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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최훈동 정신과 전문의

방송 : 2022년 4월 10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의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의 김봉래입니다. 어릴 적 심리적인 상처로 성인이 돼서도 고통을 받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상담도 받고 수행도 하고 갖가지 노력을 해도 별무소득인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는데요, 불교는 일시적인 위안에 머무르지 않고 깨달음을 통한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일반적인 심리치료가 갖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바로 불교에 있다는 기대감이 높은 실정입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정신과 전문의로 오랫동안 임상 경험을 통해서 불교와 정신치료, 명상을 접목해서 성과를 거두고 계신 분이시죠. 최훈동 원장님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네. 앞서 소개해 드린 대로 오늘은 정신과 전문의이신 최훈동 원장님, 최훈동 교수님을 불교방송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최훈동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김봉래 : 우리 최훈동 원장님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시고 정신과 의사로서 그동안 수많은 경력을 쌓으시면서 하나의 정신치료 체계를 구축하셨다 이렇게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불교, 명상, 또 정신치료까지 접목해서 하나의 정신치료 체계를 세우셨는데 최근에 또 책을 내셨죠. 제가 갖고 있습니다. <깨달음의 길 숙고명상>이라는 책인데 숙고명상이라는 용어를 전문적으로 지금 쓰고 계신 거잖아요.

 

최훈동 : 네. 그렇습니다.

 

김봉래 : 2019년에 나왔던 책이죠, <내 마음을 안아주는 명상 연습> 이 책에서도 숙고명상을 집중 소개하고 보급을 했었는데, 그러면 그 때 첫 번째 낸 책하고 최근에 낸 이 <깨달음의 길 숙고 명상>하고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겁니까?

 

최훈동 : 먼저 낸 책은 그대로 숙고명상을 조금 소개한 수준이라면 이번에 <깨달음의 길 숙고명상>은 숙고명상을 직접 체험해서 경험한 바를 본인이 적고 쭉 실천해 나가는 그러한 것을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그래서 전 책의 심화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김봉래 : 아. 심화편이다. 다들 궁금해할 텐데요. 다시 한번 숙고명상, 이게 어떤 의미인지 먼저 설명을 좀 해주시고 그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최훈동 : 여러분들 우리 불자님들 공부를 많이 하셔서 금강경 제일 좋아하시죠.

김봉래 : 많이 읽죠.

 

최훈동 : 그럼 금강경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묻는 그 화두가 있습니다. 시작하는 말씀. ‘수보리야 어의운하오?’

 

김봉래 :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최훈동 : 그렇죠.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생각을 물어봅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수보리나 다른 사람만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일반 중생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 당신께서도 깨닫고 난 후에도 초기경전을 보면, “명상 중에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러한 글귀를 수없이 만납니다. 자 보십시오. 명상 중에 생각이 일어나면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명상의 상식으로서.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김봉래 : 명상 중에 생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최훈동 :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해요. 보통 승가에서 무념무상 그러지 않습니까. 생각도 없고 어떠한 잡념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 그거는 바로 선정 삼매 상태를 이야기하죠. 언어도단 심행처멸, 한마디로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강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명상하면 그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다들 생각을 해요.

 

김봉래 : 최고의 명상 경지.

 

