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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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장

■진행 : 신두식 BBS 경제산업부장

신두식 : 한류의 열풍으로 우리 대중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K-드라마, K-무비 등 한류 작품들에는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가 스며들어 있는데요.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살아오면서 축적한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 가운데 하나가 민속박물관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활문화박물관으로서 우리 민족의 삶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이 바로 국립민속박물관인데요. 오늘은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장과 함께 우리 민속문화와 민속박물관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전하는 말씀 듣고 돌아오겠습니다.

오늘은 국립민속박물관 김종대 관장님 모셨습니다. 관장님 안녕하십니까?

김종대 : 예, 안녕하십니까?

신두식 : 국립민속박물관, 대부분의 국민들이 다 아시겠지만요. 그래도 박물관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를 좀 해주시죠.

김종대 : 저희 국립민속박물관은 우리나라의 민속문화에 대한, 전통문화에 대한 모습들,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믿었는지 이런 것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볼 수가 있고요. 문화공간이죠. 저희가 전시실을 한국인의 하루, 한국인의 1년, 한국인의 일생, 한평생이죠, 그런 식으로 주제를 크게 세 개로 나눠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떠한 희노애락, 그런 것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그런 중요한 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두식 : 우리 민족의 삶의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지금 서울에 경복궁에 있죠?

김종대 : 예, 맞습니다.

신두식 : 경복궁 안에요?

김종대 : 그렇습니다. 현대미술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신두식 : 지난해에 국립민속박물관을 찾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방문객이 많았던 이유가 따로 있었나요?

김종대 : 저희가 작년에 내국인 관람객만 100만 명을 넘은 기념비적인 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 이전에 2019년이나 2020년에는 200만 정도 왔는데 그때는 중국인 관람객이 더 많았습니다. 지금 보면 코로나 상황 때문인지 내국인들이 문화에 대한 욕구, 향수들이 더 강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걸맞게 저희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펼치고 행사도 펼쳤습니다. 그래서 관람객이 오시면 즐겁게 즐기고 갈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의미 전달이 활발하게 잘 전달됐는지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주셨습니다.

 

신두식 :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기획을 하고 있어서 기대가 되는데요. 올해가 계묘년, 토끼띠 해잖아요? 국립민속박물관에서도 토끼를 상징으로 하는 전시를 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것들입니까?

김종대 : 지금 토끼전을 하고 있는데요. 저희 박물관에서는 매년 12월 쯤에 그 다음해의 띠와 관련된 동물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그 동물들을 어떤 의미로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런 것들이 어떻게 실생활에 반영돼서 표현이 됐는지 그런 것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를 펼치고 있는데. 이번에는 계묘년이기 때문에 토끼와 관련된 민속문화를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두식 : 특히 내국인들이 많이 오신다고 하니까 그 중에서 특히 어린이들이 보면 우리 민속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예로부터 토끼가 우리 민족사에서 어떤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고, 국민들은 어떤 호응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시죠.

김종대 : 토끼가 약한 동물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를 했지 않습니까? 사실은 토끼가 약한 동물이지만 지혜롭고 재치가 많은 동물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왔는데요. 그중 가장 큰 의미가 아마 고려나 조선의 봉건사회를 지나면서 거기다가 백성들의 모습을 매치시킨 것 같습니다. 예컨대 호랑이와 토끼 같은 민담을 보면 호랑이를 농락하지 않습니까? 그 무서운 맹수를? 그건 무슨 소리냐, 지배계층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거죠. 토끼를 이용해서 비판. 백성들보다 더 무능한 사람들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다, 라는 그런 의미의 이야기들이 많은데. 판소리에서도 별주부전 같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도 똑같은 방식으로 토끼가 나타나서 자라를 농락하잖아요? 원래 그런 의미틀들에 대한 것을 우리 국민들이 좋아하고 우리 민족이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런 것을 통해서 의미투사를 하는 거죠. 그러면서 현실적인 삶은 그렇지 않은데 그런 이야기 속에서라도 현실적인 궁핍함에서 해방될 수 있는 그런 의미로 토끼가 적극적으로 활용됐다는 겁니다.

 

신두식 : 그 당시에, 지금은 국민이고 그때는 백성이라고 했을 텐데, 그런 사람들 한 그룹을 대변하는, 고전동화에서 그런 역할을 했던 동물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한국민속상징사전 토끼편을 편찬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까?

