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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마이산 탑사 주지 진성스님

방송 : 2021년 9월 5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불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출세간적인 가치를 지향한다고 해서 자칫 세상을 등지는 것처럼 오해되고 이른바 산중불교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같은 반성 이후 1990년대 이후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 매우 확장되는 추세로 돌아선 것은 매우 다행한 일입니다. 21세기 초입에 들어선 지금은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 어떻게 되어야 되는지 더욱 깊은 고민도 하게 됩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큼 도움이 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한국불교태고종 전북교구종무원장으로 지역사회 활동에 매진하고 계신 분이죠. 마이산 탑사 주지 진성스님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네. 앞서 소개해드린 대로 마이산 탑사 주지이신 진성스님을 BBS 불교방송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진성스님 안녕하세요.

 

진성스님 : 네. 안녕하세요. 성불복 지으십시오.

 

김봉래 : 네. 반갑습니다. 멀리 전북에서 와 주셨는데요. 요즘 코로나 펜데믹 때문에 다들 힘든 상황 아니겠습니까. 스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진성스님 : 네. 정말 코로나가 지역 강타, 관광지 강타, 지역 사찰 이런 단체를 강타해서 너무나 힘든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전라북도 교구에서는 코로나와 관계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번 자원봉사센터와 함께 이웃을 위한 수제 마스크 만들기라든가 나눔을 실천하는 우리 동네 코로나 반별 소독 약품을 들고 소독을 하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찰은 대면 기도를 피하고 있고 기도를 음성 녹음이나 녹화를 통해서 신도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현실입니다.

 

김봉래 : 정말 바쁘신 와중에도 찾아뵐 곳은 찾아뵙고 나투실 곳은 나투시는 것 같아요.

 

진성스님 : 제가 음력 정월달 되기 전에 저희 종단 원로 스님이신 도광 큰스님을 비롯해서 이웃 종단인 조계종의 특히 월주 큰스님과 도영 큰스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러 다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한 해를 시작하는 데 있어서 선지식인 큰스님들에게 배움을 배우고자 다니고자 있습니다. 월주 큰스님은 지구촌공생회를 통해서 세계적으로 불우한 이웃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2010년도에 나누우리봉사단을 조직해서 월주스님과 같은 큰 행적을 따라서 해외와 국내 복지사업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큰스님한테 당연히 사를 드려야 하고, 더군다나 큰스님이 열반하셔서 예를 갖추러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예를 갖추고 왔습니다.

 

김봉래 : 우리 진성스님은 타이틀이 굉장히 많으세요. 태고종의 전북교구 종무원장을 비롯해서 지금 말씀하신 진안군 자원봉사센터의 이사장을 맡고 계시죠. 활동 많이 하고 계신데, 우선 진안 마이산 탑사 그러면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신 탑사 소개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진성스님 : 네. 저는 마이산 탑사 위에 금당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지금 금산사 교구 말사인 금당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 아래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마이산 탑사는 저의 증조부이신 이 갑자 룡자(이갑룡) 할아버지께서 1860년 임실군 둔덕면에서 태어나셔서 부모님을 어려서 여의시고 중생을 위한 출가를 결심하고 전국 명산을 다니다가 결국 출가하지 못하고 1885년 25살 때 이 마이산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마이산에 들어오셔서 1년간 화엄굴에서 수도를 하시다가 마이산 선신이 이갑룡 거사님에게 수행의 방법을 중생을 위한 수행을 해야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회피나 도피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말씀을 듣고 이갑룡 거사님께서 현재 탑사의 자리에 1886년에 들어오셔서 그 자리에서 탑을 쌓기를 결심을 하신 거죠. 탑을 쌓은 이유는 타포니(tafoni) 현상으로 떨어져 나온 돌들이 암마이산과 수마이산에서 많은 돌들이 탑사 부근에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의 돌멩이들을 쌓아서 나라의 독립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동학혁명으로 전봉준이 처형되면서 중국군과 일본군이 들어와서 나라를 괴롭히는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동학혁명의 시대, 그 시대의 나라를 위한 기원을 하기 위한 솟대의 탑을 쌓기 시작한 것이 유래가 되어서 지금까지 탑사가 이어져 왔습니다.

