지고 일반 대중들은 어려운 법문 들을 것 없이 이 노래 가지고도 바로 불교의 공사상을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다가 한번 인용했습니다.

전경윤 : 제가 궁금한 것이 <남해안 108 성지순례>이기 때문에 제가 보니까 이제 100년이 넘는 사찰들 가운데서 이 108 사찰을 이제 선정하신 건데 어떤 기준이나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요.

김용덕 : 여기서 이제 뭐 짐작하시겠지만은 108이라는 것은 우리 불교의 백팔 번뇌를 말하는 것이고 1008 사찰을 순례하고 나면 백팔 번뇌를 벗어난다는 그 의미를 제가 담았습니다. 그다음에 108 사찰을 선정한 기준은 적어도 한 1세기 100년이 넘은 사찰과 또 폐사지, 폐사지를 선정을 했습니다. 폐사지에 가면 불상이나 탑이나 마애불이 남아 있어요. 제가 이 책에 보니까 모두 열여섯 폐사지 열여섯 곳이 폐사지로 담겨 있습니다.

전경윤 : 하여튼 미처 포함은 안 됐지만 참 이게 소개할 만한 사찰도 꽤 있죠. 

김용덕 : 그 외에도 이제 있는데 그것들은 이제 기준을 정해야 되니까. 최근에 지어진 절들 더 번성하는 절도 있는데 그것은 제외를 시켰습니다.전경윤 : 그렇다면 교수님 이 책을 보는 분들에게는 이 책이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을까요? 한마디로 이제 순례를 떠나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하나의 안내서?

김용덕 : 가이드북이 됐으면 좋겠고. 우리가 이 절에 가면은 법당에 들어가서 예불을 하잖아요. 이제 예불을 하면 거기 부처님들이 이제 혼자 계신 분도 있고, 셋이 삼존불이 이렇게 있는데 예불을 하면서도 그 부처님이 어떤 부처님인지 잘 몰라요. 그래서 이 책에는 절마다 이제 삼불이 있으면 그 삼불의 명호를 이제 설명을 했고, 그다음에 또 이제 그 후불탱 탱화가 있고 또 벽화가 있습니다. 그 후불탱과 벽화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안내를 했습니다.

전경윤 : 그리고 불교의 기본 교리나 어떤 상식 이런 것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는 부분들도 꽤 있습니까?

김용덕 : 예 있습니다. 절에 가면 우리가 전각이 많이 있는데 거기 보면 이제 대웅전이 있고, 관음전, 나한전, 지장전, 산신각 이렇게 있지 않습니까? 그 전각에 있는 주불, 어떤 부처님이 계신가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그 주불과 관련된 신앙 그러니까 관음전에 가면 관세음보살, 관음 신앙이라든가, 나한 신앙이라든가 지장 신앙 등을 간단간단하게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전경윤 : 상당히 정성을 많이 들이신 책인데 그런데 이제 굳이 남해안 지역을 이렇게 중점적으로 이렇게 순례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김용덕 : 예. 처음에 이제 순례길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가지고 고민을 했죠. 고민을 하고 있는데 문득 아까 말한 남순동자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어요. 남쪽으로 가라. 그렇게 길을 알려줬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남쪽으로 떠나게 됐는데 남해안은 바다와 산과 들이 이렇게 어우러져 있어서 풍광이 아름답고요. 그다음에 내륙에서 볼 수 없는 바다를 이렇게 보고 걸으니까 아주 가슴이 확 트이고 그런 시원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특히 남해안은 임진·정유재란 때 불교가 많은 피해를 봤거든요. 거의 불타거나 뭐 그랬는데 그런 유적들이 많고 또 다산초당이라든가 영랑 시인 영랑생가라든가 또 그런 문화 유적지 또 공룡 발자국 화석 같은 이런 것이 보존되어 있는 자연사 박물관도 있어서 아주 볼거리가 많습니다. 또 하나 덤으로 말한다면 바다를 끼고 있으니까 생선과 맛있는 남도 음식을 맛볼 수가 있는 기회도 됩니다.

전경윤 : 일석이조. 그런데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군요. 이 남해안 108 성지순례길이 한국의 산티아고 순레길처럼 되길 바란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어떤 훌륭한 순례길이 잘 없다 이런 의미인가요?

