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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동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가 BBS 뉴스파노라마 한글날 특집방송에 출연헤 '훈민정음과 불교'에 대해 배재수 앵커와 이야기하고 있다.
사재동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가 BBS 뉴스파노라마 한글날 특집방송에 출연헤 '훈민정음과 불교'에 대해 배재수 앵커와 이야기하고 있다.

■ 앵커: 배재수 보도국 사회부장
■ 출연: 사재동 충남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
■ 프로그램: BBS뉴스파노라마 [한글날특집] - 훈민정음과 불교

※ 본 인터뷰의 녹취 내용은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앵커 >

4년 전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의 숨은 조력자였던 신미대사의 업적을 그린 영화인데요. 이를 계기로 실존했지만 역사 속에 감춰져 있던 신미대사에 대한 관심이 불교계를 넘어 일반에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는 훈민정음의 창제와 실용 과정에서 불교계 특히 신미대사의 활약을 다룬 장편소설 ‘훈민정음’이 나와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 국문학계의 석학 충남대 국문학과 사재동 명예교수가 쓴 소설인데요. 뉴스파노라마 오늘은 한글날을 맞아 훈민정음과 불교를 주제로 사재동 교수님과 함께 관련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먼저 서재동 교수님의 양역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서재동 교수는 1935년 세종시 금남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충남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요. 이후에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문과학연구소장과 교육대학원장 인문대학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또 어문연구학회와 한국언어문학회, 한국고소설학회, 한국공연문화학회, 한국불교문화학회 회장을 지냈습니다. 현재는 충남대 명예교수로서 불교문학과 불교 예술, 불교 문화 등을 중심으로 집필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배재수 앵커]

충남대학교 국문학과 서재동 명예 교수님 직접 스튜디오에 나와 주셨는데요. 교수님 안녕하세요?

[사재동 명예교수]

예 안녕하세요.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사재동입니다.

[배재수 앵커]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고 들어서 저희가 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어찌 보면 좀 먼 걸음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직접 나와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사재동 명예교수]

아 점점 나아지고 지금 그런 대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배재수 앵커]

교수님 오늘이 577돌 한글날입니다. 오랫동안 국문학계에 몸담고 계셨지 않습니까? 한글날이 주는 의미가 좀 남다르실 것 같은데 국문학자로서 한글날의 의미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재동 명예교수]

정말 뭐 세상이 다 알고 국민 모두가 다 아는 일이지만 이 우리가 오늘날 원활한 그 문자생활을 하고 찬연한 공연 문화 예술 문화를 누리고 있는 오늘날 되돌아보면 이 한글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서 너무도 절감하여 오늘 그 기념일을 맞이하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에 있어서 아주 절실하고 아주 간절한 그러한 날이죠. 그래서 정말로 어떨 때는 만약에 이 한글 훈민정음 한글이 없었더라면 우리 민족 문화 예술 이런 분야에 있어서 영역이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가상할 때 정말 눈물겨운 일이라고도 생각이 됩니다. 더구나 저는 이 훈민정음 관계 문화 예술 그 방면을 갖다가 평생 공부하는 그런 처지에서 바라보면 너무도 간절하죠.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매일이 한글날 이었다고 이렇게 생각이 돼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글날을 맞이하는 우리 국민들의 인식이랄까 그런 생각은 정말 상당히 퇴색했다고 할까 해방 이후로부터 생각해보면 상당히 퇴색해 가고 지금 거의 잊혀져가는 정도, 어떤 때는 한글날이 국경일, 공휴일로부터 제외된 때가 있었어요. 이런 정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이번 한글날을 기해서 그 각성을 해야 되겠다 이 날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 문화 행사 이런 등등을 해서 정말 이 날을 뜻깊게 맞이하고 정성껏 기념하는 그러한 날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배재수 앵커]

매일이 한글날이었다 가슴에 와 닿는 말인 것 같고요. 국문학자로서 또 남다르게 생각하시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책을 내셨습니다. 한글날을 맞아 특별히 저희가 교수님을 모신 이유이기도 한데요. 일반 이론서도 아니고 소설 훈민정음입니다. 소설을 탈고하시고 건강이 많이 악화될 만큼 들인 공이 좀 많다고 제가 들었는데요. 먼저 어떻게 소설을 쓰실 생각을 하셨는지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사재동 명예교수]

