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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박태원 울산대 철학과 명예교수

방송 : 2023년 5월 28일(일요일) 저녁 6시 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입니다. 어제 전국적으로 봉행된 봉축법회로 한 달여 간의 봉축 행사가 회향되면서 우리는 이제 새로운 일상을 맞이했습니다. 그래도 늘 잊어서는 안 되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실천행을 거듭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BBS 뉴스와사람들 오늘은 원효학술상 수상자인 울산대 철학과 박태원 명예교수님과 지난 주에 이어서 이번 주까지 남은 이야기들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지난주에 이어서 울산대 철학과 명예교수이신 박태원 교수님 다시 모셨습니다. 교수님 지난 주에 원효 화쟁사상 관련해서 여쭙고 이렇게 했는데, 어제가 사실은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박태원 : 저는 이렇게 여기저기 다니는 형편은 아니고 제가 몸이 좀 불편하니까 제 연구실이나 조용히 집에 앉아서 부처님 법을 되새기면서 경건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김봉래 :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태원 : 부처님 오신 의미라면 누누이 우리가 얘기는 하는데, 저는 정말 우리 삶의 이로움을 누려라. 놓치고 있는 이로움을 누리라고 말씀하셨던 걸로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그 이로움은 의미가 인간의 또 한 번의 진화라고 생각을 해요. 인간을 다시 한 번 진화시키는 길을 열어주신 거다. 그게 부처님의 중도법이다. 그 진화의 의미가 무엇이냐가 이제 다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이겠죠. 그러나 이 지구상의 인간으로서 진화를 거듭해 오가다가 언어 인간이, 언어 능력을 고도화시킨 인간으로서 지금 우리가 만나는 인간들 이게 아마 진화의 최종 단계처럼 간주될 것 같아요. AI 하고 말이죠. 챗봇도 하고. 그런데 무려 2,500~2,600년 전에 이 언어 인간의 길의 한계와 새로운 대안을 설하신 분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아직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거나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이 오신 의미는 오히려 향후에 더욱 더 발굴해야 할 과제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김봉래 : 그래요. 흔히 또 이런 말도 하거든요. 진리라는 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알려진 것이다. 3천 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었고 앞으로 3천 년 후에도 있는 보편적인 것이다해서 너무 어렵게만 바라보는 깨달음에 대한 시각을 현재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것으로서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박태원 : 그 말씀도 일리가 있어요. 그런데 진리는 원래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무지의 발생 조건, 원천은 언어 능력이었던 것 같아요. 언어 관념. 그런데 그 언어 관념에서 비롯된 동일성과 불변성이라는 관념들, 연기(緣起)라고 하는 사태를 완전히 왜곡시켜버리는 관념들이죠. 그 관념들이 이 현상들을 우리가 그 무지로 착색시키기 전에도 현상은 원래 현상의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는 원래 진리는 그대로다라고 말씀드릴 수는 있어요. 그러나 이미 은폐되어 버렸고 오염되어 버렸고 흘러가 버린 사실 그대로라고 하는 것, 그거는 새롭게 우리가 들추어내고 성찰하고 복구시켜야 할 과제죠.

 

김봉래 : 그렇죠. 지금 뇌과학의 연구 성과를 보면 우리가 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 뇌의 어떤 속임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도 연구가 나오더라고요.

 

박태원 : 저도 뇌과학의 논의들 흥미롭게 보고 있는데요, 우리가 뇌신경 시스템이 우리 감각을 통해 투입되는 정보들을 처리하는 정보 처리 방식이 흥미롭게도 우리가 불교 철학에서 보아왔던 무명(無明)의 계열들, 누차 말씀드리지만 언어 관념의 후유증들로 동일한 것, 절대적인 것, 불변의 것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을 우리 뇌가 장착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김봉래 : 그러니까요.