최훈동 : 그런데 그걸 부처님께서는 명료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출가해서 처음에 누구를 찾아갔습니까. 요가 명상의 대가인 명상 구루들을 찾아갔죠. 요가의 구루들. 한 분에게 가서는 제7선정까지 터득한 무소유처정까지 터득한 분을 찾아가서 마스터 했고, 두 번째 또 스승을 찾아가서는 제8선정 비상비비상처정까지 터득한 스승에게 찾아가서 역시 마스터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모두 부처님께 당신을, 제자인데 당신을 스승들과 동등한 지위에 부여하고 같이 문파를 이끌자고 제안을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부처님은 깨달음에 도달했다고 인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고행으로 들어가시죠. 그래서 수많은 고행, 극한 고행을 다해서 피골이 상접해서 고목나무 같이 되고 철골처럼 해골같이 된 부처님 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모습이 되니까 지나간 아이들이 죽은 송장인 줄 알고 나뭇가지를 귓구멍, 콧구멍에다가 쑤시고 꽂아놓고 가기도 하고 그랬다고 하였지요. 그렇게 극한의 고행과 지극히 높은 선정에 도달했지만 부처님은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자인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네란자라강가로 와서 마을 처녀에게 유미죽을 공양 받으면서 심신을 회복한 후에 목욕재계 하고 어느 정도 심신을 추스린 후에 붓다가야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습니다. 거기서 어떤 생각을 떠올리시냐 하면 ‘내가 고행을 중지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이제부터 태자 시절에 의문을 가졌던 이 삶의 고통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이렇게 고통의 연원을 한 번 추구해 보는 사유를 계속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서술이 됩니다.

 

김봉래 : 네. 그러니까 태자 시절에 가졌던 원초적인 질문, 왜 생명은 나서 약육강식의 현실에 부딪혀야 하며 또 왜 태어나면 죽는가 하는 그런 의문이었겠죠.

 

최훈동 : 그렇죠. 생노병사의 고통을 왜 겪어야 하는가. 그 연원은 무엇인가. 고통의 원인을 계속 추구해 들어가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12연기(緣起)를 어떻게 보면 완성을 하신 거죠. 그 연기의 이치를 사유를 통해서 깨달았지 선정을 통해서 깨달았다는 말씀이 없어요. 그런데 후대 사람들이 자꾸 그걸 붙여서 자기 나름대로 상상해가지고 아무렇게나 해석을 한 것입니다.

 

김봉래 : 그러면 숙고명상이라는 것은 숙고하는 명상이다 이렇게 봐도 됩니까.

 

최훈동 : 그렇게 해도 되고요, 명상 중에, 그러나 아주 깊은 명상은 무념무상이 되어 버리고 삼매가 되니까 얕은 정도, 어느 정도 집중이 잘 되고 마음이 잘 가라앉아 있는 상태에서 깊이 있게 사유를 정리하면 숙고명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의 목표도 명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명상이 삶 속에서 숙고명상을 통해 지혜와 자비라는 품성을 개발하는 그런 최종 목표로 연결이 되어야 한다 이런 뜻입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명상의 몸통은 관찰과 집중 이후의 깨달음이고, 이러한 깨달음이 있어야만 삶이 변화한다, 그런 말씀을 주신 것 같고요.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마음챙김이라든지 알아차림 같은 그런 수행에 그쳐서는 되지 않는다. 자기 성찰을 넘어서서 통찰이 일어나야 한다. 그 점을 많이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훈동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통찰, 심리치료에서는 통찰이라고 봅니다. 통찰, 인사이트라고 그러는데요, 그래서 서양에서는 위빠사나 명상을 insight meditation이라고 번역도 합니다. mindfulness meditation, 마음챙김 또는 알아차림 명상이라고도 자주 번역하지만 뜻으로 번역하면 insight meditation인데, 심리치료 또는 정신치료에서 통찰은 부처님의 깨달음과 버금갑니다. 현재 내가 당면하고 있는 심적인 여러 가지 고통이나 번뇌나 갈등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를 명료하게 자각하고 통찰해야만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죠. 그것은 통찰이라고 해도 되고 깨달음이라고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김봉래 : 이번 책의 부제가 바로 ‘알아차림 너머 삶을 바꾸는 내면의 지혜’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렇게 해서 총 4개의 장으로 이렇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우리 안에 내재한 자비와 품성을 깨우는 길로 인도하는 그런 친절한 마음 사용 안내서다, 뭐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데, 각 장의 특징들을 간단히 말씀을 해주셔야 될 것 같아요. 제1장은 ‘마음 다루기 첫걸음’ 이렇게 돼 있습니다. 거기서는 주로 어떤 내용이 다뤄지나요?

