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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오해균 가릉빈가소리찬불공연단장

방송 : 2021년 11월 14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찬불가를 중심으로 한 찬불 음악이 1990년대 이후 꾸준히 발전되어 오고 있습니다. BBS 불교방송도 신작찬불가 사업을 통해 100곡을 만들어낸 덕분에 지금까지 많은 곡들이 불리고 있고 그 밖에도 종단 차원에서 공모를 통해서도 주옥같은 찬불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짧은 시구로 정리된 부처님 가르침에 운율이 더해져서 아름다운 찬불가가 되고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깨달음의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에 찬불 음악의 역할이 수행과 포교에 아주 소중하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오랫동안 찬불가요 보급에 매진해 오신 분이시죠. 가릉빈가소리찬불공연단의 오해균 단장님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네 오늘은 가릉빈가소리찬불공연단의 오해균 단장님을 BBS 불교방송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오해균 단장님 안녕하세요.

 

오해균 : 안녕하세요.

 

김봉래 : 단장님은 오랫동안 찬불 음악을 보급해 오신 작곡가이시면서 아동문학가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요즘 코로나로 다들 힘든 시기라고 하는데 단장님은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오해균 : 어떻게 보면 제가 제일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렇지만 일을 하면서 또 농장에서 농사일도 좀 하고 또 취미로 장편소설을 그 동안 코로나 시대에 제가 두 번이나 썼고요. 그 다음에 찾아오는 가수 지망생들이 계시잖아요. 그 분들한테 곡해서 노래 가르치고 나름대로 그냥 바쁘게 보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쉬어가는 시기인 듯하지만 또 내적으로 착실하게 기반을 닦아가는 사업들을 계속 해오셨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작곡가님께서는 사실 찬불가요뿐만이 아니고 일반 대중음악까지 모두 400여 편의 곡을 이제 발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찬불 음악, 찬불가요를 보급하는 일에 평생 노력해오셨고 그 공로로 지난해에는 조계종 총무원이 시상하는 불교음악인상을 수상하셨죠.

 

오해균 : 네. 뭐 가문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 불보살님의 가피를 제가 작년에 아주 많이 입었습니다. 불교음악을 하는 분들이라면 꼭 받고 싶은 상이죠. 저도 찬불가요를 열심히 쓰고 또 우리 가수들이 열심히 노래해 주고 하다 보니까 그런 영광이 저한테 오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많은 곡을 쓰셨는데 그 중에서 특히 생각나시거나 또 불자들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곡들은 어떤 곡들이 있을까요.

 

오해균 : 제가 찬불가를 쓰면서 저는 가수들이 오면 일단 종교부터 검색을 해야되겠죠. 제가 불교를 신행하다 보니까 보면 종교가 불교라고 하면 그러면 기왕이면 찬불가도 하나 해서 행사장에서 불러보는 게 어떻겠느냐 권장을 하는 편이에요.

 

김봉래 : 그렇군요. 그 동안 찬불가요 인생에서 어려움도 계셨을 것 같고 보람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좀 있었을까요.

 

오해균 : 다들 느끼는 바지만 우리 가수들이 찬불가를 하나 선정을 해서 곡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걸 부를 곳이 있어야 되는데.

 

김봉래 : 무대가 있어야 하죠.

 

오해균 : 그런데 그 무대가 사실은 그렇게 넉넉하지가 않아요. 예를 들어서 산사음악회를 하면 절에서는 당연히 그런 걸 했으면 고맙겠는데, 그냥 대중가요, 유명 인기가수들만 찾는 그런 형편이다보니까 가수들이 좀 그런.

 

김봉래 : 위축되는 부분도 있겠어요.

 

오해균 : 네 많죠. 근데 많지만 또 하다 보면 또 그 나름대로 보람을 느낄 수도 있고 또 신심으로 다 하는 거 아니겠어요.

 

김봉래 : 그런데 이 찬불가요가 조금 밀린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또 찬불가요의 경쟁력의 면에서 좀 우리가 더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주장도 있을 수 있죠.

 

오해균 : 그렇죠. 개선이라면 우선 대중가요를 너무 선호하다 보니까 제가 하는 일이 찬불가요잖아요.

 

김봉래 : 그렇죠 찬불가 중에서도 찬불가요.

