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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송창일 주조명장

방송 : 2022년 2월 6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의 김봉래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마주친 곳에서 운명처럼 묵묵히 자기 일을 해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 가운데 명장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있기도 한데요, 사찰의 불상이나 범종 같은 불교문화재들도 이러한 장인들의 손길을 거쳐 탄생됩니다. 물질이 단순한 물질에 머물지 않고 종교적 신념에 따라서 마음의 힘에 의지해서 신앙의 대상으로 탈바꿈되는 것입니다.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깊은 불심과 혼으로 평생 불상과 범종을 조성해 오신 명장이십니다. 송창일 주조명장님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BBS 뉴스와 사람들 이 자리에 주조명장이신 송창일 명장님을 모셨습니다. 송창일 명장님 안녕하세요.

 

송창일 : 네. 안녕하세요. 주조명장 송창일입니다.

 

김봉래 : 대한민국 주조명장 송창일이라고 하는 이름이 빛나고 계신데요. 명장이라는 것은 어떤 분들에게 칭호가 부여되는 건지요.

 

송창일 : 글쎄 우리나라의 최고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산업인력공단에서 해마다 이렇게 심사를 해서 명장 칭호를 주고 있는 그런 명장들을 이야기합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주조명장 그러면 우리나라에 대체로 몇 분 정도나 계시나요.

 

송창일 : 글쎄요. 한 대여섯 분 계시는 걸로 아는데, 청동 주조로 불교 쪽에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단 두 사람 정도 있습니다. 저하고 성종사 원광식 선배님이 주조명장이시죠.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전 세계가 지금 2년 넘게 코로나 팬데믹에 빠져 있는 요즘인데 요즘도 계속 작업을 하시는지요.

 

송창일 : 그렇죠. 저희들은 항시 똑같이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저희들도 국가에서 이 어려운 시기 같이 견뎌내느라고 3차까지 전부 다 백신 맞고서 작업을 같이 하고 있는 직원들이 한 10여 명 같이 있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광주의 천종사 대표로서 활동하고 계신 거죠. 작업 현장을 저희가 가봤으면 좋겠지만 라디오이기 때문에 보여드릴 수는 없고 그 얘기를 들어야 되는데, 2010년에 기술인 최고의 영예인 주조명장에 선정됐다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청동 주조 명장이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주로 불상이나 종, 뭐 이런 것들을 만드시는 거죠.

 

송창일 : 그렇죠. 범종하고 청동 불상을 만드는 주조명장인데요. 불상을 만드는 사람은 유일하게 제가 혼자서 지금 명장 칭호도 받았고 주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저 혼자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원광식 문화재님은 범종만 하는 것이고.

 

송창일 : 범종만 하는 것이고.

 

김봉래 : 그래서 무형문화재의 분류 가운데 주철장에서 주불장이 새로 생겼다.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요.

 

송창일 : 그렇죠. 주철장에 같이 이렇게 범종하고 청동 불상을 만드는 것을 이렇게 같이 가지고 계셨었는데요, 그것을 제가 어렵게 한 10년에 걸쳐서 분리를 했죠. 주불장이라고. 그래서 아직은 주불장으로 지정이 한 사람도 받지 못하고 있고, 지방문화재도 한 사람도 없는 그런 상태입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무형문화재 원광식 선생님은 주철장으로 계시면서 범종을 만드는 쪽으로 주력하고 계신 거고, 거기서 세부적으로 분리돼서 추가된 주불장은 아직은 무형문화재가 없다.

 

송창일 : 네. 아무도 지정을 못 받고 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김봉래 : 선생님이 하시면 될 텐데요.

 

송창일 : 글쎄요. 제가 분리를 할 때 하남에 있는 하사창동철불 때문에 결국은 분리가 됐는데요, 그 철불 때문에 분리가 됐는데도 아직은 지정을 못 받고 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김봉래 : 하사창동철불을 재현을 했는데 그 작업을 우리 송선생님께서.