네 사실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젊어서부터 소설 창작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더군다나 국문소설, 훈민정음 이후에 국문 소설 중심으로 해서 이 불교계 국문 소설이 우리 한국의 소설 국문 소설의 연원이 되고 발전적인 맥락을 이루었다고 하는 점에서 그 불교 소설을 계속 분석하고 이른바 연구를 하다 보니까, 나도 이 소설을 한 번 썼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그래서 제가 이 연구하는 주제의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일단 저서를 내고 그것을 학교 아닌 대중화를 하기 위해서 소설을 한번 써봐야 되겠다. 그래서 예를 들면 제가 심청전이 국문 소설, 불교계 소설이다. 그리고 특히 여성 영웅으로서 심청이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이다 하는 점에서 불교소설, 관음 소설이라고 이렇게 규정을 하고 계속 논문을 많이 썼어요. 책자로 내지 않았지만. 그러다 보니까 그것을 대중화하고 알리기 위해서 계속 반론이 나오니까 그래서 심청황후라고 해가지고 심청전의 원형이라고 할까 하는 그 세계를 나름대로 그려가지고 소설을 썼습니다.

[배재수 앵커]

3권 짜리로 쓰셨더라고요, 

[사재동 명예교수]

네 그렇습니다. 쓰다 보니까 할 말이 많아서 세 권으로 썼는데요. 그런데 그걸 하다 보니까 제가 이제 훈민정음 창제와 실용 과정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가지고 그 방면 논문을 써서 저서로 냈습니다. 그 훈민정음의 창제와 실용이라는 저서를 내다보니까 거기에 대해서 그걸 대중화하기 위해서 그래서 훈민정음이라고 하는 제목의 소설을 쓰게 된 것입니다.

[배재수 앵커]

대중화에 이제 뜻을 두시고 이제 소설을 쓰시게 되셨네요. 소설 훈민정음은 훈민정음의 창제와 실용 과정을 다룬 장편 소설입니다. 아직 못 읽어본 청취자분들을 위해서 책에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고 또 구성되어 있는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사재동 명예교수]

조선 태종 대의 불교가 서리를 맞고 사퇴를 당한 뒤에 불교계에서는 훌륭한 스님들이 크게 결심을 하게 됩니다.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의 문장대에서 한밤중에 전국 승려대회를 엽니다. 그때에 만허스님(가명)이라고 하는 그 고승이 소신공양을 하면서 유언처럼 남긴 것이 불교 중흥이라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다. 목숨을 바치자. 그러려면 그동안처럼 그렇게 거창한 이론이라든가 무슨 심오한 무슨 신앙관계 이런 식으로 불교를 펴나갈 것이 아니라 다른 불교국처럼 불교 문자를 만들어 가지고 그걸 통해가지고 아주 쉽고 재미있고 감명 깊은 그런 문학 작품 내지는 예술적인 공연, 그런 문화 형상을 통해서 무명 중생들을 제도하고 교화함으로써 불교의 중흥을 기하자. 이러한 유언을 남기고서 모두가 다 그런 피맺힌 서원을 두고 나갑니다. 그러면서 왕실 불교는 지금 건실하게 유지되고 발전하고 있으니, 왕실 불교와 하나가 되어 가지고 앞으로 나올 임금을 스님과 같은 왕, 승왕, 그러니까 부처이면서 왕이라고 하는 그 승왕을 만들면 그 왕국이 당연히 불교 왕국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승왕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고 그래서 조정과 임금의 이름으로 해가지고 이 문자를 만들어 그래서 조정에서도 애민 문화 정책을 쓰니 거기에 호응해서 우리도 자비 문화정책을 써서 불교중흥을 이룩하자. 이렇게 해서 실제로 이 신미대사와 그 주변에 동학 제자, 아령 승인이라든지 학열 학교 그리고 신미대사의 친동생인 김수원 등과 해서 그때 당시 서울로 올라와서 서울 주변에 원찰도, 조정에 원철도 있고 그러니까 원찰에 있는 그러한 인재들이 거의 서울로 모아가지고 엘리트의 그룹을 형성을 했었단 말이죠. 그래가지고 원래 신미대사의 설법 능력이라든지 모든 것이 감명을 줬지만 어쨌든 그런 끈질긴 노력으로 해서 승려들이 신미대사를 중심으로 하는 그 그룹이 조정에 왕궁에 들어가서 세종대왕, 세종대왕도 승불조입니다. 사실은 20년 후에 보면 25년 이후는 더군다나 완전히 승왕인 것을 자처하고 또 그렇게 추대를 했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이 수양대군, 그는 승려와 같이 오히려 불교계에서 아주 대단히 주목을 하고 인도를 하는 그런 처지인데, 왕자들과 더불어 그가 중심이 돼서 훈민정음을 창제를 하게 되죠. 그동안 뭐 이런 저런 얘기 별얘기 다 있었지만 세종은 어떤 영향이든 스스로든지 이제 우리도 글자를 만들어서 애민 문화 정책을 써야 되겠다라고 한 이후에 적어도 나는 글자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선언을 했고 또 그 많은 기구를 ‘정음청’식으로 만들어 가지고 그리고 이 방면의 전문가를 모아서 그렇게 그들에게 전문적인 그 문자 표지 문자가 아니라 표음문자에 대한 전문가들을 모아가지고 말하자면 기본적인 원칙과 아이디어만을 이렇게 제공을 하고 구체적인 실무 이것은 그 방면 전문가들에게 협조를 받았단 말이죠. 그것이 바로 불교계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훈민정음이 그렇게 완성이 됐을 때에 요컨대 불교계에서는 그걸 불교 문자로 받아들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불교 문자라고 자기들이 생각을 받아들여가지고 세종을 통해가지고 월인천강지곡을 만들고 또 당시에 수양대군이 주동이 돼가지고 석보상절를 국문으로 만드는데 그러고서 위에서 나중에 이제 월인석보가 나옵니다마는 그걸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대본으로 텍스트로 해가지고 불교계에서 계속 유대의 반대에 부딪혀 목숨을 걸고서 훈민정금을 논리 피고 실용하게 만들었다 이거죠. 그것이 말하자면 드디어 불교 중흥을 이루게 되고 조선 시대를 세종 25년 이후 세조에 걸쳐서는 오히려 불교 왕국으로 만들었던 그런 공적이 있다라고 하는 데에서 불교계의 그 공덕을 갖다가 높이 찬양하는 그런 방향으로 작품이 진행됐습니다.

