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을 놓고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일단락되기는커녕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간호사들은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규탄 집회를 개최했다.

간호법은 여야의원 3명의 대표발의로 국회를 통과했으나 대통령은 당정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국회로 다시 공을 넘겼다고는 하지만 다시 논의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간호법은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간호사협회를 찾아 제정하겠다고 약속한 법이다. 이 법은 여야의원 3명이 대표발의에 이어 115명이 공동발의했고, 179명 찬성으로 국회를 통과했음에도 간호법은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호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소위 말하는 미니법률이다. 31개 조문밖에 되지 않고 대부분은 의료법 등 기존에 있던 법의 내용을 가져왔다. 새로운 내용은 7개 조문밖에 되지 않는다. 의료법은 1951년에 제정됐으니까 벌써 72년이나 된 법이다.

간호사협회와 의사협회 등이 서로 주장하는 주요 쟁점을 살펴보자.

가장 큰 쟁점이 되는 사항은 '지역사회'라는 단어다.

간호법 1조에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역사회’라는 문구가 들어있는 것은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 없이 단독으로 개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의료연대는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법이나 간호법 어디에도 간호사의 단독 개원이 가능하다는 것은 들어 있지 않다. 의료법 33조에도, 간호법 제정안 10조 2항에도 ‘진료의 보조’라고 명시돼 있다.

복지부 역시 '지역사회 간호'라는 문구로 간호사 단독 개원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간호사는 의료기관 뿐 아니라 주민센터 등 비의료기관에서도 근무하고 있다. 다만, 지금은 건강상담만 할 수 있지만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가 주민센터에서 혈압을 측정할 수 있고 노인가정의 당뇨검사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간호사협회는 이 법은 ‘부모돌봄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의료법과 충돌할 수는 있으나 다른 법령에서 간호사의 비의료기관 근무를 허용하고 있기때문에 간호사는 현재 합법적으로 지역사회 돌봄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간호사의 의료기관 단독개원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임에도 이를 문제삼아 간호법을 좌초시킨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두번째 쟁점은 간호조무사 자격을 '고졸'로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간호조무사협회는 주장하고 있다.

이는 간호법 5조에 명시돼 있는데 이 조항은 간호법에서 신설한 것이 아니라 기존 의료법 80조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한국보건의료국가시험원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간호조무사 시험 합격자의 41%가 대졸 이상이다.

기존 의료법에서도 간호법에서도 간호조무사의 학력차별을 두지 않고 있고 대졸 이상 학력자는 간호조무사가 될 수 없다는 규정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사안은 쟁점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이런 조항이 옳지 않다면 의료법을 개정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간호사가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 타 직역 업무를 침해한다는 주장을 의료연대가 펴고 있다. 하지만 간호법에는 간호사의 영역확대가 아예 들어있지 않다. 현행 의료법에 나와 있는대로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거부권을 행사하며 윤 대통령은 "이번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후보 때는 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가 당선 후 마음이 달라진다면 지도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간호법으로 이렇게 떠들썩한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쟁점이랍시고 늘어놓고 있지만 진짜 본질은 간호법 각각의 조항에 있지 않다. ’간호법‘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는 것을 도저히 봐줄 수 없다는 의사협회의 시각이 본질이다.

현재는 의료법이 포괄하고 있는데 간호법이 만들어 지면 다른 직역에서도 단독으로 법을 만들어 대립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현재는 의사가 ’갑‘인데 간호사 등 다른 직역이 각각의 단독 법을 만들어 동등하게 나오는 것을 보기 싫은 게 본질이 아닐까?

의협은 몇 년 전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 정책에 반대해 의사는 물론 의대생들까지 파업(시위)을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때 그 파업은 의사의 밥그릇 지키기를 넘어 넘치는 밥그릇을 더 채우겠다는 매우 이기적이고 앞으로도 내 밥그릇을 건들이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힘있는 집단이니 ’우리가 결심하면 뭐든지 한다‘는 당찬 몽니 한번 부려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길 바란다.

더욱이 “의료인이 모든 범죄에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 경우 면허를 취소한다”는 의료인 면허 취소법을 완화하거나 삭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호법을 걸고 넘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어쩌면 정부가 의료인면허취소법을 추진하지 않으면 의사들은 간호법에 눈감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번 의사들의 반발은 뻔히 보이는 속셈인 것이다.

의사가 부족해 간호사가 의사 대신 실제적 의료행위를 하고 있는 현실은 그대로 둔 채 지금도 내 밥그릇만을 생각한다면 타인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사람은 2021년 기준 95만4천명이다. 이들 중에는 직접 병원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다.

이들을 방문해 건강상담만이 아닌 혈압 재고 당 체크 등 비교적 단순한 일에 반대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의사는 수가 부족해 산간오지 도서벽지에 왕진을 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들을 돌봐야한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70여년 전에 만들어진 의료법으로만 환자를 대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환자가 병원에 갈 수 없다면 누군가는 환자를 찾아가는 서비스도 사회안전망 중의 하나다.

지금 제정하고자 하는 간호법으로는 그런 서비스도 힘들고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간호법이 제정됨으로써 향후 새로운 의료체계로 가는 밑거름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에 대한 ’의료복지‘차원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양봉모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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