 

오해균 : 이게 찬불가 하면 보통 우리가 의식곡이나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나 그런 걸 얘기할 수가 있는데, 그거 갖고는 가수들이 설 자리가 없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찬불가요라고 해서 가요 스타일의 형식을 차용을 해서 거기다 부처님 가르침을 녹여서 한번 시켜보자고 하니까 오히려 반응이 더 좋습니다. 그래서 많이들 듣고 있고 가수들도 만족해하고 그런 거죠.

 

김봉래 : 그래서 군법당 공연이라든가 기타 곳곳에서 찬불가요 가수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해균 : 네. 제가 찬불가요를 하면서 가수들 하고 군법당도 많이 다니고 하는데 처음에는 참 어색해 해요. 그런데 가서 염주도 나눠주고 찬불가 음반 주면서 어머니한테 갖다 드리라고 하면 장병들이 그때는 굉장히 좋아하고 환희심을 내고 또 자기네들도 같이 노래도 하고 그러죠.

 

김봉래 : 그래서 보람도 있으시다 이런 얘기인데, 올해는 특히 주목될 만한 작업을 하신 것 같아요. 명성황후 추모제를 맞아서 명성황후 노래를 제작해서 처음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런 인연이 이렇게 선생님께 있으셨는지요.

 

오해균 : 명성황후 음악을 하게 된 동기는 명성황후를 얘기하자면 사실 중악단이라는 것부터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께서 조선을 설립하고 나서 묘향산의 상악단, 계룡산의 중악단, 지리산의 하악단이라는 어떻게 보면 산신기도를 하는 도량을 세우셨어요. 그것이 쭉 내려오다가 효종 2년에 그거 못 쓰겠다, 다 철거해 버려라, 임금께서. 그리고 철거했다가 다시 고종 때 명성황후께서 민비죠 그때는, 민비께서 중악단이라도 다시 세워 기도를 할 수 있는 그런 도량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제 임금께 말해가지고 세우게 됐어요. 다시 중건을 한 거죠. 중건을 해서 쭉 내려오다가 지금 신원사에 계시는 중하스님께서 큰스님이 주지로 임명되시면서 이럴 게 아니고 우리가 명성황후와 고종황제의 추모제를 10월 8일, 10월 8일날 시해되셨잖아요.

 

김봉래 : 양력으로 10월 8일입니까.

 

오해균 : 그래서 그 때부터 10회째 내려오고 있는데 10회를 내려오면서 스님께서 기왕이면 명성황후 노래를 하나 만들어 보급했으면 좋겠다는 원력을 세우셨어요. 그 원력을 부처님께서 저한테 인도를 하신 거죠. 그래서 하게 됐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그런데 명성황후, 이것을 우리 오해균 단장님께서 작곡을 했는데 작사를 바로 신원사에 중하스님께서 하셨군요.

 

오해균 : 네. 중하스님께서 저한테 작사를 이런 식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말씀을 해주셨죠. 그래서 그걸 제가 정리를 해서 하게 됐는데, 가수 서주경 씨가 노래를 불렀고요. 그래서 아직 완전히 홍보는 안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도 명성황후의 원력으로 계룡산 산신의 원력으로 홍보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말씀 나온 김에 오늘 BBS 뉴스촤 사람들에서 방송으로서는 처음으로 선을 보이겠습니다.

 

오해균 : 네 방송으로 처음입니다.

 

김봉래 : 네네. 한번 들어보시죠.

 

(노래 “명성황후”)

 

김봉래 : 들어보니까 가사 내용도 명성황후가 열 여섯 어린 나이에 중전이 되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기쁨 이런 것들이 다 같이 어우러진 것 같은데 단장님께서는 이 노래 처음 초연했을 때 아주 감동이 많이 있으셨겠어요.

 

오해균 : 저뿐만이 아니고요 그 때 추모제 때 처음 가수가 그걸 노래를 불렀는데 거기에 모이신 사부대중들이 다 너무 좋아서 환희심을 내고 그랬죠. 그리고 지금 가사 내용도 좀 그렇습니다마는 사실 지금 명성황후께서 어떻게 보면 극과 극으로 공과가 갈리거든요.

