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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전경윤 BBS 선임기자 
출연 : 가수 진미령 
방송 : 2024년 1월 28일(일요일) 저녁 6시 20분(BBS 라디오)

전경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경윤입니다. BBS 뉴스와 사람들 1월 28일 일요일 순서를 시작하겠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연예인 전법단이 있는데요. 불자 연예인들로 이뤄진 연예인 전법단이 갑진년 새해 활발한 활동을 다짐하고 나섰습니다. 

오늘은 대표적인 불자 가수 가운데 한 분 진미령 불자를 만나봅니다. 가수이자, 방송 진행자, 통역가, 요리사, 사업가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진미령 불자 가수 잠시 뒤에 만나보겠습니다.

전경윤 : 네. 오늘은 1970년대 80년대 최고 인기 가수 또 영원한 소녀로 불렸던 분입니다. 진미령 불자, 진미령 선생님을 만나겠는데요. 히트곡이 또 굉장히 많습니다. ‘소녀와 가로등’, ‘하얀 민들레’, ‘미운 사랑’ 이런 히트곡들이 잘 알려져 있고, 요리사, 방송 진행자, 통역가, 김치 사업가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해 오신 분이시죠. 대한불교 조계종 연예인 전법단 소속으로 불자 연예인이신데 조계종의 포교진흥기금도 기부하신 우리 진미령 선생님을 만나보겠습니다. 제 소개 괜찮습니까. 틀린 거 없죠.

진미령 : 너무 멋져요. 너무 멋져요.

전경윤 : 와 목소리가 좀 갈라지시는 것 같은데, 선생님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여러 지금 분야에서 활동해 오셨기 때문에 최근에 또 새로운 걸 하고 계시는 거 아니에요. 혹시. 어떻습니까.

진미령 :  그저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을 해요. 우리가 뭐 나올 때는 정해져서 나오지만 갈 때는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 무엇이든 해보자라는 게 또 제 좌우명이기도 해요. 도전을 하자가. 

전경윤 : 늘 도전하자, 대단하신 분이세요. 정말. 

진미령 : 네. 그래서 정말 뭔가를 지금도 또 막 배우고 싶고, 요즘에는 작곡 공부를 하고 싶어서 전문대학교를 가서 문을 두드렸어요. 그랬더니 거기 총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여기 지금 스무살 애들하고 하기 때문에 그것은 조금 곤란할 거라고 그래서 퇴짜도 맞고 혼자 가슴에 상처를 조금 받았고, 요즘 근황은 그저 무엇이든지 내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적극적으로 하고 있고, 노래도 열심히 하고 있고.

전경윤 : 작곡을 공부하신다고 그랬는데 저는 ‘소녀와 가로등’을 작곡하시는 줄 알았어요.

진미령 : 아니요. 그거는 고(故) 장덕 씨가 작사 작곡을 했죠.

전경윤 : 먼저 조계종 연예인 전법단 소속이기 때문에 그것도 궁금해요. 불교와 또 어떤 인연을 맺은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진미령 : 저는 모태 불교고, 저희 아버님이 그 첩보부대 대장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 이제 대원들이 이북에 가고 뭐 했을 때에 돌아오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위령비를 강원도 영혈사라는 절터를 아버지가 만들어 주셔서 스님들이 운영을 하셨었죠. 그래서 살아계실 때에 항상 1년에 몇 번씩 영혈사에 가서 기도도 하시고, 저희 어머니, 할머니 때부터도 또 절에 다니셔서 저는 동짓날이면 할머니 손 이렇게 잡고. 

전경윤 : 끌려서.

진미령 : 끌려서도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자연스럽게 팥죽도 맛있지만 절김치가 맛있었잖아요. 절김치가 맛있었어요.

전경윤 : 그래서 김치를 나중에 하신 거구나. 

진미령 : 맞아요. 그래서 절은 뭐 거의 내가 살고 있는 삶이죠.전경윤 : 예. 그래서 지난 1월 10일에 조계종 포교원에 기금 1천만 원을 전달하셨는데.진미령 : 그 가격은 말씀하지 마시지.전경윤 : 편집하겠습니다. 그럼. 기금을 전달했는데요. 이렇게 자비보살행을 실천하게 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진미령 : 저희 연예인 전법단이 포교 원장님으로 인해서 만들어졌잖아요. 연예인 전법단은 처음이에요.