 

송창일 : 제가 국립박물관에 있는 보물 332호 철불을 그대로 재현을 한 것이죠. 그래서 요즘 3D 공법을 해서 현대 주물하고 전통 주물하고 같이 복합식으로 해서 재현을 한 것이죠.

 

김봉래 : 그럼 뭐 곧 주불장으로 선정이 되실 것 같은데요. 제가 볼 때는.

 

송창일 : 글쎄요. 그래서 저도 지금 굉장히 노력을 하고 있는데 아직 못 받고 있습니다.

 

김봉래 : 자. 주조를 요즘에는 청동으로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뭘까요.

 

송창일 : 글쎄요. 제일 오래 갈 수 있는, 그러니까 수천 년 흘러가도 아직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이 남아 있고 하는 게 철불하고 청동불로 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수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부식이 되어도 오래 갈 수 있는 게 청동하고 철불이거든요. 그래서 선호를 하는 것 같습니다.

 

김봉래 : 철을 가지고 할 때보다 청동으로 할 때가 조금 더 쉬운가요.

 

송창일 : 더 쉽죠. 온도 차이가. 그러니까 지금 좀 많이 아직도 남아 있는 철불은 온도 차이가 청동에 배 차이거든요. 청동은 한 900도에서 1,000도라고 그러면 철불은 한 1,800도까지 올라가야 주물이 되는 상태거든요.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지금 어쨌든 주조 일을 50년 가까이 해 오신 거 아닙니까. 어떻게 이런 주조 일하고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

 

송창일 : 글쎄요. 제가 어려서 서울에 우리 아버님이 원래는 대목장이셨는데 제 초등학교 2학년 때 사업에 실패를 하셨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하고 초등학교에서 입학 정보를 가르쳐준 재건중학교를 입학해 졸업하고서 서울에 올라오게 됐죠. 객지 생활을 하게 됐는데, 거기서 아는 형님의 소개로 홍익대학교 최기원 교수를 만났어요. 조각하는 최기영 교수를 만나서 최기영 교수 밑에서 한 1년 반 동안 조각을 배웠었죠. 처음에는. 그래서 그 때 조각을 배울 때 내가 이 조각보다는 주물이 더 낫지 않겠나 싶어서 주물 공장으로 나가게 되가지고 주물을 하게 된 동기가 광화문 앞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서부터 연세대학교 독수리, 동국대학교 코끼리, 이런 작품들을 많이 주조를 하게 됐죠.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제가 주물 기술을 배워가지고 이종옥 선생을 만나게 되어서 거기서부터 불교 쪽에. 원래부터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 잡고 절에도 많이 다니고 그래서 관심이 있던 그런 차에 불교 일을 하게 된 것이죠.

 

김봉래 : 그렇군요. 어려서부터 부처님 인연이 있었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네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작품들이 굉장히 많겠습니다.

 

송창일 : 그렇죠. 이제 제 손으로 조각해서 주물을 한 작품들이 글쎄 수로 헤아릴 수는 없을 정도니까요. 전국 각 처에 거의 제 손길이 안 닿는 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봉래 : 직접적 간접적으로 관여한 불상이라든가 종이라든가 이런 작품들이 많다 이런 얘기인데, 그래도 지금 돌아보실 때 특별히 생각나는 작품들이 어떤 게 있을까요.

 

송창일 : 제가 제일 꼽을 수 있는 게 부산 홍법사의 청동아미타대불을 국내에서는 그래도 제일 큰 작품이기 때문에 꼽을 수 있고요. 범종 같은 경우는 범종은 소리를 따지는 거니까요, 춘천 시민의 종이라든가 양평에 있는 수종사 범종이라든가 이런 종을 주로 지금도 다니면서 소리도 듣고 부처님 친견도 하고 그러는.

 

김봉래 : 아. 네. 명장님 그러면 혹시 해외에도 선생님 작품이 나간 데가 있나요.

송창일 : 제가 한 10여 년 된 것 같아요. 그 때 물론 미국의 달마사의 청동 천불도 제가 조성을 했었고요.

 

김봉래 : LA 달마사 아닙니까.

