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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지은스님, 중앙승가대 승가학연구원장

방송 : 2022년 6월 12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의 김봉래입니다. 불교 교단은 사부대중으로 구성됩니다. 출가자인 비구 비구니, 재가자인 우바새 우바이입니다. 그래서 교단의 발전을 위해서 출.재가를 막론하고 바람직한 수행자상, 바람직한 승가상을 그려볼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승가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다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이죠. 공부를 제대로 해서 깨달음을 성취하는 비구가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해서 성취를 못하는 비구도 있다는 얘기죠. 세속에 사는 우리 재가자들도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새겨볼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욱 더 하심하고 정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BBS와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조계종 교육아사리이시면서 중앙승가대학교 승가학연구원장이신 지은스님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중앙승가대 승가학연구원장이신 지은스님을 불교방송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지은스님 안녕하세요.

 

지은스님 : BBS 뉴스와 사람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지은입니다. 현재 승가학연구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우리 지은스님 모신 것은 승가학연구원에 대해서도 물론 여쭙고요, 최근에 학술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우리 시대 선지식들의 생애를 통해 본 수행자 상에 관련해서 좀 집중적으로 여쭙기 위해서 모시게 되었는데요, 먼저 우선 간단히 승가학연구원은 어떤 기관인지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은스님 : 예. 우리 승가학연구원은 승가 교육은 승가학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취지로 2006년 4월 26일에 설립되었습니다. 승가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매김 될 때 승가의 교육과 규율이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보셨던 당시 총장 종범 큰스님의 원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종범 큰스님께서는 승가학이란 불교를 전하고 승가를 육성하는 데 적합한 불교학을 승가학이라고 명명하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승가학풍을 수립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를 우리 시대의 선지식들의 생애를 통해 본 수행자상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자. 우리 시대의 선지식들의 생애를 통해서 본 수행자상이다, 이렇게 했는데 보니까 모두 여섯 분의 현대 고승 대덕들에 대한 조명이 있었습니다. 총무원장을 지내신 월주스님을 비롯해서 고산스님 또 무산스님, 고우스님 또 비구니이신 광우스님, 혜해스님 모두 여섯 분인데 어떻게 이렇게 여섯 분을 선정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지은스님 : 예. 가장 최근에 입적하신 큰 스님들을 중심으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행 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수행의 연장선상에서 어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시어 초기 수행자들에게 롤모델이 되실 스님을 선정하고자 했습니다.

 

김봉래 : 네. 수행면과 또 수행의 연장선상에서 어떤 분야에서의 전문성, 기여한 바, 이렇게 해서 여섯 분을 이제 선정을 하셨는데, 스님들 면면에 대해서도 우리가 먼저 좀 간단히 알아봐야 될 것 같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이렇게 두 분씩 이렇게 분류를 제가 해봤거든요. 그래서 우선 두 분이 총무원장을 역임하셨어요. 고산스님, 월주스님. 월주스님께서는 제17대와 28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셨고 또 고산스님은 제29대 총무원장을 역임하셨는데 두 분에 대해서 먼저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지은스님 : 이번 학술대회 발표된 고산 대종사께서는 선교율 삼장에 모두 투철한 안목을 갖추신 선지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선사이고 대강사이며 대율사이셨다는 의미입니다.

 

김봉래 : 이와 사를 다 겸비하신 분인 거죠.

 

지은스님 : 그리고 또 큰스님께서는 신라시대 때 처음으로 차나무를 심었다고 하는 시배지를 찾아서 복원하여 차 문화 보급에 앞장서셨고 동네 포교당에서 청소년 법회를 처음으로 시작하셨다고 해요.

 

김봉래 : 예. 청소년 법회요.

 

지은스님 : 그리고 특히 스님께서는 많은 노보살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합창단을 만들어서 오늘날 법당에서 찬불가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봉래 : 스님께서는 전통에도 정통하시고 이렇게 새로운 포교를 위한 노력도 앞장서셨다 이렇게 볼 수가 있을 것 같아요. 당시에 저희들 80년대 초에 대학 다닐 때도 법당에서 찬불가 부르는 거, 노래 부르는 거 금지였거든요. 거의.

