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영상이 뜨지 않는경우 여기를 클릭하여주세요.

 

■출연 :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진행 : 신두식 BBS 경제산업부장

 

신두식 : 해외 각국에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는 조사된 것만 25개국 21만여 점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가 대부분인데요. 이렇게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를 찾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문화유산회복재단을 이끌고 있는 이상근 이사장과 함께 문화재 반출현황과 환수를 위한 활동 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계속하겠습니다.

신두식: 오늘은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이상근 이사장님 모셨습니다. 이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이상근 : 네, 반갑습니다.

 

신두식 : 이사장님께서 맡고 계신 문화유산회복재단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청취자들께 소개부터 해주시죠.

이상근 : 해외에 반출된, 과거에 불법적이거나 부당하게 반출된 많은 문화재들이 있는데요. 이걸 되찾는 노력을 우리들 스스로의 힘으로 하자. 그래서 저희는 그걸 문화의병이라고 이름을 짓는데 지금 한 1,500명 정도의 문화의병이 같이 참여해서 활동하고 있는 일종의 문화의병결집체, 결사체라고 할 수 있고요. 저희는 특별하게 국회에 등록해서 여러 가지 국회, 정부, 지방정부 또는 민간의 여러 활동도 같이 조율하면서 활동하고 있고 해외 동포들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지금 활동하고 있어서 해외에도 지부가 10곳에 있습니다.

 

신두식 : 그렇군요. 얼마 안 있으면 8.15 광복절인데요. 오늘 이런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의미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이상근 : 감사합니다.

신두식 : 해외에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 수, 어느 정도 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상근 : 최근 문화재청이 매년 관련해서 조사결과를 발표하는데요. 이번에 약 25개국 21만 점 정도 있다고 하고. 사실 이 수치는 해마다 조사할 때마다 발표가 늘어나기 때문에 사실 그게 고정된 숫자는 아니고요. 매년 늘어난다고 볼 수 있죠. 예를 들면 2005년에 처음 이걸 대중적으로, 해외반출된 문화재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게 조선왕조실록 환수운동 과정에서 도대체 해외에 우리 문화재가 어느 정도 있느냐가 관심이 됐었는데 그때 7만 4,434점이라고 해서 모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이 74434라고 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한 바 있습니다. 지금은 벌써 그 이후로 약 17년 경과해서 현재 그정도 숫자가 되고 있으니까 계속 증가한다고 볼 수 있고요. 실제로 일본에 약 9만 점 정도 있다고 발표되고 있는데 일본의 학계나 일본의 정부에서는 한반도에서 유입된 문화재를 약 30만 점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두식 : 그걸 하나하나 우리가 알아내는 노력도 굉장히 필요할 텐데요. 이렇게 많은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된, 반출된 배경은 뭐라고 봐야 할까요?

이상근 : 가장 큰 피해시기는 일제강점기이고, 그 전후 대한제국과 구한말 시기에 반출된 것들이 집중적으로 많이 있었고. 그 다음에 또다른 피해사례는 조선시대 임진왜란이라 불리는 조선침략전쟁시기에. 예를 들면 그 당시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특별하게 문화재 약탈부대를 별도로 꾸립니다. 예를 들면 서적, 도자, 그 유명한 도자 도공 납치, 약탈, 금속공예, 심지어는 동물, 식물 이렇게까지 해서 5개 특수부대를 꾸렸고 그 당시에 서적만, 조선왕실이나 사찰에 있던 서적만 약 10만 권 이상이 일본에 반출됐다고 하는 것이 기록으로 있고요. 대표적으로 예를 들면 가토 기요마사가 약탈해간 세종대왕 때 집대성한 의학대백과사전 ‘의방유취’ 이런 것들이 그 당시에 다 약탈됐고 진주에 있던 연지사 종 같은 경우도 지금 일본에 가서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신두식 : 우리 종인데 거기 가서 국보가 됐어요?