 

송창일 : 네. 거기 천불을 제가 조성을 했었고요. 스리랑카에 갔더니 대구 대광명사라는 데 해인사 부처님을 재현해서 조성한 부처님이 있었어요. 그런데 스리랑카 박물관에 가니까 그 부처님이 삼존불이 전시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처님이 좀 특이한 경우였죠. 왜 특이한 경우냐 하면 저도 그 때 당시 대구 대광명사라는 데를 그 스님이 부처님을 조성해 달라고 해서 갔는데 관음상을 한 분 조성을 해달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왜 있는데 조성을 해달라고 그러냐고 그랬더니 그 부처님은 다시 해인사로 해인사 박물관으로 들어가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처님을 모시고 와서 거기에서 조금 지장보살 하고 이렇게 고쳐가지고 조성을 했었죠. 그래서 그 부처님 삼존불이 스리랑카 박물관에 전시가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가서 깜짝 놀랐던 게 거기에 있는 분한테 여쭤보니까 한국에서 온 부처님이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경우가 좀 있었고요. 또 미얀마를 가니까 제가 만들었던 범종이 전시가 되어 있는 것을 봤고요.

 

김봉래 : 굉장히 반가웠겠습니다.

 

송창일 : 그렇죠. 그래서 좀 돌아다니면 그런 거 보면 엄청나게 반갑기도 하고 가슴 뿌듯한 거 느끼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김봉래 : 그러면 범종 또 불상 이런 것들이 전통 방식으로 100%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지나요 아니면 현대적인 기술이 좀 가미가 되나요.

 

송창일 : 거의 지금은 현대적인 방법이 많이 하고 있는데요. 그래도 거의 전통 방법도 많이 따라가죠. 거의 같이 가미해서 하는 그런 상태입니다. 지금도.

 

김봉래 : 그러면 부처님 상을 만드는 때와 종을 만들 때 어떤 차이가 있나요.

 

송창일 : 그렇죠. 종은 소리가 생명이고요. 부처님은 상호가 생명이잖아요. 상호가 생명이기 때문에 조각하는 어려움은 주물을 부을 때는 종이 어렵고요 조성을 할 때는 부처님이 좀 어렵고 그렇습니다.

 

김봉래 : 모형을 가지고 이렇게 떠서 그 다음에 거푸집을 만들어서 거기다 주물을 붓는 그런 과정인 거죠. 과정은 똑같아요. 거의.

 

송창일 : 거의 비슷합니다. 조금 다를 뿐이지 범종 같은 경우는 크든 작든 한 번에 주조를 하는 편이고요, 몇 십 톤을 녹여도 한 번에 주조를 하는 편이고요. 부처님 조성하는 데는 이렇게 서로 용접을 해서 붙일 수 있는 그런 상태라서 조금은 주조하기가 좀 쉽고 그렇죠.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예전에 들은 거로는 우리 한국 종의 가장 태두라고 해야 될까요, 에밀레종. 그 에밀레 종을 새로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그래요. 그 종고리라고 하나요. 종고리에 집어넣는데 그게 새로 했는데 구부러졌다 그런 얘기를 제가 들었는데.

 

송창일 : 그래서 그게 합금의 묘인데요. 어떻게 보면 지금도 종 소리나 이런 게 그 때만큼. 에밀레종을 우리나라의 종소리나 문양이나 이런 것을 제일 쳐주는 이유 중에 하나가 합금하는 방법이 현대에 와서 좀 많이 바뀌어 있죠. 그래서 전통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종 합금하는 방법이 좀 많이 바뀌었었는데요. 전통적으로 부은 종은 파손도 안 오고요. 음이 그러니까 맥놀이라고 그러죠. 소리가 전통으로 붓는 종소리만큼 지금 현대 붓는 종소리들이 따라가기가 어렵습니다. 합금 방법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종이 지금 현대 많이 우리나라에 파손되어 있는 이유도 합금하는 방법을 전통 방법을 안 쓰고 현대에 와서 그 방법이 일본에서 들어온 방법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방법을 써서 종이 거의 파손이 많이 되어 있는 상태죠.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그런데 선생님 지금 불상도 그렇고 범종도 그렇고 이 전통적인 방식들이 잘 계승되고 있다고 봐도 되는 겁니까.