김종대 : 사실은 상징사전을 내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그 동물들에 대해서 우리 민족이 어떤 의미부여를 했는지를 찾아내는, 민속적 지식을 가지고 찾아내는 전략이거든요? 사실은 제가 작년에 호랑이띠였기 때문에 호랑이상징사전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열두 달 동물들에 대해서 많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저도 쓰고 천진기 선생도 쓰고 했지만 이런식으로 상징사전을 내는 것이 처음입니다. 하나의 묶음인 거죠. 호랑이 같은 경우는 민속 관련된 유물이 많습니다. 그런데 토끼 관련된 것은 민속유물이 별로 많지 않아요. 예컨대 토끼와 관련된 것은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호랑이와 토끼처럼 이야기, 판소리 그런 데서 많이 표현이 되는 동물이었기 때문에 민속유물을 찾아서 전시하기 힘들다는 거죠. 그런 것을 전시할 수 없는 내용들을 사전으로 집약을 하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민속이 토끼에 대한 어떤 의미부여를 했는지를 다 찾아내는 거죠. 그래서 토끼가 단순하게 약한 동물만은 아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전략. 특히 달에서 절구에서 불사약을 찧고 있다는 그런 의미를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그런 것은 중국의 서왕모 이야기와 결합돼서 만들어져서 전승되는 이야기거든요. 그런 것 말고도 토끼가 갖고 있는 의미들이 과연 무엇인지를 상징사전에 집약을 해서 국민들한테 전달해주는. 저희 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토끼와 관련된 상징사전을 pdf파일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토끼에 대한 지식을 원하시는 사람도 있을 경우에 무조건 와서 보실 수 있게. 거기에는 중요한 것이 사진이라든지 회화자료, 이 회화자료에는 토끼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쌍으로 배치합니다. 부부애를 상징하는, 토끼는 제일 많지 않고 다른 동물들이, 새라든지 물고기 이런 것들이 더 많고 토끼는 많지 않지만 토끼도 그러한 상징으로 반영해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러한 모습들을 보여주기 위한 사전 속에 모두 집약해서 넣은 거죠.

 

신두식 : 그러면 민속문화에 녹아있는 토끼를 상징사전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군요.

김종대 : 그렇습니다. 누구나 다 볼 수 있게 저희 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상징사전의 내용을 pdf파일을 다운받아서 보실 수 있습니다.

신두식 : 한국민속상징사전의 토끼편이 올해 나왔고, 작년에 호랑이편이 나왔고 지금 몇 편이나 나와 있습니까? 그 두 편만 있습니까?

김종대 : 두 편 나왔습니다. 제가 관장으로 온 것이 재작년에 왔거든요? 그때부터 이 사업을 시작을 했습니다. 저도 열두 달 동물 이야기라든지 여러 책을 냈지만 그러한 것보다는 한 권 한 권에 상징, 예컨대 용 같은 경우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적절하게 해서 사실은 이 아이디어를 낸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저희가 민속사전을 34권을 냈습니다. 거기서 색인작업해서 호랑이면 호랑이, 토끼와 관련된 것들을 집약을 해서 책으로 한 권 낼 수가 있는 거예요. 아주 사업하기도 쉬운. 그래서 국민들한테 민속지식, 특히 요새 K-컬쳐라든지 그러한 것들의 원소스를 얻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 정보를 제공해주는 거죠.

신두식 : 이게 어떤 상징성도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디자인이라든지 이런 것을 할 때도 응용이 될 수 있겠네요?

김종대 : 맞습니다. 요즘은 디자이너들이 갖고 있는 틀들이 단순하게 그래픽화하는 그런 의미보다는 그런 그래픽 안에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를.

신두식 : 스토리가 들어있죠.

김종대 : 그렇습니다. 그런 스토리를 부여하는 전략 중에 하나가 사전을 통해서 정보제공이 가능하는 거예요. 그러한 작업을 저희 박물관이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띠 동물과 관련된 논문을 쓰긴 했는데요. 우리 민족은 한쪽의 긍정성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까 토끼 같은 경우도 행동이 빠르고 약하지만 약삭빠르다고 하는데 거기서 더 나가면 더 나쁘게 표현하는 거죠. 자기 머리만 믿고 까분다, 이런 식으로. 그런 양면성이 동물들 상징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한쪽으로만 동물을 치우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면적인 모습을. 그래서 그런 열두 달 띠 동물들도 그런 면에서 우리 민족들이 아마 그런식으로 의미부여를 한 것이 아닌가, 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신두식 : 그렇군요. 이제 설 명절이 좀 지나긴 했는데요. 설이 우리 민속사에서 갖는 의미도 궁금하거든요. 또 과거의 설 명절은 어땠고 지금의 설 명절 민속문화는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시는지, 어떻게 지금 연구가 되어 있습니까?