 

박태원 : 그러면서도 거기에 대해서 꾸준히 스스로 의문을 표하는 또는 그런 시스템적인 유용성도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불성(佛性)이라고 표현해야 될지 뭐라고 해야 될지, 그래서 향후에는 우리가 기존의 정보 처리 시스템의 관행과 압도적인 힘에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정보 처리, 차이들과의 만남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우리 뇌의 시스템에 뇌의 구조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아마 흔히 말하면 뇌의 가소성을 얘기하는 분들은 그 가소성이래 봤자 별거 그렇게 아니다라고 회의적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전망이 있다고 봐요. 그리고 부처님이 말한 아까 말씀드린 다시 한 번의 진화, 언어 인간에서 언어를 품으면서 새로운 언어 능력을 지닌 인간, 이 인간으로의 진화는 이제 우리의 뇌의 정보 처리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수습까지를 염두에 둬야 될 것 같아요.

 

김봉래 : 각각의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선불교 이런 여러 불교 전통의 접점이 사실 궁금하거든요.

 

박태원 : 가장 코어, 가장 중심부에 부처님 육성 법설이 있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접하는 니까야나 아함이 부처님의 육성 법문을 그대로 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다만 저는 가장 가까운 힌트들의 전승이라고 봐요. 그런데 그 니까야, 아함으로 거기에 응집되어 있는 전승되어 있는 부처님의 육성을 중심으로 해서 그 다음에 이제 나무의 테처럼 나무의 테가 하나씩 하나씩 하면서 불교라는 나무가 굵어져 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상좌부 불교, 크게 크게만 보면 그 다음에 대승에서도 중관, 유식, 화엄 이런 식으로 뚜렷한 나이테들이 하나씩 하나씩 밖으로 벗어나면서 마지막의 나이테는 선불교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나이테 형성이 재미있는 것은 항상 밖에 있는 나이테는 그 안에 있는 내용들을 품어야 나이테가 형성이 되었어요. 그런데 품으면서 그 안에 것을 그대로 수용만 하고 간직해 버리면 나이테가 되지를 않아요. 차별화 돼야 돼요. 차이가 생겨나야 돼요. 그러니까 과거를 수용하고 안으면서도 새로움을 더해 나가는 것, 뭐랄까 보수성과 진보성을 결합시켰다 할까 새로운 창발성과 과거의 충분한 소화 이 두 가지가 겹치면서 성공적이었을 때는 나이테가 뚜렷해졌던 것 같아요. 그 최종의 나이테는 불교로 보면 선종, 선불교였을 것 같아요. 지금 우리 한국불교가 제도적으로도 간직하고 있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최근에 몇 십 년 사이에 이런저런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이제 새로운 나이테의 형성을 향한 역동적인 움직임들이, 상호작용들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우리는 니까야, 아함 상좌부부터 화엄이나 선종에 이르기까지의 그 나이테로 굵어졌던 불교의 모든 통찰들을 재수습하면서 받을 건 받고 경계할 것은 경계하면서 새로운 나이테를 탄탄하게 그 어느 때보다도 탄탄한 나이테를 형성할 수 있는 시절 인연이 아니냐. 그러면 그 새로운 나이테는 전혀 새로운 것일 것이다. 과거와 굉장히 현저하게 차별화될 수 있는 새로움을 간직한 새로운 나이테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저는 그게 불교의 어떤 역동적인 뭐랄까 희망이랄까 힘이라고 봐요.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김봉래 : 그런 역동성이 어떤 불교 안에서도 존재하지만 그 원인을 보면 불교 외적인 인접 학문의 발전에 의해서 영향받는 그런 면도 많은 거죠.

 

박태원 : 그것이 제3 나이테 형성에 주목해야 할 조건들이죠. 기존에는 자기 내부의 조건들과의 상호관계나 뭐랄까 성찰들 이것을 가지고 주로 다른 나이테를 형성했는데, 이제는 우리의 성찰과 관심과 언어가 전방위적으로 서로 겹치면서 주고받아요.