 

김봉래 : 무슨 솟대의 탑이요?

 

진성스님 : 아무 사리가 들어가지 않고 만백성의 마음을 담은 항아리에다가 하얀 쌀을 넣어서 그 안에다 넣고 탑을 쌓아 올렸어요. 탑을 쌓아 올리면서 이것은 하나의 서낭당의 개념으로서 민중의 아픔을 하늘에 알리는 솟대라는, 그런 솟대를 탑으로 명칭을 해서 쌓았지만 1976년도에 문화재에 등록될 당시는 솟대의 표현보다는 탑으로 표현이 된다 그래서 파고다라는 이름 때문에 탑으로 등재가 되었죠.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그래서 탑사의 유래가 되는 거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거기 와서 기도도 하면서 어떤 영험을 경험하는 그런 사례도 많았을 것 같아요.

 

진성스님 : 네. 많습니다. 마이산 탑사는 특히나 음과 양으로 돌멩이로 쌓아 올린 탑이 주를 이루고 있고, 108개로서 만 중생들의 108번뇌의 망상을 다 치유하고 108가지의 소원을 기원하기 위해서 쌓은 탑이기 때문에 마이산의 음과 양의 기운이 합쳐져 있어서 굉장히 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천지탑 부근에 와서 기도를 드리신 분들이 많은데 특히나 이 곳에 와서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못 낳는 사람이 자식을 낳거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그러한 일들이 많이 있었고 정치인이나 연예계 진출한 사람들도 많이 와서 기도를 하고 있어서 좋은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런데 사찰의 위상과 역할을 스님께서 새롭게 일신하시는 것 아닌가 싶은데요. 어떻습니까. 스님.

 

진성스님 : 마이산 탑사는 말 그대로 이갑룡 거사님께서 일반인으로서 중생을 위해서 혼자 독수행을 하면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마음으로 왔습니다만 이갑룡 거사님께서는 불교, 유교, 도교를 중심으로 수행을 하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나이가 많이 들어서 저희 상할머니를 만나서 결혼을 하시고 그 곳에서 지금 제 아래까지 5대째 정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갑룡 거사님께서는 오로지 중생들을 위해서 자기의 희생으로 많은 이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억조창생의 구제를 위해 수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삶은 이 탑을 잘 지키고 보존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도처로서 유지될 수 있도록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가장 해야 될 일이 이런 훌륭한 탑의 업적을 쌓은 곳에서 많은 중생을 위해서 복지 나눔 사업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고 그렇게 생활하고 나가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이웃과 함께하는 사찰로서 거듭나고 있다 이런 말씀을 해주신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우리 진성스님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생각을 해요.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기여를 하고 계신데, 그런 부분을 좀 일목요연하게 여쭤봐야 될 것 같아요. 어떤 활동들이 지금 되고 있는지요.

 

진성스님 : 저는 1985년도에 정읍 다천사 벽산 큰스님을 계사로 해서 출가했습니다. 92년도까지 공부를 하는 도중에 저희 조모님께서 위중하셔서 마이산에 들어가서 92년도부터 탑사에서 총무 소임으로 살아왔습니다. 탑사는 일반인들의 소원을 비는 기도터로서 있지만 예전에는 관광지로 남아있는 사찰이었습니다. 그저 그냥 놀고 갔다 구경하고 가는 그런 사찰이었는데, 사찰의 면모를 사찰다운 사찰로 꾸며보자 생각하고 1992년도부터 제가 불사를 시작을 했습니다. 첫 번째 불사는 명칭의 불사, 집사(舍)자로 쓰여진 사찰을 절사(寺)자로 바꾸고, 또 영신각 안내판, 종각, 종무소 등을 설치해서 종사를 했고, 그것을 하면서 갑룡장학회를 설립을 하면서 복지 활동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갑룡장학회도 소개를 해주셨습니다만 여러 가지 복지 활동들이 있죠.