김종대 : 요즘 설하고 추석에 3일 휴가를 배치해서 마치 휴가 개념으로 이해를 잘못하고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에서의 명절은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그건 친척들끼리 모여서 자기 혈연, 뿌리에 대한 것을 인지시키는 그런 날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거든요? 사실 그런 것을 휴가의 개념으로 보는 건 서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신두식 : 개인적으로 놀러 다니지 않고 가족들이 모여서 농경사회에서 서로 교류를 했던 그런 문화가 있었다는 거죠?

김종대 : 그렇죠. 특히 지금 도시 이주가 많이 이루어진 상황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날이라도 우리 뿌리가 누구다, 귀향도 하고요. 그런 것을 인지하는 날이었다는 거죠. 특히 설은 일반적으로 단순하게 노는 날은 아닙니다. 설날이 원래 갖고 있는 설에 대한 어원이 섧다라든지 설립다, 완전하지 않은 날이라는 뜻이거든요? 그 날이기 때문에 설날에 몸과 마음을 삼간다. 왜 그러냐, 조상님을 모셔야 하거든요.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한테 새해인사를 드리고. 그렇기 때문에 설날은 경건한 날이에요. 원래 노는 날이 아니고.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설의 개념은 설에서부터 정월 보름까지입니다. 그래서 설은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경건하게 맞이하고 정월 보름은 설이 끝나는 날이기 때문에 아주 시끌벅적하게 놀고, 풍물치고 음주가무하고. 원래는 정월 보름 새벽에 마을신한테 제사를 지내고, 산신제라든지 당제를 지내고 해서 우리 마을이 풍요롭고 평화롭게 살기를 기원하면서 끝나고 놀기 시작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16일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정월 16일이 원래 귀신의 날입니다. 무슨 소리냐, 15일 술을 많이 먹고 놀았기 때문에 하루를 쉬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날 일을 하게 되면 귀신이 잡아간다, 이러한 민간 풍속이 전해졌는데 사실 그게 아니라 보름날 많이 마시고 놀았기 때문에 16일은 하루 쉬어야 하고 17일부터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이런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거거든요. 그러한 명절에 대한 이해를 확실하게 국민들한테 전달을 해서 단순하게 해외여행가고 노는 날의 개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신두식 :알겠습니다.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출연하신 분이 좋아하는 노래나 음악을 들려드리는 시간이 있는데요. 바로 명사의 음악시간입니다.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장님은 어떤 노래 듣고 싶으십니까?

김종대 : 저는 백설희 선생이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부르셨는데요. 백설희 선생님이 부른 것도 봄에 대해 가는 것을 애처로이 부르시는데 이 노래를 한영애가 리메이크하면서 더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요즘 조금 있으면 봄이 되는데 봄날이 되면 한영애 노래를 듣습니다.

신두식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김종대 관장님이 추천하신 곡입니다. 한영애 씨의 <봄날은 간다> 듣고 계속하겠습니다.

 

 