그런데 이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예를 들어서 전국 사찰에 저희 전법단에, 연예인 전법단에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 전단지라든가 또 홈페이지라든가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하면 그냥 해줄 수도 없고, 또 포교원에서 해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 제가 이렇게 조금이나마 기부를 한다면 정말 일하시는 분들의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자부심을 갖고 함께 움직일 수 있지 않겠나 해서 조그마한 정성을 나눴습니다.전경윤 : 예. 잘하셨어요. 이 조계종에 전법단이라는 게 있어요. 분야별로. 연예인 전법단도 있고 뭐 무슨 경찰 전법단도 있고 이런데. 

진미령 : 네. 많아요.

전경윤 : 연예인 전법단에서 활동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까. 특별한 동기.

진미령 : 동기라기보다는 그 연예인들, 대한불자가수회라는 모임이 오래 있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이제 있을 때 이제 잠깐 잠깐 참여를 했었는데 마침 조계종 포교원에서 연예인 전법단을 만들어 주시니 정말 큰 짐을 등에 업은 거거든요. 그래서 이제 적극적으로 좀 활동을 해볼까 해서 함께 합류를 한 거죠.

전경윤 :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네요. 최근에. 제가 또 조사를 해보니까 “노래와 행동을 통해 부처님 법을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전하겠다.” 이런 각오를 갖고 계십니까.

진미령 :  있죠. 왜냐하면 왜 ‘전 세계’가 나올까 하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쉽게 LA에 가면 수많은 절이 있습니다. 라스베가스에도 절이 많아요. 좋은 절들이 많습니다. 거기에는 거기에 거주하시는 교포분들이 오셔서 일요법회도 하시고 하시는데 그분들이 언제 가수들 노래를 직접적으로 보겠어요. 그렇다면 저희 전법단이 될 수 있는 그런 가수분들을 모시고, LA도 가고, 라스베가스도 가고, 뉴욕도 가고, 굉장히 많이 절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거는 케이팝, 케이불교를 충분히 알려드릴 수 있는 계기가 되겠다라는 의미예요.

전경윤 :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이민 초기 세대분들이 특히 좋아하실 것 같은데.

진미령 : 그럼요 거기 가면 아직까지도 할머님들 오셔서 공양하시고 너무 좋아들 하세요.

전경윤 : 미국 잠깐 또 사셨으니까. 그런데 우리 연예인 전법단장이 우봉스님인데요. 우봉스님은 조계종의 기획실장이시고 화계사 주지신데 진미령 불자에 대해서 누구에게나 모범이 될 신심과 큰 원력을 가진 분이다 이렇게 또 얘기하셨어요.

진미령 : 아 글쎄 그것은, 원력을 가졌겠죠. 저는 시간이 나면 법화경을 사경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한 100여 권이 넘었고 그래서 여러분들한테도 좀 권하고 싶은 것이 불전을 읽는 것도 업을 지우는 일이지만 사경을 하는 것도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열심히 사경을 합니다.

전경윤 :  조계종 연예인 전단이 현판식을 했던데 서울 화계사에서. 

진미령 : 맞아요.

전경윤 : 그러면 화계사가 이게 활동의 어떤 거점입니까.

진미령 : 그렇죠. 이제 큰 모임이 있을 때는 이제 우봉 단장스님을 비롯해서 화계사에 모여서 저희가 템플스테이를 벌써 두 번이나 했어요. 

전경윤 : 화계사에서. 거기서 이제 경험을 하셨군요. 사찰 체험도 하시고. 그럼 이제 행사는 주로 여기서도 많이 하겠네요. 앞으로도.

진미령 : 많이 하죠. 이제 앞으로. 이제 시작입니다. 이제 적극적으로 움직여야죠. 

전경윤 : 그런데 제가 이 가수분들을 만나면 이런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힘든 일이 많지 않습니까. 스케줄이 꼬이거나 또 스트레스 받거나 이런 일이 많은데 사찰에만 오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 자신을 자연스럽게 내려놓을 수 있다고들 하는데 실제 그렇습니까.선생님도 그런 느낌을 가지세요.