 

지은스님 : 네. 그래서 보살님들의 반대가 많았다고 그래요.

 

김봉래 : 선진식들은 뭐가 앞서서 이렇게 가신 것 같아요. 시대를 앞서서 가신 것 같아요. 월주스님에 대한 설명도 좀 부탁드릴까요.

 

지은스님 : 태공당 월주 큰스님께서는 지구촌을 대상으로 활발한 보살행을 해 오셨습니다.

 

김봉래 : 네. 지구촌공생회죠.

 

지은스님 : 네. 그래서 나의 생애는 보살도와 보살행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하셨을 만큼 보살행에 대한 원력이 평생 마음속에 계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종단 권력의 정점에 계셨던 만큼 그 활동 규모가 굉장히 크시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셔서 현재까지도 잘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봉래 : 불교계에서는 가장 큰 국제구호기구죠.

 

지은스님 : 그래서 스님이 이끄신 지구촌공생회는 아시아의 라오스, 미얀마, 몽골 등 11개국과 아프리카 케냐 또 중남미 아이티 등 여러 나라에서 국제개발사업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뭐 학교도 지어주고, 우물도 파주고, 참 사회적으로 열심히 해 주셨는데, 제가 기자 생활을 할 때 1990년대 초중반에 ‘깨달음의 사회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어서 그 때 재28대 총무원에 큰 역점 사업들을 해 주셨습니다.

 

지은스님 : 큰스님들을 한마디로 이렇게 짧게 표현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너무 하신 일들이 많기 때문에.

 

김봉래 : 물론입니다. 일단 간단히 얘기를 하시고 조금 더 추가로 얘기하실 부분은 좀 뒤에서 스님께서 한 말씀 더 거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깨달음의 사회화’ 얘기를 했지만 사회적으로 굉장히 명성이 높았던 분들이 계십니다. 특히 설악산 도인이라 불렸던 설악무산스님 계시고요. 또 수자로서 선불교 보급에 진력했던 고우스님, 물론 이제 두 분 다 돌아가셨습니다마는 간단히 좀 소개를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은스님 : 예. 설악무산스님께서는 스님의 법명이 속명인 오현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김봉래 : 네. 조오현.

 

지은스님 : 그것은 스님이 문학인으로 굉장히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래요. 그렇지만 스님은 문학인이기에 앞서 수행자로서 자각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무산스님의 선의 세계는 활발발한 돈오선의 면모를 잘 드러내고 계십니다. 스님의 수행 세계를 미처 알기도 전에 떠나버린 스님에 대해 뒤늦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지만 이제라도 스님의 수행 세계를 좀 더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저는 무산 큰스님 말씀을 하시면 늘 만해대상이 먼저 떠올라요 그래서 이 만해대상은 종교나 국경을 넘어서서 모든 분들을 대상으로 해서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부처님의 고구정녕한 지혜와 자비의 정신을 실천했던 분들을 골라서 상을 주거든요. 그래서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만들어서 오늘날까지도 큰 활동을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이런 생각을 좀 하거든요. 고우스님 얘기도 추가를 해주시죠.

 

지은스님 : 평생을 참선 수행으로 일관하셨던 고우 큰스님께 깨달음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스님께서는 깨닫지 못했다라고 부정하셨지만 수행 과정에서 체험한 두 번의 경계를 밝히고 계십니다. 그 첫 체험은 수행 도중 불현듯 무시이래(無始以來)라는 구절이 떠오르더니 그 무시이래가 비롯함이 없는 아득한 옛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이구나 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강한 체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무심코 펼친 육조단경 정혜불이품에서 통류(通流)라는 말을 보는 순간 강렬한 충격이 왔고, 이를 계기로 백척간두진일보라는 문구가 이해되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참선을 제대로 하면 자신은 물론 사회와 국가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큰 마음이 열린다고 하셔서 선수행의 사회성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제가 듣기로는 고우스님께서 성철스님과의 일화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성철스님이 주창하신 돈오돈수에 대해서 잘 이해를 처음에는 못했는데 스님의 <백일법문>을 공부하면서 뒤늦게 스님의 돈오돈수에 대해서 더 심중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지은스님 : 네. 스님의 <백일법문>을 많은 사람한테 권하기도 하고 그러셨어요. 그리고 똑같이 중도(中道)를 말씀하시는데 깨침의 세계에서는 부처님의 중도나 성철 큰스님의 중도나 고우 스님의 중도가 같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김봉래 : 아. 그렇군요. 참선 제대로 하는 것이 이 세상을 편안하게 하는 그런 길과 직결된다 하는 것을.