 

김봉래 : 인도에서 불교가 왜 사라졌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결국은 힌두교에 흡수가 되었다 이런 게 있거든요. 그렇다고 한다면 불교가 자기의 특징을 제대로 설득을 못 시켰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불교가 제대로 가기 위해서도 자기의 특성을 제대로 설명하면서 동시에 많은 분들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되는 두 가지 과제가 있거든요.

 

박태원 : 과연 우리는 불교를 얼마나 정확하게 혹은 적절하게 이해하고 소화해왔는가라는 물음 앞에 우리는 좀 정직해야 될 것 같아요. 달리 말하면 그건 그냥 비단 종교현상학적인 얘기가 아니라 교학적으로도 그래요. 불교학도 그래요. 불교를 힌두화시키는 거다. 예컨대 인도의 우파니샤드 이래의 신비주의의 사유에 고스란히 농락당하고 있는 현상들이 비일비재한 게 아니냐. 그게 불교 내부의 옷을 걸친 불교신비주의자들이 사실은 우파니샤드 신비주의의 새로운 버전, 그래서 흔히 이거 아트만론이 아니냐 이런 얘기까지도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질문과 비판과 의문 앞에 정직하게 대해야 되고 새로운 대안, 새로운 성찰을 내놔야 됩니다. 그 과제가 아마 굉장히 좀 엄혹할 거예요. 학인들에게는. 그러나 그것도 이제 슬슬 그 길이 드러나고 있다고 봅니다.

 

김봉래 :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어떻게 불교가 좀 잘 해나가고 있다고 보시나요.

 

박태원 : 불교와 사회와의 접점, 그러니까 부처님 이래로 불교인들의 공통된 염원은 자기와 세상에 진리다움, 이로움을 확산시키려는 거 아니겠어요. 진리다움이라고 하는 것, 사실 그대로라는 것, 차이들의 있는 그대로를 만날 때 생겨나는 이로운 것들, 이해와 행동과 욕구와 감정의 이로움들, 이런 것들을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으로 동시에 어떻게 누리고 확산시킬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였거든요. 상당히 성공적이었고 감동적인 행적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리고 지금 이후에는 아마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이로움의 결합에 합리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지면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전통은 불교가 아니냐 싶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 전통의 그 힘을 제대로 발굴하거나 확산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저 사회적 실천이나 무슨 세상의 구원이다, 이런 정서적인 염원이나 명제들은 자꾸 앞으로 천명하는데, 이치가 있어요.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을. 지금 왜 개인의 이로움과 사회의 이로움, 개인의 해악과 사회적 해악을 동시에 건드려야 되고 건드려서 성공할 수 있는가라고 하는 불교적 전망을 오늘날의 인접 학문이나 학제간의 대화도 충분히 소화시키면서 수렴하면서 진행할 수 있는 그 유일한 전통은 불교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 작업을 저도 화쟁(和諍)이라는 이름으로, 화쟁이라는 초점을 맞춰서 한번 조금이라도 미력이라도 그 작업에 초석이라도 하나 놔볼까 하는 의욕이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울산대 철학과 박태원 명예 교수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교수님, 불교 그러면 상구보리하화중생 이런 얘기도 하고 또 자타불이 이런 얘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가 서로 도움이 되는 그런 가르침으로 이해를 많이 하는데, 지금 한국불교가 살아남기 위해서 전법(轉法)이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단순히 ‘성불합시다’ 하는 그런 인사법도 이제는 ‘우리 전법합시다’ 이렇게 인사하자. 이런 얘기가 있는데 교수님께서는 대학에서 오랫동안 젊은이들과 많은 소통을 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앞으로 신도 수 감소, 이 탈종교화 시대에 어떻게 우리가 소통을 더 잘해 나갈 것인지, 특히 젊은이들과도, 이게 화두일 것 같아요.