 

진성스님 : 그렇습니다. 제가 갑룡장학회를 운영하면서 이보다 더 체계적으로 복지 활동, 사회적으로 많은 이웃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절 자체적으로 여러 일을 해왔지만 이보다는 더 좋은 것이 뭐냐 하면 진안군 자원봉사센터와 함께 나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안군 자원봉사센터와 함께 나눔 복지 활동을 전개했는데, 특히 우리가 가장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백미가 있습니다. 부처님께 자비를 소원을 비는 백미 공양을 올린 것을 연간 2회 나눠서 사랑 백미 나눔으로 전달식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아. 백미 나눔.

 

진성스님 : 그 백미 나눔은 소년소녀 가장들과 독거노인 어르신들에게 각 20kg씩을 선정을 해서 백미 나눔을 진안군 자원봉사센터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진안군 자원봉사센터와 마이사 탑사 나누우리 봉사자들과 함께 삼계탕 및 밑반찬을 만들어서 나눔을 실천하고 있고 도시락을 이용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원봉사센터의 우수한 봉사자를 위한 워크숍을 하고 있습니다. 갑룡장학회가 26년 동안 해오다가 2010년부터 자원봉사센터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자원봉사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들을 보니까 학생들 노모님들이 많습니다. 저희들 자원봉사센터가 2만 9천 명의 군민이 있습니다만 연간 5,636명이라는 봉사자가 연간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봤을 때 왜 이렇게 봉사자들이 갑작스럽게 늘었냐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갑룡장학회가 2010년부터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봉사를 많이 한 학생들 점수를 줘서 봉사하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장학금 제도를 돌렸습니다. 연간 1,000만 원에서 1,500만 원을 봉사자를 위한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지급을 하다 보니 그 부모님들도 학생들도 할머니들도 많은 사람들이 봉사에 참여하는 이유가 늘어나서 진안군 자원봉사센터가 말 그대로 전국에서 자원봉사 잘하기 운동 1위를 5년 연속하고 있고 대통령 표창을 두 번이나 타고, 내지는 집짓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 집짓기 운동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호응도 잘 해주시고 거기에 맞는 전국 집짓기 사랑 운동을 해서 또 1위를 타고 있는 이 봉사로 전국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진안군 자원봉사센터를 제가 지금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진성스님 : 자원봉사센터에서 가장 특이한 게 뭐냐 하면 우리 태고종 쌍봉사라는 절과 마이산 탑사가 함께 어르신 100명을 매년 1회 초대해서 생신상을 차려드리고 있습니다. 생신 잔치상을 차려드리는 것을 시골 지역에서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자녀분들은 서울에 다 나가 계시고 그렇기 때문에 외로움을 많이 타는 어르신을 하루 초대해서 즐겁게 노래도 하시고 즐겁게 춤도 춰 주고 또 많은 공양물을 대접하는 생일 축하 파티를 100분을 해드리는 것이 저희 봉사활동이 하는 일입니다. 저희들이 가장 또 잘 하고 있는 것이 빨래하기입니다. 빨래차를 운영을 해서 각 시골마다 다니면서 이웃들의 이불빨래까지도 해주는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이동 빨래차량 운영.

 

진성스님 : 네.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는 간식차량을 저희들이 준비하고 있어서 그 간식차량은 물론 진안군에서 협조해서 나와 있는 차지만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은 다 봉사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간식 차량을 제공해서 이웃들에게 찐빵, 홍삼 넣은 찐빵을 이렇게 나눔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스님 보니까 교도소 교화 활동, 소년원 교정 활동, 군부대 포교 활동 등 다양하게 많이 하고 계시고, 또 제가 눈여겨 본 게 탑밴드 음악 봉사단, 기대돼요. 어떻게 하는지.