 

김봉래 : 어떻게 극과 극으로 갈리죠.

 

오해균 : 뭐 예를 들어서 우리 일제에 저항한, 그리고 개화를 추진한 그런 왕후로 되어 있는 반면에 이제 외척을 끌어들여 섭정을 하고 했던 그런 이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사실은 일제가 자기네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명성황후를 격하시킨 거죠. 격하시키고, 또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도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다시 재평가되어야 된다 그런 생각을 저도 하고, 또 우리 신원사 주지스님께서도 그런 생각을 저한테 말씀을 해 주셨고요. 그렇습니다.

 

김봉래 : 명성황후 노래의 맨 마지막 구절이 바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언제 다시 돌아올 거나 별이 되어 가신 님아. 명성황후는 우리 가슴에 꽃이 되어 피어나네.”

 

오해균 : 이제 재평가되어서 진짜 열혈 왕후로서 나라와 우리 백성들을 사랑한 그런 국모로 다시 재평가되는 거죠.

 

김봉래 : 그렇군요.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가릉빈가소리찬불공연단의 오해균 단장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단장님 아까도 조금 말씀 계셨습니다마는 공연도 수없이 많이 다니셨죠.

 

오해균 : 네. 많이 다녔죠. 특히 제가 군법당을 많이 다녔는데요, 처음에 군법당을 가면 사실 군인들이 젊은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다 보니까 트로트나 찬불가는 솔직히 먹히질 않아요. 그래서 제가 꾀를 낸 게 법사 스님이나 법사님들한테 휴가증을 몇 개나 받을 수 있느냐 여쭤보죠. 그러면 또 이번에 대대장, 연대장 해서 휴가증을 몇 개를 받아내요 그러면 장병들의 장기 자랑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물론 이교를 믿는 장병들은 안 오겠지만 종교가 없거나 불자 장병들은 굉장히 많이 오거든요. 그게 홍법의 일환이 될 수가 있는데 거기서 이제 우리 봉사단원들하고 청백전을 하거나 해서 휴가증을 주고 하면서 아주 장병들이 너무 좋아하는 그런 것, 그것 때문에 제가 많이 다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전후방 한 30여 군데를 다닌 것 같아요.

 

김봉래 : 일단 재미가 있고 흥이 있고 인기가 있어야 합니다. 사회복지시설도 많이 다니셨죠.

 

오해균 : 사회복지시설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제 자랑 같기는 한데 지금도 MOU를 같이 맺고 체결하고 꼭 가서 뭐 생일잔치를 해드린다든가 연말에 아니면 부처님오신날 이런 때 5월 가정의 달 이런 때 가서 또 해주고.

 

김봉래 : 어디 어디를 다니셨나요.

 

오해균 : 저는 연꽃마을이라든가 묘희원, 지금 현재는 열심히 봉사하는 데가 군포시립노인요양센터를 다니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가면 엄청나게 환영을 받으시는 거죠.

 

오해균 : 서운해 하시죠.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김봉래 : 우리 단장님이 이끌고 계신 가릉빈가소리찬불공연단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될 것 같은데, 이 단체가 언제부터 시작이 된 건가요.

 

오해균 : 2007년부터 제가 시작을 하고 있는데요, 봉사를 하고 제가 곡을 쓰다 보니까 단체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분 두 분 이렇게 모이고 또 자원봉사자들 모이고, 또 제가 여기서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천종사 송창일 명장이나 작가 김남희 씨 또 친구들 해서 여러분들이 십시일푼 도와줘서 이런 시설도 다니고 군법당도 다니고 하는데, 지금 현재 회원이 한 50여 명 됩니다. 그 중에서 가수가 30여분이 활동을 하고 있고.

 

김봉래 : 그런데 지금 비대면 상황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 동안의 활동에 어려움도 많이 계셨을 것 같아요.

 

오해균 : 처음에는 굉장히 걱정을 했습니다. 걱정을 했는데 또 다른 출구를 찾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유튜브를 활용을 이럴 때 해야되겠구나 해서 찍어서 예를 들어서 유튜브나 SNS나 또 팬카페가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올려놓으니까 그냥 대면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그럼 어떤 곡들이 올라가 있나요.