 

박태원 : 한국불교의 과거와 현재 진단과 향후의 전망에 대해서는 아주 좋은 고견들이 많이 이미 제시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누구나 공감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국 불교를 지탱해 왔던 것은 일종의 정서적인 결속감이었다. 우호감이고. 그런데 이게 합리적인 결속감, 합리적인 우월감으로 그 접속의 고리가 합리의 고리를 거기에 더 걸지 않으면 지금 세대가 정서적 응집력과 우호력을 지탱해 주었던 전통 세대가 퇴장을 하고 있다. 그러면 새로 등장하는 세대는 그 전통 세대의 정서적, 불교에 대한 정서적 우호력과 결집력을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전통불교의 정서적 문화력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굉장히 소중하다. 다만 그것에다가 하나 더 고리를 강력한 고리를 걸어야 되는 게 합리성, 합리의 고리다. 이해할 수 있어야 되고 합리적이어야 된다라고 하는 것. 그것은 불교가 없는 강점이죠. 그 강점을 어떻게 살리느냐 하는 것이 전법의 문제와도 관련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요즘 전법을 많이들 얘기하시는데, 전법하면 우선 전법이라고 하는 것이 성공적이기 위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조건이 있어요. 하나는 전법자, 그리고 무엇을 전할 것인가, 전법, 법의 문제, 그리고 받는 사람의 문제. 이 세 조건들에 공히 지금 여기에 우리들로서 부처님 법에서 이런 좋은 이로움을 누릴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전법자가 되죠. 그 이로움이라는 것은 그저 화두 들어 내가 깨쳤으니 계속 들어라 하는 걸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선종이 이제는 사실은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건데요, 기존의 선종에서 조사선구, 격외선구 이러면서 남들이 보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하는 말을 계속하거나 주고받는 거 하는 것은 사실은 그것을 알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의 아주 교묘한 방편일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일반인에게 툭툭 던지는 순간에 그거는 자기도 남도 도움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전법자가 나는 부처님 법에서 이런 이로움을 발견했다, 그랬더니 나의 생각과 나의 사유와 이해와 나의 행동과 나의 욕구와 나의 관심이 이렇게 바뀌었다, 이것을 보여줘서 그 보여주는 것이 사람들에게 인정이 되고 공감이 될 수 있을 때 전법자가 되는 거죠. 부처님 법만을 내세우는 것은 자칫하면 공염불이 될 수가 있어요. 이미 다 있는 거니까 광고만 잘하면 된다, 전하기만 잘하면 돼, 이거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아주 구체적으로 전법자가 되려면 나는 부처님법이 이래서 좋다를 얘기할 수 있어야 되고, 그 이로움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과 감정과 관계를 바꾸는 모습을 일상에서 보여주어야 돼요. 그것이 바로 전법의 대상들에게는 저것을 나에게 주는 거구나라고 되어서 그것이 법이 되는 것이고, 또 듣는 사람도 기꺼이 받을 수가 있고, 듣는 사람의 처지와 언어와 역할과 신분 처지에 따라서 다양한 그 이로움이 나에겐 그러면 어떤 이로움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대화하고 힌트를 줄 수가 있고 지지할 수가 있는 이건 듣는 사람들, 전법의 대상들의 문제. 그래서 세 가지의 영역들에서 공히 우리는 과연 어떤 이로움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저 사람에게 그 이로움을 어떻게 얘기해야 될까. 무엇이 불교의 이로움일까. 가장 쉬운 것 같아도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거기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전법의 노력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지원하든가 몸소 솔선수범을 하든가 어떤 공론화를 하든가 여러 가지 뭐랄까 노력들이 있겠지만 전법의 의지를 거듭 확인하고 천명하는 일종의 이벤트 기획의 연속으로는 그것으로는 더 이상은 못 나간다.

 

김봉래 : 전법 성공의 요소를 전법자, 전법의 내용, 법, 그리고 전법을 받는 이, 3자의 관계 속 속에서 3자가 어떻게 보면 인연이 잘 맞아야 되는 것, 그러면서도 가장 우선적으로는 전법자로서의 자세를 제대로 갖는 것이 첫 출발이다 이런 말씀을 주신 것 같아요.