 

송창일 : 네. 그렇죠. 전통적인 방법이 우리나라의 종은 청동으로 중국이나 일본 종보다는 소리, 그러니까 종은 소리를 가지고 따지는 거니까요. 왜 그러냐 하면 중국 종이나 일본 종은 문양도 용문양이나 밑의 문양 그런 문양을 봐도 우리나라의 문양만큼 섬세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종은 딱 어디 가서도 보면 표시가 나는 게 그 문양 자체가 비교가 되죠. 문양이 섬세하면서도 참 또렷하고 이런 건데 중국이나 일본은 그런 게 안 돼 있고요. 우선 여음이 맥놀이가 엄청나게 오래 갑니다. 우리나라 종은 거의 3~4분씩 가거든요. 그래서 그런 소리에서도 차이가 많이 나죠. 우리나라 종을 세계적인 종이라고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전통적으로 붓는 방법이, 종을 붓는 방법이 전통을 많이 따지는 것이죠. 그래서 합금하는 방법이나 이런 게 전통성을 가지고 하면 소리나 문양이 훨씬 다르죠.

 

김봉래 : 불상도 그렇습니까.

 

송창일 : 그래서 불상 같은 경우도 지금 우리나라에 중국 불상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사실은.

 

김봉래 : 싸서 그런가요.

 

송창일 : 그렇죠. 그래서 한 때는 저 같은 경우도 접으려고 했던 이유가 있었어요. 중국에서 불상이 들어오면서 불상이나 종도 해오고 했었는데요, 엄청나게 가격이 차이가 많이 났었죠. 저렴하게 중국에서 들어오다 보니까 그랬었는데, 그게 지금 보면 조금씩은 후회를 하시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전통적으로 청동을 쓰거든요. 청동이라는 게 동하고 주석을 가지고 합금을 하는데 청동을 얘기하는 거고요. 중국에서 오는 건 황동이거든요. 황동은 동에 아연을 합금하는 게 황동인데요. 청동하고 황동하고는 온도 차이도 있습니다. 녹는 차이도 있고요. 그런데 부식이 청동은 1,000년 간다고 그러면 황동은 500년밖에 안 갑니다. 그런 차이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차이에서 많이 오는데 가격에서도 차이가 많이 나는 거고요 그러다 보니까 중국에서 많이 밀려오다 보니까 한 때는 접으려고도 생각을 했었죠. 지금은 조성을 하는데 거의 국내에서 조성하지 중국이나 이런 데서는 부처님 청동 조성을 안 하죠.

 

김봉래 : 네. 그렇군요. 그러면 전통 방식을 더 계승 발전시키려면 전문가들을 많이 길러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송창일 : 그렇죠. 그렇게 가야 되는데 지금은 그렇게 이 주물이 하는 것도 까다롭지만 힘들거든요.

 

김봉래 : 하려는 사람이 적다.

 

송창일 : 그래서 배우는 사람이 거의 지금 나이들이 40대, 50대에 가깝고 그런 상태죠. 그래서 배우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은 거의 뒤에서 일을 하고 있는 주물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하나씩 하나씩 우리 전통이 어떻게 보면 사라진다, 사라질 위기에 있다, 이런 느낌을 갖게 하는데 지금 송창일 선생님은 종보다는 부처님 불상 만드는 쪽으로 좀 더 전념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되나요.

 

송창일 : 그렇죠. 저 같은 경우는 그런 쪽의 재현이나 아니면 이렇게 작품 만드는 것도 옛날 전통 방법을 많이 택해서 작품을 많이 만들어 놓고 있는데요. 그런 게 어떻게 보면 제가 문화재를 따려고 하는 이유도 무형문화재를 따려고 하는 이유도 그런 쪽에서 밑에 사람들을 키워야 되는데 그런 게 없다보니까 거의 전통 방법이나 이런 게 사장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하시면서 참 어려움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그 동안에.

