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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이학종 작가

방송 : 2021년 4월 25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인류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날을 기념하는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사찰마다 연등이 내걸리기 시작했고 시내 곳곳에는 봉축탑이 불을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3천년 전 부처님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가르침을 주시고 몸소 모범을 보여주셨는데요,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은 바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서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부처님의 생애를 다룬 책이죠, <붓다 연대기>라고 하는 책을 내신 불교 언론인 출신의 이학종 작가님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네. BBS 스튜디오에 이학종 작가님 모셨습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이학종 : 네. 안녕하세요.

 

김봉래 : 저희 BBS에 직접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하고요. <붓다 연대기>라고 하는 책을 이렇게 두꺼운 책을 내셨는데 마침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참 시절 인연도 시의적절하다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동안 인터넷 교계 언론이죠, 미디어붓다에 연재했던 내용을 묶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이런 글을 내시게 되었는지요.

 

이학종 : 네. 부처님 일대기를 한 번 제대로 정확하게 정리해보고자 하는 원력이라고 할까요 그것을 세운 것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제가 불교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세웠던 원력인데, 그러다보니까 그동안에 부처님 일대기와 관련된 각종 서적이라든가 뭐 책자, 서류를 모았었죠. 그것을 써야 되는데, 제가 기자 생활하는 동안에는 미처 그것을 다 쓰지 못하고 마친 다음에 귀촌해서 글쓰기와 농사에 전념하면서 쓰게 되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지금 당진에서 계시면서 농사도 지으시고 시도 지으시고 이렇게 또 책도 엮어 내시고 한 인연입니다. 어떻게 보면 기자로서 불교권에서 일하시면서 부처님 또 그 분의 삶 이런 것이 투영되어서 오늘날의 한국불교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도 하시면서 언론 생활도 하셨을 것 같아요.

 

이학종 : 네. 그렇습니다. 뭐 이 책에 관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되겠지만 기자 생활을 한다는 것이 많은 불자들을 만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많이 만나고 또 일반 재가불자도 만나고 스님도 만나고 그러면서 제가 느꼈던 것은 우리 한국불교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부처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부처님이 우리 교주이시고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데, 정작 부처님의 삶, 부처님의 일생 또 부처님이 일생을 통해서 가장 중요하게 하셨던 가르침의 내용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설렁설렁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저부터의 반성 그리고 그 반성을 통해서 뭔가 부처님을 일반 불자들에게 올곧게 아주 또 부처님의 진수, 가장 인간적인 따뜻한 면, 그 분의 가르침 이런 것들을 아주 올곧게 전달하고 싶었고, 또 그럼으로써 부처님을 아주 흠뻑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이게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겠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사실 부처님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붓다관은 이른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간에도 현격한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이학종 : 네. 차이가 있죠. 소승불교라는 말은 요즘은 많이 안 쓰는 말이기는 합니다만 초기불교 또는 테라와다 불교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 쪽에 남아있는 니까야라든가 그 쪽 전적들은 부처님에 대한 여러 가지 인간적인 부분, 부처님의 여러 가지 대화라든가 그런 것들이 원음 그대로 비교적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대승불교는 불교가 중국을 거쳐 오면서 그런 부분들이 많이 생략되거나 걸러졌다고 봐야 되겠죠. 아마도 정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중국 사람들은 어떤 기본적인 중화사상 그런 것 때문에 부처님의 인간적인 부분을 걷어내고 어떤 신적인 신화적인 인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대승불교가 인도에서부터 발흥이 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이제 인간적인 면모의 부처님을 아무래도 이 책은 천착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되는 거죠.

 

이학종 : 그렇습니다.

 

김봉래 :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다른 책에 비해서 특징 같은 게 있을 것 같아요.

 

이학종 : 네. 이 책은 부처님이 출가 전 싯다르타 태자 시절, 출가 전 이야기를 좀 자세하게 다뤘습니다. 그런 이유는 부처님의 출가 전 이야기가 그동안 너무 많이 생략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문유관 정도로 부처님 출가 전 이야기를 29세까지의 삶을 정리해버리는데, 그렇게 해서는 부처님 출가 이후의 행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어렵다. 그래서 부처님 출가 이전의 이야기 또 부처님이 출가하시게 된 과정과 결심한 배경, 동기 이런 것들을 자세히 다루는 것이 그 다음에 출가해서 대각을 이루시고 난 다음에 설법을 결정하신다든가 전법의 전략을 세운다든가 이런 것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김봉래 : 저도 그 부분이 참 마음에 드는 것이 일반 다른 종교의 교주와 달리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보면 보통 사람으로 생활을 하시다가 발심에 의해서 정말 성도까지 하신 거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부처님의 성공은 곧 우리 모두의 성공이다. 누구나 다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다 부처가 된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실제로 증명해냈다. 그런 점에서 참 의미가 있는 작업 같아요.