이상근 : 일본 국보가 되어 있습니다. 의방유취라고 하는 그 책은 저도 2019년 일본왕실도서관에 가서 특별열람해서 봤는데 정말 335권의 책이 당시 모든 우리의 의료적 자료를 집대성해서 만든 책인데 일본에 있고 우리는 딱 한 권만, 1876년 강화도조약 때 그것도 복사한 것, 필사본 한 권만 국내로 들어와있는데 그게 지금 보물 123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중요한 자료들이 그 당시에 나갔고. 특별하게 한 번 더 우리가 관심을 가질 것은 고려말에 집중됐던 왜구의 침입, 그 당시에 약 600회 이상 침입했다고 하는 기록들이 있고. 그 당시에 예를 들면 고려불화, 또는 서산 부석사 불상, 또 지금 일본 대마도에도 국보로 되어 있는 강화 선원사에 있었던 쇠북, 금고 이런 것들이 다 그 당시에 왜구에 의해서 약탈된 고려의 문화유산들이 되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셨지만 일본이 진주 연지사 종을 가져다가 국보로 지정했냐고 했지만 일본이 국보나 보물 이런 중요 문화재로 지정한 한국 문화재가 약 150건 정도 있는데요. 그 중에는 특이하게도 고려시대 유물이 75건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고려시대 유물이 집중적으로 일본에 있을까, 중요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고려말 왜구의 침입사실을 좀 더 깊이있게 조사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신두식 : 이사장님은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과 함께 문화재환수국제연대 대표도 맡고 계시잖아요? 해외에 있는 문화재를 환수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을 텐데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이상근 : 통상 문화재를 되찾아오는 방법은 도식적으로 설명하기는 그렇지만, 어쨌든 카테고리를 보면 정부가 협상을 통한 반환, 예를 들면 1965년 한일 문화재 반환협상을 통해서 강릉 한송사지 보살상을 돌려받았다든지 하는 정부가 주도해서 하는 외교적 반환이 있을 수 있고요. 그 다음에 소장자들이 기증할 수 있도록 하는, 기증을 촉진하는 사전 설득이나 이런 활동들을 하는 기증의 방법이 있고. 최근에는 거래, 옥션이나 경매장에 내놔서 구입해들어오는 이런 방식들이 있는데. 저희는 이 세 가지 방식을 함께 쓰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정부가 잘 반환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활동도 저희가 여론조성도 하고 사전협의도 하고 이런 과정들을 하기도 하고, 또 이번에 일본 방문에서처럼 개인 소장자를 만나서 기증이나 기탁을 권고하기도 하고. 또 중요한 문화재가 나왔으면 매입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실제 저희 재단이 매수하는 경우도 있고 이런 활동들을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단체의 대표를 두 개나 맡고 있는데 문화재환수국제연대는 좀 센 소리를 낼 때, 강한 톤으로 이야기할 때. 예를 들면 불법적 사실이 분명한데 이것에 대한 반환을 촉구한다거나 이럴 때는 그 단체를 쓰고, 좀 온건하게 소장자를 설득하거나 할 때는 회복재단을 쓰고 이렇게 투 트랙으로 쓰고 있고. 저는 민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자유롭게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좋은 장점이 있죠. 그렇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두식 : 문화재 같은 경우에 반환하면 또 예전에 침탈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영구임대형식으로 반환의 형식을 띠는 경우도 있죠?

이상근 : 그런 경우도 있죠. 예를 들면 프랑스군이 가져갔던 외규장각 의궤같은 경우는 우리가 임대 조건으로 돌려받은 사례가 있죠. 그런 사례도 있고. 또 최근에는 점유권과 소유권의 분리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들도 많이 있거든요? 우리로서는 외규장각 의궤가 첫 사례지만 외국에는 그런 사례들이, 특히 유럽 같은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이런 점들도 저희가 문화유산의 원상회복이라는 관점에서 과연 소유권의 문제로만 이 문제를 항상 보고 접근할 것이냐, 제한적으로 할 거냐, 아니면 문명의 계승 또는 정신적 가치 이런 측면을 좀 더 확장해서 봤을 때 이런 점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하나의 카테고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두식 : 말씀하셨던 프랑스로부터 사실상 반환받은 외규장각 의궤도 굉장히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데요. 지금 환수하지 못하고 있는 문화재 중에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요? 환수를 꼭 받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이 있나요?

이상근 : 예를 들면 저희가 1945년 광복된 이후에 돌려받은 문화재가 12개국에서 약 1만여 점, 1만 508점인가가 정부 조사결과이고 아마 민간이 개인적으로 입수한 것까지 하면 제가 보기에 한 1만 5,000여 점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 성과의 노력도 굉장히 중요했지만 그 중에 국보로 지정된 건 딱 5점에 불과합니다.

신두식 : 그 중에서요?