 

오해균 : 제가 찬불 가수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한 30여 분이 하니까 다 그런 노래들이 올라가 있습니다. 지금 제가 찬불가요 다보쇼라고 해서 제가 쇼를 하나 만들어서 그걸 진행을 하고 있는데, 우리 불자 가수들이 나오셔서 찬불가 하나씩 해서 유튜브에 올려놓고 여기저기 하다 보니까 그냥 어떤 경우는 한 1만 명 이상이 청취하는 그런 경우도 있고요

 

김봉래 : 찬불가요 다보쇼 저도 한번 봐야 되겠습니다.

 

오해균 : 그러니까 다보쇼라는게 다 보시오 하다 보니까 다보쇼가 돼버렸어요.

 

김봉래 : 그렇군요. 앞으로 계획도 있으시겠죠.

 

오해균 : 저의 계획은 특별한 게 없고요, 지금까지 하던 일 더 열심히 하는 거죠. 찬불가요 보급 운동, 제가 찬불가요 음반을 산사음악회, 군법당 이런 곳을 다니면서 거의 3만 장 정도를 보급한 것 같아요. 그 다음에 우리 군법당 및 사회복지시설 자선활동 또 찬불가요 다보쇼 그런 걸 해고 열심히 하는 게 그냥 계획입니다.

 

김봉래 : 가릉빈가소리찬불공연단이 참여하는 활동이다 이런 말씀이시고요. 그런데 늘 우리가 지적하는 이야기지만 이웃종교에서는 성가가 아주 발달해서 오랫동안 선교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런 평가인데, 상대적으로 우리 불교는 좀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게 평가를 하기도 하는데, 그런 차이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보세요.

 

오해균 : 사실 저는 이웃종교에 대해서 아는 게 없습니다. 아는 게 없어서 제가 뭐라고 말씀을 못 드리겠는데, 전에 절에서 한 번 성지순례를 가는데 버스를 몇 대 대절해서 제가 탄 차에서 오며 가며 노래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살님 한 분이 노래를 하는데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노래를 하는 거예요. 뭐 내 주님 계신 곳에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노래를 하는데, 이건 아닌데. 그 분은 만약에 그게 진짜 찬송가라고 생각했으면 안 했겠죠. 그런데 그냥 대중 속에 녹아 있다 보니까 이것도 그냥 가요인가 보다 하고 했는데, 이건 아니구나 하면서 우리 찬불음악도 찬불가요도 그런 스타일로 해서 이렇게 보급을 하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김봉래 :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다양한 장르의 찬불음악이 나와줘야 될 것 같은데 단장님께서는 어쨌든 노랫말에 부처님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또 어디서나 부를 수 있어야 하고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단장님이 추구하는 찬불음악의 특징이 있는데, 그와 더불어 다양한 장르의 찬불음악이 나와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해균 : 제가 찬불가를 하면서 외국 가수 나디아 호프라는 가수가 저한테 왔어요. 그 가수는 러시아정교, 러시아 사람인데 모스크바 음대를 나오고 나름대로 아주 노래도 잘하고 음악의 재원인데 와서는 절에 데려가 달라고 그럽니다. 왜냐 그랬더니 절에 가서 108배 하면 기를 받아서 하는 일이 잘 된다는 거예요. 누구한테 들었니 하니 여러 사람이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관악산 연주암인가 가서 한번 이 가수가 노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군포에 계시는 정엄스님한테 얘기를 했더니, 그 가수 찬불가 하나 해주라고 그래서 이렇게 그런 인연으로 노래도 하고 했는데.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찬불음악은 다양한 종류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 가수가 부르면 그게 바로 자기 스타일로 하다 보니까 가요가 되고, 또 이 가수가 팝 같은 걸 잘하고 그러면 그런 스타일이 되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찬불가도 그냥 합창곡이나 의식곡만 고집할 게 아니고, 가요도 하고 랩도 하고 요새 작곡가들이 그런 걸 많이 하는 분들이 많은데, 또 우리 불자 가수나 작곡가들이 많이 계실 거 아니에요. 그 분들이 자기가 하는 그 장르에 맞게 찬불음악을 한다면 널리 보급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김봉래 : 선생님께서는 특히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찬불음악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시죠.