 

최훈동 : 그게 3년 전에 낸 <내 마음을 안아주는 명상 연습>을 한 번 종합 정리한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명상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과 이해를 돕고 명상을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쉽게 안내하는 첫 챕터고요. 거기서는 쉽게 말해서 일상, 즉 식사할 때는 식사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걸을 때는 걷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런 식으로 분노나 어떤 슬픔이 엄습해 올 때는 생각과 감정을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그러한 연습을 통해서 모든 생활의 대상이 명상 대상임을 주지시켜드린 챕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러면 제2장 자신과 대면하기 어떤 내용인가요.

 

최훈동 : 이게 아주 중요한데요. 승가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라고 하지 않습니까. 빛을 돌이켜서 자기 자신을 비춘다 이런 뜻이죠. 그동안 밖으로만 주의를 우리는 기울여 왔어요. 그래서 어떤 인간관계에서, 삶 속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대방만을 잘 바라보고 상대방의 문제와 상대방의 결정은 아주 현미경처럼 잘 분석, 판단, 비교합니다. 그런데 등하불명이라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정말 잘 모르는데, 믿음은 나만큼 나를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하고 이렇게 자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얼굴을 자기가 못 보듯이 자기가 한 행동이나 습벽, 이런 것들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그 행동의 여파가 파장이 미치는가를 바라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자기 자신에 대해 무지함에서 벗어나 명료하게 아는 것이 지금 자신과의 대면하기입니다.

 

김봉래 : 그렇죠.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된다는 거죠. 우선적으로. 그렇군요. 제3장 마음 치유 연습에 대해서도 설명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최훈동 : 네. 마음 치유는 우리 모두에게 지금 현재는 수도를 통해서 또는 공부를 통해서 수양을 통해서 굉장히 성숙해져서 크게 마음이 괴롭지도 않고 화도 나지 않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는 어린 시절의 수많은 작고 큰 트라우마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자각을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떤 중요한 인생의 전기 때 그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가 불씨처럼 되살아나서 자기 자신을 큰 불길로 휩싸고 맙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결할 줄을 몰라요. 굉장히 평탄하게 멋지게 잘 살다가 한순간에 불타버리고 맙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상담 치료나 정신 분석이나 또는 숙고명상을 통해서 어린 시절에 받았던 크고 작은 상처를 연상을 해서 그 상처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 때 받은 그 아픈 마음을 충분히 안아주고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어야만 상처가 치유가 되고, 그 때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상대방, 대체로는 부모님으로부터 형제로부터 매우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지금은 다 고맙고 효도를 해야 되고 위해야 되는 그런 걸로 교육되었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에는 엄청난 혁명적인 트라우마를 받은 가해자들이에요. 그 분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발판은 그 분들을 용서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 분들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그 전 단계의 숙고가 필요합니다. 어떤 숙고가 필요하냐. 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상처가 있다는 것을 공감하고 이해를 해야 돼요. 그러한 자각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또 숙고를 해 봅니다. 그러려면 그 전 단계는 뭐가 필요하냐. 이렇게 계속 단계 단계 12지처럼 12연기처럼 단계 단계 그 밑바탕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연습이 숙고명상인데, 그 전 단계는 내 안에 상처가 있음을 보고 내가 그 때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억울했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이러한 마음의 아픔을 충분히 본인이 자각하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공감해줘야만 내가 이렇게 아픈데 상대방도 똑같은 상처를 받아서 나와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그들의 상처가 절절히 함께 공감이 될 때 비로소 상대방을 진정으로 연민하고 진정으로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발판이 되겠다. 이런 식으로 단계 단계 숙고명상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김봉래 : 네. 그렇군요. 그렇다고 한다면 원장님, 숙고명상에서는 반드시 사유가 수반되는 건데요, 보통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구차제정으로 보면 초선정, 이선정 이렇게 삼매가 깊어지면서 사고가 끊어지거든요. 그런 것과 관련해서 숙고명상은 그러면 어떤 위치를 점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최훈동 : 명상 중에 이러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말씀하신 부처님의 그러한 선정을 굳이 구차제정으로 구분하자면 초선정에 해당됩니다. 초선정까지는 사유와 숙고가 진행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꼭 초선정이라는 용어에 매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선정주의자들은 초선정도 일반인들은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로 높이 올려놨거든요. 저는 거기에 반대합니다. 명상의 기본을 닦고 알아차림과 집중력이 커지면 그 선정과 지혜의 기반 하에서 고요하게 사유를 적극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바탕이 열립니다. 그러니까 보통 우리가 삶 속에서 일반적인 잡념이나 공상은 수동적으로 일어나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들고 싶은데 수많은 잡념에 시달려서 잠을 못 자는 분들.