오늘은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장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관장님 우리와 인접하고 있는 중국에서 보면 김치라든지 한복이라든지 이걸 자신들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그런 이른바 문화 동북공정 이런 것이 지속되고 있잖아요? 우리 고유의 민속문화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김종대 :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약간의 견강부회라는 생각이 많고요. 사실은 중국보다 우리가 앞서서 낼 수 있는 문화적인 콘텐츠가 뭔지 먼저 찾아내기를 해야 됩니다. 사실 이러한 면은 약간 중국보다 우리가 뒤쳐진 것 같아요. 자기네들이 조선족들이 하고 있는 것을 자기네 문화라고 주장하는 건데 사실은 조선족은 변방이었거든요? 이 한반도에서 문화 주류로 있었던 김치나 한복을 갖고 있었는데 변방에서 사람들이 이주해서 산 것 자체를 자기네 나라의 주류라고 보는 것은 너무 과다한 주장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사실 그러한 문화적인 차이가 뭔지를 명확하게 전달함으로써 그것은 자기네 본 문화적인 주류도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전략이 중요한 것 같아요. 예컨대 그 전에 강릉 단오제라는 것 때문에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강릉도 중국에 있거든요? 단오도 중국에서 온 용어인데. 사실 명칭이 중국에서 왔다고 해서 문화가 중국에서 온 것은 아니거든요? 중국에서는 단오에서 제일 중요한 행사가 경정입니다. 배 타고 시합을 하는 것이거든요. 한국에서는 그런 문화가 없습니다. 강릉 단오제는 특히, 중국의 강릉은 내륙이고 우리나라의 강릉은 해안가 아닙니까? 해안가가 갖고 있는 문화와 내륙이 갖고 있는 문화가 다르거든요. 그러면 문화가 다른 것을 갖고 콘텐츠를 가지고서 주장을 하는 것이 온당한 것이지 그런 내용을 끄집어내서 이거 우리 거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런 문화들 모든 것이 자기네 문화에서 출발했다, 이것은 엄청난 오류죠. 문화적 오류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신두식 : 관장님께서는 사실 도깨비 연구로 유명한 학자시잖아요? 어떻게 도깨비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셨어요?

김종대 : 제가 원래는 민요를 전공하려고 대학교 졸업하면서 민요 조사를 박물관에 들어와서 다녔거든요? 그런데 제가 전라북도 부안 위도라는 섬에 가서 조사를 했는데 그때 소리를 조사하다가 이복동 할아버지가 노래를 하시면서 힘드니까 중간에 재밌는 이야기 없냐,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도깨비 이야기에 대해서 처음 듣는 이야기를 제가 듣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때 이런 도깨비가 있었나 하면서 이게 도깨비가 맞습니까? 라고 이야기했더니 이게 우리나라 도깨비가 맞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주시고 그때부터 제가 거기 위도 조사 가서 다른 분들한테도 도깨비 조사를 해서 논문을 쓰기 시작했죠. 도깨비가 갖고 있는 문화층위가 우리가 일제 침략기에 들어온 문화층위하고 막 짬뽕이 되어서 혼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도깨비가 뿔 나고 원시인 복장했다, 이건 일본에서 들어온 거거든요? 복장 자체가. 그게 1910년에 한일 합방이 됐죠. 그래가지고 경술국치가 이루어졌는데 그때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어독본을 내라고 했는데 책을 못 낸 거예요. 그래서 15년에 심상소학독본이라고 일본 책을 카피해서 책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고부도리지이, 혹부리 영감 이야기가 들어갔어요.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는데. 그래서 거기에 들어가서 그 이야기가 거기 삽화를 심상소학독본에 있는 삽화를 조선어독본에다 그대로 수록을 했어요. 그래서 마치 도깨비가 고부도리지이에 나오는 것은 오니라는 요괴의 일종이거든요? 그게 그때부터 정착이 됐는데 그것이 교과서가 조선어독본이 23년, 33년, 42년 개편되면서 아예 일본의 오니로 정착이 됐어요. 그래서 제가 그때 논문 쓰면서 이것은 약간의 일제 침략기의 문화침략의 하나의 형태로 들어온 것 같다고 쓰고 이 부분에 대해서 논의를 했는데. 최근까지도 그런 것을 아니다, 우리나라 도깨비다, 라고 하는 재야 사학자들이 있습니다. 약간 애매한 거죠. 학문적으로 그렇게 온 것이 분명한데, 왜 그러냐면 우리나라에서 도깨비 모습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았거든요. 예컨대 귀면와 같은 경우가 좋은 사례인데, 귀면와를 도깨비기와라고 이야기하는데 귀면와가 갖고 있는 기능은 벽사 기능이에요. 귀신을 쫓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도깨비가 귀신을 못 쫓거든요. 그런 능력이 없어요. 도깨비가 석보상절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면 재물을 받아주는 것하고, 15세기에는 아마 수명을 늘려주는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그게 내려오면서 약간의 재물만 관장하는 그런 신격, 그 다음에 서해안 지방에서는 풍월을 관장하는 신격으로 자리를 잡게 됐거든요. 또 다른 신격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뭐냐면 병을 가져다주는 신격이 전라남도 진도하고 전라북도 순창에서 전승이 돼요. 한정적인 마을 전승입니다. 그러한 신앙적인 요소하고 결부할 때 그런 내용이 약간 다르다. 도깨비에 대한 올바른 정체성 그런 것을 찾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논문을. 그 전에는 이야기만 가지고 논의했는데 저는 이야기와 신앙을 결합시켜서 우리 민족이 도깨비에 대해서 이렇게 인식을 했다, 이런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논문을 쓰기 시작했죠.