이상근 : 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일본이 우리나라 문화재를 국보 등으로 지정한 것이 150여 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미국에도 사실 상당히 중요한 문화재들이, 예를 들어 헨더슨이 가져간 컬렉션 같은 경우도 굉장히 중요한, 미국에서 하늘 아래 최고의 도자전이라고 평가했던 그런 정도의 것들이 많이 있고 그러니까. 사실 그런 점에서는 여전히 많은 문화유산을 되찾는 노력들을 해야 되지만 저는 가장 대표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일본에 있는 오구라 컬렉션입니다. 사실 그 문제는 1965년 한일 문화재반환 협정 당시에도 가장 중요하게 다뤘던 문제고, 왜냐하면 오구라 컬렉션이 한반도 전역, 저 북에서 저 끝까지 한반도 전 지역에서, 전 역사에 걸쳐서,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신두식 : 치밀하게 반출했다는 거잖아요?

이상근 : 그 자체가 한반도 역사, 우리의 역사 그 자체거든요? 그 중에 그 당시에 3~4,000점 정도를 반출했다고 하는데 일부는 흩어지고 1,030점이 지금 도쿄 박물관에 있거든요. 그 중에 38점이 중요미술품으로 일본에 지정되어 있어요. 그 정도로 중요한 문화재들이 있는데 이걸 되찾기 위해서 당시에도 우리는 황수영 교수님이나 이런 분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거든요. 이 문제를 저는 해결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과제이고 여전히 앞선 선배들이 하지 못한 것을 저희 세대가 이어받고, 저희 세대가 다 하지 못한다면 또 다음 세대가 계승하더라도 반드시 해서. 저희가 2045년이 광복 100주년이잖아요? 2045년까지는 이 문제를 온전히 다 해결하는 것이 저희 목표 중에 하나입니다.

 

신두식 : 지금 25년도 채 안 남았어요. 23년 정도 남았네요.

이상근 : 열심히 해야죠.

 

신두식 : 그런데 어떠세요? 이런 반환에는 정부의 노력과 민간의 노력이 있는데 어떤 것이 성과를 내는 데 더 낫습니까? 어떻습니까?

이상근 : 예를 들면 최근에 멕시코 같은 경우가 문화재 환수 문제에 소리를 내서 최근에 스페인에 있는 소장가로부터 약 2,500점 정도를 돌려받고 했는데. 그런 경우는 대부분 이집트라든지 이런 데는 정부 주도로 많이 하고 있고요. 예를 들면 중국 같은 경우도 하고 있기는 한데, 중국은 민간협력사업으로 별도의 기금을 조성하고 민간을 앞세우고 정부가 뒤에서 서포트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고. 저희는 정부, 국회, 지방정부, 지방정부도 2016년에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이 문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생겼고 그래서 12개의 지방정부가 조례를 제정해서 활동들을 하고 있거든요? 또는 기업, 이런 단체, 종교계. 저희는 어떻게 보면 거국적으로 한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런 점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2005년에 되찾은 북관대첩비 같은 경우는 해주 정씨 정문부 장군의 의병활동을 기려서 만든 비석이니까 해주 정씨의 문중이 나서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사례도 있고 여러 경로를 통해서 저희는 활동을 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전 세계 문화재 국가회의에서 한국의 예가 아주 좋은 본보기다, 모델이다 이런 평가들을 하고 있습니다.

 

신두식 : 그런데 문화재 반환하는 노력 중에 경매, 옥션을 통해서 거래해서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이게 예산으로 잡히잖아요? 이런 예산이 합리적으로 편성이 되고 있잖아요? 어떻습니까?

이상근 : 그것도 많이 부족해서, 예산이라는 것이 아시겠지만 당해연도에만 쓰게 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한정되어 있고. 예를 들어보면 해외 경매에 나오는 것 중에서 500만 원 차이로 놓친.

 

신두식 : 한정된 예산 때문에 그런 거군요.

이상근 : 예, 응찰에 성공하지 못한 사례들이 있고.

신두식 : 거기도 그런 것을 알 수 있겠네요? 경매 상대방도?