 

이학종 : 네. 사실 그렇게 볼 수도 있고요. 어쩌면 부처님은 출가하기가 어려운 조건의 환경에 사셨지 않습니까. 가진 게 많으셨잖아요.

 

김봉래 : 저희보다, 일반인들보다.

 

이학종 : 일반인들보다 굉장히 결단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런 상황에서도 결단을 했죠. 그런 면에서 볼 때는 부처님의 삶 자체가 우리 일반인들이 따라하는데 굉장히 하나의 어려운 기준, 우리는 우리에게는 좀 수월한 기준에서 선택할 수 있는 그런 기준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김봉래 : 그러니까 저희들이 오히려 부처님보다는 출가를 결심하기에 좀 나은 여건이다 이렇게 생각하신다는 거죠.

 

이학종 : 그렇습니다. 네.

 

김봉래 : 자연스럽게 부처님 출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는데, 정말 저희가 예전에 부처님 전기를 보면서 출가 동기로 기억나는 것은 무엇보다 생사(生死)의 괴로움을 많이 조명을 했거든요. 그래서 아버님 정반왕에게 다가가셔서 왜 출가를 말리십니까. 저는 정말 나고 죽는 괴로움, 죽고 싶지 않습니다. 불사(不死)를 성취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셨을 때, 누구나 다 죽는 거야, 대안이 없죠 정반왕으로서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황당할 수가 있었는데 부처님은 그 길을 선택했고 그것을 이뤄낸 거 아닙니까. 불사를 성취해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부처님의 출가 동기에 대해서 이렇게 되돌아 보셨을 때 한 말씀 주신다면요.

 

이학종 : 금방 말씀하신 것이 출가 동기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실제 출가하셔서 대각을 이루시고 불사의 경지를 이뤄낸 방법은 좀 차이가 있죠. 출가 전에는 아마 영원한 삶, 죽지 않는 삶, 이런 것들을 어떤 죽음으로부터 벗어난 삶을 생각하셨겠지만 출가해서 수행 과정을 통해서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약간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윤회의 원인을 제거해서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그런 것으로 불사의 삶을, 불사의 삶 그 자체라기보다는 불사의 삶으로 가는 그 방법을 제시해주신 거죠. 본인은 육신의 몸은 비록 가셨지만 무여열반을 통해서 영원한, 또 영원한 삶이라고 하면 안 되고요, 불사의 삶을 성취를 하셨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 길을 제시해주신 것이죠.

 

김봉래 : 흔히 부처님의 출가에 대해서는 위대한 포기다 그런 말도 많이 하거든요.

 

이학종 : 그렇습니다. 위대한 포기는 아까 출가하기 어려운 조건들 이런 것도 있겠지만 어떤 부처님 출가의 의미를 한 부분에서 이야기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궁극의 행복을 위해서 일시적인 행복들은 다 포기하는 그런 모습 아니었을까 싶은데, 출가하시고 나서 녹록치는 않았죠.

 

이학종 :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시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선정 수행의 고수 두 분 찾아가지 않습니까. 알라라 칼라마와 웃타카 라마풋타, 두 분을 찾아가서 선정 수행에서 그 분들과 동등한 경지에 아주 이른 시일 내에 오르죠. 오르고 나서 결국 그것이 부처님께서 추구했던 그 길은 아니었다는 것을 아시고 거기를 떠나시지 않습니까.

 

김봉래 : 수정주의(修定主義)였죠. 정을 닦는 수정주의가 정에 들어갔을 때는 마치 생사가 없는 듯이 느껴지지만 선정에서 나왔을 때는 또 다시 괴로움이 존재하니까 완전한 문제해결은 아니다.