 

진성스님 : 저희 음악봉사단이 개인적으로 상담을 보살님들과 종교상담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 보살님들이 가정에서 우울증 내지는 스트레스 이런 것으로 인해서 생활하는 데 힘든 과정이 있어서 우리 불법을 전하는 데도 한계가 있고 이 분들에게 어떤 것을 전해줘야만 그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서 제가 색소폰 모임과 난타 모임을 만들어 가지고 가르쳤어요.

 

김봉래 : 아. 스님이 직접 가르치셨어요?

 

진성스님 : 네. 제가 고등학교 때 음악을 전공하고 그래서 그런 것으로 인해서 저도 배우면서 같이 음악 활동을 하면서 봉사단을 이용해서 자기 마음 스트레스도 풀고 음악을 통해서 요양원에 가서 공연도 하고 군부대 가서 공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분들이 스트레스를 풀면서 좋은 일도 하는 계기가 되면서 신도회 활성화, 봉사단 활성화가 잘 되고 있죠.

 

김봉래 : 요즘 코로나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진성스님 : 2020년도부터는 공연이 전면 취소되고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이 봉사를 이용해서 도시락을 만들어서 이웃에게 전달하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고, 내부는 장엄등을 만드는 공부를 시키거나 음악 활동으로서 내부에서 연마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비대면이라고 해서 소년원 같은 경우 우리들이 매달 2회 들어갑니다. 들어가서 소년들 생일 파티를 해주고 나오는데 비대면으로 하죠. 저희들이 음식을 차려주고 나오면 아이들이 와서 먹고 가고, 그리고 교도소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비대면으로 아이스크림을 넣어준다거나 떡을 넣어준다든가 등등 여러 가지 복지활동을 계속 비대면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런데 아까 나누우리라고 태고종 스님들과 함께 창립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외 사업들도 펼치고 있다고요.

 

진성스님 : 2010년도에 태고종 33명의 스님들과 함께 100만 원씩 추렴을 해서 나누우리 봉사단을 조직해서 사단법인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라오스 학교 건물 신축을 한다든지 캄보디아에 우물을 파준다든지 이런 사업을 국외적으로 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환우 돕기 운동, 산사음악회를 통해서 환우 돕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환우 돕기 운동이요.

 

진성스님 : 10세 이하 중증 어린이 환자, 치료를 돕는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사 건립, 학용품 지원 사업, 교과서를 만들어서 제작하는 지원 사업, 지하 관정을 파서 정수 식수대 사업.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월주 큰스님께서 캄보디아에서 2,000기를 식수대 사업을 하셔서 저희가 직접 가서 봤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완해서 저희들은 지하 관정 60m 이상을 기계로 파서 물을 끌어 올려서 정수기를 거쳐서 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현재 캄보디아 씨엠립에다가 9개 학교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지 씨엠립에는 나누우리 현지 사무소가 있어서 매달 급여를 지급하면서 9개 학교를 지속적으로 필터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이런 일을 하시면서 정말 보람도 크실 것 같아요. 스님.

 

진성스님 : 네. 보람 많이 큽니다. 나누우리 봉사단을 이용해서 국내외 사업을 하고 있는데 전라북도 교구장이 되어서 우리 교구 차원으로 뭔가를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이 들어서 닥락성과 전라북도가 우호교류 협약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구에서는 닥락성에 지하 관정 태양열 정수기를 설치해서 지금 세 개 학교를 관리하고 있고.

 

김봉래 : 닥락성은 베트남의 한 성인 거죠.