진미령 : 그렇지 않으세요. 

전경윤 : 아 그렇죠. 마음이 편안해지죠.

진미령 : 네. 마음이 편안해지죠. 일단 절에 가면 조용하고 다 각자가 자기 하시는 일들만 하시잖아요. 공양주 보살이라든가 뭐 이런 분들, 그러니까 혼자 가서 부처님 앞에 서서 절을 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떨 때는 눈물이 그렇게 나는 날이 있어요. 그러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고 그러니까 사찰에 가면 정말 나 혼자만의, 그러니까 언뜻 얘기하자면 엄마 뱃속에 와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이라고 표현을 저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경윤 : 엄마 뱃속이 편안한가요. 

진미령 : 얼마나 편안했겠어요. 저도 모르죠. 아무도 모르죠.

전경윤 : 아 다들 이렇게 얘기하시길래, 김흥국 씨도 이렇게 얘기를 한 적이 있고 그래서 한번 여쭤봤습니다. 자 그런데 이제 불자 가수들 저는 꽤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장미화 선생님도 생각나고 그러는데 현재 함께 활동하거나 자주 만나거나 또 좀 친한 연예인이나 불자 가수들 좀 있으신가요.

진미령 : 많죠. 김국환 씨도 불자가수시고, 그다음에 젊은 층으로 가면 김혜연이라는 가수가 또 글자고요. 또 요즘 아주 MZ세대 김수찬이라는 가수도 그분도 아주 불자시고, 그런데 이제 가수분들이 저를 비롯해서 저희는 이제 가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기독교, 천주교, 불교, 그래서 ‘기천불’이라는 교를 믿고 있다라고 하는데 그 마음은 저에게는 바탕은 불교죠. 그러나 제가 교회에 가거나 천주교에 가서 초대받아서 노래할 때는 똑같은 진리를 말씀해 주시기 때문에 저는 굳이 이렇게 가리지 않아도 된다라고 봐요. 그러나 마음에 깔려 있는 교만 확실하다면 그건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전경윤 : 우리 그러면 또 소개할 만한 불자 연예인이 있습니까. 

진미령 : 뭐 그렇게 유명은 하지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사실은 돈 받고 일하는 가수들이 100명 안짝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지금 가수로 등록되어 있는 분들은 2만, 3만 명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언뜻 누구지라고 하시지만 이 불자 가수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연주라는 가수라든가.

전경윤 : 저는 좀 안타까운 게 이제 무슨 시상식 이런 거 보면 수상 소감 얘기하는데 다들 뭐 하느님을 찾고 이런 분들 많잖아요. 

진미령 : 그렇죠. 그런데 저를 (상을) 주면 제가 아미타불할 텐데 언젠가 기회가 있겠죠. 제가 아미타불 할. 

전경윤 : 있을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이렇게 잘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분들도 좀 있는 것 같아요. 불자들은.

진미령 : 글쎄 불자라는 것은 이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뭘 믿어 하고, 뭐 믿어 하면서 전도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는 원래 그랬던 것 같아요. 그저 마음속에 가지고 있고 부처님의 진리를 따르고, 불전을 따르는 것이 나는 불자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기독교라든가 이런 분들은 보면 전도를 하고 이제 뭐 그런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불자들은 조금 다들 이렇게 보면, 불자입니다 하시는 분들 보면 다 좀 점잖으신 분들이 불자인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제가 뭐 말을 실수할 수도 있는데.

전경윤 : 연예인 전법단 그러면 이제 갑진년 새해에는 무슨 계획을 좀 갖고 있는 게 있습니까.

진미령 : 전국 사찰을 저희가 일단 주지스님께 인사드리고 그쪽 사찰에서 행사가 있는 것은 저희 연예인 전법단이 항상 가는 것으로 지금 계획은 잡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또 포교원에서 많은 홍보가 필요하겠죠.

전경윤 : 알겠습니다. 좀 옛날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진미령 : 그럴까요.

전경윤 : 1977년 대만 가수 진추하 씨가 내한하셨는데, 이분이 굉장히 또 유명한 가수인데. <사랑의 스잔나>라는 영화에.