 

이학종 : 선정이 완전한 문제해결을 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토대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궁극의 목적지는 아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다음에 부처님이 선택한 것이 고행 아니겠습니까. 6년 동안의 극심한 고행을 하시는데 저는 이 부분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일반 백성들, 일반인들로부터 존경받았던 분들이 고행주의자였거든요. 그 경향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에요. 예를 들면 정확한 예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수십 년 장좌불와를 했다든가 우리 일반인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엄청난 일을 하고 계시다 그러면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 당시도 비슷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전무후무한 아주 극심한 고행을 하셨고 결국은 그것이 결코 가야될 길이 아니란 것을 본인이 밝혀내시지 않았습니까. 본인이 고행을 하지 않고 이 길은 잘못된 길이다고 이야기 하면 설득력이 없었겠죠. 그런데 본인이 그것을 충분히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고행을 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말에 힘이 실렸다고 보죠.

 

김봉래 : 어떻게 보면 중도(中道)가 그래서 나오는데, 양극단을 여의는 장면이죠. 그렇게 해서 수자타의 공양을 받으시고 원점으로 돌아와서 새롭게 자기를 돌아보기 시작하신 거죠.

 

이학종 : 원점으로 돌아와서 이제 굉장히 막막해지셨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가 찾는 궁극의 길을 찾을 것인가. 그것이 어린 시절에 농경제가 진행되는 도중에 부처님께서 어린 나이였으니까 그 브라만 의식들이 굉장히 따분하고 좀 여러 가지 견디기 어려웠겠죠. 그 때 그 의식장을 벗어나서 잠부나무 아래에 가서 명상을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잠부나무 아래에서의 명상이라는 것인데, 그 때 느꼈던, 기존의 선정수행에서 배우지 않았던 자기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면서 일어난 여러 가지 즐거움 또는 행복감 또는 안락함 그런 것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시고 바로 그 수행을 하시는 거죠. 그것이 오늘날 용어로 말하면 위빠사나 수행, 사띠 수행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김봉래 : 그래서 불교 수행의 두 줄기라고 한다면 지관 수행이 되겠죠. 그래서 사마타 위파사나 이렇게 되는 거죠.

 

이학종 : 저는 뭐 사마타 위파사나 수행 전통이 오늘날에는 한국불교의 주된 수행이 간화선 수행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사마타 위파사나 수행 전통이 고려시대 중후기까지 왔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천태스님의 교관겸수라든가 지눌국사의 정혜쌍수 이런 것이 결국은 사마타 위파사나 수행 전통을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봉래 :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야말로 야타부타 여실지견,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시고 그것을 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전법 활동이신데요. 그렇게 45년 하셨다. 그래서 그런 전법의 과정에서도 많은 스토리가 있지 않습니까.

 

이학종 : 그렇습니다. 부처님의 45년은 말 그대로 전법의 역사죠. 전법의 역사인데 결국 이 책을 다 읽으시면 아마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45년 전법의 과정이 굉장히 용의주도하게 잘 짜여진 전법 전략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대각을 이루시고 초전법륜을 통해서 오비구가 아라한과를 얻고, 그 다음에 야사 등 재가자, 부잣집 바라나시 쪽에 살던 부자들이 부처님 설법을 듣고 출가해서 아라한과를 얻고 그런 식으로 해서 61명의 아라한이 생겼을 때 전도명령을 내리지 않습니까.

 

김봉래 : 네 전도선언.

 