[배재수 앵커]

네, 소설에는 세종대왕을 도와서 한글 창제를 했던 불교계 스님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교수님께서도 방금 얘기해 주셨는데 스님들의 어떤 활약에 방점을 두고 쓰셨습니까?

[사재동 명예교수]

훈민정음도 떳떳한 절차에 의해서 하는데 거기에 표음 문자를 만든다는 대원칙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전문가를 초치하는데 그런데 당연하게 유교계에서는 전혀 불참을 하고 불교계에서는 그만한 전문성이 축적이 되어 있고 그리고 그 문자를 만들려고 하는 간절한 소망, 천년의 소망을 거기서 푸는 그런 열정으로 해서 이 승려 학자들이 신미대사를 중심으로 하는 그러한 젊은 그룹들이 거기에 동참을 했으므로 그 바로 그 문자의 필요성을 최대한으로 절감을 하고 그리고 거기에 대한 전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승려들이 그 학승들이 거기에 말하자면 방점을 둔 것이죠.

[배재수 앵커]

문자 분야 전문가들이 당시에는 스님들이었기 때문에 스님들의 활약에 방점을 두고 이 글을 쓰신 거고요. 근데 이제 사실 불교계 스님들이 세종대왕의 한글 창조의 조력자 역할을 했다. 이런 내용이 과거에 논란이 좀 되기도 했지 않습니까? 영화 나랏말싸미 개봉 이후에  그랬었는데요. 국문학자로서 불교계의 한글 창제 조력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그 논란에 대해서?

영화 '나랏말싸미'의 한 장면.
영화 '나랏말싸미'의 한 장면.

[사재동 명예교수]

그 논란이라고 하는 것이 저도 그 나랏말싸미 봤습니다만, 세종이 지었느냐 아니다 그러면 신미가 지었다 창제했다 이렇게 단순한 논리로 그렇게 따지니까 그게 반발을 일으키고 했는데 그냥 공중에다가 불교계 승려들이 아니면 스님이 그대로 훈민정음을 창조했다라고 하는 그런 논리니 수용하기가 어렵죠. 그런데 세종이 당당하게 어제, 모든 임금이 내리는 문장이 다 그렇듯이 그렇게 정식 절차를 밟아서 전문가들을 초치하여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방향 방법을 제시한 원칙을 제시한 다음에, 그 실무 전문가들에 의해서 말하자면 배 아파서 아기 낳듯이 그런 식으로 만들어 올리는 그런 과정에 그동안에 불교 문자 내지는 민족 그 문자를 갈망을 하든 그 전문적인 그런 집단의 학승들이 거기에 당연히 보조를 하고 그것을 성취했다고 하는 것은 그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나는 필연적으로 그걸 인정을 하고 그렇게 믿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배재수 앵커]