진미령 : 맞아요. 거기에 나왔던 배우가 우리나라에 영화 홍보차 왔을 때 왔을 때, 그때 제가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말을 많이 안 잊어버렸겠죠. 그리고 그때 당시에는 중국말을 통역할 분들이 많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같이 함께 통역을 했죠.

전경윤 : 그래서 그때부터 저도 그랬어요. 성이 또 진씨고 그래서 화교구나. 중국에서 오신 분이구나. 그런데 토종 한국인이잖아요. 

진미령 : 그럼요. 왜 진씨라고 바꿨냐 하면 아버지가 이제 그 군인 생활하시고 이제 공무원 생활을 하시다 보니까 내 딸은 그때 그랬잖아요. DDR 딴따라 딴따라 하는 것은 아버지가 반대를 하셔서 이거 너 이런 거 하면 호적에서 뺀다. 저는 엄마의 뒷배가 컸거든요. 엄마 백이 컸거든요. 그래서 저를 키워준 할머님 성함이 진씨 성을 가지셨어요.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 할머니가 키웠거든요.

그래서 나는 할머니 새끼, 할머니 새끼 하다가, 가수하면 아버지가 호적에서 뺀다고 그러니까 그래 그러면 나는 진미령 할래 오늘부터 그래서 진 씨가 됐고요. 그다음에 이제 화교 학교는 어떻게 들어갔느냐 아버지, 엄마의 의견이 그때 당시에 70년대에 학비가 물론 비싸서 미국 학교는 못 갔고, 학비가 비싸서, 아버지 얘기는 그때 현재의 중국 인구가 1~2억인데 네가 컸을 때에는 중국이 제2외국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인구가 워낙 많으니까 그런데 아버지의 생각, 엄마의 생각이 적중을 했던 거예요. 

그리고 제가 자라고 나서는 정말 지금 현재는 15억이 넘는 인구잖아요. 그래서 화교 학교를 가게 됐죠. 그래서 화교 학교의 진씨다 하니까, 나는 다니면서 저 토종이에요 토종이에요 하고 다녔는데, 듣는 사람은 남의 말 하루 이틀밖에 안듣잖아요. 그래서 제가 화교가 된 거예요. 지금도 어떨 때는 지금도 가끔 어떨 때는 이 오향장육 어떻게 만들어야 맛있어요. 물어보시는 분들 계신데.

전경윤 : 아. 짜장면 어디가 잘해요 이런 거.

진미령 : 그런데 그나마 아버지가 조금 이렇게 부각이 되면서 아 쟤가 한국 사람이구나를 이제 많이들 아시죠.

전경윤 : 그렇군요. 그리고 가수 데뷔도 굉장히 일찍 하셨기 때문에 10대 하셨잖아요.

진미령 : 저는 76년도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데뷔를 했어요.전경윤 : 왜 이렇게 빨리 하셨죠. 뭐 특별한 이유가.진미령 : 아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뭘 못해요. 요즘 보면 애들 중학교 때도 데뷔하는데 늦은 거죠. 요즘으로 생각하면.

전경윤 : 그래요. 빨리 데뷔를 하셨고 뭐 하여튼 제 생각에는 빨리 하셨다고 생각하는데 그 서울 가요제라고 있었어요. 옛날에 뭐 패티김이라든지 윤복희 이런 분들 많이 나왔던, 거기서 장덕 씨가 만든 노래 ‘소녀와 가로등’을 이제 부르셨잖아요. 그런데 이 노래를 지금은 잘 부르지 않으신다고요.진미령 : 왜냐하면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우리 덕이가 와서 이렇게 지켜보는 것 같고 그런 거 있잖아요. 우리 사찰에 가서 이렇게 앉아 있으면 이렇게 무언가가 이렇게 오는 느낌, 그래서 부르긴 하죠. 그런데 고급스럽게 된 무대가 아니면 부르지 않게 돼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전경윤 : 아. 마음이 좀. 참 안타깝게 일찍 돌아가셨잖아요.

진미령 : 너무너무 아깝죠.

전경윤 : 천재라고 부르고 막 그랬는데. 자. 우리 또 진미령 불자의 대표곡 가운데 ‘하얀 민들레’가 있습니다. ‘하얀 민들레’, 신봉승 씨 아주 유명한 분인데, 결혼식 축가로 많이 불렀습니까.