이학종 : 그 때 부처님께서는 당신께서 고행했던 우루웰라 쪽으로 가십니다. 물로 거기에는 깟사파 삼형제라고 불을 숭상하는 고행자들이 있었죠. 신통력으로 많은 젊은이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던 깟사파를 비롯한 삼형제가 있었는데 이 분들이 마가다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을 오늘날로 비교하면 뭐 불교로 이야기 하면 종정급, 방장급, 카톨릭 쪽으로 이야기 하면 추기경급 되는 그 정도 되는 영향력을 가진 분들이, 어쩌면 더 큰 영향력을 가진 분들이었을지 모르죠. 그 분들을 조복 받고 제도했을 때 그 전법 효과가 얼마나 컸겠습니다. 35세의 젊은 수행자가, 아마도 그 분들 나이가 굉장히 많지 않았겠습니까. 그 분들을 제자로 삼았을 때의 어떤 효과, 그 전법의 교두보가 탄탄하게 마련되는 거죠. 그리고 우루웰라로 가기 전에 가는 그 인근에 네란자라강 주변에서 부처님이 또 꼬살라국 왕의 이복형제들 30명의 왕자들을 제도합니다. 교화를 해서 그 분들도 다 출가를 해서 다 나중에 아라한과를 얻는데, 이 분들에 대한 교화는 역시 부처님 당시 양대 강국이었던 마가다국, 꼬살라국, 그런데 꼬살라국의 30명의 왕자들이 출가해서 비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이후에 수다타 장자가 기원정사를 짓고 꼬살라국 왕이 귀의하고, 이미 이전에 꼬살라국에 전법의 기초를 튼튼히 닦아 놓았다고 보는 거죠. 그런 것들이 쭉 봤을 때는 부처님의 전법 전략이라는 것이 왕 또 그 시대의 가장 힘 있고 영향력이 큰 세력들을 우선 교화해서 부처님 전법의 교두보를 확실히 마련하는 이런 것이 전략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봉래 : 또 그렇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사성계급을 타파하시면서 브라만, 정말 지도자급 다 제자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바이샤, 수드라까지도 천민까지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학종 : 네. 그것은 차츰. 초창기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작업은 굉장히 전략적이었던 것 같아요.

 

김봉래 : 그런데 보시면 대부분 출가 중심으로 나중에 경론을 합송할 때도 출가자 중심으로 물론 되어 있습니다만 출가자들이 정말 그 사회의 어떤 지도자급이나 아주 대단한 분들이 부처님을 외호했기 때문에 그만큼 불교가 당시 사상계를 지배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이학종 : 뭐 그런 생각도 분명히 할 수 있고 그런 경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내용 중에 재가자를 위한 설법도 많이 하셨거든요. 그런데 경을 결집한 제자들이, 5백명의 아라한이 칠엽굴에 모여서 처음 결집하는데 아무래도 결집한 분들이 출가수행자들이다 보니까 재가자들에 행한 경전은 상당히 빠지거나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그래도 뭐 재가자들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깨우침을 얻고 하는 내용이 실제로 경전에 나오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학종 : 네. 그렇습니다.

 

김봉래 : 그래서 부처님의 일생이 차별하지 않고 모든 중생을 내 자식처럼 여겨서 구원하는 그런 모습인데, 실제로 부처님의 일생을 인간적으로 보면 수많은 고통이 다 끼어 있거든요. 나자마자 얼마 안 되어 어머니를 잃은 거부터 시작을 해서 사실 양모인 이모 마하파자파티도 부처님보다 먼저 돌아가셨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고 아들 라훌라 존재도 먼저 보냈고, 상수제자죠, 사리불하고 목건련도 먼저 보내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 인간적인 고통 또 데바닷타의 반역,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이학종 : 그렇죠. 데와닷따의 반역이라든가 이런 부분은 부처님이 괴로웠던 부분이죠. 데와닷타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시는 부분도 나타나 있습니다. 책에도 제가 기술을 했는데.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부분은 역시 피붙이, 자신을 낳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대부터 길러주신 양모를 1년 먼저 열반에 드는 것을 보고 또 가장 사랑했던 아내 야소다라가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드십니다. 야소다라가 출가해서 비구니가 되었고 수행해서 아라한이 되었다는 것도 많은 분들이 모르고 있죠. 그런 부분도 이번에 책에 밝혀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들 라훌라는 아버지 부처님이 곧 열반에 드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알고 아 나도 그럼 열반에 들어야지. 아버님이 열반에 드실 때가 되었으니 나도 열반에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어떤 선정에 들어서 옛날 과거에 부처님들 있지 않습니까. 과거 7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과거 부처님 당시에 상수제자들은 언제 열반에 들었나 이것을 한 번 살펴보니까 부처님보다 조금 더 먼저 열반에 드는 거예요. 그것을 안 거죠. 그래서 나도 열반에 들어야겠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는 장소에서 열반에 들면 여러 가지 번거로움이 있으니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천신들의 외호 속에 홀로 열반에 들었다, 이런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김봉래 : 저는 그 대목을 읽으면서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훗날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그 아픔을 극복하고 더 열심히 살아서 수행과 전법에 나서야 할 것 같은데, 그 훌륭한 제자들이 먼저 가는 모습에서 좀 상식과 다른 게 느껴졌어요.