알겠습니다. 소설에는 이제 평소 교수님의 불교에 대한 깊은 애정이 곳곳에 스며 있는데요. 교수님께서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불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사재동 명예교수]

예, 불교계라고 할 수 밖에 없는데 그걸 대표하는 그런 아까 학승들을 중심으로 이제 말씀을 드린다면. 창제하는 데에 기여한 것은 전문성에 의해서 왕의 명에 의해서 그렇게 어떤 의미에서는 수동적으로라고 할까 그런 점으로 해서 창제에 기여한 것은 당연한 절차와 순리에 따라서 그렇게 기여한 것입니다. 그것도 대단한 것이죠. 실제로 따지면 배가 아파서 아들 낳는 것처럼 실제로 훈민정음을 문자학적으로 해서 창제한 것은 말하자면, 불교계 학승들이라고까지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정도의 기여도 대단한 것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만들어놓기만 하면 뭐냐 이거죠. 그 걸 유통시키는 데에 역점을 둬야 합니다. 모든 우리 훈민정음 창제와 실용과정에서 창제는 어렵게 천재적으로 해서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쳐도 그것을 유생들이라든지 유신들 그렇게 적극적으로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가운데에서 거의 저쪽에서도 폭력적으로 나올 정도로 그렇게 강력하게 알게 모르게 사실은 암살단까지 이렇게 운영을 하면서 하는 그런 데에 적극 나서서 문자 전쟁을 필수로 치르면서 그 실용 유통 교화
, 여기에 불교계 승려들이 앞장서서 목숨을 걸고 했죠. 다른 사람은 사는 사람은 유교계에서 그렇게 반대하는데 또 그거 눈치 보느라고 중간에 있는 사람들 전부 반대 반대하는 건데 그 가운데서 모든 역경을 전부 극복을 하고서 그것을 펴고 펴고 한 것이 여기 상당한 오랜 기간을 통해서 아주 꾸준하게 그래가지고 사실은 오늘날의 유통 실용이 있다고까지 말할 수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공덕이라고 하는 것은 창제보다도 그것도 그거지만 그 창제한 이후에 그것을 유통 실용시키는 과정에서 불교계의 공덕은 대단한 것이죠. 그래서 그 과정을 ‘불교계의 위대한 공헌이다’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지금 현재 중봉 성파스님을 만났어도 이런 테마를 가지고서 한번 만나뵌 적이 있는데 그러면서도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유통 활용 과정에 있어서의 불교계의 공헌 정말 대단한 것이고 위대한 것인데 창제에 그렇지 유통은 그렇지 그것을 하루 1년 2년이 아니라 계속해서 전통적으로 그냥 그렇게 유통을 시키다 보니까 사실 훈민정음은 불교계의 학승들이 불교계의 훈민정음 창제에 협조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의 유통 실용 과정에 있어서의 공덕은 그거는 위대한 것이라고 편지를 했는데 정말 위대한 것입니다. 그것을 본받아서 현대화한다는 그런 점에서도 굉장히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찾아내고 또 그것을 계승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배재수 앵커]

소설 훈민정음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 좀 하고요. 교수님께서는 국문학적 성취 말고도 불교 관련 분야에서도 연구 성과가 좀 많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 중점을 두고 학문 활동을 하고 계십니까?

[사재동 명예교수]

대학에 들어가서 고전문학을 주로 공부를 했습니다. 고전문학 그중에서도 굉장히 찬양하고 대단한 국문학 작품으로 월인천강지곡을 교수님이 소개를 하는데, 그게 바로 월인천강지곡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찬연한 일생을 운문으로 표시한 최초의 공문, 정문 문장이라고 이렇게 볼 수가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자꾸 눈에 보이는 것이 월인석보를 또 보니까 거기에는 맨날 산문이 있어 수필도 있고 그 속에 그 25권 가운데에 소설 작품들이 많이 있더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것을 문학적으로 연구하는 가운데에 그 문학이 월인석보를 기준으로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한 문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공연을 한다 이 말이야. 음악 미술로 배경을 하고 음악으로 무용으로 실영을 하니 공연을 하게 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걸로 미루어 볼 때에 불교 문학만이 아니라 불교 예술 공연 문화를 또 관심 두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또 거기서 벌어지는 이 불교 문화 이것을 또 광범위하게 살피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고전 소설 불교문학부터 시작해서 불교 예술, 불교 문화 그런데 이 내가 구명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불교 문화, 불교 예술, 불교 문화가 그대로 한국의 문화, 한국의 예술, 한국의 문화가 그대로 됐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뭐 불교 문학 따로, 한국 문학 따로가 아니라 그대로 불교 문학이 원형이 되고 발전적 계기를 의해서 좀 통속화된 그런 차원에서 한국 문학이 되고 예술도 마찬가지, 문화도 마찬가지, 그래가지고 불교 문화는 한국 문화의 원형이고 한국 문화 자체다 이렇게 자꾸 규정을 하려고 하는 것이죠.