이상근 : 그런 문제도 많이 있어요. 그래서 문화재청에서도 이 문제를 해소하려고 저희들한테 요청도 하고 이 문제를 가지고 토론도 하고. 작년 4월에 문화재보호기금법을 개정해서 기금으로, 예산이 아닌 기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요. 예를 들면 충남도 같은 경우도 지금 기금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게 단기간에 해결될 수도 있지만 굉장히 오랜 기간 협상을 거쳐서, 몇 년에 걸쳐서 할 수도 있어요. 지금 부여에서 출토된 백제 미소 불상 같은 경우 그 불상은 지금 몇 년째 협상을 하고 있는데. 예산은 당해연도만 하고 안 되면 끝나잖아요? 이런 문제를 좀 더 장기적이고 유연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금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금화 작업들을 해서 일부 법개정이 됐고 일부 지자체는 기금을 조성하고 있고 저희도 마찬가지로 기금을 별도로 조성하고 있습니다.

 

신두식 : 그리고 6년째 제자리걸음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부석사 불상 반환 항소심이 얼마 안 있으면 공판이 열리지 않습니까? 서산 부석사의 불상 소유권을 놓고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 서산 부석사 불상 관련 현안에 대해서 먼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설명을 해주시죠.

이상근 : 8월 17일에 다시 재판을 하게 되는데, 그게 이번 재판부가 올해 연내 평결하겠다고 하면서 사전예고한 재판기일 중에 마지막 재판기일이고요. 지난 6월 15일에 대마도 관음사에서 보조진술인으로 참가해서 세 가지 주장을 했는데요. 하나는 현재 부석사가 고려시대 부석사가 아닐 수 있다, 그러니 권리 당사자가 아니다, 라는 주장을 하나 했고요. 그것은 우리나라 피고, 검찰이 했던 주장과 동일한 주장을 했습니다.

 

신두식 : 이게 불거진 것이 대마도에 있는 사찰에서 한국인 절도가 있었는데 그걸 일본이 절도라고 자기네들이 반환을 주장했던 거죠? 일본 측이? 이게 따지고 보니까 이미 과거에 서산 부석사에 있던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약탈당했기 때문에 부석사 쪽에서는 그건 우리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 부석사로 와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거죠?

이상근 : 네, 그것부터 설명을 드려야겠군요. 사실 2012년 10월에 한국인 절도단에 의한 사건 이전에 이미 수덕사와 전 부석사, 수덕사 주지하셨던 법장스님 이런 분들이 이 사실을 알고 이걸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셨어요. 96년에도 부석사 주지스님이 대마도를 방문하셨고, 수덕사 주지하셨던 법장스님이 2004년에 서산 단체 부남회라고 하는 단체를 통해서 대마도에 가서 협상도 했고, 여러 노력을 하는 과정에 사실 이 절도사건이 발생하면서 부석사나 서산시민들 입장에서는 아닌 밤 중에 홍두깨를 맞은 거죠 사실.

 

신두식 : 반환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근 : 오히려 정상적으로 했으면 벌써 해결될 문제였을 수 있는데 그게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서 이렇게 된 것이고. 결국은 형사사건으로 된 이 몰수품을 누구에게 돌려줘야 하느냐, 환부의 문제가 있어서 그 환부의 문제에서 부석사는 원래 기록에 의하면 1330년 2월 서주 부석사, 서주라는 것이 서산의 옛 지명이니까, 부석사에 32명의 민초들이 승속이 함께 불상을 조성하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 때문에 일본도 1973년에 문화재로 지정했다. 이런 모든 안팎의 기록을 봤을 때 부석사가 원 소유자다, 라는 것을 요청을 했고 그래서 대마도 관음사로 돌려보내기보다는 부석사로 돌려줘야 한다. 그래서 2013년에 가처분 신청에서 승소했고, 2017년에 1심 재판에서 부석사의 소유가 인정된다. 그리고 대마도 관음사는 이걸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왜구에 의한 약탈로 인한 취득으로 보여진다. 불법적인 사실이 인정되기 때문에 부석사로 돌려주라고 판결한다. 이것이 국제사회가 정하고 있는 문화유산의 회복 관점에서 맞는 것이다, 라고 판결했고. 이것에 대해서 피고인 검찰이 항고하기를 항소에 세 가지 사실을 드는데, 가장 큰 것이 두 가지 사실입니다. 부석사가 그 부석사가 아니다. 부석사의 동일성이 의심된다.

 

신두식 : 영주 부석사도 있고 서산 부석사도 있고 부석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 더 있었을 테니까요.