 

이학종 : 그러니까 다 먼저 가는 게 아니라 부처님과 함께 태어났고, 그 많은 비구들이 뭐 수없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 분들은 남아서 전법을 하는 거고, 또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기 직전에 스스로 자등명법등명을 유훈으로 남지 않습니까. 부처님은 어떤 조직이나 후계자를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으셨던 분이죠.

 

김봉래 : 그러니까요. 후계자를 생각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지혜가 밝혀지면 그것이 모여져 전체 공동체의 지혜가 밝혀지기 때문에 당신이 일일이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생각도 좀 듭니다.

 

이학종 : 뭐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는 부처님의 선택이 아주 옳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김봉래 : 네. 그 덕분에 인도를 거쳐서 북방불교, 중국 한국 일본으로 가고요. 남방불교는 스리랑카로 해서 미얀마 태국 이렇게 가는데, 주로 이 책을 쓰시면서 전적들을 어느 쪽을 참고를 많이 하셨는지요.

 

이학종 : 사실 부처님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들은 다 모았습니다. 제가 발견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모아서 수십 권을 봤죠. 그 중에 참고할 만한 책도 있고 참고할 것이 별로 없는 책도 있고 그래서 제가 참고한 책들이 뒤에 밝혀놨습니다만 부처님의 일대기를 다룬 책들이 아무래도 여러 가지 분량이라든가 한계가 있어서 많이 생략된 부분이 많았거든요. 저는 이번에 제한 없이 아주 풀로, 내가 쓰고 싶은 만큼 쓰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가지고 썼기 때문에 뭐 200자 원고지로는 3천 매가 넘는 분량이고 책으로는 거의 천 페이지에 가까운 그런 책이 나왔죠. 그러다보니까. 그 동안 여러 전작들에서 빠트렸거나 생략되었던 부분 또는 밝히지 않았던 부분이 이 책에는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봉래 : 부처님의 일생을 보면서 마지막 순간에 부처님의 모습이 이른바 열반경에 잘 나타나 있기는 한데요, 특히 부처님의 최후 유훈을 우리가 되새기면서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런 것도 좀 자세를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이학종 : 네.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은 빠알리어로 이야기 하면 압빠마데나 삼빠데따(appamadena sampadeta)라는 그런 말인데 그것은 우리가 한문으로는 불방일정진,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이런 말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저는 제가 잠시 미얀마에서 수행을 하고 왔는데, 그것을 하기 전에는 이 뜻을 부지런히 정진하라,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이런 뜻으로 알아들었습니다. 아 이게 열심히 살라는 뜻이구나, 부처님께서, 이렇게 제가 받아들였는데. 제가 수행정진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아 이것이 순간순간 깨어있음을 놓치지 말라. 그러니까 멍 때리지 말고 어떤 탐진치 삼독심에 휘둘리지 말라, 이런 뜻이었다는 것을 수행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부처님의 불전이라든가 교리라든가 이런 것들은 수행과 결부되어 이해되어야 그 의미가 정확히 살아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것도, 뭐 그런 부분도 제가 이 책에 담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앞에서도 잠깐 말씀을 나눴습니다만 부처님의 일생을 바라보면서 과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특히 한국불교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가 같이 되돌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학종 : 네. 불교에서 교주는 부처님 아닙니까. 부처님을 우선 잘 알아야 하고, 잘 이해해야 하고, 부처님의 본 모습을, 또 그럼으로써 부처님을 닮아가는 거죠. 부처님을 가장 가깝게 닮게 되면 우리가 다 부처님이 되는 것이 되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가 너무 부처님의 본래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서 다소 우리가 그동안 소홀하지 않았나. 이 책이 나온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서 부처님 오신 날에 오시는 부처님을 충분히 정확하게 잘 이해하는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김봉래 : 네. 뭐 흔히 한국불교가 위기다 그런 이야기도 있어요. 또 특히 탈종교시대를 맞아서 우리 종교계도 대처를 잘 해야 되는데 어떻게 보세요.

 

이학종 : 저는 한국불교가 위기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죠. 늘 위기였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날은 정말 교세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그래서 정말로 위기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는 불교가 다른 이웃종교에 비해서 정말로 우리 불교가 독보적이고 뭐 탁월하고 확실한 경쟁력을 가진 것이 어떤 것인가. 저는 담마(Dhamma)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법. 부처님 법을 우리가 이럴 때 일수록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널리 퍼트리고 이런 일에 앞장서야 한국불교가 살 길이 생긴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승가, 불법승 삼보가 불교의 핵심이다.