 

지은스님 : 그러니까 참선을 제대로 하게 되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죠.

 

김봉래 : 그렇습니다. 그래서 선지식들의 삶과 가르침이 곧바로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지에 대한 모범을 다 보여주신 거죠. 자. 이제는 비구니 스님 두 분에 대해서도 좀 알아봐야 되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지내셨던 광우스님 이렇게 가까이 뵐 수 있었지만 금강산 출신의 혜해스님은 못했었거든요. 두 분 좀 소개를 좀 해주실까요. 스님.

 

지은스님 : 다방면으로 여러 활동을 하신 광우 명사스님의 여러 업적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비구니 스님의 위상 정립을 위한 헌신을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방에서 올라와 동국대에 다니는 비구니 스님들에게 정각사에 거처를 내어주시고 또 운문사 승가학원의 원장을 맡아 비구니가 승가교육에도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또 우담바라의 결성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셔서 지금의 조계종 전국비구니회가 창립되는 기초를 다지기도 하셨습니다. 마침내 전국비구니회장으로서 비구니 회관 낙성식을 마치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기까지 한국 비구니 스님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수행과 전법 교화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 오신 선지식이었습니다.

 

김봉래 : 그렇죠. 예전에는 김동화 박사를 모시고 공부도 많이 하셨고 지금은 제자이신 정목스님께서 정각사를 맡아서 아주 수행과 포교를 잘 해주고 계시죠. 이번에는 금강산 신계사 출신의 혜해스님 얘기를 좀 해주셔야 되겠습니다.

 

지은스님 : 보주당 혜해 큰스님께서는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으로 출가하신 이후 평생 선방에서 화두참구를 일념으로 하신 스님으로 금강산으로 출가하여 수행했던 마지막 주자라고 불리고 계십니다. 이후 1970년까지 제방선원을 거치며 안거하던 중 통도사 내원사에서 안거에 들어갔는데 안거 초반에 어느 날 화두가 말쑥하게 잘 들렸다고 합니다. 드디어 화두일념이 되니 고달팠던 몸이 새털같이 가벼워지고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고프지 않으며 앉아 있는 동안 졸음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때 향곡스님께서 종종 혜해스님을 찾아오셔서 선문답을 주고받고 하셨는데, 향곡스님은 그 때 마침내 혜해가 밥값을 했다라고 스님의 수행 경계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김봉래 : 밥값이 중요하죠.

 

지은스님 : 이후 혜해스님은 천경림 흥륜사 금당선원에서 비구니 수좌 스님들과 더불어 90세가 넘어서도 늘 선방에서 정진하시다가 2020년 세수 100세로 흥륜사에서 원적에 드셨는데 170여 개의 사리를 남기셨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그러면 지금까지 여섯 분의 현대 고승들을 간단히 살펴봤는데요. 스님 혹시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서 처음 알았던가 아니면 새삼 주목했던 부분들이 있지 않으신가요. 어떠신가요.

 

지은스님 : 예. 저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오늘날 법당에서 피아노를 치며 찬불가를 부르게 된 이면에는 고산스님께서 노보살들의 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합창단을 창설하는 등 불교음악을 널리 보급시켰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쌍계사에 육조정상탑이 모셔져 있는데, 1982년 중화민국 승려 15명이 이 육조정상동래설(六祖頂相東來說)을 확인하고자 쌍계사를 방문했다고 해요. 그들은 금당에 들어서는 순간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존경심이 솟아나는 것을 보니 진짜 정상이 모셔진 것이 분명하다고 하며 육조정상 참배 기념비명을 지어 기념비를 세워줄 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이 이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김봉래 : 조계종의 기원이 조계산에서 전법 교화를 했던 육조 혜능스님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까. 쌍계사가 그만큼 유서가 깊다 이런 얘기가 되겠네요. 이번 학술대회를 회항하면서 어떤 소회가 있으실까요.