 

박태원 : 추가 첨언하면 그것은 서로 만나서 서로 얘기를 하고 만나서 그것을 확인하고 일깨워주고 자기도 일깨우고 서로 각성하고 남도 일깨워주는 상호 만남이 필요합니다.

 

김봉래 : 법담을 나누는 자리, 말하자면.

 

박태원 : 현대적인 범담의 뭐랄까요, 우리가 야단법석이라고 하죠. 그 야단법석이 차려놓고 얘기 듣는다는 문제보다도 이제는 그게 공론화될 수 있는 서로가 겸허한 자리에서 설법하려고 하는 사람이나 그 설법의 내용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나 어떻게 어떤 사람에게 주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들이 모여서 그래서 서로의 지혜와 고민들을 주고받고 공유해 나가면서 확산시켜 나가는 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장은 허세도 필요 없고 매우 겸허한 사람들이 가꾸어 낼 수 있는 만다라의 장이다. 그런데 그게 한국불교에서 보다 좀 공론화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김봉래 : 그래요. 그런 면에서 어떻게 보면 불교방송도 그러한 포교의 장.

 

박태원 :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죠.

 

김봉래 : 그런 장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개국한 지가 33년이 됐습니다. 그래서 TV 또 라디오 이런 전통매체와 더불어서 뉴미디어까지 진출을 해 있는데, 그런 면에서 미디어의 역할도 굉장히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고 봐야 되겠습니다.

 

박태원 : 당연하죠. 저희가 불교방송 처음 개국할 때 흥분하고 설렜던 것도 비로소 흩어졌던 불교의 어떤 관심과 역량들이 서로 한 자리에서 결집되고 소통될 수 있는 제도가 마련이 되는구나 하는 설렘이고 기대였거든요. 그리고 지금까지 굉장히 열심히 해서 많은 축적들이 있었다고 봅니다.

 

김봉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좀 부족한 면도 없지는 않죠.

 

박태원 : 그것은 또 각론으로 들어가서 서로 짚어봐야 할 내용들, 성찰해야 될 일이 많을 거예요.

 

김봉래 : 그래요 올해가 대한불교조계종 종단개혁 30년이 되는 해고요 내년이 30주년이 되는 해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제도적인 개혁 부분에서 한 단계 발전했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보완될 부분도 많다 하는 자성도 있습니다. 현재 불교계를 보시면서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제도적 개혁을 넘어서서 정신적 개혁까지 같이 이렇게 이어져야 할 텐데요, 오랫동안 학계에 계신 입장에서 종단개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박태원 : 주제넘게 드릴 수 있는 얘기가 별로 없고 다만 아주 원론적인 입장에서 희망을 얘기하자면 저는 원효가 말하는 화쟁이라고 하는 것이 화쟁의 사유, 화쟁의 방법론이라는 게 종단 교육의 가장 핵심 원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 이 화쟁은 이제 그만 싸우자라는 것이 아니고 아까 말씀대로 말씀드린 대로 각자의 견해와 지위와 역할들이 그것이 어떤 조건에서 발생해서 어떤 특징들을 발현하고 있는 것인지 연기적으로 생각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의 주장이나 지위를 완결시키려고 하거나 권위에 철옹성을 부여하려고 하지 말고, 나의 견해, 나의 주장, 나의 행동을 발생시킨 조건들을 스스로 보고, 자신이 못 보면 남들이 일깨워주는 것을 겸허하게 듣는 이런 화쟁적 교류, 화쟁의 사유가 서로 만나 교류할 수 있으면 한국불교의 개혁은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저절로 나아져 갈 거고, 뭐랄까 불교는 원숙해질수록 좋아지는 집안이니까 보물이다보니까 수준 높은 사람들이 많아요. 출재가에서 충분히 빛을 못 발하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그런 분들이 빛을 발하고 역량을 펼치고 또 그 분들도 더 한 걸음 향상할 수 있는 그 장은 화쟁의 장이다. 자신들의 수행에 대한 관점, 행동이나 지위나 주장에 대해서 이건 나는 어떤 조건들 때문에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그것을 본인이 정직하게 얘기하거나 남들이 얘기하는 걸 수용하거나 일깨움을 받거나 하는 그 장, 화쟁의 상호 장을 소중히 하고 또 의도적으로 힘을 실어서 갖고 간다면 한국불교의 개혁은 걱정 안 해도 된다.