 

신두식 : 민속학자로서 이런 부분은 좀 더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런 부분이 있습니까?

김종대 : 지금 일제 침략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문화들이 많이 들어온 것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왜 그러냐면 제가 98년인가요, 일본에서 요괴전공학 교수가 왔는데 도깨비에 대해서 일본에서도 알아요. 일제 침략기에 들어온 것. 그 사람 이야기가 뭐냐면 80년 정도 한국에서 전해졌으니까 이것도 한국문화 아니냐,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냥 자연스럽게 전파돼서 우리나라에 정착됐으면 한국문화지만 이게 정략적으로, 문화적으로 한국에서 그렇게 표출된 것 자체를 어떻게 한국적인 문화라고 볼 수 있겠느냐,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적 있거든요. 아주 좋은 예인데, 유길준 선생이 노량진 소학교 교감으로 계실 때 조사한 자료가 있었어요. 지금 민속박물관에 유물로 잡혀 있는데. 거기에 보면 그때 조선인들이 제일 좋아한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찾아봤더니 춘향전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소설로. 그런데 도깨비 이야기가 아예 들어와 있지도 않아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아이들 동화에 도깨비 이야기가 5위 안이나 6위 안에 들어와 있거든요. 우리나라하고 다르다는 거죠. 그런 것을 밝히고 이게 어느 정도에서 전해지는 것인지. 왜냐하면 이게 점점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마침 한국인인 것처럼, 문화적인 변별력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찾아내는 작업이 중요하고요. 특히 불교문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불교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500년 이상이 넘었어요. 그렇다면 한국의 하나의 전통문화의 중심처럼 자리잡아있다는 거죠. 그런 것 중에서 우리나라하고 원래 전통적인 요소들하고 어떤 것이 습합이 되고 어떤 것을 불교에서 받아들였는지 그런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우리 민족들이 그런 내용을 찾아 끄집어낸 것 중에 그런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 민족이 뭘 좋아하는지, 그런 것을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 않나. 왜냐하면 불교에 보면, 명부전 같은 곳에 보면 지옥도 같은 것을 보면 사당패들의 놀이들이 그 그림에 들어와 있습니다. 무슨 소리겠어요? 나중에 죽어서라도 그러한 것을 제일 흥취있게 우리 민족이 좋아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한 문화 찾기가 지금 시점에서는 매우 필요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두식 : 아쉽지만 시간이 다 됐는데요. 국립민속박물관 올해는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실 계획인지, 계묘년을 맞이한 청취자들에게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한 말씀 해주시고 마무리하겠습니다.

김종대 : 지금 올해가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왜냐하면 올해가 현재 경복궁의 현재 위치로 이전한, 향원정 위에 있다가 밑으로 내려온 지가 30주년 되는 해입니다. 제가 93년에 작업을 했으니까 현재 30년 됐거든요? 이 30주년과 관련된 행사들이 많이 있고요. 그 중에서 제일 흥미로운 것이 전시 중에서 조명치의 문화사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왜냐하면 조명치가 뭐냐, 건어물이거든요? 조기, 명태, 멸치거든요. 이것들이 식문화와 우리나라의 문화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까지 분석을 안 했어요. 그냥 와서 먹기만 하고 조기가 제사상에 오르고 그런 것만 따졌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적인 충격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건어물에서 찾아보자고 해서 이건 아마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조명치라는 단어를 제가 만들었거든요.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지금 저희가 지금까지는 우리나라 문화만 전달했는데 아시아의 탈이라는 전시를 또 하나를 했습니다. 한국문화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탈 문화가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를 밝히는 전시를 지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작업하고 있고요. 특히 계묘년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토끼처럼 뛰어오르는 겁니다. 예컨대 모든 일이 뛰어올라서 기쁨과 행복함이 가득 차는 그런 계묘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신두식 : 앞으로도 우리 고유의 민속문화를 세계적으로 잘 알리는 데 더욱 힘써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종대 : 감사합니다.

신두식 : 지금까지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장님과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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