 

지은스님 : 이번 학술대회는 최근 열반하신 큰스님들의 생애와 업적을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한 기초작업 정도 됩니다. 입적하신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잘 아는 사람이 많을 때 구슬을 꿰어 염주를 만들듯이 여러 업적들을 잘 꿰어 모아서 기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선지식일지라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후대에 본받아야 할 선지식으로 남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어쨌든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나와 있듯이 바람직한 수행자상, 바람직한 승가상, 이런 것들이 앞으로 연구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지은스님 : 네. 그리고 현재 문도들을 중심으로 자주 선양되는 선지식이 계시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 많이 잊히게 되고 큰스님으로 남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 거예요. 기록이 안 된 경우는.

 

김봉래 : 네. 맞습니다. 기록을 해야 되겠습니다.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중앙승가대 승가학연구원장이신 지은스님과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승가학연구원에서는 과연 어떤 일을 해나가고 계신지 다들 궁금해 하실 텐데요, 간단히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은스님 : 승가학연구원에서는 승가학 연구를 위한 기본사업으로 승가학 자료집을 간행하고 있습니다. 자료집 간행은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첫 번째는 법어편, 그 다음에 의식편, 세 번째는 전적편 순으로 발간할 계획입니다. 첫 번째 법어편은 한국불교의 역대 고승 법어에서 선발하여 간행하며, 두 번째 의식편은 한국불교의 제반의식과 아울러 여타의 문헌을 발굴해 발행하고 또 세 번째 전적편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불교의 저술서 중에서 선집하여 편찬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법어편에 대해서는 의상스님, 도의스님, 의천스님, 지눌스님, 혜심스님, 보우스님, 혜근스님, 득통스님, 휴정스님 이렇게 아홉 책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현재 원문 교감편이 거의 완성 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어 번역서 발간을 이미 전문가들에게 의뢰한 상태입니다.

 

김봉래 : 우리말로 번역돼서 나온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지은스님 : 그 다음에 후속 작업으로는 두 번째 의식편, 그 다음에 세 번째 전적편 등 사업을 계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원장으로서의 책임도 막중하실 것 같은데요, 승가학연구원의 향후 과제는 어떤 것들일까요.

 

지은스님 : 지금까지 말씀드린 승가학연구원에서 계획한 일을 계속하면서 시대별, 분야별로 선지식 스님들에 대한 선양 작업도 계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자. 스님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한 수행자상 또 바람직한 승가상을 어떻게 보고계신지 궁금해요.

 

지은스님 : 화엄경 명법품에서는 육화경법을 부지런히 닦아 승보의 씨앗이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육화경법에 의해 수행된 승보 그리고 우리 중앙승가대학교의 승가학연구소 설립 취지에서 승가교육은 승가학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현시대의 상황에 맞는 승가학에 의해 올바르게 교육된 승가 등이 바람직한 수행자상이고 바람직한 승가상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김봉래 : 앞으로 우리 승가가 더 발전되기 위해서 과제들이 남아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요즘 뭐 종단적으로 보면 출가자 감소 문제도 아주 큰 어려움 중에 하나로 꼽히지 않습니까. 중앙승가대학에서도 참 어려움이 많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뭐 뾰족한 대책이 있을까요. 스님.

 

지은스님 : 출가자 감소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들이 있어왔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특단의 대책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불교 국가인 동남아 출신 스님 두 사람과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한 스님은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어학 연수를 왔다가 발심해서 한국 스님이 된 경우이고, 다른 사람은 동국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왔던 스님이 지금 한국 스님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스리랑카 스님이에요. 그래서 지금 현재 다방면으로 눈을 돌려서 부처님의 제자를 만들어내야 하는 아주 절박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

 

김봉래 : 아. 네. 그렇군요. 그런데 요즘에는 스님께서 출가할 당시와 요즘 출가하는 스님들 사이에서는 세대 차이도 상당하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들은 어떻게 잘 해소가 되는지 궁금해요.