 

김봉래 : 화쟁의 장이다 하는 말씀 굉장히 제가 귀에 들어오는데요,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가 각자 주장만 하지 진정한 토론이 잘 안 되고 있거든요. 일단 그렇게 된 원인 중에 하나는 남의 말을 잘 못 듣는다는 거예요. 남이 말할 때 나는 어떤 주장을 해야지 생각하고 있는 거고, 그래서 진정한 토론이 안 된다는 거거든요. 토론에 임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덜 갖춰져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토론의 생산적인 결과가 생각보다 적다 이런 얘기예요.

 

박태원 : 그게 이제 좋은 말씀이신데, 화쟁이 도대체 지금의 우리의 사회적 쟁투에 대해서 구체적인 문제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간혹 받아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쟁투의 분쟁의 당사자들을 만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장을 가꾸고 유지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힘을 실어주어라. 그럼 그 사회적 합의는 각자의 이해관계와 자기의 주장과 자기의 관심사와 자기의 지위가 어떤 조건들의 인과관계에서 발생했는가를 스스로 얘기하고 남이 일깨워주고 그것을 주고받고 하는 자리를 진득하게 해나가 그러다 보면 인간이라는 게 영물은 영물이에요. 변해요. 그래서 여러분 흔히 말해서 역할극이라고 하잖아요. 부부가 심각하게 싸울 때 입장 바꿔보는 거거든요. 당신이 어떤 생각과 어떤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랬구나라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에 바뀌어요. 문제가 풀려요. 그것도 화쟁의 아주 좋은 사례에요. 그래서 화쟁이야말로 사회적인 그리고 불교적인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가장 유력한 방법론이다, 그렇게 봅니다.

 

김봉래 : 앞으로 우리 박태원 교수님의 원력, 계획 듣는 것으로 인터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박태원 : 하나는 화쟁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을 좀 이렇게 내용을 갖춰보고 싶어요. 그것은 철학의 문제만이 아니고 불교학의 문제만도 아니고 좀 크게 화쟁 인문학이라고 해서 한국 인문학의 오래된 과제 중에 하나가 자생 인문학이에요. 근대 이전에는 중국에 주눅 들었고 근대 이후에는 영미권에 주눅이 들어서 우리가 자생적이라 할 만한 주체적 성찰을 누적시키고 자부심을 가져온 역사가 무척 일천해요. 근거도 약하고. 그런데 이제는 우리의 전통 철학 그것과 연계하고 그것에 접속하면서도 현대인들의 관심을 수용하고 설득할 수 있는 보편성을 동시에 갖추는 것, 즉 고유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간직한, 보여주는 인문학이면 자생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원효를 읽으면서 가능하겠구나 생각을 한 거예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돼요. 그래서 그것 하나를 좀 전망으로 가지고 있고요. 또 하나는 인연이 되면 이번에 번역 완료한 원효전집??을 영역을 그대로 하고 싶어요. 영역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게 영역되면 아마 단기간에 원효학 센터라는 것이 세계 각국에 원효학회가 생길 겁니다. 장담합니다.

 

김봉래 : 교수님의 큰 원력 이루어지기를 저희도 성원하겠습니다.

 

박태원 :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박태원 울산대 철학과 명예교수님 모시고 말씀 나눴습니다. 고맙습니다.

 

박태원 : 네 감사합니다.

 

박태원 : 여러분 박태원 교수님과 함께한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세간의 만연한 갖가지 다툼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론으로서 화쟁의 중요성에 주목하면서요, 나와 남이 함께 이로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하자는 말씀 되새기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 자기 입장이나 주장에 집착하지 않고 언제나 경청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바라고 또한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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