진미령 : 그때도 많이 부르고, 지금도 우리 또래의 이제 늦은 자제분들이 결혼할 때에는 ‘하얀 민들레’ 축가 많이 가요. 그런데 요즘에는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곡이 있어요. 그리고 또

전경윤 : ‘미운 사람’ 

진미령 : 결혼식장에서 ‘미운 사람’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당신을 사랑해요’ 하고 그다음에 ‘내가 난생 처음 여자가 되던 날’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그 두 곡을 이제 축가로 하고, ‘하얀 민들레’도 부르고.

전경윤 : 앞서 이제 아버님 말씀 제가 했는데 미국 정부가 선정한 한국전쟁 4대 영웅, 고(故) 김동석 예비역 대령이신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나세요.진미령 : 아버지가 예전에는 눈에 살기도 있고 막 그래서 좀 무서웠어요. 

전경윤 : 진짜 군인.

진미령 : 그랬다가 나이가 점점 들고 아버지가 팔순을 넘기시고 집에 이렇게 가면 예전에는 “왔나!” 이러셨거든. 그런데 팔순이 넘으시고 집에 가면 “왔나” 하는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려요. 그래서 내가 왜 이 딸이, 원래 딸하고 아빠하고 굉장히 친한 사이 아니에요. 딸 있으세요.

전경윤 : 네.  

진미령 : 딸하고 아빠하고 참 친하죠. 

전경윤 : 항상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진미령 : 그래요. 딸이 많이 컸나 보죠. 

전경윤 : 24살입니다.

진미령 : 많이 컸군요. 다 컸군요. 그래서 저는 살가운 아빠와 딸의 모습을 못 만들었어요.그래서 그 꿈속에라도 아버지 사진 보면서 이제 와서 살갑게 해요.

전경윤 : 이제. 꿈속에서. 

진미령 : 아니 아버지도 사진 보면서. 

전경윤 : 아버님이 이제 참 군인이셨고 정말 뭐 경력이 너무 화려해서 제가 뭐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군인으로서는 정말 대표적인 분이셨는데, 유도협회 회장도 하셨어요. 부회장 하셨군요. 

진미령 : 부회장 하셨어요. 회장은 돈 있는 사람이 하는 거고, 부회장은 돈이 많이 안 들어요. 그래서 몸으로 때우신 거죠. 아버지가. 

전경윤 : 통역을 하셨어요. 유도 선수 대표 선수들. 

진미령 : 그때 이제 88올림픽 때 이제 외국에서 선수들이 많이 오니까 제가 이제 그때 미국에서 잠깐 나와서 88올림픽 때 유도 선수들하고 좀 대화를 좀 나눴죠.전경윤 : 그런 또 인연이 있으시고 제가 이 아버지 조사를 많이 했어요. 강원도 삼척 군수, 속초 시장, 강릉 시장, 그럼 강원도가 거의 제2의 고향이실 것 같은데요.진미령 : 맞아요. 그렇긴 그래요. 그런데 나중에 강원도를 다 도시고 그다음에는 목포 시장, 하시고, 수원 시장 하시고, 함경북도 도지사로 정년퇴직하셨어요.

전경윤 : 아니 그러니까 전국의 지자체에 이렇게 장을 하시게 된 것이.진미령 : 그때는 지자체가 아니죠. 지명.

전경윤 : 지명이었군요. 그래도 어쨌든 이렇게 다 목포 시장도 하셨다고요.진미령 : 네. 그래서 목포에 가면 정말 목포가 내 고향 같기도 해요. 왜냐하면 강원도는 내가 3살, 4살, 5살, 어렸을 때예요. 그런데 목포 시장과 수원 시장은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니까 거기가 더 생각이 많이 나죠.전경윤 : 그런데 이제 우리 진미령 불자께서는 미국에 이민 가셨잖아요. 

진미령 : 엄마 따라서 갔죠. 

전경윤 : 그런데 89년에 귀국을 한 것으로 돼 있는데요. 

진미령 : 그때 이제 ‘아하’라는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서 나왔고 정식적으로 다 짐 싸갖고 나온 것은 90년. 

전경윤 : 미국에서 참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요.