 

송창일 : 그렇죠. 어려움도 많았던 게 어떻게 보면 저 같은 경우는 처음에 불교 쪽 일을 하려고 하면서 전국에 순회를 한 적도 있고, 하면서 뭐라고 그래야 되나요. 간첩으로 몰려서 가서 며칠씩 가서 영창에서 살고 나온 적도 있었고요.

 

김봉래 : 왜요.

 

송창일 : 카메라 메고 제 작품 만들려고 카메라 메고 우리나라의 아주 오래된 부처님들 사진 찍다가 신고를 해서 잊 들어가서 이상한 사람으로 오인돼서 가서 좀 붙들려 가서 살았던 적도 있고 그렇죠.

 

김봉래 : 네. 그렇군요.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송창일 주조명장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곳곳에 사찰에 또 명산에 가면 선생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보람도 참 많으실 것 같아요.

 

송창일 : 그래서 그런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저도 이 일을 계속 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다니면서 보면 내가 여기에 언젠가 작품을 했던 작품이 있지 않나 하고 들어가 보면 거기에 모셔져 있고 제가 조성했던 부처님이나 범종을 참 여러 사람들이 거기에 기도하고 이런 걸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김봉래 : 그래요. 몇 군데 더 소개를 해 주세요.

 

송창일 : 지금 제가 소개한다면 우선 사천의 백천사도 오방여래라든가 좀 특이한 작품들이 많이 있죠. 아미타불, 서 있는 아미타불이 거기에 청동으로 제일 큰 작품이 있고, 제주도에 가면 보문사라는 절에 약사여래대불이 청동으로 앉아있는 작품이 있고요. 그리고 범종 같은 경우는 전국 각지에 통영이라든가 뭐 강화라든가 가면 가는 사찰마다 거의 제 작품들이 걸려 있어서요. 지금은 그런 보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상도 많이 타셨죠.

 

송창일 : 그렇죠. 불교미전에서도 여러 번 상을 탔었고요. 또 다른 쪽에도 출품해서 상도 여러 번 받았고 그렇죠.

 

김봉래 : 전시회도 좀 많이 하셨고.

 

송창일 : 제가 불교미전 저 나름대로의 전통 주조를 살리느라고 작품 전시회도 몇 번 가지고 그랬었죠.

 

김봉일 : 2019년인가요 국회에서 ‘전통과 현대의 만남’ 전시회가 또 남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송창일 : 그 때 제가 지금도 보람을 느끼는 게 그런 작품을 가지고 전시를 했던 예가 없었기 때문에 국회에서도 이거 해도 되는 건가 그럴 정도로 했었는데, 그래도 믿어주시고 한 번 해봐라. 이런 게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해봐라. 그래서 그때 문화재청장까지도 나오시고 국회의장도 나오시고 그래서 제 작품에 대한 것에 대해 전통 주물이 이런 게 있구나 하고 할 정도의 작품들을 많이 전시를 했었죠.

 

김봉래 : 전통과 현대인 만남이라면 뭐 전통 기법과 현대적인 기법이 가미된.

 

송창일 : 전통 기법을 많이 해가지고 작품을 선을 보였었죠.

 

김봉래 : 아 그렇군요. 범종도 그렇고 불상도 마찬가지지만 그 마음가짐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이게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잖아요.

 

송창일 : 그렇죠. 그게 어떻게 보면 요즘 방송에서도 많이 얘기하는 미신이라고도 얘기를 할 수 있는데요, 저희들은 지금도 범종을 할 때는 큰 범종을 할 때는 며칠씩 공장에서 숙식을 하면서 주조를 합니다.

 

김봉래 :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뭘까요.

 

송창일 : 그게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은 그건 미신이라고 믿지 않는데요. 저희들 나름대로의 뭐라고 그래야 되나요.

 

김봉래 : 정성을 들이는 건가요.

 

송창일 : 정성이라고 봐야 되고요. 또 이렇게 부정을 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김봉래 : 몸가짐 마음가짐.