[배재수 앵커]

올해로 88 고령이십니다. 학자가 아닌 소설가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하시는데요. 향후에 소설가로서 더 쓰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사재동 명예교수]

뭐 심청전 말씀을 했고, 훈민정음을 썼는데요. 훈민정음 이것은 구체적으로 표지를 보면 훈민정음하고 밑에 태종이라고 이렇게 표시를 했거든요. 그래서 원래는 3부작으로 계획을 했었어요. 훈민정음, 꺾은 괄호치고 세조, 

[배재수 앵커]

예 세종, 세조

[사재동 명예교수]

제2부지요, 제3부는 훈민정음 괄호치고 성종, 이렇게 3부작을 계약을 했었기 때문에 건강이 허락한다면 제2부 제3부 

[배재수 앵커]

제2부 세조, 제3부 성종?

[사재동 명예교수]

그렇게 쓰고 싶은데요. 그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내가 이제 백제권에 있어서의 불교 문화를 검토를 하다가 무령대왕과 백제 불교 문화사 라고 하는 저서를 냈어요. 원래 이 무령대왕은 불교 승왕으로 출범을 해서 불교 백제 불교를 중용했을 뿐만 아니라 백제를 적용시킨 영웅적인 말하자면 대왕인데요. 그래가지고 그건 정말 영웅전 비슷한 그런 기본 구조를 가진 그런 소설적인 생애인데 그래서 무령대왕이라는 소설을 한번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뭐 이제 더는 어렵고 신청서 쓰고 훈민정음 2부 3부 쓴다면 그러고 무령대왕이라고 하는 작품을 쓴다면 너무도 좋죠. 그런데 기대를 하기가 쉽지 않으면. 

[배재수 앵커]

꼭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국문학자로서 정말 교수님의 키 높이만큼의 책을 써오셨습니다. 퇴직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이제 글쓰기에 전념하고 계시는데요. 교수님께 글쓰기란 무엇입니까?

[사재동 명예교수]

사람은 일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그러고 자기가 할 일을 타고 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쨌든 인연 따라 인문학 불교 문화학을 공부하는 가운데 나는 그것은 행복학이다. 인문학과 불교문화학 정도는 행복학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저서를 논저를 냈습니다마는 어쨌든 그 분야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이러니저러니 검토해서 문장으로 쓰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계속 보람차고 행복한 생활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생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여생에 그리고 보람차고 행복한 삶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남은 생에 계속해서 글을 써야 된다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배재수 앵커]

벌써 시간이 다 돼서요. 오랫동안 학계에 계셨는데 원로학자로서 후학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고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사재동 명예교수]

다 훌륭한 후학들이지만 금방 말씀드린 대로, 적어도 인문학 그 중에서도 ‘불교 문화학’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행복학’이니 그동안 해온 것처럼 열심히 하시되 끝까지 죽을 때까지 하라는 것이죠. 적어도 대학에 있었던 분들 정년하고 나서 대개는 그냥 그 학문을 그만두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거기에 대해서 경험자로서 말하자면 정년 이후에 60대, “인생은 60부터다” 라고 하는 식으로 해서 ‘행복학’을 계속 이어가고 집필하는 그런 경험을 통해서 보면 정말 정년한 후가 중요하다 이거죠. 그래서 정년한 후에 왜냐하면 학문은 정년이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볼 때는 나이도 없습니다. 오직 그 열정과 젊음 그런 마음으로 계속 정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배재수 앵커]

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오늘 건강이 좋지 않으신 데도 이렇게 먼 걸음 해주시고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재동 명예교수]

감사합니다. 오히려.

[배재수 앵커]

지금까지 충남대학교 국문학과 사재동 명예교수와 함께 훈민정음과 불교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한글날을 맞아 한글이 갖는 소중함과 함께 불교가 한글 창제와 보급에 끼친 영향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한 번쯤 언어와 종교 특히 불교가 우리 인류에 끼친 영향과 무게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 가져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글날을 맞아 특집으로 보내드린 뉴스파노라마 오늘은 가수 안예은 씨의 노래 ‘열달 아흐레’ 들으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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