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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이평화 동환프레쉬푸드 대표 

■진행: 신두식 BBS 경제산업부장

 

신두식 : 말씀드린 대로 오늘은 이평화 동환프레쉬푸드 대표님 모셨습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이평화 : 네, 안녕하세요?

 

신두식 : 동환프레쉬푸드, 좀 낯선 회사인데요. 어떤 회사인지 소개부터 좀 해주시죠.

이평화 : 안녕하세요? 저는 단백질 보충제를 시작으로 모든 분들에게 건강하고 안전하고 맛있는 식품을 제공함을 목표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 동환프레쉬푸드 대표 이평화입니다.

 

신두식 : 설명을 해주셨는데, 건강하고 안전하고 맛있는 식품을 개발하신다고 했는데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이평화 : 저는 올해 스물아홉 살입니다.

 

신두식 : 스물아홉이면 굉장히 젊은 여성 CEO인데, 젊은 기업인인데. 이평화 대표께서 편안하게 섭취할 수 있는 단백질 제품을 개발했다고요? 어떤 제품입니까?

이평화 : 과거에는 대부분 부담스러운 고함량의 단백질 셰이크들이 많았습니다. 또 운동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기도 했고요. 단백질 섭취는 일반인들, 특히 중장년층에게 굉장히 중요한 영양소인데요. 운동하는 사람들만 먹는다는 편견을 깨고 단백질 셰이크 특유의 맛을 없애고 남녀노소 누구나 섭취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신두식 : 단백질을 분말화시킨 건가요? 어떻게 된 건가요?

이평화 : 요새는 단백질 음료제품으로도 많이 나오는데 저희는 분말로 가성비를 더 좋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타먹을 수 있고 집에서도 어린아이들과도 같이 먹을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싶어서 분말로 만들었습니다.

 

신두식 : 단순한 단백질 제품인가요? 다른 것과 혼합이 된 건가요?

이평화 : 저희 단백질은 유청 단백질이라고 해서 우유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기본으로 유산균이나 식이섬유가 고함량으로 들어가있어서 단백질, 근육 보충뿐만 아니라 장 건강이나 배변활동도 더 좋게 하기 위해 만든 제품입니다.

 

신두식 : 일본에서 공부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유학을 가게 되셨어요?

이평화 : 원래는 요리를 너무 좋아해서 일식을 배우고 싶어서 일본에 가기는 했는데 일단 들어간 것은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학교를 나왔어요. 거기서 제가 전공을 한 것은 각 나라 학생들이 모여서 자기 문화를 알리고 교류하는 것을 주로 공부했습니다.

 

신두식 : 거기서 대학을 다니신 건가요?

이평화 : 네, 대학을 다녔습니다. 또 한일교류회에 한복 입고 나가서 한국의 전통을 알리는 문화행사진행도 하고 쿠로시마라는 일본 노인들만 사는 섬에 가서 한국을 알리는 봉사활동을 주로 했습니다. 또 거기서 생활비도 직접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설거지도 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는데 그때 일본어가 많이 늘더라고요. 동네 분들이 한국을 굉장히 좋아해서 저도 굉장히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도움도 많이 받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신두식 : 민간외교역할을 하신 셈인데 그때가 언제쯤입니까?

이평화 : 한 4~5년 전에.

신두식 : 지금은 일본과 관계가 좀 껄끄러운 상황인데, 그 직전 즈음이 되겠네요. 그때는 생활하실 때 어떠셨어요? 일본에서 생활하실 때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이평화 : 네, 지금보다는 관계가 훨씬 더 좋았던 상태였고 일본 분들이 한국을 생각보다 굉장히 좋아하세요. 언론이나 이런 곳에서는 많이들 문제가 있다고 나오지만 실상 그 주민 분들이나 일본 분들은 K-팝도 있고 K-푸드도 좋아하고 한국 사람들을 대체적으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었거든요.

신두식 : 그렇게 일본에서 공부를 하셨고 국내로 들어오셔서 바로 회사에 들어가신 겁니까?

