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은 이제 신조어가 아니라 관용어로 자리잡았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출처를 찾아보니 1990년대 정치권에서 만들어져 당시 신한국당 박희태 의원이 공적인 자리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인터넷 백과사전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로남불'이 귀에 익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와 적폐청산, 검찰개혁을 두고 야당이 끊임없이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 말의 주된 사용자는 당시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습니다. 필자가 지난해 정우택 국회부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내로남불'을 일상용어처럼 사용하게 된 데 의원님이 기여했다고 하니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이름을 바꾼 뒤 여당이 됐어도 입에 붙어있는 것은 '내로남불'입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이 최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주당'과 '문재인'에 이어 세 번째로 자주 언급한 단어가 '내로남불'이었습니다. 민주당과 문재인 전 정권의 인사·재정·입법·적폐 청산·민주주의 등에서 빚어진 위선을 질타하면서 사용한 표현이었습니다. 물론 '내로남불' 표현은 보수 정당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민주당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시종일관 '전 정부 탓' '남탓'만 한다며 '내로남불'이라고 되돌려줬습니다. 서로를 향한 낯부끄러운 '내로남불' 비판에 국민들만 피곤할 따름입니다.

정치권의 계속되는 내로남불 공방 속에 또 하나의 '아시타비(我是他非)' 전형이  등장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이후 배포한 입장문에서 "검찰이 ‘현직 국회의원이자 제1야당 대표로서 우리나라 최고 정치권력자 중 한 명’이기 때문에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이런 주장대로라면 유력 정치인일수록 반드시 구속해야 한다는 부당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항변했습니다. 영장 청구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제가 뭐 어디 도망간답니까”라며 되물었습니다. 

 

하지만 과거 이 대표의 발언이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2017년 3월30일 박근혜 대통령이 법원 영장심사에 출석한 날,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여부가 사법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며 "범죄 행위가 중대한데다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언제 도망갈지 모르고 증거인멸 정황이 보여 구속되는 게 당연한 사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미래를 보지 못한다기 보다는 기억력을 탓해야 할 지 모를 만큼 모순되는 발언입니다. 이 대표가 과거의 자신과 싸우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무소유' 법정스님은 자신의 책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라는 당부를 남겼습니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스님이 추후 자신의 말과 모순되는 행적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어 이런 유언을 남겼을까요. 스님 말씀대로라면 내세의 삶에서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한 자신과의 약속이리라 감히 짐작됩니다. 말빚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세속인을 단속하기 위한 마지막 가르침이라고도 여겨집니다.

갚지 않아도 되는 말빚이라고 함부로 져서는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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