 

김봉래 : 이런 것은 숙고명상이 아니죠.

 

최훈동 : 숙고명상이 아니죠. 잡념일 뿐이죠. 사유와 숙고는 성찰입니다. 성찰은 적극적인 사유이고 그것은 매우 긍정적이고 창조적이고 지혜의 한 작용입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러면 흔히 선가에서 이야기하는 성성적적(惺惺寂寂)이 있지 않습니까. 성성적적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최훈동 : 성성적적은 삼매의 상태이기도 하고, 단순히 삼매의 상태가 아니라 정과 혜가 균등하게 이루어진 상태인데, 아주 집중이 잘 되어 있어 모든 잡념이 수동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적적한 상태고, 고요한 상태고, 거기에서 모든 것을 또 감지할 수가 있어야 돼요, 상수멸 같이 지각도 사라져버리고 감각도 사라져버리는 세계는 아닙니다. 그건 아무것도 없는 세계예요.

 

김봉래 : 천둥이 떨어져도 모른다 그런 것이 아니고.

 

최훈동 : 그런 무소유처정이 아니고 완전히 고요한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자극할 수 있는 세계가 의식이 반짝반짝 빛나는 상태.

 

김봉래 : 끝으로 제4장 깨어남 참 나의 삶으로는 어떤 내용인지요.

 

최훈동 : 그런데 이런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주체가 있습니다. 우리 심리학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으로 마음을 크게 둘로 나누지만 의식과 무의식 하면 빙산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수면 위에 떠있는 빙산, 보이는 빙산과 수면 밑에 잠겨 있는 빙산. 이것을 의식과 무의식이라고 하는데, 이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서 주인 노릇을 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걸 에고라고 그래요. 에고, 자아. 그런데 이 에고가 진짜 내가 아니란 말이에요. 이 에고는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무지하게 노력합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방어를 하게 돼 있어요.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있죠. 미사일 방어 요격 체계라고 하나요? 그와 똑같이 우리의 마음도 이 에고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어 기제를 작동하는데 그 방어기제를 작동하는 것 중에서 대표적인 게 책임을 전가하는 거예요. 이건 내 문제가 아니고 네 문제다. 이거는 네 탓이다. 혹은 손가락질해서 주로 바깥과 상대방과 환경에 탓을 돌려서 책임을 외부에서 해결하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책임이 밖에 있는 것이죠. 그러나 명상이나 정신치료는 그 책임이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게 하는, 즉 회광반조 시켜서 자기 자신 속에서 찾아보는, 즉 책임의 키(key)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에고의 작동 방식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 하는 양을 정확하게 바라만 볼 수 있다면, 명상을 통해서 에고의 작동기제, 에고의 하는 양을 명확하게 바라본다면 에고는 힘을 잃게 됩니다. 비유하면 도둑이 들었는데 도둑을 누군가 식구가 한 사람 깨어나서 바라보고 있다면 도둑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도망가야 되겠죠.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에고가 하는 것을 명확하게 바라보면, 즉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바라보면 에고가 여러 가지 방어기제 하는 게 해체가 된다는 거죠. 방어기제가 해체되면 드러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품성인 자비와 지혜랍니다. 자비와 지혜가 깨어나야만 되는데, 그러려면 에고라는 껍질로 무장된 나를 해체시켜야 돼요. 그게 부처님의 무아명상입니다. 부처님은 무아를 어떻게 실천하라고 하셨냐 하면 나의 몸과 마음의 모든 과정, 나라고 여기고 있는 모든 과정, 오온이죠. 한마디로 말해서 오온. 몸의 모든 과정, 생각이나 감정의 모든 과정에서 그것에 질문을 하라고 합니다. 자문을 하라고 그래요.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내면의 지혜에게 질문을 하도록 요청합니다. 이것이 내 것인가, 이것이 과연 나인가. 이것이 진정코 나의 자아인가. 영혼인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 내면에게 물어보면 대답이 나옵니다. 그것을 본인이 경험을 해서 쭉 한번 숙고를 해보고 차곡차곡 깨달은 바를 정리해 가는 것, 이게 이 책의 요지이죠. 그러면 잠들어 있던, 아직 발현되지 못한, 에고라는 껍질에 두껍게 덮여 있던 내면의 불성, 내면의 지혜와 자비가 깨어난다 이런 챕터입니다.