 

오해균 : 많은데 저도 제가 원래 트로트 작곡가다 보니까 찬불가요라는 트로트 장르에 그런 걸 차용하다 보니까 그런 식으로 다 노래가 되는데, 앞으로는 좀 더 공부를 해서 우리 젊은이들이 호흡할 수 있고 같이 부를 수 있는 그런 노래를 써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죠.

 

김봉래 : 선생님께서는 뭐 찬불음악을 작곡할 뿐 아니라 아동문학가로서 이렇게 저작도 내시고 그러셨어요.

 

오해균 : 네. 제가 동화를 좀 쓰는데요, 동화를 쓰게 된 동기가 이제 요양센터에 가서 어르신들한테 구연동화를 해주는데 저도 깜짝 놀란 게 모두 이 분들이 빠져서 제 얘기를 듣더라고요. 그래서 이 분들이 읽을 수 있는 인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그런 동화를 써야 되겠다라고 해서 문학을 하게 된 동기가 있어요. 그래서 하다 보니까 동화책을 두 권 정도 쓰게 되었죠.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선생님께서 ‘오 마이 붓다’ 운동을 하시는 이유가 있으시다면서요.

 

오해균 : 뭐 운동까지는 아닌데 제가 소망이 불자건 누구건 간에 다 오마이갓이에요. 그것도 저한테는 못마땅하더라고요. 그런데 옛날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킬링필드라는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탄 분이 있어요. 캄보디아 사람. 그 분이 자기를 호명하니까 ‘오 마이 붓다’ 하는데 제가 거기서 전율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오 마이 붓다 운동을 좀 해야 되겠다. 다른 나라에서는 남방불교 쪽에서는 오 마이 붓다를 하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저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래요. 오 마이 갓하면 오 마이 붓다를 해야지 오 나의 부처님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그것을 운동을 하고 싶고 또 저는 힘이 미력하니까 이런 방송을 통해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김봉래 : 네. 비대면 시대가 되면서 네트워크를 활용한 포교가 더욱 더 중요해지는데, 선생님께서도 이번 코로나 정국에 그런 것을 많이 느꼈다 이렇게 아까 말씀을 하셨는데 어떻습니까.

 

오해균 : 제가 작년 초까지만 해도 줌이라는 걸 몰랐어요. 줌이라는 걸 몰랐는데 어느 가수가 선생님 우리도 줌으로 한번 해보지요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뭔데 했더니 그걸 깔아주더라고요. 줌 그거를. 그래서 야 이거 굉장히 좋다. 이거 한번 해보자 그래서 줌으로 공연도 해보고 사무실에서 그냥 한 두 사람 초대해서 여러 사람 이렇게 불러들여서 공연도 해보고 또 유튜브 해보고 하다 보니까 이제 나름대로 노하우가 된 거죠. 노하우가 되고, 유튜브라는 건 사실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것 아닙니까. 앞으로 지금 물론 위드코로나 해가지고 시대가 새로 열리겠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는 없잖아요. 그렇지만 하이브리드 공연 해가지고.

 

김봉래 : 하이브리드 공연이요.

 

오해균 : 하이브리드 공연 해가지고 비대면으로도 할 수가 있고 대면으로도 할 수가 있고, 이제 그런 걸 개발해서 더 넓게 홍보를 해야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제가 참여하는 동아리에서도 찬불동아리에서 지난 2년여간 거의 연습을 못 했거든요. 그런데 줌을 활용해서 그런 연습도 같이 할 수 있습니까.

 

오해균 : 지금 합창단 하시는 우리 선생님들이나 그런 분들이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물론 대면으로 할 때보다는 못하겠지만 그 층들이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이 많다보니까 그런 걸 잘 못하는데, 그런 걸 지속적으로 좀 해서 할 수가 있죠.