이평화 : 저는 첫 직장은 파주에 있는 도미솔 식품이라는 김치제조회사에 바로 입사를 해서 직장생활을 했었습니다.

 

신두식 : 지금은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평화 : 그렇게 도미솔 식품이 식품산업에 뛰어들게 된 첫걸음이 되었던 곳인데, 잘 다니고 있는 와중에 출근길에 트럭이랑 정면충돌이 일어나서 큰 사고가 났었어요.

신두식 : 개인 차였어요?

이평화 : 네, 부모님께서 주신 차긴 했는데, 파주 특성상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지리여서 차를 이용하고 다녔는데.

신두식 : 트럭이랑 충돌사고가 있었어요?

이평화 : 네, 거의 차는 폐차 수준으로. 폐차도 하고 그때 허리 디스크도 생겨서 입원도 꽤 오래 했었습니다. 그렇게 원래 식품공부도 하면서 일도 같이 하고 더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집에서 쉬게 됐어요. 그러고 쉬는 와중에 편입 준비도 할까 생각을 했었는데 저희 어머니가 공장을 조그맣게 운영을 하시는데 공장일이 너무 바쁘니까 일을 도와달라고 조심스럽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공장에 들어가서 일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신두식 : 어떤 점에서요?

이평화 : 어머니가 일을 하시는 모습을 처음 봤고 저는 나름대로 어머니가 공장을 운영하시니까 어느 정도 저희 경제상황이 괜찮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직접 공장가서 일을 하니 제가 생각했던 현실과는 굉장히 많이 달랐고 또 어머니가 직접 현장에 내려가서 생산하시는 모습도, 그렇게 직접 스티커라벨 작업하시는 모습, 그런 노동을 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굉장히 아팠고 그랬습니다.

 

신두식 : 그래서 가업을 이어받으신 셈인가요?

이평화 : 네, 그래서 처음으로 그런 모습을 보고 제가 넋놓고 있을 수만은 없겠다 싶어서 바로 준비를 하고 이 악물고 제 사업을 구상하게 됐습니다.

 

신두식 : 그러면 어머님이 하시던 사업에서는 주로 어떤 제품들을 했나요? 지금 개발하신 것은 단백질 제품인데. 그때 생산하고 있던 제품인가요? 아니면 새로 개발하신 건가요?

이평화 : 지금 제품은 제가 개발한 제품입니다.

신두식 : 그 전에는 어떤 제품들이 주로?

이평화 : 그 전에는 진짜 말 그대로 고함량의 단백질 셰이크, 운동하는 사람들만 먹는 그런, 단백질만 들어있는 보충제를 주로 생산하셨습니다.

 

신두식 : 그러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한 동기가 있나요?

이평화 : 저는 부모님이 너무 바쁘셔서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컸어요.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장 애틋하고 또 제가 가장 사랑하는 분들인데, 지금도 함께 살고 있어요. 그런데 항상 식사하시는 것을 보면 입도 짧아지시고 음식물을 잘 넘기지 못하시더라고요. 또 위장도 약해지셔서 소화도 잘 안 되시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맛있게 음식을 드실 수 있을까 정말 많이 고민을 했어요. 왜냐하면 나이가 들수록 좋은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 단백질 셰이크도 만들어 드렸는데 단백질이 너무 많이 들어가다 보니까 특유의 비린맛이랑 텁텁한 맛이 강해서 꾸준히 섭취하지는 못하시더라고요. 몸에 좋은 음식도 맛있어야 먹잖아요?

신두식 : 맛있어야 좋죠.

이평화 : 자꾸 손이 가야 먹는 것인데. 그렇게 계속 어떻게 하면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가 맛있게 드실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아침마다 유산균 음료는 항상 꼬박꼬박 챙겨 드시더라고요? 저걸 보고 아, 저거다, 요구르트에 단백질을 접목시켜서 한 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단백질에 유산균을 접목한 요거트맛 단백질 셰이크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름도 요거트 단백질에서 요거단백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신두식 : 제품개발하고 출시하기까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좀 소개해주시죠.