 

김봉래 :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정신과 전문의이신 최훈동 원장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숙고명상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을 해 주셨고, 이번에 내신 <깨달음의 길 숙고명상>에 대해서도 전체 요지를 잘 설명을 해주셨는데, 이게 어쨌든 연습을 할 수 있는 용도로 활용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이신데요. 제가 보니까 불교에서도 사성제가 있지 않습니까. 고집멸도, 고통과 고통의 원인, 또 고통은 해결될 수 있고, 그 길이 있다 하는 그 원리와 어떻게 보면 맥락이 좀 같이 되어 있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훈동 :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것은 서양의 마음공부인 정신치료와 동양의 마음공부인 명상과 그 명상의 오리지널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 불법 이 세 가지가 하나라고 저는 항상 강조합니다. 그 세 가지가 각기 다르다고 생각하면 너무 종교적인 편견이고요, 오직 목표는 인간의 존재가 삶 속에서, 관계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고통을 겪게 됐는,데 그 때 그 삶의 고통을 어떻게 슬기롭게 지혜롭게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이 방법론이 서양에서는 정신치료로, 동양에서는 불교 명상을 통해서 아주 압축되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성제는 한마디로 현대 정신치료의 메커니즘과 동일합니다.

 

김봉래 : 네. 선불교에서는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어디서나 주인으로서 주체적으로 살라, 보통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요, 숙고명상하고도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 좀 있는 거죠.

 

최훈동 : 완전히 일치합니다. 숙고명상에서 마지막에 도달하는, 에고가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고 나면 에고가 하는 모든 것들, 즉 잘난 척하고, 나를 계속 내세우려고 하고, 아니라고 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그리고 내 문제가 아니라고 던져버리고,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부정을 해버리고, 이러한 에고의 장난들을 완전히 분쇄해 버리고 에고가 만들어 놓은 신념들에 놀아나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에고 속에 파묻혀 살았는데, 에고에서 벗어나서, 에고에서 깨어나서 살면 정말 대자유인으로 살게 되고, 에고의 불필요한 방어 무기를 장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내가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삶,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진정한 참나로서 살 수 있는 길이 바로 숙고명상에 있는 것이죠. 그래서 수처작주가 되는 것이죠.

 

김봉래 :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니까 에고라는 것은 하여튼 자기를 방어하는 시스템이다 또는 내가 최고라는 아상(我相)하고 연결이 될 수 있는데, 이게 의식 차원과 무의식 차원에서 에고가 다 작동을 합니까 아니면 에고는 주로 의식 차원에서만 작용을 합니까?

 

최훈동 : 무의식 차원에서 작동을 하기 때문에 말나식, 아뢰야식까지 거기서 주인공 역할을 하려고 노력을 해요. 그러니까 의식과 무의식의 통호자로서 자처를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에고의 뿌리를 분쇄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의식 차원에서 다뤄서 아 이것은 내가 아니다, 내 것이 아니다 하고 지식적인 이해를 했어도 아직 무의식 속에서는 ‘이것은 나야’ 하고 이렇게 버티는 습벽의 힘이 너무너무 강해서 정말 아상을 분쇄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초기경전에서 말하는 유신견(有身見)을 타파한다는 게 그것인데, 나라는 개체가 별도로 있다는 이 생각, 이게 가장 무지의 원형이거든요. 무지의 뿌리입니다. 이 아상 또는 유신견을 완전히 해체시키는 작업이 숙고명상에 있습니다.