진미령 :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한국에서 ‘하얀 민들레’, ‘소녀와 가로등’ 해서 노래가 완전히 뜬 상태에서 제가 공부를 해야겠다라고 해서 엄마하고 갔는데, 거기 가니까 이제 교포 사회에서는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노래를 할 거면 미국에 안 왔습니다. 그리고 노래는 안 하고 이제 좌판 장사, 애들 인형도 팔고, 가구점에서 가구 나르면서 일도 하고, 나중에는 또 지인의 소개로 보험회사에 들어가서 이제 전화받고, 비서로 하다가 그 에이전트들이 한 달에 돈을 많이 가져가요. 그래서 이것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시험을 치면 된대요. 그래서 시험을 쳐서 보험 자격증을 따서 보험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그렇게 해서 살았어요. 노래는 안 하고.

전경윤 : 그런데 결국에는 이제 오래 계시진 않았네요.

진미령 : 아니요. 10년 만에 제가 돌아왔어요. 80년에 가서 90년에 왔는데, LA라는 곳이 대한민국에서 히트가 나는 가수들은 꼭 가는 곳이에요. LA, 뉴욕, 교포 위문 공연이잖아요. 저하고 굉장히 절친했던 조용필 선배 그다음에 이주일 아저씨가 오셨어요. 그래서 이 두 분은 안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가서 인사를 드렸더니, 술자리에서, “야 늦기 전에 다시 와서 한번 해봐라.” 그래서 고민고민하다가 “아! 그래 내가 가야 할 곳이 그것이 마지막 길이라면 한번 적극적으로 한번 해봐야겠다.”

전경윤 : 네 그래서 이제 조용필, 이주일 선생님이 또 설득도 하셨군요.

진미령 : 책임지겠다고 해서 왔는데 와서 보지도 못했어요. 두 사람 다.

전경윤 : 이주일 선생님 돌아가셨잖아요.

진미령 : 그리고 한참 있다 돌아가셨죠.전경윤 : 그리고 말이죠. 요리사로도 또 유명하신데 프랑스의 저 알아요. 이 학교. 르 꼬르동 블루 맞아요. 이 학교를 나오셨습니까.

진미령 : 네 프랑스를 가려고 했었다가 마침 숙명여자대학교하고 MOU를 맺어서 제가 숙명대학교에서 시작하는 1기생이에요. 한국 르 꼬르동 블루 1기생입니다. 

전경윤 : 1기생. 그게 계속 그 과정이 있어요. 지금도.진미령 : 있죠.

전경윤 : 조계종에서도 이 학교에 가서 스님들이 사찰음식 강의하고 그러더라고요. 매년

진미령 : 그렇죠. 이제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많이 여러 가지가, 이제 K-food 해서 아마 그렇게 수업 과정이 있을 거예요.

전경윤 : 그럼 요리 가운데도 특히 이 프랑스 요리를 잘하시겠네요. 아무래도.진미령 : 그렇죠. 왜냐하면 저는 프랑스 요리를 왜 시작을 했냐면 정말 요리가 섹시해요. 만들어 놓으면. 

전경윤 : 아. 모양이.

진미령 : 정말 이쁘고 그리고 숙성시킨, 우리나라 저렇게 치즈를 숙성시키듯이, 그런 3일씩 걸리는 요리도 있고, 그 슬로우푸드죠. 우리나라하고 또 재료도 비슷비슷해. 그 약초, 허브만 조금 틀리고, 아주 그 슬로우 푸드를 만드는 과정은 우리나라 못지않게 그래서 정말 요리가 멋있어서 요리를 했어요. 다니려면 또 세계적으로 꼽히는 학교를 다니는 게 나은 것 같아서.

전경윤 : 요리에 거의 하버드 대학을 나오셨네. 뭐 프랑스 요리만 하십니까. 그럼 다른 요리는 한식이라든지.

진미령 : 한식도 잘하고요. 그다음에 일식을 이제 몇 가지 하고요. 그다음에 저는 퓨전 요리 책을 냈었기 때문에 퓨전 요리를 그런데 퓨전 요리를 하게 된 동기가 우리나라 음식이다, 외국 음식이다 하는데 워낙 많은 인구들이 모여서 살기 때문에 그 사람들 입맛에도 맞추고, 한국의 맛은 기본으로 하고, 각 나라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 제가 전공은 퓨전 요리를 했어요.