이평화 : 이 제품을 꼭 출시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기면서 눈만 뜨면 일을 했어요. 조그만 공장이고 굉장히 어려웠던 시기였어서 인력조차 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직접 현장에 내려가 원료도 나르고 생산도 직접 하면서 낮에는 공장일을 하고 밤에는 제 일을 하면서 제 제품이 태어날 수 있도록 아등바등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큰 수술을 하셨어야 했는데 그때 간호를 하면서 누워있는 어머니 얼굴을 처음으로 한참동안 바라보게 됐고 그때 손을 잡았는데 손이 너무 거칠거칠하신 거예요. 그래서 들여다보니 손에 지문이 다 닳아있으신 거죠. 저한테는 가장 예쁘고 멋있는 분이셨는데 많이 늙으신 모습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도움만 받으며 살 수는 없겠다, 스스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겠다. 그래서 더 빠르게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신두식 : 어떻게 보면 지금 한참 취직을 할 나이, 또는 창업을 하기에도 좀 이른 나이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20대 후반이니까요. 그런데 이걸 하면서 어떻게든 첫 번째 제품이 나오고 어떻게 보면 작은 성공, 큰 성공이 될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인데. 제품이 출시됐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이평화 : 처음에는 빨리 해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앞만 보고 가느라 사실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제 제품이 처음으로 출시됐을 때는 정말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요. 엉엉 울었어요. 혼자.

신두식 : 혼자 울었어요?

이평화 : 네, 그렇게 다 울고 나니까 그제야 조금 두려워지더라고요. 아, 저질러버렸구나, 이것을 어떻게든 끌고 나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신두식 : 두려워지더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CEO로써 겪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요즘 단백질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어떻게든 경쟁을 해야 되는 상황이잖아요? 지금 매출 부분은 기대만큼 나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평화 : 옛날에는 확실히 운동하는 사람들만 단백질 보충제를 찾았었는데 요새는 중장년층들이 더 많이 찾으세요. 또 각종 방송에서도 단백질의 필요성이나 건강식품에 대한 것도 많이 알리고 있고, 특히 코로나 때문에 건강식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져서 앞으로 단백질 시장규모는 점점 커져갈 것으로 생각하는데. 저는 매출 부분은 아직 갓 태어난 회사라 많이 욕심은 부리지 않고 있어요. 그 전에 정말 최선을 다해서 저희 제품을 많은 분들에게 알리는 것을 첫 번째로 하고 있습니다.

 

신두식 : 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되면서 건강에 신경을 쓰는 분들이 많아졌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도전과제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잖아요? 코로나19 상황에서 기업 운영하시는 입장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또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한 말씀 해주시죠.

이평화 : 저는 아무래도 건강식품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건강식품수요가 늘어나게 된 것도 있고 소비자들도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어서 건강식품에 대한 수요가 많이 늘어났어요. 분명 코로나로 인해 매출도 많이 줄어들고 안 좋아진 기업들도 있지만 이렇게 코로나로 인해서 다 죽어가던 기업이 살아나는 곳도 분명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저희 식품산업으로 본다면 이를 계기로 앞으로 미래식품산업은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두식 : 그렇군요.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출연하신 분이 좋아하는 노래나 음악을 들려드리는 시간이 있는데요. 바로 명사의 음악시간입니다. 동환프레쉬푸드 이평화 대표님께서는 어떤 음악을 듣고 싶으세요?

이평화 : 저는 노사연 선생님의 <바램>이 듣고 싶습니다.

신두식 : 나이대에서 자주 듣는 노래는 아닐 것 같은데, 어떻게 선정하시게 됐습니까?

이평화 : 제가 할머니 손에 커서 그런지 트로트를 굉장히 좋아해서 즐겨 듣는데, 이 <바램>이라는 노래가사가 모든 부모님들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밤에 혼자 일할 때 이 노래를 들으면서 괜히 위로받고 토닥임 받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힘들 때마다 듣곤 했어요.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는 <바램>이라는 곡이 듣고 싶습니다.