 

김봉래 : 그럼 원장님은 에고를 다 해체를 하신 건가요?

 

최훈동 : 완전히 습기까지는 해체했다고 볼 수 없고요. 제가 그러한 경험은 이미 2015년도에 한 번 크게 있었고, 2003년도에도 위빠사나 집중명상을 할 때도 한 번 큰 경험을 했습니다. 크게 두 번의 경험을 통해서 명상 전도사가 됐고, 에고는 내가 아니고 이 몸과 마음은 그냥 몸과 마음이지 나가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 우리는 이 몸과 마음을 나와 동일시하고 있어요.

 

김봉래 : 그렇죠. 대부분.

 

최훈동 : 이게 잘못된 동일시란 말이에요.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이 몸도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다. 이 마음도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다. 그리고 생각도 감정도 마찬가지란 말이에요.

 

김봉래 : 근데 이 생각이 다른 A나 B의 생각은 아니고 반드시 저의 생각인 거는 맞잖아요.

 

최훈동 : 그렇지만 그것을 나의 생각이라고 해석을 한 것일 뿐이지 본래 그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김봉래 : 무슨 말씀이시죠?

 

최훈동 : 몸과 마음을 나라고 규정한 것은 나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규정 자체가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죠. 그냥 백지처럼 순수한 어린 갓난아이에게는 아직 그런 게 별로 없어요. 자아의식이라고 그걸 말나식, 자의식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는데, 자의식이 점점 형성돼서 돐 지나고 걸음을 걸을 때까지도 별로 없습니다. 넘어지고 깨져도 나라는 의식이 별로 없으니까 창피하지도 않고 화나지도 않아요. 근데 걸음을 걷고 웬만큼 말도 하고 그러면 부모님의 훈육이 들어가잖아요. 그 전까지 모든 것을 용서하고 100% 어떤 행동을 해도 수용했다가 하나씩 깨지기 시작하면 트라우마가 일어나고, 동생을 만나면 엄청난 트라우마를 받게 되죠. 어린아이가 나만이 최고였던 그런 세계에서 나오니까 나는 이제 뒤로 쳐져버리거든. 그런 트라우마를 통해서 에고 의식이 점점 강화되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이러한 습성들이 강화되면서 에고가 점점 강화되어서 사춘기를 지나서 에고 아이덴티티, 자아의 정체성이 확립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자아의식은 점점 형성돼서 분명하게 고정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에고가 딱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죠. 이게 현대심리학적으로도 발달된 심리학에 의해서 이루어낸 업적인데 부처님의 말씀과 똑같은 것이죠.

 

김봉래 : 그런데 그런 자아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서 나오는 괴로움도 또 있잖아요.

 

최훈동 : 당연합니다. 자아가 미분화되고 자아가 미숙해서 병적인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게 대개 정신병, 조현병 같은 경우는 자아의 강도가 너무 약해서 병이 나고, 망상과 환상을 구별을 못하고 현실로 착각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굉장히 낮은 단계의 의미이고, 우리가 말하는 무아는 그래서 제가 의식과 무의식 말고 현대심리학에서 말하는 의식과 무의식을 떠나서 초의식을 이야기합니다. 명상을 통해서 심리치료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초의식, 의식과 무의식을 벗어나서 명상과 수행을 통해서 진정한 내면의 세계, 본래 부처님의 성품의 세계가 드러나는 것을 초의식이라고 저는 이야기해요. 그 초의식을 서양 심리학자 중에 또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융이 우선 선구자이지만 켄 윌버라는 분이 있습니다. 켄 윌버라는 분이 거의 방불하게 부처님의 말씀과 대동소이한 그런 어떤 우주적인 의식을 이야기합니다. 통합된 의식이라고도 하고. 그러니까 이것은 수행을 통하지 않으면 겪을 수 없는 세계입니다. 일반 세계는 닫혀 있어요. 어둠에 잠겨 있어요. 어둠에서 벗어나서 깨어나야만, 에고 껍질에서 벗어나야만 경험할 수 있는 세계, 광명천지 같은 그러한 의식의 세계가 초의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김봉래 : 그러면 그 초의식은 현생하고 전생하고 연관이 됩니까.