 

진성스님 : 네. 베트남에 한 주를 이루고 있는 닥락성이라는 곳입니다. 이 닥락성에서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외 복지사업 중에서도 떡볶이 나눔을 닥락성에서도 하고 있고 그 곳에서 식수 사업을 하면서 사찰 간에 문화교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절 노동자를 이주시키고 교육을 하는 사업도 하고 있고, 닥락성에다가 한글학교를 세워서 선생님 두 명에게 월급을 주면서 현재 우리 재백에 있는 단체에서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시집을 오는 다문화 가정 한글 교육을 한다든가 기술자, 노동자들에게 한글 교육하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마이산 탑사 주지 진성스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스님 아까 태고종의 전북교구 종무원장으로 활동하고 계신 부분도 조금 소개를 해주셨는데요, 이렇게 종단의 지역 포교에 동참하는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지금 지방화 시대를 맞아서요.

 

진성스님 : 맞습니다. 교구 종무원장으로서 교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부처님의 말씀을 종도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입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교구 종도들이 지역사회에서 얼마만큼 역량을 피우고 얼마만큼 일사일선행(一寺一善行)을 할 수 있느냐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포교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봉래 : 아. 네. 일사일선행이요.

 

진성스님 : 네. 한 사찰이 한 번 정도의 선행을 쌓아가자고 해서 종도들에게 배양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전라북도 교구는 무형문화재 제18호인 전라북도 영산작법보존회가 단체문화재가 있습니다. 전라북도만의 영산작법으로서 이 곳에는 작법문화재와 지화장엄문화재, 그 다음 범패문화재가 탄생하는 그런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이런 문화재를 시연을 통해서 해외에 알리고 닥락성과 문화 교류를 통해서 닥락성에도 영산재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해외까지 알리는군요. 우리 전통문화를요.

 

진성스님 : 네. 전통문화를 해외에 알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영산문화재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프로그램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러다 보면 종단 집행부에서도 우리 교구장스님에 대해서 대단히 든든하다 이런 느낌을 가질 것 같아요.

 

진성스님 : 네. 그렇습니다. 우리 교구종무원이나 각 교구협의회 때 가보면 많은 분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종무원장 행정 업무를 보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고 있습니다만 많은 원장스님들께서 나도 한 번 해보겠다.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 기쁩니다. 종교인으로서 성직자로서 이런 복지 문화를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현 시대가 가장 바라는 이상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런 배양운동을 통해서 남들이 나를 따라했을 때 그 부분이 가장 행복한 부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 마이산 탑사에서 5대째 포교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인데 이렇게 크게 성공하게 된 비결이라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스님.

 

진성스님 : 실천입니다. 돈을 많이 모아서 좋은 일을 하겠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내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만큼 그 속에서 많은 이들에게 복지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한 가지 스님으로서 절에 사는 사람으로서 부처님 밥을 공짜로 먹는 게 아니라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많은 지식과 공양물을 많은 대중에게 나눠줬을 때, 그 분이 종교가 다 다르고 이상과 문화가 다 다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이 주신 공양물을 받아서 감사히 먹습니다. 이게 바로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희열을 느끼고 부처님에 대한 감사와 감은을 느끼고 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김봉래 : 요즘 탈종교 시대라고 해서 종교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보는 시각도 많은데, 진성스님께서는 우리 한국불교 또 한국불교 종단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시고 또 그런 전망 속에서 우리가 어떤 일을 어떻게 준비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보시나요. 좀 큰 질문입니다만.