 

지은스님 : 이거는 정말 굉장히 어려워요. 뭐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일단은 그들에게 맞춰주면서 이끌어가야 할 것 같아요. 요즘 출가하는 스님들과 당면해 보면 좀 놀라운 것들이 있긴 하지만 정황을 들어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부분이 또 자주 있기도 해요.

 

김봉래 : 저희 속가도 마찬가지거든요. 부모 입장에서 또 자식 입장에서 굉장히 차이가 많거든요. 서로 경청하고 들어줄 줄 아는 그런 여유가 필요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요즘을 인공지능 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4차 산업혁명으로 정말 우리 인류가 대대적인 어떤 문명 변화의 물결 속에 있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우리 불교계에서도 대책이 시급하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지은스님 : 부처님의 진리는 시공을 초월하여 변함이 없지만 그 전하는 방법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봉래 : 네. 물론이죠.

 

지은스님 : 종단적인 대책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겠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유행하는 유투브 등 여러 방면으로 불교를 쉽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연구해서 세상을 향하여 교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한꺼번에 세계를 향하여 교화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봉래 : 그렇죠. 뭐 요즘 저희 불교방송 같은 미디어의 역할도 더욱 더 주목받는 그런 상황인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위기이자 기회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스님은 지금 종단에서 교육아사리 소임을 맡고 계시고 또 전공이 원래 선불교 아니십니까. 그래서 앞으로 연구 방향은 어느 쪽으로 잡고 계신지 궁금해요.

 

지은스님 : 저는 요즘 동남아 출신 스님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동남아 불교 이해를 위해 공부하고 있어요. 특히 작년에는 동남아 여성 출가자들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해왔습니다.

 

김봉래 : 아. 동남아의 여성 출가자요.

 

지은스님 :그리고 이제 선사상 분야에서는 ‘산시산수시수에 대한 출전과 의미 고찰’이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김봉래 : 네. 산시산수시수(山是山水是水).

 

지은스님 : 성철 큰스님으로 인해 유명한 구절이 되었는데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이 구절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은 많았지만 정작 어느 출전에 나오는 이야기고 그 의미가 어떻다는 것이 거의 정리가 안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출전을 찾고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해 보았습니다. 출전은 맨 처음 나온 곳이 황벽희운의 <완릉록>이고요 그 다음에 <금강경오가해>도 이 말이 나오고 그 다음에 <운문광록>에서 말이 두드러지게 나오게 됩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지은스님 : 또 제가 무비 큰스님께 전강을 받을 때 스님께서 화엄경을 좀 더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요즘 화엄경 공부도 좀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선사상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공부도 계속 하고 계시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이렇게 하다 보니까 시간이 다 마무리될 시간인데, 끝으로 우리 지은스님의 원력 또 향후 계획 듣는 것으로 오늘 인터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은스님 : 지금 한국불교는 출가자 감소와 더불어 신도의 고령화 그리고 신도의 감소 문제에 부딪혀 있습니다. 오늘날 품격 있는 산중불교는 그대로 잘 유지하면서도 또 다른 한 축으로 대중들의 삶 속으로 더 가까이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이웃하여 희로애락을 함께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를 들면 아파트 단지 부근에서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에 명상센터나 심리상담원 같은 시설들을 만들어서 그 사람들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방향으로 나머지 삶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지은스님 정말 바쁘신 와중에 저희 불교방송 스튜디오까지 찾아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근념하십시오.

 

지은스님 : 네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중앙승가대 승가학연구원장이신 지은스님과 함께했습니다.

 

김봉래 : 여러분. 지은스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정말 우리의 큰 선지식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한국불교가 건재하다. 이런 생각해봅니다. 산재해 있는 큰 스님들의 자료들이 더 모아져서 수행 포교의 성과들이 잘 계승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승가와 교단이 더 새로운 발심과 원력으로 수행 포교를 발전시켜 나가는 그런 계기가 되길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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