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에서 처음 물건을 팔았다. 요즘 핫하다는 중고거래 플랫폼이란 소문에 용돈벌이 할겸 앱을 깔아 전자제품 2개를 올렸다. 7.1인치 노트패드를 11만원에, 휴대폰 S펜을 1만원에 내놨다. S펜은 거래창에 띄운지 5분도 안돼 3명한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노트패드는 딱 한번 문의 채팅이 온 뒤 사흘간 감감무소식이다. S펜은 재빨리 직거래가 이뤄졌고, 노트패드는 값을 내려야할 상황에 놓였다. 자본주의 시장의 '자율조정 기능'이 이런 것이었나? 패드는 수험생 큰 아이의 인터넷 수업을 돕고자 중고로 구입한지 보름만에 산 가격 그대로 일단 내놔본 것이었다. 반면 S펜은 포장도 안뜯은 거의 새 것에 헐값이라 ‘본전 생각’이 담겨있지 않았다. 동네 이웃간 거래에도 ‘보이지 않는 손’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함께 용인할 만한 제값을 정확히 찾아내고 있었다. 유기적 기능의 시장은 공급과 소비 주체의 마음도 읽어내는게 아닐까 궁금해졌다.

   난데없이 온라인 중고물품 거래를 해본건 당근마켓 게시글이 사회 문제를 야기한데서 비롯된 것 같다. 2주 전 쯤 입양 절차를 밟던 미혼모가 당근마켓에 '태어난 지 36주 된 아이를 20만 원에 판다'고 글을 올려 엄청한 파장을 낳았다. 이후 아이를 거래하겠다는 다른 당근마켓 게시글이 한 중학생의 장난으로 밝혀져 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새 임대차 보호법 시행 후 귀하디 귀해진 아파트 전세 매물까지 당근마켓에 등장한 것도 심상찮은 일이다. 매물 하나 보려고 줄서기, 제비뽑기에 면접 까지 해야할만큼 전셋집 씨가 말라버려 나타난 현상이다. 네이버, 직방, 다방 같은 부동산 전문 플랫폼이 허위매물로 단속 모니터링에 처한 틈을 타 사각지대를 노린 불법도 가세한 듯 했다. 기사를 찾아보니 지난 9월에만 부동산 광고시장 감시센터에 신고된 허위매물이 1천507건이었다. 최악의 전세난에 주변 시세보다 낮은 '미끼 상품'으로 세입자를 유혹하는 것은 코로나19로 지친 서민들을 두 번 울리는 일이다. 당국과 기업은 방지책 마련을 서두르고 소비자는 ‘슬기로운 당근생활’이 뭔지를 생각할 시점을 맞았다.

   거액의 보증금을 들여 전셋집을 구하는 것과 당근마켓에서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비교 대상이 되기 힘들다. 삶의 체제를 갖추는 일에는 단순한 기호품 하나 선택하는 행위에 비할 수 없는 엄중함이 깃들어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두 일은 엄연히 ‘좋은 물건을 보다 저렴하게 손에 넣기 위한 선택’의 틀 안에 존재한다. 쉽게 말해 새 것이 아닌 헌 물건을 택하는 소비자 위치가 공급자 보다 우위에 있는게 자연스럽고 시장 논리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넘쳐나는 온갖 상품으로 장이 선 당근마켓과, 반대로 전세 매물 하나 찾기 힘든 부동산 시장은 동시대 서울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새 임대차법의 주역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본인 마저도 세입자 계약갱신요구권 행사로 '전세 난민' 신세가 될 뻔했다가 위로금을 주며 겨우 내보냈다고 한다. 세입자 계약 연장 보장이 끝날 무렵인 2년 뒤면 이 나라에 전세 난민이 쏟아질 판이다. 서민들의 전셋집 구하기를 위정자들이 당근마켓에 넘쳐나는 중고물품 거래 정도로 여기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경제산업부 이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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