김용덕 : 몇 년 전에 그 산티아고 순례가 한참 유행을 했었어요. 그때 신문에서 읽은 기사가 이제 기억이 나는데 산티아고 순례객 중 5명 중 두 사람이 한국 사람이다. 그런 기사를 봤어요. 한국 사람들은 상당히 여행도 좋아하지만 그 활발하잖아요. 그런데 산티아고를 가는 사람들이 굳이 종교적인 이유로만 가지는 않습니다. 남해안의 성지순례도 불교만의 길이 아니고 세계인이 찾는 한국 문화 순례길, 또 트래킹 코스로 아주 잘 어울리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이게 순례길이 고정이 되면 세계적인 순례길 트래킹 코스가 될 것이다. 저는 확신합니다.

전경윤 : 확신까지 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하여튼 이 책이 상당히 많은 분들에게 좀 읽혀져서 우리 불교 문화 또 우리 한국의 어떤 사찰 문화 이런 게 좀 알려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실 교수님께서는 한국 민속학계의 또 원로신데 우리나라 최초로 민속학 사전을 만드셨나요.

김용덕 : 예 그렇습니다.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이게 지금 한 20년이 넘었습니다. 제가 민속학을 공부하다 보니까 모르는 용어가 너무나 많았어요. 그래서 사전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사전 편찬을 했는데 사전 편찬하는 데 한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결과적으로 사전을 편찬하면서 민속에 대해서 폭넓게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또 사전 편찬이 제 학문의 기초가 되었고, 사전 편찬하기 위해서 뭐 많은 책들을 가져다가 읽고 또 요약하고 정리해야 되니까 또 불교 민속을 연구하는 그런 계기가 됐습니다. 민속학 분야중에 불교가 의외로 많아요.  우리 전통 신앙이 불교에서 온 것들이 많고 그래서 불교 공부도 저절로 됐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전경윤 : 책을 잘 쓰신 거네요. 아주. 큰 도움이 됐군요.

김용덕 : 네. 책을 집필하면서 제 공부가 되고 기초를 마련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전경윤 :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제가 또 살펴보니까 이게 불교 동화를 쓰셨는데 어린이 불교 동화를 쓰셨어요.

김용덕 : 그렇습니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죠. 저는 우리 한국 불교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고, 포교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불교 동화집을 처음 펴낸 계기는 저희 아이들한테 읽히기 위해서 이것을, 동화집을 처음에 썼어요. 제 아들이 유치원 갈 때가 되었는데 이제 그때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에 보냈어요. 그런데 아이가 어느 날 유치원에 갔다 오더니 저녁에 식사를 하려고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데 “잠깐! 기도하고 밥을 먹어야지.”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두었죠. 그런데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선교원이었었어요. 그러니까 기독교식으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제 그것을 다 보고 나서 아주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린아이 적부터 불교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우선 불교 설화를 풀어서 제가 국문학 전공했으니까, 불교 설화를 풀어서 불교 이야기를 동화로 엮었습니다. 그런데 소재가 빈곤하니까 결국은 전국에 있는 사찰을 찾아다니면서 스님들을 만나서 물론 그 절에 창건 설화 그다음에 또 스님들한테 이런저런 불교 얘기를 듣고 채록을 해서 그걸로 책을 쓰다 보니까 7권이나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전경윤 : 아들에게 읽히려고 이제 만든 거였는데. 

김용덕 : 네. 그랬는데 아들도 아들이지만 어린이 불교의 포교가 중요하다. 그만큼 그것을 이제 느끼고 한 일이죠.

전경윤 : 예. 우리 김용덕 명예교수님은 한양대 명예교수를 하고 계신데요. 조계종 그러니까 조계종의 성보위원이라는 직책이 있고요. 문화재청의 문화재 전문위원, 문화재위원 뭐 이렇게 있는데 다 하시면서 특히 이제 불교 무형 문화재 발굴에 애쓰셨죠? 그동안에. 그동안에 많은 활동을 하신 것 같은데.

김용덕 : 예. 저기 우리나라 국보하고 보물이 있는데 그런 문화재 가운데 불교 문화재가 약 68% 정도 됩니다. 국보와 보물은 대부분 이제 불상이라든가 탑이라든가 이런 유형, 형태가 있는 유형문화재인데 무형문화재는 겨우 5종밖에 문화재 등재가 안 됐어요. 그러니까 영산재 연등회, 수륙재, 불복장, 단청. 그런 정도가 이제 등재에 있습니다. 그래서 무형문화재를 더 많이 국가문화재로 등재하기 위한 후보 종목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성보위원으로 있으면서 그래서 그것을 이제 종단에다가 제시하고, 종단에서도 이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것을 지정을 해야 된다 하고 종법을 바꿨어요. 무형문화재를 조사하는 항목을 그래서 종법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제 조계종의 성보의원으로 있으면서 불교 무형 문화재 발굴과 조사 활동을 한 것에 대해서도 보람을 느끼죠.