 

최훈동 : 거기는 시간이 없죠. 시간과 공간의 구별이 없고, 분별이 완전히 끊어져 버린 거죠. 현생이다 전생이다 이것도 사실은 분별이거든요. 근데 우리 보편적인 무의식은 그것은 이미 칼 융이 이야기했지만 집단적 무의식 또는 보편적인 무의식은 나와 너가 같이 공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5천 년 전, 만 년 전 인류의 고대 심성하고도 공유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무의식의 상징들을 보면 굉장히 동등한 상징들이 신물들이 5천 년 전에도 있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런 집단적 무의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개별적인 의식으로 분리될 수가 없다는 것이죠. 공유가 된다는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의미도 돼요. 그러니까 3생에 걸쳐서 통한다 이런 뜻이기도 합니다. 3생을 모두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이죠.

 

김봉래 : 부처님의 견지에서 보면 초의식을 발견하고 초의식대로 사시는 거기 때문에 이게 어떻게 보면 그냥 영원한 생명이다 뭐 이렇게까지 볼 수 있는 건가요.

 

최훈동 : 그렇습니다. 순간이 영원이고 지금 한 생각이 바로 진정한 보리(Bodhi), 불성이다, 깨달음이다, 이렇게 표현한 의상조사 법성게와도 같은 맥락이고요. 그래서 에고는 분별이 특징이에요. 분별. 너와 나를 분별하고, 선악을 분별하고, 미추를 분별하고, 판단 분별해서 비교 평가하는 게 주기능입니다. 그것도 삶 속에서는 필요해요 그게 전혀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에고를 타고 부리고 사용하는 경지와 에고에 갇혀서 에고의 부림을 당하는 경지. 수처작주 주인공이냐 부림을 당하는 노예냐, 여기에 따라서 삶이 천지 차이가 일어난다는 이야기죠. 삶이 바뀌는 게 아니라 삶은 똑같은데 파도를 타고 즐기느냐 파도에 휩쓸려 버리고 애쓰다가 파도에 그냥 함몰되거나 가라앉거나 이러지 않습니까. 이게 대부분의 중생들의 세계죠. 그러나 깨어난 의식, 불보살의 의식은 파도를 없애는 게 아니라 파도를 타면서 서핑을 하는 거죠. 자유롭게 행복하게 사는 거죠. 삶을 정말로 즐기는 것이죠. 파도를 즐기는 것이지 파도와 악전고투하고 파도에 함몰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수처작주의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봉래 : 감사합니다. 원장님 앞으로의 원력 내지는 계획 간단히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 오늘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최훈동 : 네. 그동안 뭐 우리 정신과 환우들과 함께 삶을 살아왔는데 이제 저도 삶을 좀 어느 정도 정리해야 되는 입장이어서 병원보다는 연구소에서 명상과 상담을 안내하면서 강의나 집필을 하고 여생을 마무리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시간 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최훈동 :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정신과 전문의 최훈동 원장님과 함께했습니다.

 

김봉래 : 여러분 최훈동 원장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저는 오늘 말씀 중에서 쌍윳타니까야 부처님의 말씀 다시 한 번 상기합니다. 거센 물결을 건널 때 머무르지 않고 애쓰지 않고 거센 물결을 건넜다는 말씀, 머무를 때는 가라앉았고 애쓸 때는 휩쓸렸다 그런 말씀이셨는데요. 결국은 머무르지 않고 애쓰지 말고 삶을 즐겨라 하는 그런 메시지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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