 

신두식 : 동환프레쉬푸드 이평화 대표님께서 신청하신 곡입니다 노사연 씨의 <바램> 듣고 계속하겠습니다.

[노래 청취]

 

중간에 들으시는 분들은 궁금하실 텐데요. 오늘은 동환프레쉬푸드 이평화 대표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대표님, 개인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혹시 불교와 인연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평화 : 제가 사실은 기독교 집안이었어요. 아버지 집안이 기독교고 저희 어머니 집안이 불교셨는데.

신두식 : 반반이네요.

이평화 : 네, 결혼하시고 어머니도 아버지와 함께 교회를 다니게 되셨어요.

신두식 : 원래 반대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아버님 쪽으로 가셨네요?

 

이평화 : 네, 그래서 그렇게 다니게 됐는데 스무 살 때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좀 멀어지게 되시고 세월이 흐르면서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불자로 바뀌셨어요. 어머니도 마음 둘 곳이 없으셔서 절에 많이 다니셨는데 절만 다녀오시면 항상 편안해 하시더라고요.

신두식 : 절에 가면 편안합니다.

이평화 :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던 터라 절이 약간 낯설게 느껴졌는데 어머니가 편안해 하시니까 저도 괜히 편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다 작년에 집안에 안좋은 일이 생기면서 공장도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고 괜히 하늘에 원망도 했었어요.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한 상태라 기분 전환하러 지리산으로 바람을 쐬러 갔는데 우연히 신흥사라는 곳에 들어가게 됐어요. 다리가 아파서 절 안에 놓여있는 방석 깔고 앉아있는데 앞에 놓인 불상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그냥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요. 저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신두식 : 왜 그런지 모르는데 그냥 눈물이 났어요? 법당에서요?

이평화 : 네,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한참 울고 집에 올라와서 어머니한테 저도 절에 데려가달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불자가 됐습니다.

신두식 : 그러면 얼마 되지 않으신 거네요? 작년에 가셨으면?

이평화 : 네, 작년 11월부터 절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신두식 : 어떠세요? 절에 다니시니까?

이평화 : 진짜 이상하게 자연 속에 있어서 더 그런지 몰라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오히려 잡생각이 사라지더라고요. 그 전만 해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하니까 생각하지 않아야 될 것도 계속 생각하게 되고 너무 힘들었는데 절만 가면 편안해지고 또 잡생각도 사라지고 그러다 보니까 너무 마음이 좋은 것 같아요.

신두식 : 사업하시면서 절에 가시는 것이 많이.

이평화 : 심리적 안정으로는 정말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신두식 : 그러시군요. 요즘에는 집에 가까운 사찰에 가시나요? 어떠신가요?

이평화 : 지금은 제가 불자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신두식 : 사업하시는 곳이 어느 지역이죠?

이평화 : 파주에 있는 지역이에요. 파주에 절이 많다고는 지금은 딱히 한 군데 다니는 곳은 없고 좋은 곳 있으면 추천해주시면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신두식 : 좋은 사찰을 만나서 자주 다니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젊은 기업인 가운데 한 분인데, 또래 친구들이라고 할까요? 어떻게 보면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취직을 한 분도, 창업을 한 분들도 있을 텐데. 다른 분들과, 삶에 있어서 지금 어떻게 보면 가업을 이어 받았지만 사업을 시작하신 셈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평화 : 또래 친구들이랑 다른 삶은 없는 것 같아요. 각자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모두 같으니까. 그런데 딱 하나는 대표라는 책임감, 무게감 때문에 좀 심리적 압박감이 많이 있는 것이고 어떻게든 제 스스로 자본을 창출해야 하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부담감도 많이 크고요. 또 심리적인 외로움은 밤늦게 혼자 일할 때 좀 외로운 점, 쓸쓸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신두식 : 어떻게 보면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굉장히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는데 요즘은 어떻게 그런 시간들을 좀 가지세요? 어떠세요?