전경윤 : 지금 연등회 말씀하셨는데 국가무형문화재 122호 그리고 유네스코 이 몇 년 전이죠.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됐습니다. 연등회 문화적인 가치도 있고, 학술적 가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제 연구를 했었으니까 그것을 요약해서 말씀하신다면요.

김용덕 : 연등회는 신라 경문왕 6년 서기로 보면 866년입니다. 이때 열었다는 기록은 있어요. 그렇다면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 그전부터 해왔겠죠. 그렇다면 연등회가 약 16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축제를 보더라도 천년이 넘는 연회가 없어요. 그다음에 우리가 흔히 들어서 알고 있는 영국 에딘버러 축제라든가, 브라질 삼바 축제, 이름은 다 알고 있죠. 알 그다음에 일본의 기온 마츠리 아주 유명합니다. 여기 가면 세계 각국에서 다 이렇게 모이거든요. 이것도 채 200년이 안 됐어요. 그 연등회는 1600년이나 됐으니까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문화행사이고 축제다.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전경윤 : 지금 연등회를 매년 우리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하는데 연등회가 이제 제등 행렬이 가장 핵심이지 않습니까? 이게 올바른 어떤 연등회 보존과 전승을 위해서 또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나 이런 것들을 한번 기획을 좀 해보자 이런 의견도 좀 있는 것 같은데.김용덕 : 예. 지금 연등회 보존회에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 연등회 보존회 사람들하고는 제가 문화재로 지정할 때부터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잘 알고, 지금도 뭐 서로 이제 그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연등회가 국가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사실은 안정을 찾았어요. 그전에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에는 이교도들이 거리에 연등줄을 이렇게 매달아 놓으면 그것을 자르고 훼손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더군다나 또 연등 행렬을 할 때 교통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해가지고 중단해야 된다고 청원을 넣기도 하고 뭐 옛날 청와대 시절이니까 청와대 청원을 넣기도 하고 방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2012년에 이제 문화재로 등재가 됐는데 그때 국가문화재로 지정되고 나서는 이런 폐단이 사라졌어요. 국가 문화재니까. 앞으로 연등회를 더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보완도 해야 되겠지만 이게 불교인만의 행사는 아니다. 온 국민이 함께하는 축제가 되고 또 지금도 세계 사람들이 많이 찾거든요. 세계인이 찾는 그런 축제가 되도록 계속 연구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전경윤 : 하지만 연등회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까지도 어려움이 있었고 서울시 무형문화재 위원장 하셨는데.

김용덕 :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 아. 지금도 하고 계십니까. 그 임기가 이렇게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김용덕 : 저기 이제 서울시 무형문화재위원이 6년. 2년씩 세 번 연임할 수가 있어서 지금 6년째 문화재위원장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 서울 봉은사 생전예수재의 서울시 무형문화재 지정을 이끄셨는데 그런데 불교 같은 경우 이 항목의 경우에는 국가무형유산 등재가 이렇게 쉽지가 않습니까?

김용덕 : 이제 심의를 하고, 조사를 하고 이제 해야 되는데 연등회도 2012년 국가문화재로 등재되는 과정에서 많은 난제가 있었어요. 그리고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에서도 제가 그 과정을 쭉 이제 지켜봐서 아는데 세 번이나 시도한 끝에 됐거든요. 그 뒷얘기는 뭐 여기서 다 굳이 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마는 그러니까 연등회가 202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는데 그때 제가 다행히 문화재 위원으로 있었어요. 그래서 그 과정을 잘 지켜봤고 이 연등회를 문화재로 세계유네스코에 등재시키는데 조금이나마 역할을 일조했다고 해서 제가 그동안 불교에서 입은 은혜를 뭐 이 조금이나마 보답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전경윤 : 그렇다면 앞서도 잠깐 말씀하셨습니다마는 불교문화재가 국가무형유산 등재를 등재가 그동안 잘 안 됐다고 얘기할 수 있는데 그 이유가 그럼 가장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김용덕 : 이 불교 문화재가 이제 국가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불교계의 탓이에요. 문화재 등재를 위해서 더 많이 발굴하고 체계화하고 연구를 게을리한 탓이죠.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총무원 문화부에서 무형문화재 목록을 작성을 했죠. 처음 몇 년간은 조사를 하다가 코로나가 왔어요. 코로나가 오면서 중단됐습니다. 그리고 성보위원회가 있는데 구성돼 있는데 지금 코로나 이후로 회의를 한 번도 못 했어요. 4년 넘게 성보위원 위촉만 하고 회의는 한 번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경윤 : 이제 불교계가 더 이렇게 노력을 해야 된다는 말씀이세요. 