전경윤 : 퓨전. 섞어찌개라고 그러죠. 이게 참 질문드릴 게 너무 많아요. 왜냐하면 이게 분야가 너무 다양해지고, 또 몸 관리를 아주 잘하는 분으로 또 돼 있어요. 그래서 건강을 유지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어요.진미령 : 소식하고요. 운동하고요. 몸 관리하고요. 

전경윤 : 너무 단순한데 이거 다 그렇게 말은 쉬운 것 같은데 쉽지가 않은. 

진미령 : 그런데 40여 년을 한다는 게 조금 다르겠죠.전경윤 : 저는 어디 헬스에 갔더니 몸이 70대 몸이라고 저한테 그러던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이제 앞으로 저는.진미령 : 지금이라도 몸을 푸셔야 돼요. 여기 지금 스튜디오가 17층이죠. 그러면 맨 먼저 하실 일이 하루에 만보 걸으면 좋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만보가 5층 이상만 걸어도 하루에 만보 효과를 본다고 해요. 

전경윤 : 아. 위로 가는 거니까. 

진미령 : 올라오는 게. 그렇기 때문에 제가 추천을 드리는 것은 내일부터라도 엘리베이터 1층에서 5층까지는 그냥 항상 매일 올라오시고 그다음에 한 열흘이나 20일 있다가 1층에서 10층을 올라오시고, 그것을 또 한 달 하시고, 그리고 17층을 걸어 올라오시는 게 최고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17층이 아니고 처음에는 5층만.

전경윤 : 5층으로 해서. 알겠습니다.

진미령 : 됐나요.

전경윤 : 좋은 가르침입니다. 실천이 중요하죠. 실천이. 뭐든지 그렇습니다. 뭐든지. 제가 앞서 처음에 소개해 드렸습니다마는 여러 일을 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소개할 때 굉장히 길어질 수가 있는데 소개가, 그래도 가수로 불리는 게 가장 좋다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진미령 : 왜냐하면 내가 무대에 설 수 있을 때까지 움직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수 진미령이라는 것이 가장 편안해요.

전경윤 : 그렇군요. 그런데 나이 많으신 가수나 연예인들 중에 형편이 어려워서 아주 뭐 쪽방에 사신다든지 아주 힘들게 살아가시는 원로 선배 가수분들 연예인들 이런 분이 꽤 많아요.

진미령 : 꽤 많아요.

전경윤 : 그래서 참 안타깝지 않습니까. 이런 분들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진미령 : 많이 있죠. 그것은 가수협회에서 해야 할 일이고, 가수 자체가 선배님을 모셔야 하는 건데 뭐 다 그렇게 여의치가 않은가 봐요. 그래서 이제 예로는 송춘희 선배님도 아직까지 절에, 그렇게 법회에 꼭 나오셔요. 그래서 가끔 이제 제가 김치도 보내드리고, 갈비탕도 보내드리고 하긴 하지만 그거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겠어요. 그래서 그렇게 조금 조금 나눔이, 생각을 해 준다는 것, 송춘희 선배님을 생각해 준다는 그 생각 자체가 기부인 것 같아요. 정말 생각 많이 해야 돼요.

전경윤 : 저도 이렇게 연예계 쪽에 관심이 많아서 어렸을 때부터 보면 배삼룡 선생님이나 예를 들어서 서영춘 선생님은 또 너무 일찍 돌아가셨고. 그러니까 이런 분들 보면 말년에 또 굉장히 힘들게 또 가족들도 없이 사는 분들도 많고. 안타깝습니다.

진미령 : 맞아요. 맞아요. 또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의 한명숙 선생님도 아마 지금 외롭게 계실 거예요.

전경윤 : 지금 여러분께서는 대한불교 조계종 연예인 전법단 소속의 진미령 불자 가수, 진미령 선생님과 만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여러 가르침이 있습니다. 중도, 예를 들어서 또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하나다 뭐 이런 여러 가지 가르침들이 있는데 마음속에 꼭 간직하고 있거나 되새기는 새기고 있는 그런 혹시 가르침이나 이런 게 있습니까.