 

진성스님 : 네. 우리 불교의 미래는 저는 밝다고 봅니다. 타종교를 믿는 분들이 불교에 와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물론 당신들의 포교활동을, 우리들을 포섭하려고 하는 느낌도 있겠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없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길이 있고 행위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러한 일들을 스님들께서 많이 협조하면서 많이 따라와 주시니까 분명히 불교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무종교 시대, 무신론 시대라고 말하죠.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종교를 버리고 차라리 종교가 없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사람들에게 손을 딱 잡고 말합니다. 좋아. 무신론도 좋지만 한 가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로 무소유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태적인 종교를 갖고 있기 때문에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당신 몸에는 부처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에 당신은 부처요. 보살님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이기 때문에 내가 바로 보살님을 친견하고 보살님을 위해 헌신하리다 그런 마음으로 그 사람들을 대하고 대화를 나누면 무신론자가 바로 불교신자가 되는 거죠. 정말 안타깝게 교회를 떠나는 사람, 절을 떠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제가 하고 있는 이 실천하는 봉사 마음에서는 많은 이들이 더 오고 있습니다. 오히려 무신론자들이 불교를 더 찾게 되고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 불교는 미래에서 나눔과 복지를 실천하는 마음으로, 희생한다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분명히 불교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실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 지난 1990년대 이후 굉장히 커지고 있거든요. 앞으로도 굉장히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조금 더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 커지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진성스님 : 네. 절에서는 기복신앙인 기도를 많이 합니다. 당연히 이런 기복신앙이 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 전에 행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복지와 나눔입니다. 그 다음에가 바로 우리 보살님들에게 불교적 사상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육과 문화 창달을 계속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면서 많은 이들에게 불교가 어렵지 않은 이웃불교라는, 또 불교가 쉬운 불교라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도록 같이 화합을 통해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면 분명히 불교는 미래가 밝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불교문화를 이루어서 한국불교를 세계화시키는데 우리가 앞장서서 나간다면 분명히 불교의 발전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불교적인 사상과 삶이 굉장히 더 주목받고 가치를 발휘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좀 들거든요.

 

진성스님 : 제가 전라북도 녹색연합 이사를 지금 맡고 있습니다. 녹색연합에서는 환경운동을 철저히 해나가고 있는 단체입니다만 이 곳에서도 보면 우리가 지어놓은 잘못을 통해서 그 인연의 과실로 인해서 우리가 달게 받는 자연의 재앙이 있습니다. 이러한 재앙을 줄이기 위해서 환경단체에서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죠. 지금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것을 멀리한다면 분명히 우리는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연법에 의해서 부처님의 법에 의해서 부처님의 공양을 부처님의 인연 과실을 많은 이들에게 나눔을 통해서 실천해 나간다면 부처님의 뜻이 많은 중생에게 전달이 되면서 인연의 법이 이어지리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김봉래 : 네. 특히 세대 간의 갈등도 많은데. 어떻게 보면 소통일 수 있거든요. 어떻게 스님 좋은 소통 방법을 좀.

 

진성스님 : 많은 사람들과 갈등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종교가 다르면 그 종교는 미웠고요, 내 이상과 문화가 다르면 그 사람을 싫어했습니다.

 

김봉래 : 보통 그렇죠.

 

진성스님 : 그런데 그 갈등을 화합으로 바꿨습니다. 오죽하면 그랬겠어. 그래서 그 사람을 용서를 하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 사람 마음으로 대하니까 오히려 그러한 갈등이 해소가 잘 됩니다. 또 한 가지 그런 갈등을 통해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나 자신을 더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제가 봉사와 나눔을 실천해 나가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이 되어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그런 면에서 우리 종단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스님께서 어떻게 보면 고군분투하고 계신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성스님 : 전라북도 교구 재임이 시작이 됩니다. 다른 스님이 등록을 하지 않아서 전라북도 교구에서 초대로 다시 재임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스님 축하드립니다.