김용덕 : 그렇습니다. 

전경윤 : 그렇다면은 앞으로 해야 될 일이 등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유산들을 찾아내서 등재를 하기 위한 절차를 빨리 밟아야 하는 것, 그런 게 지금 필요하다는 말씀이시죠.  

김용덕 : 아주 시급한데 이 조사를 하고 정리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서 신청을 해야 하죠. 등재를 할 수 있도록 지금 이제 대표적으로 예를 들면 발우공양이 있습니다. 또 발우공양은 이 시대 상황과 생태 환경과도 아주 긴밀히 관계돼 있어요.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서 요구하는 사항에 바로 이 생태 환경도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이게 이제 정리해서 등재를 하면 이것은 아마도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할 수 있는 요건도 갖추고 있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또 그다음에 이제 발우공양 외에도 다비, 다비 의식도 우리나라만 가지고 있는 고유한 풍속이죠. 또 불교 지화, 지화도 이게 조사하고 정리해서 신청하면 문화재 지정이 가능한 높은 문화유산이다 그렇게 봅니다. 내가 서두르지 않는데 남이 알아서 그걸 해줍니까. 안 해주죠. 내가 서둘러야 되기 때문에 우리 불교계에서 이게 또 이게 문화재를 신청하면 불교 지위도 공고히 하고 또 포교하는 방편이 되는 겁니다.

전경윤 : 알겠습니다. 강단을 떠나신 지가 좀 되셨는데 교수님께서 <한국 불교 민속문화의 현장론적 고찰>이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김용덕 : 예 그런 책을 냈습니다.

전경윤 : 책은 어떤 의도로 쓰신 건가요?

김용덕 : 불교 문화재와 신앙에 대해서 정리한 책입니다. 불교 의례나 세시 풍속이나 이런 것과 또 불교 민속과 꽃살문, 절에 가면 꽃살문 있잖아요. 꽃살문, 사찰 벽화도 있고요. 또 지화도 있고 그래서 그런 예술. 또 지장신앙, 나한신앙, 미륵신앙 이런 관음신앙 이런 신앙도 있고 그래서 이런 것들을 정리해서 그러니까 제가 평생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업적을 한 자리에 모은 책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전경윤 : 알겠습니다. 우리 연구자 입장에서 보면 그러면 불교 민속 문화의 가치를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김용덕 : 지금 뭐 이제 인구가 줄고 불교를 연구하려고 하는 학자도 줄고 그래서 불교 민속 불교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거의 단절되었다. 뭐 그렇게까지 봐도 저는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종단 차원에서 불교 문화 연구를 지원해야 합니다. 연구비 지원은 다른 불사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부분입니다. 연구자들에게 걱정 없이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후원을 해줄 필요가 있다. 우리 불교계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야 된다. 젊은 학자들을 많이 양성해야 된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전경윤 : 네. 한양대 김용덕 명예교수님과 지금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동안 연구하신 게 참 많기 때문에 지금 앞으로 또 이것을 더 연구하고 싶다 이런 게 또 있습니까?

김용덕 : 많죠. 많은데. 할 일은 많은데 저에게 시간이 많지 않아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전경윤 : 어떤 겁니까?

김용덕 : 그래서 이제 지금 아까 말한 지금까지 말한 성지순례길도 더 닦아야 되고 또 불교 문화재를 발굴하고 연구해서 또 더 많이 세상에 알려야 되고 또 등재도 해야 되고 그런 일들이 지금 남아 있습니다.

전경윤 : 예.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남해안 108 성지순례> 책을 쓰셨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속학 사전도 만드신 민속학계 원로 한양대 명예교수이신 불교 형문화재 연구의 대가 김용덕 명예교수님과 얘기 나눴습니다. 오늘 대단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 민속학계 원로이자 불교무형문화재 연구의 대가인 김용덕 한양대 명예교수의 말대로 불교계가 불교 무형자산들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경윤이었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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