진미령 :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자. 미워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자.”라는 말이 참 가슴에 와닿는 게,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날까 봐 괴로워서 사랑하는 사람은 갖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면 괴로우니까 미워하는 사람은 갖지 말자, 이 두 말을 저는 참 좋아하는 말이에요.

전겨윤 : 그러면 적당히 거리를 두자 이런 뜻인가요.

진미령 : 뭐 혼자 왔다 혼자 가니까. 

전경윤 :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이 있죠. 

진미령 : 그리고 또 너무 연연하지 말자 그게 괴로움의 시작인 것 같아서.

전경윤 : 연연하지 말자. 과거 일에 연연하고 이러시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는 거죠.

진미령 : 자꾸 과거 생각하면 뭐 해요.

전경윤 : 저는 어저께 일도 후회하고 있는데 지금. 어제 일찍 잘 걸 그랬네 뭐 이런 사소한 후회가 있습니다.

진미령 : 그런 거는 뭐. 

전경윤 : 그런 것은 괜찮겠죠. 금방 또 잊어버리고 그러니까. 

진미령 : 그럼요. 

전경윤 : 우리가 이제 이 나이 든 아까 원로 가수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우리 가수들이 특히 이제 지금 뜨고 있는 이런 분들을 제외하고는 무대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설 자리가.

진미령 : 많이 없어졌죠. 미스터트롯, 미스트로 이런 경연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지금 현재 그 친구들이 경연하기 전에 있던 가수들의 자리를 많이 뺏겼긴 했어요. 그러면 남들을 위해서 그냥 소무대라도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생각해요. 남을 탓하지 말고.

전경윤 : 이제 앞으로 남은 인생에 있어서 나는 꼭 이런 것을 하고 싶다라든지, 내가 남은 기간에는 이런 것에 열심히 하고 싶다 이런 것, 이런 계획 같은 거 있으신가요.

진미령 : 계획은 세운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연초가 되면 계획을 금년에는 뭘 할 거다 뭐 이런 것보다는 살면서 부딪혔을 때 내가 필요한 걸 터득하는 것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상해요?

전경윤 : 아닙니다. 이게 정답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되새길 만한 얘기 같습니다. 그런데 누가 또 이런 얘기도 하더라고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 보면 그게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진미령 : 그러니까 하루하루 열심히 산다는 것은 무언가를 해야 할 때 도전을 해서 내 걸로 만들고 그러면 활기차서 내가 살아있네라고 느끼기 때문에 더 내일이 좋지 않을까.

전경윤 : 그런데 어떤 분은 또 이 한 달 계획, 1년 계획, 이런 것을 세우더라고요. 올해는 헬스를 끊어서 뭐 10kg 감량을 한다 이런 계획을 세 이렇게 세워서 자기를 계속 거기에.

진미령 : 네. 그런데 그런 분들도 있고 나 같은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그 실천이 중요하니까.전경윤 : 알겠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이제 다 흘렀는데요.

진미령 : 벌써요. 

전경윤 : 예 굉장히 길었어요.진미령 : 길었어요. 저도 느껴요.

전경윤 : 왜냐하면 한 분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돌아본 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방송을 보고 계신, 듣고 계신 또 불자 여러분들에게 좀 해주고 싶은 얘기 끝으로 한 말씀 해 주죠.

진미령 : 제가 감히 뭐 여러분들께 뭘 무슨 말을 하겠어요. 그러나 사경을 하는 것이 가장 마음을 편하게 하는 길이라고 제가 느끼기 때문에 감히 말씀을 드리고 항상 불전은 내 가까운 곳에 두시면 두려움이나 이런 것이 없어져요. 저 같은 경우에. 한번 꼭 한번 실천해 보세요.

전경윤 : 예. 알겠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연예인 전법단 소속의 불자 연예인 모범적인 불자로 활동하고 계시는 가수 진미령 선생님 진미령 불자와 오늘 얘기를 나눴습니다. 오늘 말씀 대단히 고맙습니다.

진미령 : 고맙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전경윤 : 네. 갑진년 용의 해도 벌써 한 달 가까이 지났습니다. 화살처럼 빠른 세월 붙잡을 수는 없겠죠. 지금까지 전경윤이었습니다. BBS 뉴스와 사람들, 저는 다음 주 일요일에 다시 오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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