 

송창일 : 그렇죠. 몸가짐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서 공장에서 숙식 제공을 하면서 정갈하게 목욕 재개 해가면서 범종 붓고서 이렇게 나와서 잘 되면 회식도 하고 그렇게 하고 있죠. 지금도.

 

김봉래 : 사무실에 법당을 모셔놓고 기도도 드리면서 작업한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송창일 : 제가 지금 한 30년 넘게 부처님을 조성해서 그 때 당시 순천 송광사에 있던 스님들이 오셔서 점안 법회를 해주셔서 지금도 제가 그 법당을 모셔놓고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하면서 지금도 일을 하고 있죠.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자연스럽게 부처님 인연이 깊어지신 것 같아요.

 

송창일 : 그렇죠. 어떻게 보면 이 일을 하면서 저희 애들 다 대학까지 보냈고 저는 그렇게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부처님 가피를 입어서 하여튼 자식들 그렇게 했다는 게 지금도 어디 가서도 감사하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고 그렇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중요한 게 아까도 잠시 말씀이 나왔었습니다만 전통의 계승과 발전인데요. 후학 양성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송창일 : 그래서 지금도 제가 제일 안타까운 게 그거거든요.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문화재를 하려고 그런 이유도 그래도 이렇게 밑에 사람들을 같이 지금 거의 40, 50명씩 같이 일을 해왔는데, 내가 이런 쪽에 문화재라도 되어야만 그 사람들이 나중에 내가 가고 나서도 이 사람들도 그렇게 해서 계승해서 발전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입니다. 그래서 문화재를 꼭 고집을 하는 이유도 이게 국가무형문화재나 아니면 지방문화재부터 이렇게 해서 해야되겠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김봉래 : 일단 지방문화재가 되시고 그 다음에 국가무형문화재 되시고 이렇게 순서를 밟아야 되나요.

 

송창일 : 예. 그렇죠. 지금은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 때 처음에 제가 국가무형문화재를 주불장이 분리됐을 때는 바로 받아줬었는데요, 지금은 또 법이 바뀌어서 그런지 지방문화재를 거쳐서 올라오라고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김봉래 : 선생님이 잘 돼야 또 제자들도 잘 되는 거니까. 요즘 젊은이들이 참 어려운 걸 안 하려고 하기 때문에 정말 대우를 잘 해주고 격려를 해 주고 이렇게 해야만 한국불교 또 전통문화예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 같아요.

 

송창일 : 외국에서 이렇게 한국에 관광을 온다고 했을 때도 우리나라의 문화재가 불교문화재이지 다른 문화재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김봉일 : 대다수가 불교문화재.

 

송창일 : 그래서 그런 거를 생각해도 제가 몇 년 전에 제주도청에 가서 몇 번 브리핑을 했던 이유도 거기에 세계적인 작품을 하나 천수천안을 한 번 세워보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었죠. 그래서 제주도청에서도 국가무형문화재를 따가지고 오면 투자를 하겠다고 투자건까지도 받았었는데 문화재가 아직 못따서 제주도에도 못 들어가고 있는 그런 형편입니다.

 

김봉래 : 그런 면에서 정부에 건의하실 내용이 굉장히 있으실 것 같아요.

 

송창일 : 한번 건의도 해보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옆에서 누가 이렇게 이끌어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저 혼자 뛰어다니다 보니까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고, 제가 제주도에 박물관을 세우려고 했던 이유는 천수천안을 하나 세우는데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 저거가 있었죠. 그래서 그거 하나 채워놓으면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받을 수 있겠다 싶어서 하려고 했던 것이죠.

 

김봉래 : 그런 면에서 정부에서 조금 더 의지를 가지고 주불장을 선정을 해야 되는 그런 과제가 있는 거네요.

 

송창일 : 그렇죠. 그렇게만 해준다면 저는 뭐 문화재만 지정이 되면 제가 지금 작품 해놓은 거나 이런 것들 가지고도 박물관도 차릴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을 많이 가지고 있죠.

 

김봉래 : 그러니까 그렇게 작품들이 훌륭하기 때문에 자격이 넘친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송창일 : 그렇게 보실 수도 있는데 그걸 인정을 안 해 주는 것 같습니다.