 

김봉래 : 그렇군요. 자. 오늘 오해균 단장님과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 불교가 발전하기 위해서 불교음악이 발전해야 되고 또 찬불가, 찬불가요가 발전을 해야 되는 건데, 그런 면에서 혹시 종단에 건의하고 싶은 내용이 계시면 이런 기회에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해균 : 제가 늘 생각하는 건데요, 지방에 있는 사찰들은 그 지역에 어떻게 보면 문화의 요람이 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스님들이 그런 생각은 안 하시고 그냥 자꾸 갈수록 신도가 떨어진다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데, 예를 들어서 면단위에서 사찰이 있으면 거기서 산사음악회를 통해서 물론 음악도 하고 또 포교도 하고 하다 보면 이게 참 더 활성화가 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거를 스님들은 잘 못하시니까 종단 차원에서 각 종단에서 그거를 스님들한테 지시를 하셔서 이렇게 해서 그 지역에서 문화가 활성화되어서 우리 불교가 거기서 이바지할 수 있도록 그렇게 지시를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되고요. 또 제가 하는 음악회에서도 그런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면에서 한다면 면의 축제가 되는 거죠. 비종교인이라든가 심지어는 이교도까지도 다 와서 의자 나르고 도와주고 하는 것을 봤는데, 앞으로 그런 게 활성화 돼서 다른 종교에서도 그걸 안 하는 데도 있고 하지만 우리 불교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봉래 : 네. 우리 불교 사찰이 지역 주민의 문화예술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귀한 말씀 잘 들었는데요, 사실 지금은 한류가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앞으로 K-문화가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보세요.

 

오해균 : K-문화라는 게 그 바탕에 깔려있는 게 우리 불교문화 아닙니까. 참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예를 들어서 오징어 게임이 요새 저는 아직 못 봤습니다마는 히트를 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거기서 윷놀이가 옛날 원광법사께서 했던 점찰법회, 간자를 던져서 거기서 나온 것으로 길흉을 점치고 했는데 그런 데서 비롯됐다고 그래요 윷놀이가. 그런 식으로 우리 불교에서도 그런 콘텐츠를 개발할 게 많이 있거든요. 연등놀이라든가 해서 그런 것을 요새 K-문화가 어떻다 하지 말고 불교에서 그런 걸 개발해서 하다 보면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 지금 고려 때부터 쭉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게 그 바탕은 다 불교문화거든요. 지금까지 여기까지 온 거니까 그거를 되살렸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김봉래 : K-문화가 불교적인 역사 전통 문화를 더 가미 할 때 더 풍성해지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 귀한 말씀 잘 들었고요. 그런 점에서 올해 개국 31주년을 맞은 저희 BBS 불교방송 같은 매체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 있을 것 같은데, 불교방송 같은 매체에도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계실까요.

 

오해균 : 제가 찬불가요를 작곡을 하다 보니까 부탁하고 싶은 게 그겁니다. 우리 불교방송은 어떻게 보면 특성화 방송인데 그냥 대중가요를 이렇게 하는 것보다는 찬불가요를 보급을 하는 게 바람직하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물론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 주셨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김봉래 :포교를 목적으로 하는 특수방송, 공중파 방송.

 

오해균 : 불교방송에서 해줘야지 KBS에서 찬불가 틀어줄 일은 없잖아요.

 

김봉래 : 예. 그렇습니다. 저희가 조금 더 전문적으로 불교와 음악을 접합한 그런 프로그램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귀한 말씀 들었습니다. 자. 그러면 끝으로 앞으로 우리 오해균 단장님의 원력과 계획 듣는 것으로 오늘 순서를 마쳐야 될 것 같습니다.

 

오해균 : 여태까지 말씀드렸지만 저는 앞으로도 능력이 되는 한 찬불가요를 보급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고요. 또 제가 처음에 원력을 세웠던 게 1년에 세 번은 꼭 군법당을 찾아가서 우리 국군 장병들하고 같이 호흡하면서 부처님 홍법을 전하자 그게 두 번째고요. 세 번째가 찬불가요 다보쇼, 1년에 보통 세 번을 하는데 열심히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접할 수 있게 한번 해보자 그게 제 원력입니다. 소박한 원력이죠.

 

김봉래 : 그렇군요. 오늘 방송 출연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해균 : 저도 대단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가릉빈가소리찬불공연단 오해균 단장님과 함께했습니다.

 

김봉래 : 네. 여러분 오해균 단장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K-문화의 정수는 불교가 바탕에 깔려 있다 하는 말씀을 되새기고요, 특히 다양한 찬불가요 보급에 나서자 하는 말씀 되새깁니다. 찬불가요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일깨워서 다 함께 행복한 불국정토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제작의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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