이상근 : 이게 꼭 서주, 1330년 서주 부석사가 현재 서산 부석사인지는 자기들이 인정할 수 없다, 라는 문제제기를 하나 했고. 민사적 권리주체가 되느냐 안 되느냐, 이런 이야기를 했고. 두 번째는 결연문이 조작돼서 만약에 그 불상을 서산 부석사라고 했다면 이 결연문의 증거가 인정될 수 없다. 그러니 가짜일 수 있다. 그렇게 주장한 거죠. 그것에 대해서는 두 번째에 대해서, 불상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피고가 작년 11월 재판 때 주장을 철회했어요. 항소 이유가 하나 없어진 거죠.

 

신두식 : 지금 부석사가 불상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불상반환소송을 제기한 상태로 지금 항소심이 되고 있는 거죠?

이상근 : 예, 사실은 일본과의 소송이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와 부석사의 소송관계에요.

신두식 : 지금 그러니까 국가가 점유하고 있는 건가요?

이상근 : 몰수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소유 당사자가 한국정부와 부석사고, 보통 사람들이 일본과의 소송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본은 보조참석인이에요. 보조참석인의 진술을 채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재판부가 판단해서 인정할 수 없다면 하는 거고. 중요한 항소이유사실 중에서 한 가지가 이미 배격됐고 또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항소이유가 없으면 원고 1심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보고 있죠.

 

신두식 :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는데요.

이상근 : 사건 기간이 길어서.

 

신두식 : 이 부분은 어떻게 결론이 나는 쪽으로 풀어나가 한다고 보십니까?

이상근 : 저는 저희가 최근에 국회에서 7월 18일에 국제변호사도 초청해서 국제학술행사도 했는데 거기서 일반적인 의견은 첫째는 한 번 도난품은 영원한 도난품이다. 대마도 관음사가 지정하듯이 1526년 무라세라는 사람이 조선에 와서 이 불상을 취득했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증거도 제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선의취득이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을 것이고. 두 번째 시효취득, 20년 이상 공연하고 평온하게 취득했다면 시효취득을 주장하는데 처음부터 이것이 도난품이었고 약탈품이었기 때문에 그걸 주장하기에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로마법에 보면, 이게 문화유산과 관련해서 가장 큰 피해사실이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시작됐으니까, 이걸로 보면 이런 종교적인 것, 국가적인 것 이런 것은 통상적으로 민사적인 절차를 통해서 소유권 주장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은 피고나 대마도 관음사의 주장이 배척될 가능성이 높다, 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고 저희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재판부도 아마 그렇게 판단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고요.

신두식 : 얼마 안 남았으니까 결과를 좀 지켜보겠습니다.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출연하신 분이 좋아하는 노래나 음악을 들려드리는 시간이 있는데요. 바로 명사의 음악시간입니다. 청취자들과 함께 듣고 싶은 음악,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이상근 : 저는 안치환의 <광야에서>를 즐기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도 마치 새 길을 내는, 광야에서 그 길을 걸어가는 기분이고. 가끔 제가 신나고 할 때 그 노래를 즐겨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곡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신두식 : 감사합니다. 광복절 앞두고 들으니까 의미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이상근 :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신두식 : 안치환 님의 <광야에서> 듣고 계속하겠습니다.

 

오늘은 문화유산회복재단의 이상근 이사장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사장님, 지금 코로나19 상황이어서 외국 왔다갔다하기 힘든 상황이었잖아요?

이상근 : 한동안 못 다녔죠.

신두식 : 그런데도 지난해에 독일하고 최근에 일본을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화재 환수활동의 일환으로 생각이 되는데요. 어떤 활동을 하셨어요?

이상근 : 독일은 마침 지난해 겨울에 코로나가 좀 완화돼서 독일을 갔는데, 독일에는 김영자, 김 베커스 영자 교수님이라고 독일에 오랫동안 가서 한국 문화유산을 찾고 소개하고 또 여러 점을 국내에 기증하도록 도와주신 분이 계신데, 그 분이 일생동안 모은 약 500여 점의 유물과 기록자료들을 기증하시겠다고 하셔서 그걸 기증받으러 다녀왔고요. 그 중에는 중요한 신라시대 고배토기도 있고 또 흙으로 만든 불상, 제가 보기에는 흔치 않은 것 같은데, 그런 조선 후기 불상도 있고 해서 아주 감사하게도 그걸 기증받아서 국내로 들여왔고. 또 독일에서 활동하는 지부 분들이 계시는데 코로나 와중에 개인 소장자 분들을, 개인 소장자들이 고령층이거든요? 건강에 위험이 있고 하니까 좀 시급하게 이런 소장품들을 기탁받거나 기증받을 수 있도록 와서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거기 있는 분들, 활동하시는 분들과 함께 모여서 그런 분들을 소개받고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논의하고 그런 일을 하고 왔고요.