 

이학종 : 특히 담마, 특히 담마를 너무 우리가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다. 또 담마는 정말 비교 불가가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의 담마는 너무 우뚝해서.

 

김봉래 : 보편적인 진리라고 하죠. 그러니까 3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3천 년 후나 언제든지 한결같이 세상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적용 가능한 가르침이다. 옳은 가르침이다. 그래서 보편타당한 진리라고 이야기를 하죠.

 

이학종 : 보편적이기도 하고 또 가장 높기도 하고.

 

김봉래 : 오랫동안 불교 전문기자로도 활동을 하셨고 또 미디어붓다 같은 인터넷 언론을 이끌기도 하셨고 했는데, 저희 불교방송 같은 매체에도 한 말씀 당부를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학종 : 저는 불교언론이, 언론의 기능이 단순히 어떤 사건이나 행사나 여러 가지 불교계 각종 단체나 종단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또는 소식을 전하는 거기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불교언론의 기능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불교언론을 통해서 인재가 발굴되고 인재가 성장하고 또 성장한 인재가 더욱 큰 영향력을 확대하고, 이런 과정 속에서 불교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아무리 봐도 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능력 있는 불자를 우리가 얼마나 많이 길러내느냐, 그 분들을 어떻게 우리가 양성하고 성장시키느냐, 이런 것을 불교언론이 맡아야 할 그런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또 일반 독자들도 불교언론이 단순히 소식이나 전달해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엄청난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고 언론에 대한 후원과 지원 또는 관심을 더 크게 지금보다는 더 크게 확대해야 한다고 요청드리고 싶네요.

 

김봉래 : 고맙습니다. 저희 불교방송도 개국한지가 31주년을 맞았는데, 라디오로 출발해서 요즘에는 영상까지 같이 하고 있습니다만 저희도 갈 길이 참 멀지 않나. 앞으로 50년 100년 그 이상을 내다본다면 어차피 초창기라고 볼 수도 있는데, 기자 시절에 불교방송의 태동부터 초기까지 면밀히 지켜볼 때가 있었지 않습니까.

 

이학종 : 네. 불교방송 필요하다, 불교방송 설립해야 한다는 기사도 썼고요. 또 불교방송이 태동하는 과정에서 약간 진전이 없을 때는 빨리 진전시키라고 채찍도 하고, 특히 정부 쪽 관련 부처를 비판하는 기사도 썼던 기억이 있는데, 어쨌든 지금 30년 넘게 잘 성장하고 있는 것 같고, 특히 만공회와 같이 많은 불자들의 참여 속에 발전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좀 든든하기도 합니다.

 

김봉래 : 네. 그래서 불법승에서 승이라는 것은 화합된 공동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가 모두 합심해서 노력을 해야 될 것 같다 저희들도 다짐을 해봅니다. 이렇게 하다보니까 벌써 시간이 마무리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만, 우리 이학종 작가님 개인의 인생의 비전을 듣는 것으로 오늘 인터뷰를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이학종 : 비전이라 하니까 뭐 거창한데, 저는 이제 현업에서 물러나서 산골에 가서 살면서 밭농사도 짓고 글농사도 짓고 글도 쓰고 하는데 앞으로 제가 할 일은 부처님의 가르침, 담마를 어떻게 일반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게 이것을 널리, 거기에 좀 부족합니다만 저의 통찰을 거기에 섞어서 널리 확산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집필 작업, 이렇게 계획은 짜여 있습니다. 앞으로 뭐 1년에 한 두 권 정도의 정말 불자들의 수행과 신행에 도움이 되는 그런 어떤 글쓰기에 전념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출연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학종 :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이학종 작가님과 함께했습니다.

 

김봉래 ; 네. 여러분 이학종 작가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을 돌아보게 됩니다. 법을 의지해서 스스로 헤쳐 나가라 하는 자귀의법귀의도 그렇고요,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눈 떠서 정진하라는 불방일의 가르침도 그렇습니다. 정말 자비로우신 가르침에 가슴 뭉클하게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지혜 등불이 온 세상을 밝게 비출 것이라는 가르침 다 함께 되새겨 봤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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