이평화 : 친구들이랑 오히려 더 많이 못 만나게 됐어요. 일을 혼자 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처리해야할 것도 많고 그러다 보면 친구들이랑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는지 찾고 있고요. 그래서 요새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법륜 스님의 <행복>이라는 책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읽어봤는데 그게 참 심리적 안정에 도움도 많이 되고 오히려 책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해답을 찾고 있는 편인 것 같습니다.

 

신두식 : 그래도 요즘 정치권에서도 30대 대표가 탄생할 정도로 새바람이 불고 있고, 그리고 코로나19 시대에 SNS라든지 유튜브라든지 이런 것을 통해서 많은 창업하는 분들이 나오고 있거든요? 젊은 분들 중에? 그래서 여쭤보는 것인데, 이런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평화 : 코로나로 인해서 많이 바뀌었잖아요? 그런데 정치도 젊은 분들에 의해서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앞 세대와 저희 세대와 세대차이도 많이 나는 이유도 유튜브나 인터넷이나 이런 것이 너무 발달하다 보니까 전문적이라기보다는 확실하게 정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좀 필요하다고 느꼈고. 좀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옛날에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없었는데 요새는 그래도 그런 것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오히려 만나면 20대 초반 애들도 정치 이야기를 하고 그런 것들을 보면 앞으로 더 나아가서 이런 젊은 분들이 많은 것을 바꾸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두식 : 정계에 진출하는 젊은 정치인들이 그런 젊은 세대들을 대변할 수 있다, 이렇게 보시나요? 그동안에는 정치인들이 자기 세대, 또는 유권자로써 자기 정당을 지지하는 쪽에 많이 지향되어 있었잖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젊은 정치인들이 입성했습니다. 그런 분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가 됐는데, 그런 부분에서 젊은 세대들을 대변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나요?

이평화 : 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세대다 보니까 현재 젊은이들이 겪는 고충이나 애로사항들을 가장 잘 알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 부분을 잘 캐치하는 것에 있어서 기존에 있던 정치인 분들보다는 확실하게 잘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는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신두식 : 같이 동시대인으로써 느꼈던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데는 젊은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이시군요. 지금 가업을 이어받으신 셈인데, 가족과 함께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장점도 있을 테고 단점도 있을 텐데, 어떤 생각이 있으세요?

이평화 : 먼저 장점은 어머니가 항상 옆에 있다는 것. 또 단점도 어머니가 항상 옆에 있다는 것.

신두식 : 든든하면서도 간섭도 하실 것 아니에요?

이평화 : 네, 일단은 제 말을 가장 잘 들어주시고 온전한 제 편이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그런데 또 단점이 일이 끝난 후에도 계속 일 이야기만 하고.

신두식 : 주말에도 하시겠는데요?

이평화 : 그렇죠. 일의 연속인 거예요. 엄마와 딸의 대화는 이제 끝났고 사무적인 이야기 이런 것들을 주로 하게 돼서. 그리고 또 어머니가 앞에 먼저 사업을 하시다 보니까 저랑 하는 방향이 많이 달라요. 그런 것에서 좀 많이 트러블도 일어나고요. 그런 것에 조금 단점이 있습니다. 이해를 시키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신두식 :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나가는지가 과제네요. 그래도 든든한 파트너이자 버팀목이 있으신데, 어머님께 한 말씀 하신다면 어떤 말씀 해주시겠어요?

이평화 : <바램>의 가사처럼 저희 어머니가 짊어진 무게도 많으시고 평생 바쁘게 걸어오시느라 손 다리 다 닳으시고 많이 아프셨어요. 이제 어머니한테 한 말씀 하자면 이제 그 짐 저랑 같이 나눠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고 배울 것도 많고 어머니가 보시기에는 많이 불안하시겠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제 어머니 손 놓지 않고 씩씩하게 나아갈테니 믿고 응원해주세요. 사랑합니다.

 

신두식 : 어머니께 음성으로 편지를 쓰셨는데 사업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앞으로 개발하고 싶은 제품, 구상하고 있는 제품, 또는 준비 중인 제품이 있습니까?