 

진성스님 : 그 이유가 바로 그런 것 같습니다. 진성스님이 교구에서 열심히 하니 한 번 더 교구를 위해 열심히 해라. 그래서 저는 종단에 누가 되지 않는 사람이 되자, 그것 한 가지를 가지고 삽니다. 내가 종단에 누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내 삶을 잘 살아야겠다. 내 자신을 알아차려야겠다. 내 자신도 모르고 남을 어떻게 알 것이며 내 교구를 모르고 타교구를 어떻게 알 것입니까. 그래서 저는 교구에서 열심히 종무행정을 해나가고 나눔과 복지를 실천해서 더 열심히 한다면, 더 헌신하는 정신으로 한다면 종단에서도 아마 예쁘게 봐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고, 그리고 종단 내 많은 분들이 배양운동으로 같이 동참하게 되면 더욱 더 종단이 발전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김봉래 : 지금 스님을 뵈면 힘이 느껴져요. 저도 더불어서 힘이 막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진성스님 : 감사합니다. 열심히 사는 것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어렵지 않습니까. 어렵다고 해서 내가 어려워서 같이 어려워지면 안 됩니다. 내가 어렵지만 내가 더 어려워야 되고, 타인이 더 어려우면 내가 더더욱 어려워져서라도 힘든 일이 있더라도 눈물을 겪더라도 실천해 나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김봉래 : 네 실제로 스님이 그런 실천행을 보여주시기 때문에 그 말씀이 더 힘이 뒷받침되는 것 같아요.

 

진성스님 : 적지만 큰마음을 내고 살고 있고, 태고종단이 발전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또 이웃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런 점에서 저희 BBS 같은 매체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은데, 스님 불교 매체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 이런 기회에 좀 주실까요.

 

진성스님 : 네. 지금 불교방송이 창사 이래 우리나라의 불교가 침체된 부분이 저는 세상에 환히 빛났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외국에 나갔을 때 불교방송을 듣거나 볼 때마다 가슴이 뿌듯합니다. 정말 세계 공중에 떠있는 부처님이, 하늘에 떠있는 부처님이 만중생에게 울림을 내려주시는 이 불교방송이야말로 절실하고 감로수 같은 불교방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불교방송이 현재도 물론 너무 잘하고 계십니다만 우리 불교방송이 복지에 관한 프로, 이 복지와 나눔을 실천하는 승려를 찾아서 칭찬해주는 역할, 이런 부분이 가장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불교는 이판사판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보면 현 시대에 가장 맞는 것이 바로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복지를 계속 운영해나가는 부분을 불교방송에서 찾아서 칭찬해주면 더욱 더 우리 불교가 밝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만 불교방송이 생긴 이래로 저는 어디를 가든 불교방송에 대한 박수를 항상 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고맙습니다.

 

진성스님 : 부처님의 천 눈이 되어주시고 부처님의 천 손이 되어주셔서 많은 우리 불자들이 불교방송을 통해서 부처님의 마음을 어려운 글을 통하지 않고 부처님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는 쉽고 편안한 불교로 볼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불교방송과 함께했으면 좋겠고 불교방송이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봉래 : 고맙습니다. 정말 쉽고 편안한 방송이 되길 저희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진성스님의 앞으로의 원력 또 계획 듣는 것으로 오늘 방송 마쳐야 될 것 같습니다.

 

진성스님 : 오늘 불교방송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불교방송 자리에 앉아봤는데 많은 대중들에게 저의 마음이 전달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제 마음속에는 항상 적지만 큰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하자 그런 마음이기 때문에 이 불교방송을 통해서 많은 이들에게 제 마음이 전달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걱정이 되어서 문이 닫혀 있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어렵지만 내가 더 희생하면서 참고 인내하고 비대면 법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상을 찍어주는 그런 일들이 생기기 때문에 좋은 일이지 않겠나 생각을 합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현 시대에서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내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봉래 : 네. 계속해서 우리 진성스님의 왕성한 활동을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출연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진성스님 :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마이산 탑사 스님 진성스님과 함께했습니다.

 

김봉래 : 네. 여러분 진성스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스님께서는 평소 실천하고 계신 나눔과 봉사를 강조하셨습니다. 부처님 제자로서 부처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은 바로 이웃에게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데요, 그야말로 대승보살도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 진성스님을 본받아서 다함께 정진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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