 

신두식 : 일본도 이야기해주시죠.

이상근 : 일본은 첫째는 가장 큰 것은 백제 미소 불상, 부여에서 출토된, 소장자 측과의 면담을 위해서 간 것이 첫 번째 내용이었고요. 그래서 여러 논의를 했는데 어쨌든 제가 9월 말 쯤에 소장자 측을 충남 부여, 출토지인 부여로 초청하겠다고 했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본인도 흔쾌히 오겠다고 했고. 그 다음에 저는 이번에 일본에 한 20군데 정도를 다녔는데 개인 소장자들도 많이 만났고. 크게 두 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을 봤는데 하나는 도쿄 국립박물관 같은 곳을 갔더니 과거에는 사진촬영을 일체 못하게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다 하게 허용합니다. 영상도 찍게 하고. 그런 현상이 도쿄대도 그렇고 다른 대학이나 박물관도 허용하고 있고. 그런 것을 봐서는 일본에 어떤 변화가 일본 국립박물관이 독립행정기관으로,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에 봉착해있어요. 그런데 코로나 와중에 이게 운영이 어렵게 되니까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니 이런 것을 적극 알려서라도 한국인 방문객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려고 하는, 태도가 많이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었고요. 도쿄예술대학 같은 경우는 제가 반가사유상이 있어서 그걸 열람 신청했더니 대여도 가능하다, 이런 입장으로 해서 제가 적극적으로 국내 대여전시 이런 것도 추진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 또 한 번은 개인 소장자들을 만났는데 지금 개인 소장자들이 갖고있는 고충 중에 하나는 첫째는 고령이라는 것과 두 번째는 함부로 거래할 수 없다는 겁니다. 과거의 불법 사실이 드러나면 그건 통상적이 거래가 안 되기 때문에 밀거래를 해야 되는데, 밀거래도 예전처럼 자유롭지 않거든요? 그런 고충들을 갖고 있어서 제가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에서 문화재 반환운동을 가장 세게하는 곳이다. 그러니 나랑 손잡고 나한테 맡겨라. 갖고 있는 소장품을 신탁해라. 그러면 같이 공개전시도 하고 또 필요하면 우리가 그걸 사올 수도 있고 아니면 소개할 수도 있고 하니 믿고 맡기는 신탁을 해라. 그러면 다른 사람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리스크가 줄 것이다. 만약에 다른 곳과 이걸 은밀히 하다 걸리게 되면 내가 반드식 고발할 거다. 그러니 나랑 손잡고 하는 것이 가장 리스크를 줄이는 거라고 했더니 맞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소장자들을 여럿 만났는데 제가 한국에 초청해서 이런 문제를 이야기해서 한 점, 한 점의 반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이 문제를 다뤄야 될 시점이 오고 있다고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신두식 : 최근에도 충청남도 교육청과 청소년의 역사문화유산체험교육을 통한 차세대 지도자로서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서 업무협약을 체결하셨다고 들었는데, 이 부분도 짧게 소개해주시죠.

이상근 : 사실 유산을 찾는 것은 우리 세대의 몫이고요. 그걸 마음껏 향유하고 하는 것은 미래세대의 몫이고 정말 그 유산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것은 그 친구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음 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해서 마침 충남 교육청에다 제안했더니 함께 청소년들한테 당신들이 갖고있는 문화유산을 실감할 수 있는 교육을 하자고 해서 지금 충남 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한 150회 정도의 교육신청을 받아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는 청소년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 아이돌이 어린 시절부터 K-팝의 길을 개척했던이 K-유산, 헤리티지를 여는 세대들, 주인공이 이런 교육을 통해서 나오지 않을까 기대도 하고 있고 노력을 할 생각입니다.

 

신두식 : 시간이 다 됐는데요. 청취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상근 : 문화유산은 아시다시피 역사를 보는 창이기 때문에 현재에 해야 될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 상당수의 많은 문화유산이 불교 성보들인데 지금 세계 도처에 반출되어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불교방송 청취자 여러분 그리고 불자 여러분께서 좀 관심을 가져주시면 곧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두식 : 앞으로도 문화재의 제자리찾기를 위한 활동, 또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근 : 감사합니다.

신두식 : 지금까지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님과 함께했습니다.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