 

김봉래 : 네. 소정의 절차를 밟는 일이 남아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을 것 같고요. 그런 면에서 종단에도 혹시 건의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실까요.

 

송창일 : 그래서 종단에는 지금 하도 종단이 많다보니까 어디에 또렷하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안 되고요, 조계종 총무원에도 제가 그런 얘기를 한 번 한 적이 있었죠. 내가 이렇게 해서 문화재를 하려고 한다고 얘기를 한 적도 있어서 자승스님께서 추천서도 써주시고 그랬었죠. 문화재 추천서도 써주시고 그랬는데 그게 잘 이루어지지 않았었죠.

 

김봉래 : 천종사를 운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요즘 운영은 좀 어떠십니까.

 

송창일 : 글쎄요. 일이 그래도 끊이지 않고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왔었는데 하여튼 코로나가 오면서부터 한 2년 동안 조금 이렇게 소원해진 것 같습니다.

 

김봉래 : 코로나 영향이 있으신가요.

 

송창일 : 아무래도 조금은 영향이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김봉래 : 보니까 뭐 청동 불상과 범종뿐 아니고 탱화라든가 단청, 또 순금불사 등 여러 가지를 하고 계시네요.

 

송창일 : 제가 지금 청동 불상을 청동 탱화를 가지고 불미전에 처음으로 작품을 냈던 사람이거든요. 청동 탱화를, 그리고 지금은 법당을 특허를 내서 청동으로 법당을 33평짜리를 하나 세워서 지금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김봉래 : 법당을 청동으로 만든다고요.

 

송창일 : 예.

 

김봉래 :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송창일 : 지금 영광에다가 33평짜리 법당을 세워서 벽은 전부 33 관음으로 조각을 해서 부조로 되어 있고요. 그 안에 내부는 전부 청동으로 탱화나 불상을 다 만들었고요. 내부를. 그리고 법당 외에는 아미타불이 한 10m 되는 아미타불이 앉아 계시죠. 그런 식으로 해서 특허를 내서 지금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습니다.

 

김봉래 : 그럼 언제 오픈이 되는 겁니까.

 

송창일 : 한 3월 정도에 오픈하려고 지금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아주 뜻깊은 새로운 보물이 탄생하는 것 같습니다. 문화재가. 앞으로 우리 명장님 앞으로 원력 또 계획 듣는 것으로 오늘 순서를 마무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송창일 : 저는 제 꿈이 있습니다. 제 꿈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문화재가 제 꿈이고요. 또 그 문화재로 인해서 청동박물관이 실제적으로 우리나라의 불교문화재가 전국 각 처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에다가 박물관을 세우려고 그랬던 것도 그런 불교문화재를 재현을 해서 그 문화재를 다 갖다 놓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재현해서 한 군데 모아서 불교문화재를 볼 수 있게 한다고 그랬더니 제주도청에서도 아 그거는 진짜로 한번 생각해 볼만한 문제다. 그렇게 해야만 불교문화재가 이렇게 훌륭한 문화재가 있구나 할 정도의 한 군데서 볼 수 있게 꼭 한번 하고 싶다고 했더니 제주도청에서도 제 건의를 받아들여서 제가 제주도청에 가서 두 번 정도 브리핑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쪽으로 봤을 때 제주도나 제주도가 아닐지라도 양평에도 지금 제가 지인이 땅을 주셔서 제주도에다 못하면 양평에다 세우려고 하고 있는데요. 그런 박물관이 하나 섰으면 제 바람이고요. 그렇게 꼭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김봉래 : 예 잘 알겠습니다. 우리 전통을 이어가는 우리 송창일 명장님 큰 원력이 성취되기를 저희도 같이 축원드리겠습니다. 오늘 불교방송 스튜디오에 나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송창일 :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천종사 대표이신 송창일 주조명장님과 함께했습니다.

 

김봉래 : 여러분 송창일 명장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말씀 들으면서 저는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이 참 쉽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무형문화재 주불장을 설치해 놓고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지정이 안 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관계 당국에서 잘 관리 감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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