이평화 : 지금 단백질 셰이크의 원료가 대부분 특성상 외국에서 수입해서 오는 원료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저희 한국에 식재료가 좋은 것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현재 구상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각 지역특색재료를 사용해서 단백질 셰이크나 다른 건강기능식품 같은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해보고 싶습니다.

 

신두식 : 요즘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청년 기업인으로써 앞으로 도전을 하는 사람에게 이것만은 꼭 준비해라, 이것만은 꼭 피해라 이런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시겠어요?

이평화 : 저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난 청년들이 많지만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주변에 부정적이고 나의 자존감을 낮추는 사람들을 멀리하라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사람들이 툭 내뱉는 말 한마디에 내 소중한 마음을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안 그래도 많이 힘들 텐데, 코로나로 많이 힘들어진 시기지만 그런 사람들을 멀리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목표점을 향해서 뭐든지 해보려는 젊은 용기를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신두식 : 나가사키에서 대학시절을 보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할 때 일본인 친구들도 있었을 텐데. 젊은 일본인들이, 친구들이 생각하는 한국에 대한, 또는 그때 이평화 대표님께서 느꼈던 일본에 대한,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이평화 : 저도 사실 일본에 가기 전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사이가 안 좋았잖아요? 인식도 안 좋았고. 사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저는 거기가서 생활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좀 싫어하고 멀리하면 어떨까, 그것에 대해서 조금 무서웠던 점도 있었고.

신두식 : 그랬을 수 있죠. 혼자 가야 하니까.

이평화 : 네, 그래서 조금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사키에 도착해서 학교생활을 했는데 젊은 일본 친구들이 굉장히 한국을 좋아하더라고요? 그냥 학교에만 가더라도 저희 한국인들 주변에 몰려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신두식 : 한국 유학생들이 좀 많이 있었나요?

이평화 : 네, 있었어요.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이 있었는데 유독 저희한테만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고요. 대부분 물어본 것은 K-팝.

신두식 : K-팝이 많은 역할을 하고 있군요.

이평화 : 그리고 잘생긴 연예인.

신두식 : 한국 드라마?

이평화 : 네, 드라마. 그리고 화장품. 화장하는 법도 많이 물어보고.

신두식 : 한국 화장품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이평화 : 굉장히 많아요. 오히려 자기네들 화장품보다 한국 화장품을 더 쓰는 그런.

 

신두식 : 그 정도에요? 예전에는 거꾸로였는데 이제는 한국 화장품이 일본에서 인기가 많군요.

이평화 : 네, 맞아요. 그리고 김치도 항상 저희는 김치를 먹잖아요? 그 김치에 대해서도 되게 궁금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친하게 지내고싶다고 다가와줘서 학교생활을 굉장히 편하게 했어요.

 

신두식 : 거기서 한일교류회활동도 하셨다고 아까 언급을 했는데 거기서는 어떤 활동을 하신 거예요?

이평화 : 한일교류회에서 바로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국음식만들기 같은 프로그램이더라고요. 그러면 직접 한국음식도 만들면서 일본 친구들이랑 일본에 있는 마을 주민들이랑 교류도 하고 음식 소개도 하고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었는데 그때 대표적으로 준비했던 음식이 잡채, 김밥, 불고기, 떡볶이, 양념치킨 이렇게 준비를 했는데 인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신두식 : 한국음식을 잘 소개하셨군요. 시간이 거의 다 됐는데요. 이평화 대표님의 올해 목표와 계획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이평화 : 올해 목표는 저희 요거단백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또 더 안전한 식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한국 식품산업에 도움이 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더 공부하고 더 겸손한 자세로 열심히 기업을 운영하겠습니다.

신두식 : 시간이 다 됐는데요. 앞으로도 한국의 식품산업 발전, 국민 건강을 위해서 많은 역할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평화 : 감사합니다.

신두식 : 지금까지 이평화 동환프레쉬푸드 대표님과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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